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신 강단

축복의 복음2

박도식 2021. 3. 23. 15:53

축복의 복음2

사무엘하725-29

25 여호와 하나님이여 이제 주의 종과 종의 집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영원히 확실케

하옵시며 말씀하신 대로 행하사

26 사람으로 영원히 주의 이름을 높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 하게 하옵시며 주의 종 다윗의 집으로 주 앞에 견고하게 하옵소서

27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의 종에게 알게 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 하신 고로 주의 종이 이 기도로 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

28 주 여호와여 오직 주는 하나님이시며 말씀이 참되시니이다 주께서 이 좋은 것으로 종에게 허락하셨사오니

29 이제 청컨대 종의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주 여호와께서 말씀 하셨사오니 주의 은혜로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 하니라

 

포인트 워드: 축복의 복음

활용: 예수님을 믿었으면 반드시 복을 받아야 한다. 우리가 복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성경을 가슴에 안고 따라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영혼의 양식이며, 영적전쟁에 무기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우리 교우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사무엘하725-29절의 말씀입니다. “주의 은혜로이라는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주에 우리는 축복의 복음에 대해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복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본성입니다.” 하나님은 복을 주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고자 하는 복을 우리는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고자 하는 복을 받지 못하면 우리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우리 민족은 복을 좋아하는 민족입니다. 우리 민족이 좋아하는 한자가 목숨 수()자와 복 복()자입니다. 이불에서 수복, 베개에도 수복, 옷에도 수복이라고 써 놓았습니다. 심지어 숟가락에도 수복이라고 써 놓았습니다. 어디를 가나 수복이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수와 복을 구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인은 최초의 살인자가 되었고, 그 이마에 저주받는 표시가 있었습니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아들이었지만, 축복의 조상은 아니었습니다. 에서는 이삭의 장자였지만, 야곱이 축복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사울왕은 이스라엘 초대 왕이었지만, 저주를 받아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 가운데서도 축복의 사람이 있고, 저주를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신약에서 니골라는 초대 7집사 중 하나가 되었지만, 이단의 괴수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반드시 축복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저주받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지옥에 간다면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왕의 기도입니다. 다윗왕은 성전 건축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고 대신 축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어디를 가든지 너와 함께 있어 네 대적을 멸하리라. 네 이름을 존귀하게 만들어 주리라. 네 몸에서 날 자식이 네 뒤에서 그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삼하7:16)

 

다윗왕이 왕으로 40년간 재직을 합니다. 그의 노년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저가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하다가 죽으매 그 아들 솔로몬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대상29:28)

사도행전에서는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13:22)

 

우리는 본문을 통해 누가 축복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가를 살펴 보고자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종이 된 자가 복을 받습니다.

 

다윗왕은 하나님을 왕으로 삼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았습니다. 영어로 Lordship(주재권)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에서 주인은 누구인가요? 다윗은 본문에서 종이란 말을 반복적으로 사용합니다. 본문 5절에서 종이란 단어를 8번이나 사용합니다. 25, “주의 종과 종의 집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26주의 종 다윗의 집으로 주 앞에 견고하게 하옵소서” 27, “주의 종에게 알게 하여” “주의 종이” 28, “종에게 허락하셨사오니” 29,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

 

다윗은 자신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표현합니다. 다윗은 왕입니다. 왕은 지상에서는 최고의 권력자입니다. 모든 부와 명예, 권력을 지닌 사람입니다. 자기의 말 한 마디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사람입니다. 절대 권력을 지닌 사람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 앞에 자신을 종이라고 표현합니다. 자기 삶의 주인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주권이 세워진 사람입니다.

 

복을 받는 사람이 누구인가요?

내 인생은 내 것이니, 내 맘대로 산다는 사람은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내 물질도 내 것이니, 내 맘대로 쓴다. 하나님께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내 건강도 내 것이니 내 맘대로 쓴다. 절대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새털 같이 많은 시간도 내 것인데, 내 맘대로 쓴다. 그러면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주인이시고, 내 시간이나 물질의 주인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우리 시대에는 종이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왕 시대의 종이란 주인의 재산입니다. 종은 개인적인 자유가 없습니다. 주인이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옵니다. 주인이 시키는 일을 해야 합니다. 종은 자기 재물이 없습니다. 그저 주인의 물질을 잘 관리할 뿐입니다. 다윗은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자기 맘대로 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구약의 신앙인들을 한결같이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 사람들입니다. 다른 말로는 주권이 확실하게 세워진 자들입니다.

주권이 잘 세워진 사람이 요셉입니다. 요셉은 17세에 형제들에게 노예로 팔렸습니다.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일을 합니다. 모함을 받습니다. 감옥에 갇힙니다. 30세에 총리가 됩니다. 그가 형들을 만나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이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45:8) 형들이 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셨다고 합니다.

 

욥은 어떤가요? 하루 아침에 금지옥엽으로 키운 10명의 자녀가 죽었습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1:21) 그러면서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구약 성도들이 지금에 살았다면 이런 노래를 많이 불렀을 것입니다.

지존 하신 주님 이름 앞에 모두 무릎 꿇고 다 경배해

거룩하신 주님 보좌 앞에 엎드려 절하세

예수는 그리스도 예수는 주

하나님의 영으로 경배드리리

 

왕이신 나의 하나님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종들은 자기 것이 없습니다.

 

다윗은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자신을 철저히 낮춥니다. “나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종의 집이 복을 받게 하옵소서.”

 

역대상 17:27절입니다. 이제 주께서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두시기를 기뻐하시나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복을 주셨사오니 이 복을 영원히 누리리이다 하니라”(대상 17:27)

 

우리는 자유인이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자녀요, 종입니다. 자신을 최고로 낮추는 것이 종이라는 표현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나는 성령님의 시종입니다.” 참으로 멋진 표현입니다. 자신을 잘 아는 것이 복이며 이런 자가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무화과 나무를 지키는 자는 그 과실을 먹고 자기 주인을 시종하는 자는 영화를 얻느니라”(27:18)

 

어떤 사람은 자신이 종인지, 주인인지 분별하지 못하여 멸망을 당합니다.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사악한 농부의 비유가 있습니다. 주인이 농사를 대신 짓던 농부에게 일군을 보냅니다. 추수한 것을 거두려고 얻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사악한 농부는 주인이 보낸 일꾼들을 죽여 버립니다. 심지어 주인의 아들까지 죽여 버립니다. 결국 주인은 그 농부를 파멸시켜 버립니다. 농부는 자기가 주인인지 종인지 잘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지은 천사들 중에 가장 아름답고 멋진 천사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대항을 했습니다. 하나님과 지극히 높은 곳에 올라 겨루겠다고 전쟁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천사장의 지위를 잃고 사탄이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모습을 빼앗기고 추악한 사탄이 되었습니다. 존경받는 지위에서 멸시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평생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교만할 때, 그의 불행은 시작되었습니다.

 

둘째, 주님 앞에 영원히 있기를 원하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다윗은 고백합니다.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하나님 앞에서 삶을 살고자 했던 그의 신앙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그의 지식이나 부함을 자랑하고 싶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축복을 자랑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의 건강도 땅의 넓이도 자랑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 은총을 받고 영원히 있기를 원했습니다.

 

민수기 6장에서 보면, 여호와께서 네게 얼굴을 향하여 드사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늘 관심을 보이고 지켜 보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이 등을 돌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을 하나님을 위해 쓰려고 할 때, 하나님은 더 깊은 관심과 사랑을 보일 것입니다.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리고 하나님께서 찾아 오셨습니다. 솔로몬은 부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장수를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원수의 멸망도 원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듣는 마음을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백성의 음성을 듣고 바르게 다스리고 싶었습니다. 이 마음이 하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이 구하지 않은 부귀와 영화도 덩달아 허락하셨습니다.

 

누가 복을 받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어거스틴의 삶의 구호가 코람데오입니다. “하나님 면전에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서 늘 나를 지켜 보신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면전에서 하나님을 대하듯 세상을 사는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지 않는 자들은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과 동떨어진 사람들은 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모세를 보세요. 출애굽기 33:13절입니다.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서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33:13) 모세도 하나님의 목전에 있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면전에서 살기 원했고, 하나님의 면전에서 은총입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사시기에는 주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여라는 말이 반복됩니다. 구약에서 14번 나오는데, 사사기에 7번 나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2:11)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켜 보신다는 사실을 망각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간증이 있습니다. 몇 번 들으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강원도에 사시는 90이 넘은 어느 할아버지 성도님 이야기입니다. 이분이 교회에 오려면 산을 2개 넘어 와야 합니다. 늦은 나이에 교회에 나왔는데 목사님은 기도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할아버지, 기도는 하나님 이름을 부르고, 소원을 아뢰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하면 됩니다. 어느 날, 할아버지 소가 아픕니다. 일어나지 않습니다. 수의사를 불렀더니, 금새 죽을 것이라 말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목사님의 말씀이 떠 올랐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기도하라.” 소의 배에 손을 대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소가 아픕니다. 소가 일어나게 해 주세요. 우리 소가 죽으면 동네 사람들이 뭐라 말하겠습니까? 90이 넘어 예수 믿더니 망했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할아버지는 기도를 마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를 잊어버린 것입니다. 게속 고민합니다. ‘그 이름이 뭐더라. 그 이름이 뭐더라.’ 도무지 떠 오르지 않기에 내일 교회에 가서 목사님께 물어 보려고 마음 먹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데, 잠을 일찍 청합니다. 자리에 누웠는데, 천장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옵니다. “그 이름은 예수니라.”

 

하나님께서 할아버지의 정성에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일까지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자리에 눕자마자 응답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려고 하지 마세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있어야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의 얼굴을 비추어 주는 자에게 형통한 삶이 열립니다. 그러나 죄를 짓는 자에게 어떨까요? 내 인생의 나의 것이라고 내 맘대로 사는 자는 어떨까요? 물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다. 하나님은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십일조만 바치래요. 이런 하나님이 어디 계세요. 그런데 우리는 10개 모두 우리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더 놀라운 것은 두 렙돈, 5000원 정도를 바친 과부입니다. 부자는 금화를 바쳤지만, 예수님은 감동받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과부의 두 렙돈을 칭찬하셨습니다. “생활비 전부를 바쳤느니라이런 자에게 하나님의 얼굴이 향하지 않겠어요? 이런 자에게 경제 부흥이 일어나지 않겠어요? 여호와께서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춰야 복을 받습니다. 주님 앞에 항상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복이고 이것이 은혜입니다. 복을 받으려는 이유는 우리가 잘 살기 위함이 아닙니다. 주의 앞에 있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주 앞에 있으면서 주의 얼굴을 뵙는 것은 큰 복입니다.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맘이 좋거든 주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셋째, 주의 은혜로 복을 받습니다.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9:15)

복을 받는 조건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복을 받습니다. 은혜외에는 없습니다 노아 당시에는 모든 사람의 생각이 항상 악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악한데 의로울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전통적으로 5복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상서"에는 5복을 수(), (), () 강녕(康寧, 자손중다(子孫衆多), 이 다섯을 얘기합니다. 상류층이 말하는 5복입니다. 반면에 "통속편"에는 5복을 부, , 강녕, 고종명(考終命), 유호덕(攸好德)이라고 합니다. 고종명이란 죽을 때 조용히 고통 없이 죽는 것을 말하며, 유호덕이란 덕을 좋아하고 베푼다는 뜻입니다. 통속편의 5복은 서민들의 복입니다.

 

, , 강녕, 고종명, 유호덕, 이 모두가 알고 보면 내 힘이 아니라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야베스의 기도에서는 "성경적인 의미에서 복이란 말은 사람의 힘으로 얻지 못하는 초자연적인 은혜를 뜻한다"라고 합니다. 성경의 복은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화) 야베스

대상4:9-10에서 야베스가 나옵니다. 야베스는 고통, 슬픔이라는 뜻입니다. 어머니가 힘들게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름 자체가 아픔입니다. 출생이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대상4:10)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그는 존귀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을 딴 지명이 생겨났습니다. 출생이 불행했지만, 하나님께 기도하여 은혜를 받았습니다.

 

파주에 세계로금란교회가 있습니다. 주성민 목사님은 신학교를 10년 넘게 떨어졌습니다. 자기가 지도한 아동부 학생은 신학교에 진학하는데 본인은 계속해서 낙방을 했습니다. 연애에도 실패했습니다. 비맞은 중처럼 초라한 모습으로 대학교 강의실에 찾아갔던 사람입니다. 아버지 어머니도 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큰 목회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어머니는 병상에서 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 성민이가 세계적인 종이 되게 하옵소서.” 그런데 그 기도처럼 세계적인 주의 종으로 쓰임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 베풉니다.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깁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출어 주십니다.

주의 은혜로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

자신을 종이라고 낮추는 자가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려고 하는 자가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자가 복을 받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살아갑니다. 이제 우리가 축복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을 받아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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