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신 강단

거기에 계신 하나님

박도식 2021. 3. 22. 17:39

거기에 계신 하나님

 

에스겔 48:35

35 그 사면 도합이 일만 팔천 척이라 그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이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

 

포인트 워드: 하나님

: 하나님은 언제가 함께 하셨다. 우리가 알지 못했을 뿐이다.

 

한 명의 무신론자가 있었습니다. 한 때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병이 나았다는 소리를 들으면 종교 팔아서 돈 버는 사기꾼이라 생각했다. 종교는 윤리적인 생활을 하자는 사회적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어느 프랑스 시인의 글을 좋아했다. “하나님, 인간의 일은 인간끼리 할 테니 하나니은 가만히 좀 계십시오.”

 

어릴 때 교회에 참석하였지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 많았다. ‘죽으면 땅에 파묻는데 천국 간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예수님이 죽었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셨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뜻인가? 부활하여 제자들에게 보여주고 다시 하늘에 올라가셨다는데 도대체 믿을만한 말인가?’ 동화 같은 이야기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성경을 한 번 읽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성경은 이스라엘의 역사책이다. 우리나라의 단군신화 같은 것이다. 이스라엘의 건국신화에 권위를 붙이기 위해 하나님을 끌어다 붙인 것이다. 결국 불가지론자 또는 무신론자가 되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눈으로 하나님의 손을 보았다. 하나님을 체험했다. 지금은 절대로 하나님을 버릴 수 없는 신앙인이 되어 있다.

 

한국 문단의 대표적인 소설가 김승옥 작가의 이야기입니다. 서울대 2학년 때 무진기행이라는 소설을 써서 상을 받았습니다. 25세에 동인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김지하 시인, 이청준 작가가 친구들입니다. 그는 교회에 나갔지만,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현대인들과 똑같이 고민을 했지요?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신가? 하나님이 있다면 왜 이렇게 불공평한가? 나쁜 사람들은 더 잘 살고 진실하고 정직한 사람은 오히려 더 힘들게 살까?’

 

우리가 읽은 에스겔서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민이 나와 있습니다. 에스겔 1-32장 까지 백성들은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거기 계시지 않았다. 하나님이 도와 주지 않았다. 하나님이 우릴 버렸다.’ 1-32장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의 심판과 몰락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로잡힌 지 십이 년 시월 오일에 예루살렘에서부터 도망하여 온 자가 내게 나아와 말하기를 그 성이 함락되었다 하였는데”(33:21)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온 12년에 예루살렘이 함락되었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나라는 힘을 잃고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 노예 생활을 하는 형편입니다. 그 때에 백성들은 하나님께 섭섭한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에스겔은 33-48장까지 계속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거기 계시다. 하나님이 회복시켜 주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신다.” 에스겔 3633절입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너희를 모든 죄악에서 정결하게 하는 날에 성읍들에 사람이 거주하게 하며 황폐한 것이 건축되게 할 것인즉”(36:33) 황무하게 보이던 땅이 에덴 동산같이 될 것입니다. 황량하고 적막하고 무너진 성읍이 다시 세워지고 사람들이 몰려 들 것이라 하셨습니다(36:35-36) 회복이 된 성읍에 하나님께서 충만하게 거하실 때에 사람들이 말할 것이랍니다. “여호와 삼마곧 하나님이 거기 계신다고 말입니다. 삼마는 거기에” “그쪽에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로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여호와 삼마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첫째, 과거에도 거기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가장 어두운 과거는 언제입니까? 애굽땅에서 포로 생활 할 때와 바벨론에서 70년간 종살이 할 때입니다. 나라를 잃고 남의 나라에서 70년간 종살이를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힘들고 어렵겠습니까?

 

우리 나라는 이스라엘과 같이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라를 빼앗긴 아픔입니다. 월미도에 가면 이민사 박물관이 있습니다. 초기 이민자들의 고통과 슬픔을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구한 말에 나라는 힘을 잃고 외세는 우리나라를 약탈하려고 했습니다. 사회적인 혼란과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 국민들은 극심한 배고픔을 경험합니다. 일제는 쌀과 곡물을 약탈하여 가고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빈곤이라는 경제적인 이유와 여러 가지 이유로 하와이 이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인천 내리교회 선교사와 목사님의 주선으로 이 일이 진행되었습니다. 하와이는 설탕수요 증가로 노동력이 필요했습니다. 처음에 121명이 제물포에서 배를 타고 출발했지만, 결국 102명만이 하와이에 도착합니다. 사탕수수 농장에서는 뜨거운 햇빛 아래 힘든 노동을 견디어야 했습니다. 목에는 번호가 쓰인 목걸이를 걸고 다녔는데 이것을 가지고 월급을 탔습니다. 사람이 물건처럼 취급된 것입니다. 나라가 가난하기에 백성들은 해외에서도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70년이란 긴 세월 동안 노예로 있었다니 얼마나 괴로운 순간입니까? 예루살렘 성은 함락되고 성문은 불타 버리고, 모든 것이 황폐화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들의 힘으로 독립을 이룬 것이 아닙니다. 그 당시 바벨론은 세계 최대의 강대국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고레스 왕을 통해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아무 이유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고레스 왕을 통해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시편126:1절에 그 감격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126:1) 3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126:3)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아픈 역사 가운데에도 함께 하셨습니다. 자식이 죄를 지었다고 아버지이 아들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분명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죄를 지어 고통을 받고 있기에 아버지의 관심이 더 있습니다. 이사야41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 끊임없는 사랑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나의 종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내가 땅끝에서부터 나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41:8-9)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을 절대 버리지 않을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오히려 말씀하시며 용기를 주십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41:10-11)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수치와 욕을 먹을 때에도 함께 하셨습니다. 고통당하는 모습을 보고 계셨습니다. 여호와 삼마 하나님은 우리가 슬퍼하고 눈물짓고 탄식하는 순간에도 함께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나라가 8.15 광복을 맞이할 때 얼마나 기뻤습니까? 일본 사람들에 의해 말도 빼앗겼습니다. 이름도 바꾸었습니다. 모든 것을 빼앗겼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독립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우리가 전쟁으로 독립을 쟁취한 것이 아닙니다. 외교적인 힘으로 독립한 것이 아닙니다. 원자폭탄 2방에 일본천황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습니다. 8.15일 우리 조상들은 대한 독립 만세” “대한 독립만세를 외치고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구한말이나 일제 시대에도 하나님은 우리 민족과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1907년 일본은 정미조약을 통해 한국 군대와 경찰을 해산시켰습니다. 법적으로 우리나라에는 군대도 없고 경찰이 없는 순간이 왔습니다. 그리고 1910년 한일 합방이 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참 암울합니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에 의하면 19071월 평양 장대현 교회에 성령의 불길이 붙었습니다.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평양 서울, 인천 전국적으로 성령의 불길은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일제시대에 길선주 목사님, 김익두 목사님, 주기철 목사님 같은 분들이 있었습니다. 민족이 캄캄한 어둠 속에 있을 때, 주의 종들을 보내어 하나님께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한국의 엘리야라는 박관준 장로님도 있었습니다. 이분은 안이숙 사모님과 함께 일본 의사당에 진입하여 총리대신과 각료들에게 외쳤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대 사명이다.” 일본 신도를 폐지하고 하나님을 믿어라. 박관준 장로님은 평양 감옥에 투옥하여 한 영혼 한 영혼에게 전도를 했습니다. 자기 몫의 밥 덩어리를 다른 수감자에게 주기도 했습니다. 옥중에서 70일간 금식기도도 하였습니다. 옥중에서도 한국교회를 위해 기도하셨고, 일제의 회개와 흩어진 가족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박관준 장로님은 일본순사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두고 보시오. 당신들이 아무리 나를 가두려고 해도 1945년을 넘기지 못할 테니. 내년 8월에 일본이 망하고 조선이 독립된단 날이오.” 장로님은 194511일부터 옥중에서 70일간 금식기도를 드렸다. 1945313, 장로님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우리가 어떻게 독립 되었는가? 우리의 힘으로, 아니다. 우리의 경제력으로, 아니다. 우리가 전쟁에 승리해서, 아니다. 아마도 수없는 주의 종들이 독립을 위해 기도했기 때문이다.

 

여호와 삼마의 하나님은 과거에도 우리와 함께 계셨다. 우리가 고통당하는 순간에도 돕는 자를 보내셔서 우리를 붙잡아 주셨고 인도해 주셨다. 우리 인생의 어둡고 캄캄한 밤, 아무도 홀로 없는 그 순간에 하나님은 거기 계셨다.

 

둘째, 여호와 삼마의 하나님은 현재에도 여기 계시는 분이다.

 

많은 사람들이 힘들고 어려울 때 하는 말이다. “하나님 어디 계세요. 하나님 제가 지금 고통당하는 모습을 보고 있나요?” 욥도 예외가 아니다.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23:8-9) 다윗도 예외가 아니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영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언제까지 숨으시겠나이까”(13:1)

 

신앙의 위인들도 힘들고 어려운 순간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고난의 순간에는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움으로 고난의 언덕을 넘었을 때 공통적으로 드리는 고백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거기 계셨다.”는 것이다. 고통의 순간에는 보이지 않았는데, 지나가 보니 하나님의 손이 붙잡고 있었다는 것을 안 것이다.

 

야곱이 에서의 분노를 피해 하란으로 도망갈 때, 벧엘에서 잠을 청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도망자의 신세에 칼잠을 잘 때, 하나님은 꿈속에서 그를 만나주셨다. 사닥다리가 보였고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았다. 잠에서 깬 그가 고백한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28:16) 그렇습니다. 우리가 몰랐을 뿐이지 그는 거기에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계십니다.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13:6)

 

내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은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의 생각을 아십니다. 우리의 형편을 잘 아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잘 아십니다. 중요한 사실은 내가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도 하나님의 손은 우리를 꼭 붙잡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화) 인디언 성년식

인디언 소년이 13세가 되면 아버지는 그에게 사냥하는 법, 정찰하는 법, 칼 쓰는 법, 낚시하는 법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13세 그의 생일날 성인식을 치룹니다. 어두운 밤에 그를 깊은 숲속에 데리고 가서 홀로 버려둡니다. 그때가지는 가족이나 부족의 보살핌으로 떨어져 본적이 없습니다. 그 날 밤에는 소년은 눈을 가리운 채로 숲 속 깊고 깊은 먼 곳으로 옮겨집니다. 눈가리개가 풀려지고 소년은 울창하고 우거진 숲속 한 가운데 있습니다. 그는 혼자 기나긴 공포의 밤을 보내야 합니다. 가지가 스산하게 찰싹 거릴 때, 느닷없이 달려들 동물들을 떠올립니다. 동물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면 늑대라고 금방 어둠속에서 뛰쳐나올 것 같습니다. 바람이 불면 더욱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힙니다. 너무나 무서운 밤입니다. 그런데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몇 시간이 지난 후 새벽이 밝아옵니다. 소년은 주위를 바라봅니다. 꽃 나무 길이 있습니다. 그리고 숲 속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활과 화살을 들고 서 있는 한 남자를 발견하고 놀랍니다. 소년의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는 거기서 아들과 함께 온 밤을 함께 지샌 것입니다. 소년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가 거기에 함께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만군의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전능의 하나님이 여러분의 영을 보호해 주십니다. 가정과 직장과 사업장을 보호해 주십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붙잡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엠마오에 가는 제자들은 몰랐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그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영적인 눈이 떠졌을 때, 그들은 예수님이 함께 하셨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눈에 보이는 것이 없고, 손에 잡히는 것이 없고, 귀에 들려오는 것이 없어도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13:5-6)

 

우리가 절망할 때, 우리가 분노했을 때, 우리가 사기 당했을 때, 우리 마음이 지쳐 모든 것을 포기 하고 싶었을 때, 아무도 없는 인생의 들에 홀로 버림받았다고 느낄 때, 잊지 마세요. 하나님은 거기에 함께 계십니다.

 

셋째, 여호와 삼마의 하나님은 미래에도 함께 계십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에스겔서의 대단원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구절에서 회복된 예루살렘의 환상을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현재의 상황이 아닙니다. 장차 되어질 미래의 모습입니다. 이 성은 가로세로 각각 45백 규빗(2.4km)의 정사각형입니다. 성의 둘레는 9km입니다. 엄청난 크기입니다. 그런데 이 도시의 영광은 도시의 크기에 있지 않습니다.

 

오산리 금식 기도원에 갔다 왔습니다. ! 이렇게 큰 기도원이 있었구나! 식당만도 500명 정도가 동시에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같이 잠을 자던 분이 70이 넘으신 장로님입니다.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 대해 잘 압니다. 이분 말씀이 지금 조용기 목사님이 일주일에 한 번 설교합니다. 한달에 4번 설교합니다. 목사님이 내시는 헌금이 한 번에 2000만원이랍니다. 한 달에 8000만원을 헌금합니다. 담임목사로 있을 때, 한 번 예배에 1000만원씩 헌금했답니다. 한 달이면 12천 만원을 헌금합니다. 교회 사례비는 5000만원입니다. 목사님은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사례비보다 더 많게 헌금을 드린다는 것입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정확하시다.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두게 하신다.”

 

사람들은 헌금 액수에 감동을 받고, 기도원의 규모에 감동을 받습니다. 한 때는 수 만 명이 모여 예배드렸다고 합니다. 미래의 예루살렘 성도 작은 규모는 아닙니다. 그러나 도시의 영광이 도시의 규모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충만하시고 완전하신 임재가 영광이었습니다. 여호와 삼마- 하나님이 그 도시 가운데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예루살렘 성의 영광입니다.

 

그런데 이 도시는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위해 준비하신 새 예루살렘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이 구절의 연결점은 계21장입니다. “또 내가 보니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2)또 내가 보니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그리고 계속해서 묘사되는 3절은 이 새 예루살렘 성 곧 영원한 나라, 천국의 본질을 설명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그 다음에는 우리의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시고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신 새 하늘 새 땅에서 눈물도 사망도 애통함도 곡하는 것도 없이 영원토록 거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국의 본질, 천국의 영광이 무엇입니까? 여호와 삼마-하나님의 충만하시고 완전하신 임재가 아닙니까?

 

주께서 우리의 미래에 이런 천국을 준비하시고 우리를 기다리신다면 비록 세상살이가 좀 험하고 좀 힘들어도 우리는 여전히 찬양하고 감사하며 살만하지 않으신가요? 우리가 감사를 드려야 할 많은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우리의 영원한 미래를 위해 준비하신 영원하신 선물 곧 영생의 소망 다시 말하면 천국의 소망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 삼마-저 영원한 미래, 천국에 하나님이 계셔서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여러해 전 미국에서 13살 먹은 라이언 화이트(Ryan White)라는 소년이 수혈하다 잘못되어 AIDS에 걸린 일이 있었습니다. 이 소년이 밝고 명랑하게 사는 모습이 방송되면서 많은 유명 인사들의 방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을 비롯하여 부동산 부자 도날드 트럼프, 가수 마이클 잭슨등이 방문하였습니다. 그러다가 한 5년이 지난 어느 날(18) 병세가 악화되어 죽음의 시간이 가까운 것을 안 이 소년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들아, 이제 아빠는 더 이상 너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구나. 아빠가 너에게 줄 선물도 없고--”했을 때 이 라이언이라는 소년은 이런 놀라운 말로 아빠를 오히려 위로했다고 합니다. “아빠, 무슨 소리를 하세요. 아빠와 엄마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저를 교회에 데리고 가 주셨고 저는 예수님을 저의 구주로 영접했잖아요. 그리고 저는 영생의 선물을 받았구요. 전 이제 언제든지 천국에 갈수 있잖아요, 아빠, 어떻게 그보다 더 좋은 선물을 주실 수 있겠어요그날 저녁 라이언의 온 가족은 주께 눈물어린 감사의 예배 그리고 감사의 파티를 열었다고 합니다. 라이언의 감사, 라이언 가족의 감사가 우리 모두의 감사이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여호와 삼마 하나님은 늘 거기에 계셨습니다. 그리고 늘 우리와 함께 합니다. 또한 영원히 함께 하실 것입니다.

너의 평생에 너를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1:5-6)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브리서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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