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신 강단

새로운 미래를 여시는 하나님

박도식 2022. 3. 3. 11:41

새로운 미래를 여시는 하나님

출애굽기 4:10-17

10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11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

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였느뇨 나 여호와가 아니요

12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13 모세가 가로되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14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를 발하시고 가라사대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뇨 그의 말 잘함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마음에 기뻐할 것이라

15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 입에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의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16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17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 찌니라

 

포인트 워드: 하나님

활용: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역사하고자 하셨다. 비록 모세가 말에 둔하고 자신감이 없어도 하나님은 그를 통해 일하고 싶어하셨다.

 

성경을 가슴에 안고 고백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영혼의 양식이며 영적 전쟁에 무기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출애굽기 4:10-17절의 말씀입니다. ‘새로운 시대를 여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여러분의 영혼과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갈매기의 꿈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리차드 바크라는 사람이 쓴 소설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많은 갈매기들이 매일같이 바닷가의 쓰레기 더미에서 쓰레기를 뒤지며 먹이를 찾고 있습니다. 갈매기 조나단은 혼자서 푸른 창공을 나는 연습을 합니다. 그 갈매기는 실패하고 실패합니다. 그러나 도전을 쉬지 않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조나단은 냄새나는 바닷가 쓰레기 더미를 떠나 푸른 하늘을 나는 갈매기가 되었습니다. 리차드 바크는 말합니다. “가장 높이 나는 갈매기가 가장 멀리 볼 수 있다.”

 

갈매기의 꿈은 리차드 바크, 자신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젊어서 먼 지방을 탐험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대학생 때, 부상을 당하여 발목뼈를 크게 다쳤습니다. 해군에 입대하여 자신의 꿈을 이루려고 했습니다. 발목 부상을 극복하여 해군에 입대합니다. 그러나 해군에서 발목을 다쳐서 강제 퇴역을 당합니다. 그는 절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세계 곳곳을 탐험한다는 목표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조종사가 되었습니다. 조정하는 기술로 해군에 복귀합니다. 그는 훌륭한 조종사였을 뿐만 아니라 해군의 경비행기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행은 계속되었습니다. 비행선으로 북극 비행에 나서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첫 번째 시도에서 비행선이 추락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이전에 입은 발목 부상이 재발되어 더 이상 해군에 남아 있을 수 없게 됩니다. 두 번째로 퇴역을 당합니다.

 

리차드 바크는 자기 힘으로 탐험하려고 합니다. 경비를 마련합니다.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경비행기로 대서양을 횡단하는 모험에 성공합니다. 다음에는 북극에 성조기를 꽂았습니다. 남극에 가서도 성조기를 꽂았습니다. 결국 미국 해군은 두 번이나 퇴였시켰던 그에게 제독의 칭호를 수여했습니다. 리차드 바크는 도전의 사람이었습니다.

 

헬렌켈러는 말합니다. “행복의 문 하나가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 그러나 우리는 대개 닫힌 문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열린 문을 보지 못한다.” 오늘 우리의 현실이 녹록치 않습니다. 국가적으로는 혼란이며 경제적으로는 어려움 속에 있습니다. 빈곤이 빈곤을 부르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해서 이곳저곳에서 신음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이 땅에 희망은 어디인가요?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새로운 씨앗을 주십니다.

 

헬렌켈러가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요? 그녀는 말할 수 없었고, 들을 수 없었고, 볼 수 없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언어 장애를 극복하여 말하게 되었고, 대학을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사회사업가로 활동을 하게 됩니다. 그녀는 3중고의 장애를 극복하고 책을 쓰고, 강연을 하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녀가 만난 하나님은 새로운 길을 여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볼까요?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였을 때, 부모들은 얼마나 경악하고 좌절하고 괴로웠을까요? 아들이 다시 살아 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아벨을 잃은 슬픔 속에 주저 앉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창세기 425절에서 말씀합니다.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여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을 대신하여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라”(4:25)

 

하나님은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최악의 순간에도 은혜를 베푸시는 분입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셋을 주심으로 다시 일어서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살다보면,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최악의 순간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좌절하고 실망하면서 속으로 외칩니다. “이제 끝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봤다. 내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이제 끝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끝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을 열어 놓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를 잃으면 새 것을 만나게 하시는 분입니다.

 

예화) 인터넷을 검색하니 안전유리가 발명하게 된 계기가 나옵니다.

19세기 프랑스 과학자 에두아르 베네딕투스가 안전 유리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자동차가 사고가 나면, 유리 조각에 의해 다치는 사람이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해결책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셀룰로이드를 이용하고자 했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와서 플라스크들을 깨뜨렸습니다. 유리조각이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그런데 유독 한 병만은 금이 가 있었지만, 유리조각이 사방팔방으로 튀지 않았습니다. 오래전 담아 두었던 셀룰로이드 용액이 말라 붙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동차 안전 유리는 고양이가 저지른 실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아이보리 비누를 아시잖아요? 대부분의 비누는 물에 가라앉습니다. 그러나 직원의 실수로 공기층이 많이 들어가서 불량제품이 되었습니다. 직원은 사표를 냈지만, 사장은 이것을 계기로 직원들과 상의하다가 물에 뜨는 비누, 아이보리제품을 판매하여 회사 일으키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란 말처럼, 실수도 발명의 어머니라 합니다. 우리가 막혔다고 생각하는 그때, 하나님은 새로운 길을 열어 주십니다.

 

 

씨앗의 의미를 알잖아요? 하나를 잃었는데, 30, 60, 100배로 채워 주겠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었는데, 거기에서 새로운 일이 생깁니다. 고추 씨 한 개에서 수백개의 고추를 땁니다. 가지나무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으면 끝인줄 알았는데, 아닙니다. 과거에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미래가 열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믿고 계신가요?

옹졸한 하나님인가요? 아니면 풍성한 하나님인가요?

제가 믿는 하나님은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부어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그의 자녀들을 버리지 않습니다. 성경이 약속합니다.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 앞에 있나니 그가 그 모든 길을 평탄케 하시느니라”(5:21)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37:25)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으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3:20-21)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어제보다 오늘 더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오늘 보다 내일 더 큰 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여 어제보다 더 위대한 일을 하게 하실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좌절과 절망에 빠진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모세의 나이는 80세입니다. 그는 애굽의 최고의 학문을 배운 사람입니다. 왕자의 권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준수한 외모를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40세에 사람을 죽이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나왔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생각했습니다. 자기의 학문과 지혜, 왕자의 권력으로 백성을 구원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를 구원자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살인자라고 불렀습니다.

 

애굽 사람이 말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돌보려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렇게 했습니다. 광야에서 40년을 보냈습니다. 최고 문명국인 애굽의 삶과 미디안의 삶은 천지차이입니다. 그의 지식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습니다. 단지 양이나 치고, 젓이나 짜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모세라면 어떤 마음이 들까요? 최고의 학문을 배웠는데,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그 동안 모세의 꿈을 사라졌습니다. 자신감도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도 희미해졌습니다. 육신의 기력도 쇠했습니다. “나의 인생은 끝났다.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단지 양이나 치고 살자.” 무디 목사님은 그의 인생을 이렇게 말합니다. “I`m nothing.40년이었다. ”.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내 꿈은 완전히 이미 산산조각이 났다. 완전히 끝난 거야. I`m nothing.”

 

모세가 하나님을 만날 때는 그의 나이 80입니다. 인생을 정리할 나이입니다. 인생의 모든 꿈을 포기할 순간입니다.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말씀합니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3:10)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일은 모세의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이요, 하나님 자신의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기의 일을 위해 모세를 사용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양을 치던 사람에게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해 내라고 하십니다. 17절에서 말씀합니다.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찌니라”(4:17). 예전에 지팡이는 보통 막대기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름을 입고 나서는 기적을 행하는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바닥에 던지면 뱀이 되고, 꼬리를 잡으면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지팡이로 하수를 치면 피로 변했습니다. 홍해 바다 앞에서는 바다를 가르는 능력의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낙망하는 모세를 찾아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부를 때 모세가 말합니다. 10절입니다.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13절입니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모세는 완전히 자신감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 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였느뇨 나 여호와가 아니뇨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4:12-13)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내가 너를 지었다. 내가 너에게 능력을 주었다. 너는 할 수 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서 네가 할 수 있게 만들 것이다.”

 

예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여자 10m 수영 다이빙 영상을 보셨을 것입니다. 로라 윌킨슨은 올림픽 3개월 전에 사고를 당해 7주간 병원에 누워 있었습니다. 거의 2달을 병원에 있던 셈입니다. 연습 부족으로 올림픽 출전을 포기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위로로 참여합니다. 본선에서 5등을 갑니다. 1,2차전에서 중국 선수와 60점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금메달은 그녀의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점프를 하기 전에 무엇인가 중얼거렸습니다. 빌립보서 413절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4:13) 그녀는 말합니다. “병원에 있었을 때, 하나님이 내게 위로를 주셨습니다. 저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이 이 일을 하셨습니다.”

 

박모세 간증을 들었잖아요? 태어날 때 머리에 뒷머리에 뼈가 없어서 뇌가 그대로 나왔습니다. 뇌의 90%를 잘라 냈습니다. 살 수 있는 확률은 0%입니다.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을 것이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아이를 살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간증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위대하심을 찬양하게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할 수 없어도 하나님과 함께 라면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능력을 주시고, 모든 일을 감당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분입니다. 참으로 멋진 하나님입니다. 우리를 보세요. 육체적인 우리는 약합니다. 부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셋째, 하나님은 여러분을 특별하게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이 천국 비유를 하셨잖아요?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다.”(13:31). 겨자씨 속에는 이미 공중의 새들이 와서 깃들일 나무가 숨어 있습니다. 지금은 매우 작고 보잘 것 없지만, 하나님은 놀라운 생명을 그 씨 속에 숨겨 놓았습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습니다. 우리에게 성령님으로 함께 하시고, 우리가 감당할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들 속에는 아름다운 창조의 능력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폐품을 활용하여 작품을 만듭니다. 어떤 분은 현수막을 수거하여 가방을 만듭니다. 하나님은 우리안에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더럽히고 악하게 만들고 파괴했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습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떠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 안에 잠재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평범하지 않습니다. 특별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입니다. 대단한 존재입니다. 여러분 속에는 하나님의 숨결이 약동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의 인물들처럼 저와 여러분을 사용하고자 하십니다. 다윗의 손에 들린 조약돌은 평범했지만, 골리앗을 무찌르는 도구였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여러분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실현시킬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릴 통해 큰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이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 입에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 입에 함께 있어서 너의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3:15) “너는 그에게 하나님같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모세의 입과 함께 있어서 모세를 높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디모데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나게 하노니”(딤후1:6). 하나님은 우리안에 은사를 주셨습니다. 불일 듯 일어나면 됩니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면 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재능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 은사와 재능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이루어 지도록 순종해야 합니다.

 

리처드 바크는 말합니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 하나님을 정확히 하는 자가 멋지게 쓰임을 받습니다.

 

우리 다같이 복음성가 할 수 있다 하신 이를 불러 보겠습니다.

 

할 수 있다 하신 이는 나의 능력 주 하나님

의심말라 하시고 물결 위 걸으라 하시네

할 수 있다 하신 주 할 수 있다 하신 주

믿음만이 믿음만이 능력이라 하시네. 믿음만이 믿음만이 능력이라 하시네.

 

할 수 있다 하신 이는 나의 능력 주하나님

나를 바라보시고 능력 준다 하시네

할 수 있다 하신 주 할 수 있다 하신 주

사랑만이 사랑만이 능력이라 하시네 사랑만이 사랑만이 능력이라 하시네.“

 

우리 함께 말씀에 순종하여 은사와 능력을 활용합시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길 원하십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