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신 강단

새마음훈련6

박도식 2021. 4. 12. 18:03

새마음 훈련6(길가)

 

본문/ 13:1-9

1 그 날에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2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섰더니

3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 뿌릴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5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9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4절에 보면 뿌릴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85절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 버렸고”. 마태복음 134절에 대한 설명이 19절에 나옵니다.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리운 자요”.

 

어떤 곳을 길가라고 말합니까? 사람들이 많이 지나 다녀서 밟히고 또 밟혀진 땅, 굳어져 있는 땅을 말합니다. , ‘공중에 날아가는 새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사탄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공중의 권세를 잡은 자’, ‘악한 영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심리적으로 본다면 게으른 생각, 냉정한 마음, 이기심, 남을 비난하고 불평하는 마음들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마음이 길가이면 아무리 좋은 복음의 씨가 떨어져도 공중의 새들이 와서 다 쪼아 먹어버리기 때문에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마음이 길가이면 어떤 씨앗도 땅에 뿌리를 내릴 길이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았다’, ‘감동받았다고 말들을 합니다만, 그 말은 곧 목사님이나 설교자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 밭에 심기어졌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일단 내 마음 밭에 제대로 파종되었다는 말인 것입니다. 당연히 그 복음의 씨가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이고, 또 그 뿌리는 잎사귀를 내게 될 것입니다. 물론 씨가 뿌려졌다고 해서 다 열매를 맺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그 마음 밭에 성질에 따라 열매를 맺을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이 길가이면 그 씨가 땅에 심겨지지도 않은 상태이니까 당연히 뿌리를 못내리지 않겠습니까?

 

길가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특징

그렇다면 길가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나타내는 특징은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변화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변화가 없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말씀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마음이 굳어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질 않습니다. 말씀을 받아도 그 말씀을 소중히 가슴에 품는 것이 아니라 길가에 그냥 내버려 둡니다. 그러니 새들이 와서 다 쪼아 먹어 버리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 이 시간 바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지, 다른 사람을 위해 주시는 말씀은 아닙니다. 항상 그 말씀을 나를 향해 던져야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그 말씀이 바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하는데 길가의 마음을 가진 굳은 마음씨의 소유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오늘 아침 설교는 내 남편이 들어야 하는데....., 내 며느리가 들어야 하는데......”.

 

길가의 사람들은 나는 괜찮은데 저 사람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다보니 자기 눈에 있는 대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 눈에 있는 티끌은 너무 너무 잘 지적합니다. 나는 문제가 없는데 배우자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은 고칠 것이 없고, 변하려고도 하질 않습니다. , 저 사람이 조금만 잘해 주면 우리 가정은 문제없다고 말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입니다. 아무리 상대방이 문제가 심각하다 할지라도 그 사람에게만 문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도 문제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 상대방으로 인해 생겨난 문제인 것 같지만 결국은 나로 인해서 모든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굳어있는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환상 속에서 살아 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자기 자신 속에 가두어 버립니다. 내가 만든 하나님만을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2) 세상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두 번째는 길가의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세상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복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길가라는 곳은 사람들이 밟고 다니는 곳입니다. 다른 길과는 달리 길가는 사람들이 걸어 다니도록 요구하는 곳입니다. 당연히 사탄의 유혹에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 휩쓸리도록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근본적인 문제를 하나 짚고 넘어 갑시다.

여러분! 왜 마음이 굳어집니까? 굳은 마음은 죄로 인한 것입니다. 죄를 사랑함으로 인해 마음이 굳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도덕적 부패에 빠지게 됩니다. 자신도 모르게 내 마음을 하나님이 아닌 세상이 지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아닌 공자가 지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지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닌다고 하면서도, 신앙이 좋다고 하면서도, 삶의 모습 가운데서 하나님의 모습, 그리스도의 향기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굳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세상적인 것들, 즐겁고 쾌락적이고, 편하고, 이런 것들이 마음을 지배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살면서도 그저 이런 것이 다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 생각하고 예수님을 믿어 돈을 벌고 좋은 자리 얻고 명예를 얻는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도 축복의 일종이지만 전부는 아닙니다. 물질적인 축복, 세상적인 축복만 바라다보면 자칫 마음이 굳어지게 됩니다. 교만에 빠지게 됩니다. 영적으로 타락하게 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세상을 향해 마음이 열려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문을 닫을 때는 닫아야 되는데 나도 모르게 그 마음 문을 닫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진정한 이라는 것은 언제 어느 경우에라도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입니다. 전도서 99절은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이는 네가 일평생에 해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분복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현대어 성경은 이를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아라. 네 아내는 이 땅에서 수고하는 모든 일에 대한 최상의 보상이다.”

 

무슨 말입니까? 이 땅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정말 즐겁고 신나게 사는 것이 바로 복이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주신 복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진정한 복의 의미를 모르면 아무리 돈이 많고 명예가 있어도 그 사람은 이 땅에서 지옥의 삶을 살게 됩니다. 세상 것에 내 마음을 빼앗긴 채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3) 자기 방어가 강한 사람들, 그래서 자기중심적입니다.

길가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세 번째 특성은 자기 방어가 강하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굳어 있다 보니까 자기 방어가 강할 수밖에 없습니다. 돌같이 굳은 땅은 물을 잘 흡수하지 못합니다. 그 부드러운 물도 잘 받아들이지를 못하는데 뭘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마음이 완고하다보니까 말씀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오직 자기만을 바라보고, 자기 위주의 삶만 살아갑니다. 스스로 세운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당연히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조언을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 말은 곧 자기 기준이 강하다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듣지도 않고, 모든 판단을 딱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각으로 판단하고 말하고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자기 고집이 강한 사람이라고 말을 합니다. 이런 사람은 당연히 부부간에도 항상 비판이 난무하고, 서로에게 손가락질 만하게 됩니다.

 

나와 다른 것은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은 아닌데도 나와 다르다고 손가락질을 합니다. 당신 때문에 내가 불편하다고 소리 지릅니다. ‘내가 싫으면 그냥 싫은 것입니다.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아닌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왜 이렇게 행동합니까? 자기 기준으로 상대방을 판단하려고 그래서 그렇습니다.

 

길가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있다 보니까 다양함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독불장군처럼 자신만이 돋보이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도 자신의 유익이 우선입니다. 당연한 것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길가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한 유익보다는 지금 나의 이익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나 비전보다는 지금 내가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어떤 위치에서 일하고 먹고 사는가에 더 관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신앙의 모습은 있으되 그 사람으로 인해서 성령의 열매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길가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당연히 자기 유익만을 구하는 사람이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사랑은 자기 유익을 구치 않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는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온전한 자기 희생이 없습니다. 순전한 헌신이 없습니다. 그저 자기 편하고 좋은 것만 있을 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배우자를 사랑해도 자기 유익을 구하는 수준에서만 사랑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다 주지 않습니다. 자기가 세운 기준선 안에서만 사랑하고 더 이상은 사랑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행복할 수가 있겠습니까? 어찌 하나된 인생으로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추부길 목사님은 결혼의 틀을 가지고 있었다. 일단 식사를 하고나면 아버지가 큰 기침을 한번 합니다. 그러면 당연히 어머니가 식사를 중단하고 물을 떠다 드립니다.

목사님은 결혼해서 밥을 먹고난 다음 큰 기침을 했습니다. 당연히 아내가 물을 갖다 줄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꼼짝도 않고 밥을 먹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번 더 큰 기침을 했습니다. 한번 쳐다 보더니 계속해서 밥을 먹는 것입니다.

 

그때 목사님 마음 가운데서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이 여자가 남편을 무시하는구나!”. 그래서 조금 짜증을 내면서 당신 왜 물 안 갖다 줘?” 그랬더니 아내가 뭐라고 그러는 줄 아세요? “당신이 언제 나보고 물 갖다 달란 적 있어요?” “내가 갖다 달라고 했잖아?” “언제요?” “금방!” “금방 언제요?”

서로가 다른 가치관의 틀을 조합해 가는데 무려 10년 넘게 걸렸습니다.

 

그래도 우리 부부는 다행히도 수없이 많은 퍼즐을 거의 맞춘 부부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요, 퍼즐도 몇 십 개 안되는 퍼즐이나 그림이 확실한 퍼즐은 쉽게 맞출 수가 있는데요, 그림도 비슷비슷하고 1,000개 가까이 되는 퍼즐은 정말 아무리 봐도 맞출 수가 없더라구요.

 

여러분, 결혼이라는 퍼즐은 수천 개가 아니라 수만 개도 되는 퍼즐 조각을 맞추어가는 게임입니다. 그런 퍼즐을 맞출 때는 이 퍼즐이 여기에 맞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하게 되면 절대 그 퍼즐을 완성시킬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 맞을 수도 있고, 저 쪽에 맞을 수도 있다는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맞추어 가야만 하나씩 하나씩 제자리를 잡게 되는 것입니다. 퍼즐 조각이 너무 많다고 일찍 포기해서도 안됩니다.

그 조각들을 맞추어 놓고나면 그 성취감이라는 것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행복이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혼자서는 안됩니다. 둘이서 함께 머리를 맞대고 맞추어 가야 합니다. 문제가 있는 부부들을 만나보면 한결같이 길가의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틀만을 고집하기 때문에 배우자를 제대로 바라 보지도 못하고 수용하지도 못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길가의 마음- 바리새인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향해 장님이라고 말합니다. 눈을 떴으나 보지를 못하는 그런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두 눈이 분명히 달렸지만 진짜 볼 것을 못보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마치 유대인들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보지 못했던 것과 같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생각, 자기들의 교리에 딱 얽매여서 예수님을 바라보았지 않습니까? 당연히 나사렛에서 메시아가 나오다니... 그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일축해 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 사람들에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다 본 듯하나 모두 다 소경이라”.

 

색안경을 쓰고 자기의 가치관으로 상대방을 판단하는 실수를 하기 쉽습니다. 남들도 나와 같은 생각일꺼야? 착각을 합니다. 길가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만이 가지고 있는 색깔있는 안경을 쓰고 상대방을 바라보니까 순수하게 볼 수가 없습니다. 항상 오염되고 곡해된 인간관계를 만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길가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가장 큰 특성중의 하나는 자기 자신이 만든 틀 안에서만 상대방을 수용하려 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자기 기준선에 맞지 않으면 상대방을 비난하고 정죄하게 됩니다. 사회에는 통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일반화된 가치관이지요. 이러한 통념 수준만 가지고 살아도 부부간에는 문제가 생기질 않습니다. 그런데 길가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통념보다 훨씬 더 좁은 스트라익 존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좁디 좁은 스트라익 존을 벗어나면 무조건 이라고 선언해 버립니다. 길가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삶에는 사랑의 씨가 자라나질 않습니다. 마음 바닥이 차디 찬 냉정한 마음을 갖고 있으니 그 동토와 같은 곳에 어떻게 씨가 자랄 수가 있겠습니까? 결국 아무리 상대방이 사랑의 씨를 뿌려도 그 씨가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랑의 싹이 자라나질 못하는 것입니다.

 

길가의 마음을 치유하려면.....

굳어버린 길가의 마음을 옥토의 마음으로 만들려면, 그 딱딱한 길을 파 헤치고 숨쉴 틈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 딱딱한 흙을 부드럽게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따뜻한 햇빛도 필요합니다. 여유로운 마음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생기를 가져다 줄 신선한 물도 필요합니다.

 

여러분! 그 마음을 먼저 주님 앞에 올려 놓으십시오.

딱딱한 흙을 부드럽게 만들어 준다는 것은 마음의 여유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음의 여유를 갖는다는 것은 내 생각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더욱 겸손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나보다도 훨신 더 앞서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들의 의견이나 태도에 관심을 갖고 내가 그 가운데서 배울 것을 찾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딱딱해진 흙을 부드럽게 만들려면 연장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손으로 그 흙들을 다 부드럽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 연장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 말씀이 지금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하십시오. 그래서 그 말씀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려는 노력을 하십시오. QT의 시간을 갖는 것이 아주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도움을 주는 분들에게 의지할 필요도 있습니다. 전문적인 상담사역자들이나 치유사역자들의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사역하는 분들이라야 제대로 치유를 받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더불어 날마다 감사의 일기를 쓰십시오. 하루에 열가지 씩이라도 감사의 조건들을 적어 보십시오. 특별히 배우자의 좋은 점, 칭찬할 점들을 하루에 3가지씩이라도 매일 적어 보십시오.

 

이러한 것들이 바로 신선한 물을 붓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생수도 공급받으시고 또 배우자의 격려와 사랑같은 따뜻한 햇빛을 받게 되면 그 흙이 달라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내 마음을 조금씩이라도 개간해 간다면 분명히 그 길가의 마음이 옥토로 조금씩 변해 갈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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