성신 강단

새마음훈련12

박도식 2021. 4. 12. 18:09

새마음 훈련12

 

4: 23

23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베트남 전쟁에서 전쟁을 할 때 전쟁하기 어려운 것은 뚜렷한 전선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쟁에서는 아군과 적군이 분명해야 한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에서는 아군과 적군이 모호했다. 전쟁 후 사상자를 살펴보면 낮에 자기 부대에서 일하던 인부였다고 한다. 낮에는 부대에서 일하고 밤에는 베트콩이 되어 전쟁을 하는 것이다. 또한 부녀자나 아이라고 안심할 수 없다. 이들은 치마속이나 다른 곳에 수류탄을 숨기고 부대나 군인들에게 접근하여 막대한 해를 끼쳤다. 언제 어디서 누가 공격해 올지를 모르는 전선 없는 전쟁은 이처럼 어려운 것이다.

 

우리 마음이 치르는 전쟁도 마찬가지이다.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떻게 공격해 올지를 알지 못한다. 내 자신이지만 자기 속마음을 온전히 알지 못한다. 금방 좋다가도 금방 싫어진다. 금방 은혜 받아 좋아졌다가 금방 육신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 사람은 여러 가지 곤경을 당하였다. 그러나 마음을 잘 다스린 사람은 순탄한 길을 걸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이 우리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내 마음이지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우리의 마음이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지키고 다스리라고 하셨다.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곳, 비손 강, 기혼 강, 힛데겔 강, 유브라데 강이 있는 살기 좋은 곳이었다. 풍요가 있고, 넉넉함이 있는 곳이었다. 이때 사용된 단어가 샤마르이다. 아담은 에덴동산을 경계하고 방어하고 돌보아야 했다. 그러나 아담은 에덴동산을 온전히 지키지 못했다. 뱀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다. 아담은 에덴동산을 지키는 데 실패하였다. 그리하여 동산에서 쫓겨나 등골이 빠지도록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삶을 살았다. 비참한 아담의 모습이다. 오늘 우리의 마음이 에덴동산이다. 우리 마음에 은혜가 넘치면 하루하루가 기쁘고 즐겁다. 마음이 행복하면 얼굴에 밝은 미소가 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을 지키지 않으면 얼굴에 근심과 걱정,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간다. 마음을 마귀에게 빼앗기면 감사가 없고 기쁨이 사라진다.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이다.

우선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 인간이해를 어떻게 하는가? 하나님의 자녀인가? 아니면 죄악 덩어리 인간인가? 많은 신앙인들이 자기 자신을 너무나 비하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자기 자신을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자화상이 바르지 못한 것이다. 특히 우리가 기도할 때 많이 사용하는 말이 있다. ‘만물의 찌꺼기 같은 존재, 벌레 못한 인간이다. 우리 귀에 익숙한 말이다. 그러나 이걸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벌레 보다 못하지 않다. 만물의 영장이며 하나님의 형상이 있는 존재이지 찌꺼기는 아니다. 자화상이 사단의 공격으로 왜곡되어 있다.

 

1. 중독의 자화상

자기 자화상을 나쁜 습관의 밧줄로 묶는 경우이다. 이들은 술과 마약, 정욕과 성욕의 포로가 되어져 있다. 그들은 속으로 생각한다. ‘나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다. 나는 속물이다. 나는 세상의 습관에 묶인 사람이다. 나는 중독에서 해방될 수 없다.’ 중독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2. 불행의 자화상

자기는 사람들과 가족들에게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행복하면 스스로 말한다. ‘나는 행복하면 안 돼불행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은 불행의 씨앗이 심겨진다. 그들은 스스로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다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불행에 빠뜨린다. 이런 사람은 매사가 부정적이고 미움과 분노의 포로가 된다.

 

3. 병약한 자화상

몸이 약한 사람은 병약한 자화상을 가지고 항상 병에 대해 불안과 공포를 가지고 산다. 자신이 허약하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살 수 없다고 단정한다. 병을 두려워하면 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사람들은 나는 선천적으로 약해, 병이 재발할 거야라고 생각한다. 병에 대한 정신적인 저항력이 완전히 상실한 것이다.

 

4. 실패한 자화상

이들은 가장 불행한 삶을 산다. 이들은 무능력하고 배경도 없고 늘 가난하고 생활고에 허덕이면 나 같은 사람은 버림받은 인생이다. 하류인생이다. 쓰레기 인생이다. 나는 무엇을 해도 실패한다.’라고 생각한다. 자화상이 실패한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을 정당화 한다. 조상 대대로 가난했다고 가난을 정당화 한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도저히 행복할 수 없다. 가난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남아메리카의 칠레는 안데스 산맥이 있다. 이 산맥은 우리나라 면적의 4,5배 가량 된다. 이 거대한 산맥이 동이나 구리같은 천연 자원으로 가득차 있다. 그 매장량은 지구의 종말이 올 때까지 다 쓸 수 없을 정도라 한다. 그러나 칠레는 오래 전부터 가난했고, 지금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패배주의 의식 때문이다.

 

파라과이는 산과 들에 자생하는 들풀 같은 것이 있는데, 그 식물의 뿌리에는 고구마 같은 열매가 자라난다. 이것을 삶아 먹으면 고구마나 감자와 비슷한 맛이 난다. 영양분까지 충분하다. 더욱이 온 국민이 죽을 때까지 그것만 먹어도 다 먹을 수 없을 만큼 양이 많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그것은 만나와 같아서 그날 캐서 그날 먹어야지 하루만 지나도 말라서 못 먹게 된다. 한마디로 파라과이 만나이다. 이것의 자생력은 얼마나 강한지 심고 가꾸지 않아도 계속해서 생겨난다고 한다. 그런데도 파라과이는 잘 살지 못한다. 뿌리 깊은 가난의식 때문에 그렇다. 그들은 백인들보다 열등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패배의식은 그들의 잠재능력을 마비시켜 버렸다.

 

케에르 케고르는 말했다.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무서운 병은 암같은 질병이 아니라 자아상실 즉, 자기를 잃어버린 절망이다.”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창조해 놓으셨다. 그런데 그것을 지키는 것은 아담의 몫이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다. 그런데 그 마음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를 담는 그릇이다. 마음의 그릇이 더러우면 더러운 것에 은혜를 담는 것이다. 더렵혀진 은혜는 은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정결한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가 온전히 은혜가 된다. 사람들은 체구가 작으면 작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이 작다고 해서 마음까지 작으라는 법은 없다. 공부를 못했다고 해서 마음이 작으라는 법은 없다. 재물이 없다고 해서 마음까지 작으라는 법은 없다. 인생에 있어서 성공의 결정은 우리의 마음을 지키느냐 지키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

 

예화)

어느 부부 이야기를 해보자. 남편은 동경의대를 나와서 미국에서 의사로 재직하는 분이었다. 아내는 매우 똑똑한 사람이다. 사소한 마찰로 부부가 다투면서 두 사람 사이가 멀어지게 되었다. 나중에는 서로를 포기했다. 그러다 남편은 망상에 사로잡혔다. 부인이 자기를 죽이려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밤마다 부엌칼을 머리맡에 두고 잠을 자게 되었다. 남편이 머리맡에 부엌칼을 두고 자는데 부인이 그 옆에 잘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부인은 반미치광이가 되었다. 다행히 그 집안은 복음을 받아들이면서 그 망상에서 벗어나올 수 있었다.

 

현대인이 불행하다고 하는 것은 마음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사업이 잘되어도 불행, 자녀들이 건강해도 불행, 좋은 차와 낭만 있는 시간을 보내도 불행. 불행으로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행복하다. 나는 매사에 잘된다. 주님의 은혜가 나에게 넘친다는 행복마인드로 프로그래밍이 되어져 있으면 언제나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다.

 

인생을 파멸시키는 자포자기라는 독소를 제거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의 에덴동산은 마음이다. 마음이 즐거우면 매사가 즐겁다. 마음이 불편하면 매사가 껄끄럽다. 옛날에는 생명의 근원이 에덴동산에 있었지만 오늘날은 우리의 마음에 있다. 주님이 아담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라. 이제는 우리의 마음을 지키라 하신다.

 

우리의 마음을 공격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우리의 마음은 중립적이지 않다. 우리의 마음은 쉴 새 없이 공격을 받고 있다. 어떻게 공격을 받는가? 오늘은 3가지만 살펴보자.

 

첫째. 사람의 정욕이 마음 동산을 괴롭힌다.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3:15)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도 예수 믿을 때 죄 값을 치러서 죄의 형벌은 면했지만 죄의 오염으로 인해 마음이 부패해져 있기에 마음에서 계속 죄가 흘러나온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7:20)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15:19-20)

 

둘째. 세상이 마음을 공격한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2:15-17)

 

비록 마귀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치명타를 입었지만 여전히 세상의 임금이자 이 세상을 다스린다. 그래서 세상이나 세대를 말할 때 악한, 음란한과 같은 부정적인 말을 많이 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12:3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9:41)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2: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고전2:12)

 

세상의 풍속, 사조, 유행을 경계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속에는 악한 영의 궤계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상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그리스도인들을 따라오게 해야 한다.

 

왜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세상과 벗되어서 안 되는가?

 

세상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과 위배된다.

세상의 풍속을 따르면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우리의 육신이 요구하는데로 살라고 말한다. 세상에서 성공하고 형통하는 것이 인생의 최고의 가치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세상과 타협하게 만든다.

 

세상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을 강조한다.

투입한 노력에 상응하는 결과가 나타나야 한다. 가시적이고 측정 가는 한 업적주의가 지배적이다. 눈에 업적이 보여야 성공한 사람이다. 그러나 성과가 없으면 실패한 사람이라 한다. 이런 것이다. 교회는 커야 하고 신자는 무조건 세상적으로 성공해야 한다. 세상은 이런 것에 우선순위를 두기 때문에 편법, 거짓, 위선이 동원된다. 세상은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도 중요하다. 세상은 외형적인 것이 중요하다. 외형과 외모에 많은 시간과 물질과 노력을 투자한다. 몸매 가꾸는 것이 중요하다. 정말 중요한 마음을 가꾸는 것에는 무관심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눈에 드러나지 않는 희생과 헌신을 요구한다. 하나님은 마음에 먼저 관심을 보인다.

 

세상은 관능과 말초신경을 자극한다.

세상은 화려한 외형과 감각적인 쾌락을 추구하고 또한 이를 추구한다.

 

세상은 체면주의와 외식주의를 부추긴다.

신자들도 하나님의 뜻을 행할 때 동반되는 핍박과 손가락질, 왕따를 수용하기보다 사람의 기분과 체면을 중시한다. 신자들조차 세상의 풍속, 사조, 유행을 따라가지 못하면 시대에 뒤떨어지고 손해 볼까봐 열심히 따라가는 사람들이 많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들의 판단이 아닌 하나님의 판단이다. 우리는 사람을 기쁘게 하기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한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1:10)

 

셋째. 마귀가 우리 마음 동산을 공격한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요일3:8)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6:12)

 

마귀가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공격할까?

마귀는 생각과 마음을 통해 마음 동산을 공격한다. 마귀는 아담과 이브에게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주입시켜 헛된 욕망을 부추긴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통해 우리를 조정하려고 한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13:2)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5:3)

 

많은 사람들이 사기를 당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사기꾼의 말이 그럴듯하기 때문이다. 자기 마음속에 허영과 욕심이 있기 때문에 넘어간다. 마귀는 천재적인 사기꾼이다. 마귀는 나쁜 생각을 쏘아 넣기도 하지만 대부분 우리의 마음에서 흘러나와서 우리 속에 쌓여 있는 욕심, 의심, 두려움, 음란한 생각, 미움, 용서 못함, 좌절, 낙심, 불평과 불만과 같은 죄악이 되고, 악한 생각의 씨앗을 타고 역사한다.

 

부정적인 마음을 깨끗이 하라.

 

최근에 미국에서 유행하는 것이 감사팔찌이다. 보라색으로 만든 것인데 우리는 보통 불평과 원망의 말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 말을 할 때마다 팔찌의 위치를 바꾼다. 21일 동안 불평과 불만의 말을 하지 않는다면 팔찌를 제거해도 된다. 그런데 어떤 이는 팔찌를 제거하는데 4개월이 걸리기도 하고 어떤 이는 10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불평과 원망이 생활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악한 마귀는 우리의 생각을 타고 역사한다. 그러기에 새마음 훈련을 하면 우리 속에 침투하는 악한 영의 세력을 예수님의 보혈로 물리칠 수 있다.

 

우리가 마음을 지키지 않으면 세상의 가치관이 우리 마음에 침투한다. 우리가 악한 생각으로 오염된다.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두루 찾아다닌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음을 제대로 지키려면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악한 생각들을 정기적으로 보혈로 씻어야 한다. 그래야 마귀에게 발판을 제공하지 않는다.

 

결론)

낡은 부대에 새 술을 담을 수 없다. 낡은 옷에 새 베 조각을 깁지 않는다. 새 베 조각은 새 옷에,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 우리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새로워 져야 한다. 우리의 삶이 새 옷이 되고 새 부대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주님은 누누이 말씀하신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난다마음을 새롭게 해야 한다. 마음을 지켜야 한다. 그때 우리는 온전히 주님을 닮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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