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신 강단

새마음훈련8

박도식 2021. 4. 12. 18:04

새마음 훈련8(가시떨기의 마음)

 

본문/ 13:1-9

1 그 날에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2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섰더니

3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 뿌릴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5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9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가시떨기의 마음

7절에 보면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라고 말씀하십니다. 공동번역에서는 이 말씀을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다. 가시나무들이 자라자 숨이 막혔다.” 여기에 대한 해석이 22절에 나옵니다.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마가복음은 기타 욕심을 덧붙여서 적고 있습니다.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리우는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되는 자요”(4:18-19) 더불어 누가복음에는 일락이라는 단어가 새롭게 들어가 있습니다.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요”(8:14)

 

가시떨기의 마음이란?

그렇다면 가시떨기의 마음이란 무엇일까요?

가시밭은 토양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씨가 떨어졌을 때 뿌리까지 내렸습니다. 그런데 그 땅에 알곡의 씨만 뿌려진 것이 아니라 이미 가시나무의 뿌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곡식과 가시나무가 함께 자라는데 가시나무가 훨씬 더 빨리, 크게 자라버린 것입니다. 어느 날 알곡이 열매를 맺어가려 하는데, 어느 순간에 가시떨기가 더 크게 자라서 열매맺는 것을 막아 버린다는 것입니다. 가시떨기의 마음은 자기 욕심이 뿌리가 되어 일어나는 마음입니다. 자기 욕심이 원인이 되어 괴롭힘을 당하는 마음이며, 이것은 무의식이 아니라 눈에 드러나게 의식적으로 자기를 괴롭히는 사건들에 의해 병든 마음입니다. 자기를 괴롭히는 원인이 무엇인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시달리다 보면 결국 생명력을 잃고 죽어 갑니다. 자기 스스로 자유를 누리며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힘을 다른 사람들에게 다 빼앗겨 살아갑니다. 특히 경쟁사회에서 다른 사람과 끊임없이 비교하다 굳어지고 병든 마음입니다.

 

여기서 가시 뿌리라는 것이 무엇을 상징합니까? 성경은 첫 번째로 믿음의 손상을 가져오는 세상의 염려를 말합니다. 두 번째로 재리의 유혹을 들고 있습니다. 돈은 일만 악의 뿌리라고 그러지 않습니까? 분명한 것은 돈으로 세상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나 생명을 잃어 버리게 된다는 점입니다. 성경은 세 번째로 세상적인 욕심을 지적하고 있으며, 네 번째로는 일락을 말하고 있습니다. 순간적인 쾌락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시나무가 열매를 맺으려하는 기운을 막았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기운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프뉴마라 말합니다. 바로 성령을 가르키는 말입니다. 결국 세상적인 그러한 가시나무의 마음들이 성령의 역사를 막아 버렸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가시떨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세상의 명예와 재리와 욕심이 눈앞을 가린다. 그래서 성령의 역사를 막아 버린다는 것입니다.

 

가시떨기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특징

그렇다면 가시떨기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어떠한 특징들이 있을까요?

 

(1) 밭은 좋았다

첫 번째로 일단 밭은 좋았다는 점입니다. 겉으로 볼 때는 옥토의 밭인지 가시떨기의 밭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돌밭의 마음이 그러했듯이 가시떨기의 마음 역시 우리들 보통의 눈으로는 분간하지 못합니다. 모두 다 옥토밭 같습니다.

 

당연히 우리들은 , 저 사람은 옥토밭을 가지고 있구나!”, “저 사람은 정말 믿음 좋은 사람이구나!” 이런 식으로 표현하게 될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만큼 믿음이 좋게 보인다는 겁니다. 특별히 밭은 좋았다는 것은 그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신앙의 환경이 좋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장로의 가정에서 자라난 자녀, 믿음이 좋다고 소문난 직분자의 가정에서 자라 난 자녀... 우리는 일단 그 부모의 신앙 모습만 보고, 물론 외부적인 인상만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지만, 당연히 그 자식들도 믿음이 좋을 것이라고 판단해 버립니다. 문제는 그 자녀의 마음밭에 좋은 씨만 뿌려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아버지가 자녀의 마음 가운데 세상적인 씨들을 뿌렸다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신앙인 같지만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보다는 세상을 더 의지하고, 세상적인 것에 더 의미를 두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말을 듣고 자라기 보다는 부모가 살아가는 모습,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보면서 그대로 닮아 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가치관까지도 닮아가는 겁니다.

 

성경에서도 보면 아브라함과 그 아들 이삭의 예에서 부모의 삶의 모습이 자녀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람은 애굽으로 내려갈 때 자신의 신변에 위협이 있음을 알고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게 됩니다. 20장에 또 다시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게 됩니다. 문제는 그 아들 이삭입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을 때 태어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26장에 보면 이삭이 자신의 신변에 위협을 느꼈을 때 역시 자기 혼자라도 살아 남고자해서 비겁하게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게 됩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요? 아버지 아브라함이 외국가서 그런 일이 생기면 그렇게 거짓말하라고 가르쳤을까요? 그럴리는 없겠지요.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아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아내를 대하는 태도나 그 모든 행동을,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그러한 말이나 가치관들을 몸으로 알게 모르게 다 배운겁니다.

그래서 같은 상황에 처했을때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 아브라함과 똑같은 행동을 하게 되는 겁니다. 이런 것을 우리는 부전자전이라 그러는 겁니다.

 

교회에서는 직분자인데도 삶은 삶이고 신앙은 신앙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가치관, 다시 말해서 주님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실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그래서 세상 것에 더 가치를 두고, 그것에 더 빠져 살아간다면 그 가정의 자녀들에게 당연히 가시떨기의 씨들을 뿌려주게 된다는 겁니다.

 

(2) 마음의 가시가 상대방을 찌른다.

가시떨기 마음의 두 번째 특성은 그 마음의 가시가 상대방을 찌르고 아프게 한다는 점입니다. 가시떨기 마음의 이러한 특징을 잘 설명하는 노래가 하나 있습니다.

 

얼마전에 대중가요 가수인 조성모가 불러서 히트를 했던 가시나무라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노래는 원래 복음성가 가수인 하덕규 집사가 불렀던 것인데요, 가사가 아주 의미 깊습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비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 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가운데 지금 하나님이 자리하실 그런 곳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 나만 있습니다.

 

세상 것에 빼앗긴 마음, 그러다보니 헛된 것들로 내 마음이 가득합니다. 당연히 내 안에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들이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들이 서로 부대끼며 울어댑니다. 나를 찾아 온 여러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이 나에게서 기쁨을 얻고 쉼을 얻어야 하는데, 오히려 내 마음의 상처로 인해 그것이 가시가 되어서 아프게 하고 찌르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나는 더 외로워집니다. 괴롭기도 합니다. 그래서 슬픈 노래를 불러 보기도하지만 그 휑한 마음을 누가 채워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노래입니다.

 

그렇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가시나무가 꼭 가시떨기의 마음만을 말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당연히 돌밭과 같은 마음도 될 수 있을 것입니다만, 그러한 모든 것들이 가시가 되어 그 마음 가운데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세상적인 욕심과 욕망들과 결합하게 되면 그것이 자신도 찌르고 상대방도 찌르는 가시가 되어 관계를 해치게 됩니다. 그저 내가 중심입니다. 나만 잘되면 됩니다. 가끔은 배우자의 존재도 안전에 없습니다. 자식들이 눈에 보이지도 않습니다. 당연히 가족들이 그 사람으로 인해 오히려 상처를 받고 실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것이 잠재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가시나무가 자랄 때까지는 알곡의 잎새들만 보였습니다. 그 무성해지는 초록빛의 풀잎을 보면서 이 나무는 참으로 미래가 있는 나무다’, ‘믿음이 좋다’, 이런 식으로 평가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엔가 보니까 그 가시나무들이 푸른 나뭇잎을 다 가려버리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도 믿음 좋다고 생각했던 어느 집사님이 외도를 합니다. 가정을 깨 버립니다. 부부 싸움만 하면 상처를 줍니다. 자녀들이 다가와도 따뜻하게 맞아 주기는커녕 생채기만 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마음 가운데 가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가시떨기 소유자들은 별일도 아닌 일로 남을 콕콕 찌릅니다. 가시떨기 마음을 가진 사람과는 가까이 하면 할수록 상처를 받게 됩니다. 한마디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는 것입니다.

 

가시떨기의 마음이 갖는 문제

이러한 가시떨기의 마음이 갖는 문제들은 심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1) 관계가 깨지는 아픔을 겪으며, 해바라기 인생을 살아갑니다.

우선 관계가 깨집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관계를 맺고자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관계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관계가 원만하질 않으면 동굴속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그런데 가시떨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문제는 사실상 자기 스스로가 사람들을 멀리 하도록 만들어 놓고는 그 다음에 사람들이 내 곁에 있지 않는다고 한탄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외로워 합니다. 자신은 외톨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까 자신에게 관심을 끌게 하기 위해 겉치장을 잘합니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모든 에너지를 쏟습니다.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라 남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결국 가시떨기 마음을 가진 사람의 인생에는 남는 것이 없습니다.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었기 때문에, 남을 향한 해바라기 인생만을 살아 왔기 때문에, 뭔가 휘황찬란하고 거창하게 살아 온 듯 싶은데 어느 날 자기 인생을 돌아보면 그야말로 헛되고 헛된인생을 살아 왔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 이 사람은 주저앉아 버립니다. 혼자 골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술을 찾고 그러다보면 알콜 중독에 빠지게 됩니다.

 

(2) 모든 원인을 상대방에게 돌리게 됩니다.

가시떨기 마음은 대인관계에서 상처를 입기 쉽습니다. 좋지 않은 헤어짐이 자주 있습니다. 많은 버림당함을 경험하고 버림받기 전에 아예 내가 먼저 그 사람과의 관계를 정리해 버리는 것입니다. 괜한 핑계 대면서 그 사람을 만나지 않게 되고 헤어지려는 의도로 엉뚱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당연히 모든 책임을 상대방에게 돌립니다. 자신은 책임이 없다고 강변합니다. 자신이 비난의 화살을 받는 것이 너무나도 두렵기 때문입니다. 손가락질 당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대인관계가 제대로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서로가 상처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3) 세상의 유혹에 항상 마음을 뺏기게 됩니다.

가시떨기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큰 문제 중의 하나는 세상에 너무 마음을 빼앗기다 보니까 항상 세상에 고개를 돌리고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도 믿음이 좋다고 여겨졌던 사람도 세상적인 유혹이 다가오면 쉽게 무너져 내린다는 것입니다. 명예나 부귀, 그리고 세상적으로 좋게 보이는 어떤 것들이 자신에게 다가오면 그것들을 하나님보다 더 앞세워 버립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신앙이라는 것은 생활의 일부가 아닙니다. 내 삶의 전부인 것입니다. 그런데 가시떨기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신앙이라는 것이 생활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하나님도 일시적으로 포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포장이요 위장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기에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마음 가운데 솟아있는 가시가 사라지겠습니까?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을 가슴 속 깊이 받아들이고, 그 긍휼의 마음으로 자신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가시를 녹여 내지 않으면 이 사람은 평생 세상에 속고 넘어지는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가시떨기의 마음을 치유하려면.....

그렇다면 이러한 가시떨기의 마음을 치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은 자신의 마음 가운데 자리잡은 가시떨기의 정체를 알아야만 합니다. 내 마음 가운데 가시떨기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마음 가운데 자리잡은 교만의 벽을 허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체면의 허울을 벗어버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는 누구인데...’, ‘나는 대단한 사람...’ 같은 세상적인 측면에서의 상대적 우월감을 가지고 있다면 이 사람은 대단히 위험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그러한 위치에 오르기 위해서는 당연히 수단과 방법을 가리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남을 짓밟고서라도 내가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올라야 한다는 집착과 아집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모든 것들을 주님 앞에 내려 놓아야 합니다. 세상보다 하나님이 더 소중하고,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나의 모든 것 까지도 다 버리겠다는 결단이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요, 빼앗는 분도 바로 그 분이심을 마음 속 깊이 인정해야만 합니다. 나에게 있는 모든 것들이 바로 주님으로부터 나왔음을 스스로 인정해야만 합니다.

 

돌밭의 마음이 누군가로 인해서 생겨나는 것이라면, 가시떨기의 마음은 스스로와의 싸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내 자신과의 결단의 싸움이요, 스스로와의 영적 전쟁이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지금, 내 마음 가운데 교만이 머물러 있습니까? 혹시 돈이나 명예에 귀가 쫑긋하지 않습니까? 세상 사람 어느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보편화시키지 마십시오. 명예, 부귀보다도 믿음을 지키는 것이 더 소중하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들의 인정보다 하나님의 인정이 우선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내 안의 가시를 뽑아내야 합니다. 아니면 성령님께 의지해서 태우도록 부탁해야 합니다. 그때 가시떨기들이 뿌리까지 다 타져서 옥토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신 강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마음훈련10  (0) 2021.04.12
새마음훈련9  (0) 2021.04.12
새마음훈련6  (0) 2021.04.12
새마음훈련5  (0) 2021.04.12
새마음훈련4  (0) 2021.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