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은혜로 복받기 원합니다
사무엘하 7:25-29
25 여호와 하나님이여 이제 주의 종과 종의 집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영원히 확실케
하옵시며 말씀하신 대로 행하사
26 사람으로 영원히 주의 이름을 높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 하게
하오시며 주의 종 다윗의 집으로 주 앞에 견고하게 하옵소서
27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의 종에게 알게 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 하신 고로 주의 종이 이 기도로 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
28 주 여호와여 오직 주는 하나님이시며 말씀이 참되시나이다 주께서 이 좋은 것으로 종에게
허락하셨사오니
29 이제 청컨대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사오니 주의 은혜로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 하니라
포인트워드: 은혜
활용: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 은혜이다. 값없이 그저 주신 것이다. 그 은혜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감사하는 사람이고 행복한 사람이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를 귀하게 받아야 한다.
성경을 가슴에 안고 고백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영혼의 양식이며 영적 전쟁에 무기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은혜라는 말은 영어로 ‘Grace’이며, 히브리어로 ‘헤세드’, 신약 ‘카리스’입니다. “동정하다, 호의를 베풀다, 열망하다, 자비롭다, 신뢰하여 호의적으로 대하다, 우정, 친절, 기쁨, 총애, 매력...” 등의 의미를 갖는다. 선물이 가장 중요한 핵심 단어이다.
하나님의 성품을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며 은혜를 베푸시는 분입니다. 천사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성도들을 돕기 위해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부름꾼이 천사들입니다. 그런데 악한 영은 우리를 괴롭히고 속이고 죽이려고 합니다.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이 사탄의 목적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이 주고자 하는 복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 왕이 하나님께 드린 기도입니다. 구약에는 여러 기도가 나옵니다. 아브라함의 기도, 모세의 기도, 야베스의 기도 다윗의 기도, 솔로몬의 기도 등.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러 기도문 중 가운데 최고의 기도문을 뽑으라면, 오늘 본문의 다윗의 기도를 뽑습니다. 이스라엘이 AD 70년에 멸망하고 1948년에 독립을 했는데, 이는 다윗의 기도 덕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의 은혜로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삼하7:29)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들으십니다. 그리고 우리 당대에 응답을 주시던가? 아니면 후손에게 응답을 주십니다. 그런데 기도하지 않으면, 기도의 응답도, 기적도 놀라운 일도 없습니다. 다윗은 왕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도 기도하는 삶이었습니다. 요단강에서 세례 받을 때도 기도하셨고,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까지 기도하는 삶을 보이셨습니다.
몇 주 전에 설교를 했죠? “네 은혜를 회복하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하나님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은혜가 있으면 됩니다. 은혜가 없으면 안 됩니다. 상위 10%의 건강을 가져도 은혜가 없으면 몸으로 죄를 짓습니다. 미모가 우리나라 상위 10%의 미모가 되어도 은혜가 없으면 얼굴로 죄를 짓습니다. 서울의 나이트 클럽이나 노래방에서 일하는 청년들의 얼굴을 보세요. 우리나라에서 뛰어난 미모를 지닌 자들입니다. 물질도 마찬가집니다. 상위 10%의 물질을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죄를 짓고 다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면, 건강하지 못해도, 외모가 부족해도, 물질이 부족해도 어디를 가든지 형통하며 누리는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오늘 이 아침에 이 말씀을 듣는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나길 축복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는 누구에게 임할까요?
첫째, 하나님을 왕으로 섬겨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다윗은 본문에서 종이란 말을 반복적으로 말합니다. 25절을 보면, “주의 종과 종의 집에 대하여”라고 말씀합니다. 26절에서는 “주의 종 다윗의 집으로”라고 말합니다. 28절에서는 “종에게 허락하셨사오니”, 29절에는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
다윗은 지금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왕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말 한 마디에 수백만명이 움직입니다. 그는 교만할 수 있는 최고의 지위에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신분이 “종”인 것을 인정합니다.
사람들은 복을 받으려고 합니다. 우리민족은 복을 좋아하는 민족입니다. 우리가 어릴 때, 장수 수와 복복자를 많이 보았을 것입니다. 이불에도 수복, 베게에도 수복, 옷에도 수복, 그릇에도 수복, 심지어 숟가락에도 수복이 써 있었습니다. 세상 누구나 복을 받기 원합니다. 그런데 복을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을 왕으로 섬겨야 합니다.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하나님의 그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민수기 6장에서 하나님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축복 기도문을 주십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찌니라 하라”(민6:24-26)
종은 누구인가요? 주인의 소유입니다. 주인이 모든 결정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의 자유가 없습니다. 내 맘대로 살아가는 자가 아니라, 주인의 뜻대로 주인을 기쁘게 하기 위해 살아가는 자입니다. 종은 자신의 소유가 없습니다. 타인의 소유입니다. 대부분 종의 삶은 비참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 앞에 자신을 종이라고 표현합니다. 자기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종이 자녀를 낳으면, 그것도 주인의 것입니다. 하갈이 착각한 것은 자기 아들이 내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아닙니다. 하갈은 여주인 사래의 몸종이었기에 분명 사래의 것이었습니다. 이걸 모르고 사라와 싸웠기에 쫓겨 난 것입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섬긴다는 것은 우리는 그분의 보호아래 있다는 말도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하나님이 먹을 것, 입을 것, 쓸 것을 공급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아래서 보호를 받는 축복을 누립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면, 우리의 것이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을 종이라고 고백하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내 인생은 나의 것, 내 맘대로 산다는 사람. 자기 돈을 자기의 것이라는 사람에게 복을 주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무관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돈도 하나님의 돈이 있고, 하나님의 것이 아닌 돈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돈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신경을 쓰십니다. 보호하십니다. 축복합니다. 사탄이 하나님의 자녀들의 돈을 빼앗으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서 막아냅니다. 그러나 불신자의 돈은 하나님이 보호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역대상 17:27절에도 본문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이제 주께서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두시기를 기뻐하시나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복을 주셨사오니 이 복을 영원히 누리리이다 하니라”(대상17:27)
자신이 종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복받는 조건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하나님의 은혜는 자신을 종이라고 부르면, 낮추는 자에게 임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 가운데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하늘의 별과 같이, 땅의 모래 같이 후손을 주신다고 했을 때, 아브라함은 거절했습니다. 엘리에셀이 자신의 상속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삭의 부인 리브가를 데려오라고 할 때, 엘리에셀을 보냅니다. 어떤 면에서 엘리에셀은 이삭의 불행이 자기의 행복입니다. 이삭이 잘 못돼야 본인이 상속자가 됩니다. 그런데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의 뜻대로 리브가를 데리고 와서 이삭의 집을 번성케 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종이니이다”(창24:34) 자신을 잘 아는 자가 복된 자입니다.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사악한 농부의 비유’가 있습니다. 주인의 농사를 대신 짓던 농부가 주인이 보낸 일군들을 죽입니다. 주인은 아들을 보냅니다. 상속자이기에 잘 선대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악한 농부는 ‘상속자’이기에 죽여 버립니다. 주인은 군대를 보내어 사악한 농부의 모든 것을 빼앗아 버립니다. 이 농부는 자신이 주인이 아니라 종이라는 신분을 망각해 버렸던 것입니다.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면 ‘사악한 농부’가 됩니다(마21장).
우리 신분을 망각하면 사악한 농부가 됩니다. 시간의 주인이 누구인가요?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은혜로 살아갑니다. 물질의 주인이 누구인가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습니다. 육체의 주인이 누구인가요? 내가 아닙니다.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 때, 하나님은 더 큰 복을 주십니다.
둘째, 주님 앞에 영원히 있기 원함입니다.
“이제 청컨대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삼하7:29)
다윗이 복을 받기 원하는 이유는 “하나님 앞에 영원히 있기 원함입니다.” 복을 받아야 할 이유는 자신이 잘 되고 자랑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 복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을 자랑하기 위해 복을 구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경험에서 나옵니다. 체험할 때, 믿음이 견고해 집니다. 믿음이 성장합니다.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들은 언제나 하나님을 높이고자 합니다. 자기가 영광을 뺏으려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오직 하나님께 돌리고자 합니다.
“다윗이 복받은 것을 보면, 확실히 하나님은 살아계시네.”
왜요? 다윗은 목동이었습니다. 집안에서도 막내였습니다. 힘이 없었습니다. 골리앗과 싸우러 갈때에도 형들이 비웃었습니다. 무시를 당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형통한다면, 역시 하나님이 높임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2020 다니엘 기도회 강사로 나온 분 중에 “앤디 황”교수가 있습니다. 커낼대학교 한국 캠퍼스 상담학 교수인데 테니스 선수였다고 합니다. 그의 아이큐가 98이었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때 미국에 건너갈 때도 영어를 잘 해서 간 것이 아닙니다. 대형 수퍼마켓에서 감시하기 위함입니다. 두 마디만 배우면 되었답니다. “YOU, free bag” “너, 갔다 놔” 돌고래 아이큐가 80-100 사이랍니다. 돌고래 지능 같은 사람이 대학교수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건국대 조명환 교수이야기
“꼴찌 박사”라는 책을 썼습니다. “내 머리로 박사가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합니다. 이 분은 이해력이 느려서 형광등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남들은 텔레비전을 보면서 웃는데 본인은 왜 웃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시아 태평양 에이즈 학회장 그리고 하버드 케네디 스쿨을 졸업한 건국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그가 대학에 들어갈 때, 갈 곳이 없어서 미생물학과에 들어갑니다. 왜요? 미달이니까? 유학길에 오릅니다. 대학에서 쫓겨납니다. 공원 벤치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다 집에 갑니다. 어느 누구도 조명환 교수를 제자로 받아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쫓겨난 대학에서 한 교수님의 추천서로 애리조나 대학에 갑니다. 그곳에 조교수님은 전혀 알지 못했던 에이즈를 연구하고 공부합니다. 지도 교수님이 에이즈를 연구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에이즈 1호 박사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에드가라는 미국인 어머니가 45년 동안 15달러는 보내면서 편지를 보냅니다. “God loves you. Trust his love. I pray for you.” 에드가 라는 미국인은 한 번도 해외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여권도 없습니다.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매달 15달러를 잊지 않고 편지와 함께 보냈던 것입니다.
꼴등을 박사로 만들고, 에이즈 권위자로 만들어 높여 주신 하나님. 그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내 힘으로 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면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자랑하기 위해 복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가운데 넘치게 해야 합니다. 내가 잘 되어야 하나님이 높임을 받습니다. 다윗은 그걸 안 것입니다.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있는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은 면전에서(코람데오)”를 말했습니다. 모세도 기도했습니다. “주의 목전에서” 출애굽기 33:13절,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출33:13) 하나님의 앞에 있는 것이 복입니다.
셋째, 복을 받는 조건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복은 아무나 받습니까? 은혜로 받습니다. 복을 받는 조건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것입니다. 노아 당시에는 모든 사람들이 악을 행했습니다. 생각이 모두 악한 생각 뿐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악한데 어떻게 혼자 의로울 수가 있습니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나라에 전통적으로 5복을 말합니다. “상서”에서는 5복을 수(壽), 부(富), 귀(貴) 강녕(康寧, 자손중다(子孫衆多), 이 다섯을 얘기합니다. 상류층이 말하는 5복입니다. 반면에 “통속편"에는 5복을 부, 수, 강녕, 고종명(考終命), 유호덕(攸好德)이라고 합니다. 고종명이란 죽을 때 조용히 고통 없이 죽는 것을 말하며, 유호덕이란 덕을 좋아하고 베푼다는 뜻입니다. 통속편의 5복은 서민들의 복입니다.
저는 천지인을 좋아합니다. 사람은 하늘이 돕고 땅이 돕고 사람이 도와야 합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이 도우셔야 합니다. 일년 농사가 잘 되었습니다. 오곡 백과를 맺었습니다. 그런데 태풍이 오거나 지진이 나면 어떤가요? 하루 아침에 1년 농사가 사라져 버립니다.
어떤 분 이야기를 했죠? 이웃 사람이 배추 농사를 짓는데, 너무 풍년이라 비닐하우스와 배추를 구입하라고 했답니다. 목사님께 상의합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잘 되고 안 되는 것은 하나님의 소관입니다. 우리 기도하십니다.” 집사님은 비닐하우스 배추를 구입했습니다. 배추가 풍년이니 배춧값이 내려갑니다. 진짜 똥값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11월에 서리가 내렸습니다. 노지에 있는 배추들이 다 얼어 죽었습니다. 집사님의 배추는 비닐하우스에 있어서 안전했습니다. 배추값이 금값이 되어 7-8천 만 원을 벌게 되었습니다. 빌라 한 채를 구입할 정도의 복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안 되는 것도 되게 됩니다. 막힌 것도 뚫립니다. 불가능이 가능케 되어 집니다. 되는 사람은 더 잘 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나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은혜를 소멸시키지 마세요. 은혜를 계속해서 받으세요.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1-2)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은혜입니다. “은혜와 진리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요1:17)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생각해 보세요. 은혜가 밀려 옵니다.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갈수록 은혜가 강물이 되어 우리에게 밀려 옵니다.
은혜가 우리의 삶을 인도해 줍니다. 은혜가 우리에게 고종명의 은혜, 유호덕의 은혜를 줍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다윗이 왕이 되어서 드린 기도는 능력이 있습니다. 후손들은 지금도 다윗을 멋진 왕으로 여깁니다. 그의 기도는 “주의 은혜로 주의 종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입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십시다. 은혜가 임합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고백하면,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나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는다면,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 일인가요?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더 간구합시다.
성경의 인물들 가운데 불행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인입니다. 사울왕입니다. 가룟유다입니다. 니골라입니다. 데마입니다. 드오드레베(요3서1:9)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입었지만, 교만하여 버림을 받은 자들입니다. 세상을 좋아해서 세상으로 간 자들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들었으나, 쭉정이 신자가 되어 이단의 괴수가 되어 믿음의 길에서 파선한 자들입니다.
“주의 은혜로 마지막까지 예수님을 잘 믿고 천국 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 호흡마저도 다 주의 것이니
세상 평안과 위로 내게 없어도 예수 오직 예수 뿐이네
크신 계획 다 볼 수도 없고 작은 고난에 지쳐도
주께 묶인 나의 모든 삶 버티고 견디게 하시네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 나의 모든 것 다 주께 맡기니
참된 평안과 위로 내게 주신 주 예수 오직 예수 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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