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신 강단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

박도식 2022. 4. 21. 15:18

애통하는 자의 복

마태복음 5:1-3

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포인트 워드:

목적: 하나님 앞에 우리는 복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인가?

 

성경을 가슴에 안고 고백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영혼의 양식이며, 영적전쟁에 무기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말세의 시대를 표현하는 3가지 말이 있습니다. “무관심의 시대, 무감동의 시대, 무감각의 시대입니다. 나 자신의 감정은 잘 표현하지만, 불행을 겪고 있는 가족이나 남모르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에 대해서는 무관심을 보입니다. 견디기 어려운 이웃의 고통이나 북한 동포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지만, 무관심할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는 지옥 불못을 향해 떨어지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고 있지만, 무관심을 보일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현대인들에게 말씀합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5:4)

 

애통하는 자는 헬라어 펜둔테스입니다. ‘고통스럽게 슬퍼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구약 성경에서 요셉이 야곱의 죽음 소식을 듣고 애통했을 때, 이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스스로 주체할 수 없는 가슴을 찢는 극심한 슬픔을 의미합니다. 애통하는 자는 위로받는 삶을 약속하셨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자는 애통하는 자들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애통하는 삶을 살아야 할까요?

 

첫째, 자신의 죄에 대해 애통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막는 것이 죄입니다. 죄를 하마르티아라고 하는데 과녁에서 벗어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벗어나고 믿음의 길에서 이탈하고 하나님 뜻을 알면서도 벗어난 것이 죄입니다.

 

말세에 가장 큰 문제가 죄에 대한 자각이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인 죄인지도 모릅니다. 죄를 당연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죄를 모르니 회개할 줄 모릅니다. 저는 말씀의 선포와 적용은 제 자신에게 합니다. 내로남불도 내 자신에게 먼저 적용합니다. 내가 말씀대로 살지 못했으면 내로남불입니다. 나를 먼저 반성하려고 합니다.

 

로마서 15장에 보면, 예수님은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우리 연약함을 친히 담당하셨도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요?

하나님 말씀을 잘 알면서 연약한 자들의 짐을 대신 짊어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부족한 자들의 허물을 들춰내려고만 하지 감추어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사야 35장에는 엄청난 약속이 있습니다.

그 때에 소경이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35:6)

 

엄청난 사실 아닙니까? 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이 고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시각장애인의 눈이 열리고 청각장애인의 귀가 열리고 골절상을 입은 자들이 고침을 받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때에입니다. 그때가 언제이냐?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여 주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여 주며 겁을 내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굳세게 하라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오사 보수하시며 복복하여 주실 것이라 그가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35:3-4)

 

약한 자, 두려워 떠는 자를 정죄하거나 비난하지 않는 것입니다. 연약한 자를 위해 기도해 주고 용기를 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비난과 조롱을 하지 않으며 함께 믿음을 세워 나갈 때, 성령님께서는 놀라운 치료를 약속하셨습니다.

 

바리새인은 어떤가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러나 자기 죄를 가지고 애통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함을 감사합니다. 세리와 같지 않음을 감사합니다.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림이 감사합니다.” 남의 허물을 들춰내면서 자기의 죄를 가지고 애통해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세리는 가슴을 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똑같은 기도인데, 바리새인의 기도는 응답이 없습니다. 세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의롭다함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 사람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18:14)

 

다윗은 어떠했나요?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32:3-5)

 

다윗은 천민인 목동에서 왕의 자리에 올랐으나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 버리고 간음죄를 지었습니다. 살인죄를 지었습니다. 그의 회개가 시편 6, 32, 38, 51, 102, 103, 13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밤마나 눈물로 침상을 띄우며 요를 적실 정도로 얼마나 통회하고 자복했는지 모릅니다(6:6).

 

자기 존재를 바꾸는 회개가 필요합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그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의 생애에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사람은 몰라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눈을 피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너희가 만일 그같이 아니하면 여호와께 범죄함이니 너희 죄가 정녕 너희를 찾아낼 줄 알라”(32:23)

 

예화) 어거스틴

한 청년이 아프리카 알제리의 타가스테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방 종교 마니교에 빠졌습니다. 그는 14년 동안이나 이방여인과 동거하면서 아들까지 낳고 신앙의 어머니와 절교하며 타락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 아들의 장래에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모니카는 타락한 아들을 위해 날마다 성전에서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때 목사님이 멋진 말을 합니다. “눈물의 기도가 있는 부모의 자식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어머니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386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한 정원의 나무 그늘 아래 지쳐 앉아 있었는데 담장 너머의 아이들이 노래를 부릅니다. “톨레 레게”(take and read) “집어 읽어라.”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집어 읽기 시작합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13:13-14)

이 말씀을 대하고 위대한 회심을 경험합니다. 모든 죄악을 눈물로 회개하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벌써 하나님 나라로 가셨습니다. 이가 바로 어거스틴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 자신의 죄에 대해 애통해야 합니다.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을 사랑한 죄,

가지 말아야 할 곳에 갔던 죄. 끊을 수 없는 죄를 가지고 참회하면서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3:19)

 

둘째, 가족을 위해 애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에 올라가실 때 하신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리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23:28)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 때문에 울기 보다는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당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드라마를 보다가 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슬픈 음악이나 영화를 보면서 우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내 남편 아내 부모 자녀 형제를 위해 얼마나 애통하고 눈물로 기도하고 있습니까?

 

지금 남편들은 IMF 때보다 힘들게 일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은 취직이 잘 되지 않아 취업준비생의 고통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는 분들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업하는 분들의 고통도 말할 필요가 없다. 한 회사에 딸린 사람이 수 십명이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이다. 그런데 남편을 위해 기도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남편을 위해 울지 않으면 누구를 위해 울려고 합니까?

 

교인들의 사업장을 방문하지 않았지만, 대충은 압니다. 일터에 담긴 땀과 눈물을. 일터에서의 애환을. 믿음의 기업에서 든든하게 서로 격려하면서 수입을 창출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내의 애환은 어떤가요? 남편들이 힘들게 일하고 집에서 다정하게 말하지 않습니다. 상처주고 스트레스 주는 말만 쏟아 놓으니 우리의 가정이 어떻게 될까요? 자녀들이 받는 고통은 어떨까요? 자녀들도 앞날에 대한 염려로 두렵고 힘이 듭니다. 누군가 서로 위로해주고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자녀를 위해 울어야 하는데 울지를 않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어떠합니까?

우리는 자신의 영혼과 가족 구성원의 영혼을 위해 울어야 합니다.

 

어느 집에 있던 이야기입니다. 남편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아내에게 5만원을 줍니다. 무슨 돈이냐고 물어 보니 남편이 말합니다. “내가 그 동안 모은 비상금인데, 당신의 핼쓱한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줘요. 내일 혼자 뷔페에 가서 소고기나 실커 먹고 와요.” 아내는 남편이 준 돈으로 뷔페에 가지 않았습니다. 대신 노인정에 가시는 시아버지께 드립니다. “아버님, 그 동안 제대로 용돈을 한 번 드리지 못했어요. 돈으로 음료수를 사서 신세 진 친구분들하고 나눠 드세요.” 시아버지는 어려운 살림을 하는 며느리가 안쓰러워 5만원을 쓰지 못했습니다. 노인정에 가서는 자랑을 합니다. “여보게! 우리 며느리가 오늘 용돈을 빵빵하게 줬다네.” 실컷 며느리 자랑만 합니다. 그 돈을 장롱 속에 깊숙한 곳에 넣어 둡니다. 어린 손자가 학교에 갈 때가 되자, 장롱 속의 5만원을 꺼내 세뱃돈으로 줍니다. 손자는 말합니다.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손자가 어머니께 물어 봅니다. “엄마, 이 돈으로 책가방을 사 주세요.” 그래고 세뱃돈 5만원을 내 놓습니다. 엄마는 아들이 마음이 귀해서 그 돈을 받습니다. 남편이 피곤한 모습을 보여서 남편 양복 주머니에 편지와 더불어 5만원을 넣습니다. “내일은 이 돈으로 맛있는 것 사 드세요.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남편이 아내에게 준 5만원은 다시 남편 품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러나 가족들 모두에게 행복을 안겨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6:9-10)

 

셋째, 고통당하는 이웃을 위해 애통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위에 불행과 고통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지금 잘 사는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도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독거노인들, 장애인들, 외국인 노동자들, 소외된 사람들, 고아들, 가난한 목회자들 등.

 

우리나라의 고아원은 고3까지 지원을 해 줍니다. 대학생이 되면, 고아원을 나와야 합니다. 아이들 손에 달랑 500만원을 안겨 줍니다. 이제 20세 밖에 안 된 아이들이 스스로 서야 합니다. 어떤 아이는 혼자 살아가는 삶을 견딜 수 없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나만 아니된 괜찮다.” 이런 마음을 바꾸어야 합니다. 외국인이 150만 명입니다. 인종과 언어 문화가 다른 낯선 나라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겠습니까?

 

외국인들이 우리 나라에 와서 놀라는 것이 음식 문화입니다. 한 외국인이 한국인과 식사를 하고 나왔더니 계산대에서 사탕을 집어 주면서 계피 사탕 먹을 래요?” 그러더랍니다. 개의 피로 만든 사탕인줄 알고 안 먹겠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호주머니에서 눈깔 사탕은 어때?” 하면서 사탕을 주려고 합니다. “내가 오늘 아침에 아내꺼 몰래 빼왔어.” 그 말을 들은 외국인은 그만 기절해 버렸다고 합니다. 겨우 정신을 차리니 한국인이 말합니다. “그렇게 기절하는 것 보니, 요즘 기운이 없는 것같군. 우리 집에 갑시다. 우리 와이프 내장탕 먹으면 기운이 날 거요.”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우리는 많은 이웃의 아픔과 고민에 대해 관심조차 없을 때가 많습니다. 내가 당해보지 않으면 그 아픔을 모릅니다. 아니, 관심도 없습니다. 이웃에 대해 무관심하고 무책임을 보입니다. 마태복음 1117절입니다.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도다 함과 같도다”(11:17) 잔칫집에서 피리를 불어도 축하해 주지 않습니다. 슬피 울어도 가슴을 치지 않습니다. 남의 일에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 돕기 전에 네 가족과 친지가 밥을 굶고 있지는 않은지 먼저 돌아보라. 네 가족과 친지를 도운 다음에는 네 이웃이 굶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라. 또한 힘이 닿으면 네가 사는 동네와 도시의 이웃을 돌아보라.”-탈무드

 

우리는 지구촌에 살고 있습니다. 때로는 이런 생각도 합니다. “도울 사람들이 참 많구나. 그러나 나는 도울 힘이 없구나.”

 

신명기 157-11절의 말씀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강퍅히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 요구하는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 주라. 삼가 너는 마음에 악념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제 칠년 면제년이 가까웠다 하고 네 궁핍한 형제에게 악한 눈을 들고 아무 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간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네가 죄를 얻을 것이라 너는 반드시 그에게 구제할 것이요 구제할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와 네 손으로 하는 바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경내 네 형제의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15:7-11)

 

이웃을 섬기고 나눌 때 하나님은 반드시 복을 주실 것입니다.

부자가 되고 싶으면 베풀어라. 다른 사람을 위해 베푼 돈은 반드시 돌아온다.

 

아프리카 선교사를 소개하고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199233살의 젊은 나이로 우간다로 선교를 간 의사가 있습니다. 유덕종 선교사입니다. 3, 2살 된 딸들과 셋째를 임신한 아내를 한국에 남겨두고 선교지로 떠났습니다. 에이즈 환자를 치료하다 주삿바늘에 찔리기도 하고, 결핵균이 옮아 늑막염으로 고생을 했습니다. 초등학생 딸이 뇌염에 걸렸을 때, 경련을 일으키고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때, 인공호흡기를 갖춘 병원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전기마저 끊긴 터라 부모로서 아무 손도 쓸 수 없었다고 합니다. 다른 방법은 없고 단지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할 뿐이었답니다.

 

딸이 몇 주 만에 기적적으로 살아나자 귀국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도움을 갈망하는 불쌍한 눈빛들을 등지고 어떻게 내가 편하게 살까?’ 그 생각 때문에 떠날 수 없었답니다. 한국 정부의 지원도 없고, 아무도 도움을 요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강사로 일하면서 번 돈 전부와 지인들과 함께 돈을 모아, 병상 80개를 갖춘 병원을 짓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의과대학도 세웠습니다. 그는 한국에도 우간다에도 집 한 채가 없답니다. 그래도 사는 목표가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유석종 의료 선교사는 말합니다. “우간다의 가난은 우리와 차원이 다른 가난입니다. 남들은 미쳤다고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저보고 멋지다고 합니다. 그러면 된 거죠.”

 

사랑하는 여러분,

애통하는 자는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자신의 죄악에 대해 애통해 하십니다. 나도 모르게 무관심의 죄를 짓지 않았나요?

사랑하는 가족의 아픔과 영혼 구원을 위해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고통당하는 이웃을 위해 애통해 하면 섬기며 나가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애통하는 삶을 살 때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서 진정 행복하고 축복된 삶을 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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