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신 강단

새마음훈련16

박도식 2021. 4. 12. 18:17

새마음 훈련16

 

12: 36

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37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독립운동가 이상재 선생님은 독립만세 운동을 주도하다가 일본 순사에게 체포되어서 6개월 동안 옥에 갇혀서 모진 고문과 매를 맞았습니다. 순사가 때리는데 때릴 때마다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고 세게 때리면 더 크게 외치니까 오히려 순사가 지쳐버렸습니다. "이 영감아! 대한독립만세 라고 소리 지르지 말라고 때리는데 왜 자꾸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때 이상재 선생이 대답하기를 "내 속에는 대한독립 만세로 가득 차 있어서 대한독립 만세가 내 목구멍까지 차 있는데 당연하지 나을 건드리지 마시오, 건드리기만 하면 대한독립 만세!”가 나오는 것이 아니요?"하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최권능 목사님은 맞을 때마다 예수! 천당!”을 외쳤다. 그 안에는 예수와 천당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마음은 '창고'와 같습니다. '곳간'과 같습니다. 이 창고에 무엇이 쌓여 있느냐에 따라서 그 쌓여진 것이 입을 통하여 말의 형태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쌀이 쌓여진 창고에서는 쌀이 나오고, 보리가 쌓인 창고에서는 보리가 나오는 것처럼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속에 무엇이 쌓여 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무슨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심문을 받을 것을 말씀하셨다. 우리의 행함에 의한 심판도 있지만 주님이 친히 우리의 말을 살펴보시면서 심판을 하시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말은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의 말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기 때문에 말을 잘 해야 한다. 새마음을 가지려는 성도들은 무엇보다 말의 훈련을 잘해야 한다.

 

예화) 1988년에 미국 텍사스 의과대학 심장학 교수인 스미스 박사님이 한국을 다녀갔다. 이 분은 심장에 대해 전문가이다. 그러나 이가 의과대학에서 심장학 강의를 하다가 심장 쇼크로 쓰러졌다. 그런데 갑자기 자기 혼이 바닥에 누워 있는 자기 모습을 보고 있었다. 어느 틈에 의과대학 응급실에서 와 있는데 본인을 살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효과가 없었다. 의사들은 전기 충격을 하면서 최선을 다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가장 나이 많은 의사가 손을 흔들면서 시체 위에 흰 가운을 덮었다. 아내는 자기 다리를 붙잡고 울고 있었다. 교수님은 어느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방안에 6명이 있었다. 그 심판관가운데 4명이 동일한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말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못을 박았어. 당신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당신 말로 얼마나 절망적인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었느냐?” 네 명의 심판관이 동일하게 질문을 하고 대장 심판관이 빙그레 웃더니 그에게 말했습니다. “다시 기회를 줄테니 더 살고 오더라.” 그래서 4시간 반 만에 깨어나서 학교에 교수직 휴직을 하고 전 세계에 다니면서 말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을 했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그만큼 말의 소중함을 일깨워 줍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못을 박았는가? 아니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소망을 불러 일으켜 주었는가? 얼마나 믿음의 말을 했고 생명을 살리는 말을 했는가? 아니면 부정적이고 불평하며 원망적인 말을 하면서 다른 사람을 괴롭혔는가? 예수님은 우리 말로 심판을 받는데 말로 의롭다함을 받고 말로 정죄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은 좋은 말을 하고, 나쁜 사람은 나쁜 말만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믿음의 말을 하고, 불신앙이 사람은 불신앙의 말을 합니다. 예수님은 죄의 용서에 대해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지만 말에 대해서는 아주 강경한 태도를 보이십니다. 왜냐하면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예비고사가 있을 때의 일입니다. 종로학원에서 1등을 가던 삼수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학생은 평균 400점 만점에서 370점 이상을 맞는 우수 학생입니다. 모의고사 20번 중에서 거의가 370점 대였습니다. 모두가 서울대를 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도, 재수할 때도, 3수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 학생의 징크스는 예비고사 시험에는 항상 170점 밖에 맞지 못하는 것입니다. 평상시 실력은 370점 이상으로 넉넉히 서울대를 갈 수 있는데 는 것입니다. 모의고사에서 365점 이하로 내려가 본 적이 없는 학생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에게도 사연이 있었습니다. 이 아이가 들은 말 한마디 때문입니다. 예비고사를 보기 사흘 전부터 잠을 못 잡니다. 땀을 쫙쫙 흘리고 잠을 못 잡니다.

 

중학교 1학년 2학기 때였습니다. 이 아기가 아파서 시험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63명 중에서 63등을 했습니다. 그런데 새로 부임한 선생님이 종례 시간에 들어오시면서 말했습니다. “ 꼴등한 새끼나와!” 무조건 꼴등한 새끼나와!”라고 그랬습니다. 아무도 자기가 꼴등한줄 모릅니다. 애들이 고개를 꺄우뚱 꺄우뚱 하고 있으니까 담임선생님이 학생의 이름을 부르면서 나오라고 했습니다. 주먹으로 머리를 콱콱 쥐어박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꼴등이나 한 새끼는, 너는 시험 가지고 니 인생 꽃피기는 틀렸어! 이 새끼야!” 하면서 쥐어박는데 이 아이가 밀리다가 뒤로 넘어져 쓰러졌습니다. 그때 아이들이 전부다 와 하고 웃어버렸는데 그때 이 아이는 기절을 해버린 겁입니다. 그 다음부터 이 아이는 학교에서도 모의고사만 보면 언제나 전교에서 일등인데 본 고사만 돌아오면 삼일 사일 전부터 잠을 못잡니다. 그래서 언제나 꼴등을 했습니다. 이 아이가 머리가 좋고 천재라는 사실을 엄마 아빠도 학교 선생님들도 아는데 그러나 그 아이는 영원히 시험가지고 인생을 꽃피기는 틀린 아이입니다. 이게 무슨 장난입니까? 말장난입니다. 말장난 말 한마디가 이 아이를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천하 보다 귀한 한 생명이 죽이는 말 한 마디에 불행에 빠진 것입니다.

 

정태기 교수님 이런 간증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중학교 때 외갓집에서 공부를 하는데 친척 누나 친구들이 정태기 목사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태기는 못생겨서 여학생들이 아무도 안 따를 거야!” 건너 방에서 이 말을 들은 정태기 교수는 충격을 받습니다. 그 이후로 목포 여고생들과 마주치면 골목에 숨던가. 돌아갑니다. 목포에 있는 모든 여학생들이 그를 가리켜 태기는 못생겼다. 저 새끼 못생겼다.” 이런 말을 하는 것처럼 생각이 되었습니다. 여학생들 앞에 서면 재봉틀 떨듯이 떨었다는 것입니다. 30살이 되도록 여학생 앞에서 떨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교수님은 자기는 장가를 못 갈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외가 누나 친구의 말 한마디가 어린 정태기 교수가 여학생 앞에서기만 하면 재봉틀처럼 떨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15세부터 30세 까지 15년을 잃어버리고 살았다. 여학생의 말 한마디가 남자의 인생 15년을 갉아 먹었습니다.

 

말은 힘이 있습니다.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말은 한 사람으로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고, 한 사람으로 병신같은 사람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좋은 말을 듣고 자란 사람이 비참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좋은 말을 들으면 반드시 건강한 모습으로 성공합니다. 그러나 나쁜 말을 들은 사람들은 말의 포로가 되어 불행하게 삽니다. 말은 씨앗이기에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저 무가치한 말은 없습니다.

 

경상도 안동에 가면 권태형 장로님이 계십니다. 권태형장로님은 유명한 선생님입니다. 기도많이하시는 선생님입니다. 장로님이 반을 맡으면 아이들이 달라집니다. 안동에서는 권태형 선생님이 있는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합니다. 어느 가난한 시골의 아버지가 이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아들이 권태형 선생님이 시무하는 학교에 합격하기 위해 말입니다. 아들이 기도 응답으로 합격이 되었습니다. 가난한 아버지는 아들이 입학식 하는 날 계란 열 개를 짚으로 싸서 학교에 가지고 갔습니다. 그 당시 계란은 귀한 선물입니다. 새벽 일찍 일어나 아들 손잡고 계란 한 줄을 가지고 학교에 도착했습니다. 학교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권태형 선생님이 일찍 출근해 있었습니다. 교문 밖에서 가난한 농부 차림의 아버지와 아들이 있었습니다. 선생님과 아버지는 서로가 모릅니다. 누추한 옷을 입은 농부가 떨고 있기에 선생님이 물어 봅니다. “권태형 선생님이 계신 학교에 입학을 해서 너무 감사해서 권태형 선생님을 만나 뵐려고 왔다는 것입니다. 본인 소개를 하니 가난한 농부는 너무 기뻐하였습니다. 교무실로 데려다가 차를 끓여 대접을 하였습니다. 차를 먹으면서 대화를 했는데 집안이 너무 가난해서 고등학교를 못 보낼 형편이라는 것입니다. 나중에 선생님이 이 아이를 끌어안고 어깨를 또닥거리면서 격려의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은 너는 열심히 공부해서 육사를 가거라 그리고 장군이 되어라.”입니다. 그 아이는 자기 집 벽에다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육사 가서 장군이 된다.” 이 아이는 신문을 돌리면서 고등학교를 다녔고 육사를 졸업하고 장군이 되었습니다. 장군이 되었을 때 별 한 개를 달고 짚차를 달고 안동의 권태형 선생님이 근무하는 학교에 찾아갔습니다.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얘기하시는 선생님을 보았습니다. 선생님께 앞에다 짚차를 세우면서 흙마당에 무릎 꿇고 별달린 모자를 선생님 앞에 내려놓으면서 큰 절을 올렸습니다. 그러면서 말합니다. “이 별은 선생님 말씀 한마디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총입니다. 축복입니다.”

 

생명의 말 한마디가 한 학생에게 용기와 꿈을 심어 주었습니다. 이처럼 한 마디 말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할 수 있습니다. 시편 1403절에 보면 <뱀같이 그 혀를 날카롭게 하니 그 입술 아래에는 독사의 독이 있다>고 했습니다. 잠언 1011절에 보면 <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도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는다>고 했습니다. 잠언 1821절에는 <죽고 사는 것이 사람의 혀의 권세에 달려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시락이라는 사람은 '세상에는 총칼에 죽은 자가 많지마는 독설(毒舌), 독한 말, 남을 악담하는 말에 죽은 사람의 수가 더 많다'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46절에 보면 <혀는 우리의 온 몸을 더럽히고 자기 자신을 불태워 죽일 수 있는 권세가 말에 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말은 남을 죽일 수도 있고 자기자신을 파멸시킬 수도 있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디모데전서 3장에 보면 직분자들에게 여러 가지로 가져야 할 조건들을 말하면서 말에 대한 몇 가지 가르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히 11절에는 <참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참소란 말은 '중상하다' '악담하다'는 말입니다. 참 묘한 것은 '디아볼로스'라는 이 말은 '참소'라는 말도 되지만, 다른 곳에서는 '마귀'라고도 번역되어 있습니다. 마치 '순교자'라는 말과 '증인'이라는 말이 같은 말인 것처럼 '마귀'라는 말과 '참소'라는 말, '디아볼로스'라는 말이 같은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참소하지 말라' 중상하지 말라' '모략하지 말라' '악담하지 말라'는 말을 바꾸어 말하면 '마귀되지 말라'는 말입니다. 참소하고 중상하고 모략하고 악담하면 '마귀'라는 이 말입니다. 아무리 잘 믿어도 참소하면 마귀짓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는 것 같아도 중상하면 사탄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참소하고 입에 거품을 물고 중상하고 모략하고 악담을 하면 신앙인으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마귀의 행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급요리가 무언인지 아십니까? 사람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칼로 난도질하는 것입니다. 비방을 하고 수군거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상대방을 잘 모르면서 비방에 동참하거나 험담하는데 일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 앞에 바르지 못한 것입니다. 마귀의 행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영화감독이 자녀들에게 친구들에 대해 섣불리 말하지 말라고 교훈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딸이 난 반 고흐의 그림은 질색이에요, 아빠라고 했습니다. 이때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고흐의 그림이 싫다고? 그럼 너는 반 고흐의 그림을 몇 점이나 가지고 있느냐? 그리고 왜 싫은지 말해보거라.” 딸이 우물쭈물할 때 아빠는 말합니다. “상대방을 모르면서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

 

탈무드에서도 말합니다. “남을 비방하는 것은 살인보다 위험한 일이다. 살인은 한 사람 밖에 죽이지 않지만 비방은 세 사람을 죽인다. 비방하는 사람, 그것을 듣고 있는 사람, 그리고 화제가 된 사람이다.” 주님께서도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7:1)

 

오늘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하십니다. 네 말로 의롭다 함을 얻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말은 최면의 효과가 있습니다. 말은 사람을 이끌어 갑니다.

 

어떤 여집사님의 남편은 고려대학교와 고려 대학원을 나온 엘리트였습니다. 그런데 대학원을 나와도 어디 가서 일을 못합니다. 동사무소에서도 3일 이상 근무를 못합니다. 단지 부인이 미장원을 운영하면서 벌어준 것만 먹고 집에서 신문이나 보는 사람입니다. 물론 신앙생활도 안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충남 강경에서 육남매의 맏아들로 자랐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는 부정적인 말이었습니다. “이 새끼야 그 썩은 동태 눈깔 가지고 어디가서 뭣할래!” 일주일이 멀다하고 이 새끼야 그 썩은 동태눈깔 가지고 어디가서 뭘할래!” 이 얘기를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머리는 좋은데, 아이큐는 높은데 어머니의 이 지독한 말이 이 아이의 삶을 이렇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의 말 한마디가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말에 대해 심판을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여러분이 부정적인 말을 많이 들어왔을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힘들고 자신감이 없고 두려운 이유가 다른 사람들의 말을 너무 많이 들어왔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긍정과 위로의 말을 들었다면 괜찮아요. 그러나 우리를 실망시키는 부정적인 말을 들었다면 그것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끊어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든든한 후원자이시며 피난처이며 반석이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면 못할 일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다 지나갔습니다. 새로워졌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하나님이 우리편이라는 사실은 큰 힘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 이제 말로 사람을 살립시다. 낙심한 영혼을 일으켜 세우고 지친 자녀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줍시다. 비록 자녀들이 부모들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아도 우리의 말에는 축복과 긍정의 말로 가득 채웁시다. 우리 자녀들이 부모님의 축복을 받고 자라면 훌륭하게 자랄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말한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1650년도에는 천 냥을 가지면 운명을 바꿨습니다. 천냥만 가지면 팔자를 뒤집습니다. 노예가 천냥만 주면 노비문서를 다 태워 버릴 수 있는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나온 얘깁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 그 얘기는 말 한마디로 내 인생을 바꿀 수가 있는 그런 힘이 말 안에 들어있습니다. 말이 사람을 운명을 좌우한다면 우리는 축복의 말, 긍정의 말, 생명을 살리는 말을 합시다. 감사하는 말을 합시다. 좋은 말만 합시다. 말을 바꾸면 우리의 삶이 달라집니다.

 

부부 사이가 좋지 않는 가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부인은 남편이 얘기를 할 때 좋던 싫던 남편의 눈을 쳐다보고 진실로 듣는 것입니다. 고개를 갸우뚱 거리면서 당신 말이 옳아. 당신 말이 옳아.” 인정해주는 것입니다. 될 수 있으면 남편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여 주고 칭찬을 해주는 것입니다. 맨 처음에 남편은 정색을 하면서 도저히 내 맘은 돌아가지 않아. 쓸모없는 짓이야.” 했지만 2개월 만에 남편이 순한 양이 되었답니다. 남편을 꼬집으면 안 됩니다. 남편을 지지하고 응원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신 말이 옳아. 당신 말이 옳아.” 도저히 변화 받을 수 없던 사람도 아내의 이 말과 행동에는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말에는 엄청난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걸 아셨습니다. 그래서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을 하시겠다고 엄청난 경고를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생명의 말을 합시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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