꽂감을 만듭시다
삼하7:8-17
8 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처럼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서 취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고
9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
10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저희를 심고 저희로 자기 곳에 거하여 다시 옮기지 않게 하며 악한 유로 전과 같이 저희를 해하지 못하게 하여
11 전에 내가 사사를 명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않게 하고 너를 모든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케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
12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13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14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15 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17 나단이 이 모든 말씀과 이 모든 묵시대로 다윗에게 고하니라
따라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영혼의 양식이며, 영적전쟁의 무기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예전에 부교역자였을 때, 많은 성도님들을 만났습니다. 어떤 가정은 특별한 어려움이 없이 평안하게 살았습니다. 어떤 가정은 정말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어려움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으려고 노력했지만, 환난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중풍에 걸렸고, 고등학생 아들은 1년 동안 소년원에 있기도 했습니다. 그 아이가 특별히 나쁜 것이 아닙니다. 남의 오토바이를 한 바퀴 탔는데 그것이 현행범으로 잡힌 것입니다.
성도님이 너무 낙심하고 절망적이었습니다. 그 때, 그 분에게 해 준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신앙생활은 징검다리를 놓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부모가 자녀의 앞길을 위해 징검다리를 미리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별 어려움 없이 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집사님은 신앙의 1대이지 않습니까? 어느 누구도 집사님을 위해 물에 빠져가면서 다리를 만들어 놓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힘들고 어려운 것입니다. 만약 집사님이 물에 빠지고 넘어지는 것이 싫어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자녀들은 그들이 징검다리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엄마가 했던 힘든 과정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런데 제가 그 교회를 사임하고 나올 때, 휠체어를 탔던 남편이 지팡이를 짚고 나올 수 있었습니다. 소년원에 있던 아들은 출소하여 직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미혼인 딸은 지팡이를 잡은 아빠와 함께 결혼식장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가정에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신앙생활은 징검다리를 놓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서 징검다리를 놓고, 자녀를 위해 징검다리를 놓습니다. 물론 3대 4대의 신앙생활을 하는 분은 부모님들이 이미 다리를 놓았으니,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그러나 내가 1대라고 해서 좌절하거나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나와 내 자녀를 위해 지금이라도 다리를 놓으면 하나님은 반드시 축복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상 가장 존경을 받는 사람이 다윗입니다. 이스라엘의 국기에는 지금도 다윗의 별이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집안에서 힘이 없는 막내였습니다. 배움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13장 2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기쁨을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다윗이 받은 축복의 말씀입니다. 그가 축복은 받은 비결은 7장 2절입니다.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삼하7:2) 다윗은 왕궁에 거하지만, 하나님의 법궤는 천막에 있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레바논의 백향목은 중동에서 수목의 왕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뿌리를 깊게 내리고 튼튼하며, 병충해에 잘 걸리지 않는 나무였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좋은 나무로 만든 왕궁에 살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법궤는 초라한 천막에 있는 것이 무척이나 괴로웠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려고 했습니다. 다윗은 엄청난 양의 금을 준비했고, 나무를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마음만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너무 많은 피를 흘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대신 그에게 상상하지도 못할 축복을 주셨습니다. 오늘은 그가 받은 축복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다윗의 이름을 존귀하게 만들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삼하7:9)
다윗의 뜻은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하갈은 ‘도망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란 뜻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름입니다. 사람은 그 이름값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이름과 인격이 깊은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이름 중 하나가 “David”(데이비드, 다윗)입니다. 후손들이 다윗을 존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 랍비들은 구약에서 최고의 기도를 뽑으라면 사무엘하 7장 29절을 뽑습니다. “이제 청컨대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사오니 주의 은혜로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 하니라”(삼하7:29) 이스라엘이 1870년 동안 나라를 잃었다가 회복된 것도 다윗의 기도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의 후손들은 다윗을 최고의 신앙인이자, 왕으로 생각합니다. ‘아름답다’는 말에 합당하게 존귀한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아름답지 못한 이름을 가졌지만 축복의 이름으로 바꾼 사람도 나옵니다. 야베스입니다. 전에 말씀드렸지만, 야베스는 ‘수고, 고통’이라는 뜻입니다. 영어로 Mr Pain입니다. 성장해 오면서 얼마나 놀림을 받았을까요? 그런데 야베스는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대상4:10) 야베스가 얼마나 신앙이 좋았던지, 그 마을 사람들이 지역이름을 ‘야베스’로 바꾸었습니다. ‘고통, 수고’라는 이름이 축복의 이름이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의 많은 신앙인들이 야베스의 기도를 드리면서 은혜받기를 사모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다윗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 하나님은 오늘도 저와 여러분의 이름을 존귀게 만들어 주고자 여기에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겨라. 하나님만을 예배하라. 그러면 너의 이름을 존귀한 자의 이름처럼 만들어 주겠다.” 이사야 49장 16절입니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이름을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겨놓고 보신답니다. ‘내가 누구의 이름을 존귀한 이름으로 만들어 줄까?’ 여러분이 만약 하나님이라면 누구의 이름을 존귀하게 만들어 주겠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이름이 하나님께 어떻게 기억되기를 원하나요?
역사는 말해 줍니다. 인터넷을 보니, 을사오적들의 후손들의 가계도가 나와 있습니다. 나라를 팔아 먹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나라를 위한다고 했지만, 매국노라는 이름을 지녔습니다. 후손들의 앞길을 막는 일을 했습니다. 어떤 드라마를 보는데, ‘박두식’이라는 사람이 나오더라고요. 그런데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 나쁜 사람 같아요. 저와 비슷한 이름이지만, 괜히 기분이 나빠지잖아요.
기독교의 역사에도 훌륭한 믿음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 주기철 목사님, 길선주 목사님, 안이숙 사모님. 그런데 신사참배를 앞장 선 목사님들의 이름도 있습니다. 1939년 홍택기 목사(총회장)와 김길창 목사(부총회장) 등도 있다. 부끄러운 이름입니다.
다윗은 비천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신앙을 인정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철저히 낮추셨습니다. 사람의 형체를 입었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하나님과 본체지만, 철저히 순종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높이셨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빌2:9-10)
하늘에 있는 모든 것이 예수님의 이름에 무릎을 꿇습니다. 천사들도, 사탄 마귀도 예수님의 이름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이 땅의 모든 만물들도 예수님의 이름 앞에 굴복한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름을 높여 줄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평안을 약속하셨다.
“전에 내가 사사를 명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않게 하고 너를 모든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케 하리라”(삼하7:11)
10절에 보면, “악한 유로 전과 같이 저희를 해하지 못하게 하여” 다윗은 10년 이상을 도망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장인어른인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 다닌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과 함께 도망다니는 부류는 성품이 착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환난당한 자, 원통한 자, 빚진 자였습니다. 사무엘상 22:2에서 잘 소개합니다. “환난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삼상22:2) 마음이 원통한 자는 분노가 가득찬 사람들입니다. 사소한 것에도 신경질적이고 과민반응을 합니다. 분노를 잘 참지 못하고 거칠게 행동을 합니다. 한 마디로 악한 자들이었습니다. 이들과 함께 하는 다윗은 언제나 가시방석에 앉은 느낌입니다.
사무엘상 30장에서 다윗은 큰 어려움을 경험합니다. 아말렉 사람들이 성을 침략하여 아내들과 자녀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성은 불태워졌고 폐허가 되었습니다. 다윗과 함께 한 모든 자들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습니다. 그런데 부하들 중에 몇 명은 돌을 들어 다윗을 쳐 죽이려고도 하였습니다(삼상30:6). 막장인생을 살던 사람들에게 윤리와 도덕은 없었습니다. 부하가 지켜야 할 도리도 없었습니다. 다윗과 함께 한 사람들을 설명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다윗과 함께 갔던 자 중에 악한 자와 비류들이 가로되”(삼상30:22). 사악한 자들도 함께 했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잘 날이 없다고, 다윗왕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제 말씀하십니다. “악한 유로 전과 같이 저희를 해하지 못하게 하여” 이제는 악한 무리들이 다윗을 괴롭히지 않도록 보호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악한 자와 함께 하는 것, 고문입니다. 그들과 함께 밥 먹는 것, 무척이나 힘든 고문입니다. 다윗은 숱한 시련을 경험했지만, 그 때마다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승리했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의 믿음을 보시고 더 이상은 악한 무리가 해를 주지 않는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제가 몇 번 말씀드렸지만, 개척할 때, 2명이 나를 향해 큰 칼을 들고 죽이려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함께 했던 3-40명이 똑같이 칼을 들고 나를 보호하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악한 영들과의 싸움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악한 영들은 언제나 우리를 삼키려하고 무너뜨리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우리는 영적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을 앞세우면 악한 영들은 꼼짝 못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앞세울 때, 사탄의 세력은 무기력해집니다. “예수님의 이름, 예수님의 피”는 능력이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골2:15) 우리가 담당해야 할 저주, 고통, 인생의 모든 짐을 예수님이 십자가로 해결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사탄 마귀에 대한 승리입니다. 죽음에 대한 승리입니다. 저주에 대한 승리입니다. 절대로 성도들에게 저주는 없습니다. 절대로 성도들에게 실패는 없습니다. 성도들은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선포하면, 악한 영은 떠나갑니다. 에베소서 6장 17절입니다.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선포하세요. 그러면 악한 영들은 떠나갑니다.
“예수 이름으로 명령하고 선포한다. 사악한 영은 떠나가라.
내 인생을 파멸로 몰아넣으려는 사탄 마귀는 떠나가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지금 내 몸의 모든 병은 내 몸에서 떠나가라.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입었다. 나는 건강하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요즘 부자들은 집을 지으면 방범장치를 합니다. 예전에는 담장을 쌓고 병을 깨어서 꽂아 놓았습니다. 어떤 집은 가시철망으로 넘어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요즘에는 담장을 낮게 만들어도, 사방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평안하지 않습니다. 안전한 삶을 요구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없습니다. 건강도 장담 못합니다. 직장도 장담 못합니다. 재산도 장담 못합니다. 모두가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평안케 하리라. 견고케 하리라”
역사가 이것을 증명합니다. 대제국 앗수르, 바벨론, 이집트, 페르시아, 헬라, 로마는 천하를 지배했습니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다 망했습니다. 그런데 망하고 넘어질 줄 알았던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넘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1870년 만에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났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이 그들을 붙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신앙은 완전하지 않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부르기에 하나님이 버팀목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다윗의 자손을 축복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삼하7:12-14)
모든 부모의 소원은 이것입니다. 자녀가 잘 되는 것입니다. 자녀가 행복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어떤 어려움도 감당해 온 고마운 분들입니다. 우리네 부모님은 한결같이 자녀를 위해 수고하셨습니다. 진자리 마른 자리 살피면서 우리를 키우셨습니다. 자녀를 위해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셨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의 손을 보면, 너무나 확실합니다. 때로 부드러운 손을 가진 분도 있지만, 거친 손을 가지분도 계십니다. 이런 분들은 교회에서 핸드크림을 드립니다.
그런데 모든 부모가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지만, 이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어떤 부모는 본인도 모르게 자녀의 앞길을 막기도 하고, 열어 주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녀의 앞길을 열어주는 부모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후손이 왕이 될 것이며, 그 나라가 견고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자녀를 위해 징검다리를 잘 만들어 놓은 부모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후손이 죄를 범했을 때,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는 하지만, 왕위는 빼앗지 않을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솔로몬입니다. 솔로몬은 왕이 된 초기에는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번성과 창대의 복을 누렸습니다. 그의 지혜는 세상의 어떤 누구와도 견줄 수 없을 정도로 탁월했습니다. 그러나 이방 여인의 아름다움에 취해서 주색잡기에 빠졌습니다.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왕상11:1) 왕비들을 위해 산당을 지어 주었습니다.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 암몬 자손을 위한 가증한 몰록.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우상숭배에 동참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2번씩이나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했습니다. 하나님이 솔로몬을 향해 진노의 채찍을 내리쳐야 하는데 머뭇거리십니다. 다윗왕과의 언약 때문입니다. 결국 솔로몬의 아들 때에 나라가 나뉘게 하십니다. “네 아비 다윗을 위하여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치 아니하고 네 아들의 손에서 빼앗으려니와 오직 내가 이 나라를 빼앗지 아니하고 나의 종 다윗과 나의 뺀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 하셨더라”(왕상11:12-13) 솔로몬은 100번 죽어 마땅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과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솔로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누가 좋은 부모입니까? 좋은 집에서 살게 해 주는 분인가요? 공부할 수 있도록 모든 뒷받침을 잘 하는 사람인가요? 먹고 싶은 것 마음껏 먹게 해 주는 분인가요? 하나님 없이 성장하게 교육하는 사람인가요? 시험준비 때문에 주일 예배를 빠져도 된다고 가르치는 자인가요?
성경은 말씀합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시37:25)
가을이 되면 감이 익어갑니다. 땡감을 따서 껍질을 벗겨 실에 걸어 놓으면 말랑말랑한 곶감이 됩니다. 곶감을 먹고 싶은데 부모님이 미리 껍질을 벗겨놓고 처마 밑에 잘 말려 놓았다면, 자녀는 얼마나 행복할까요? 그런데 아무도 땡감의 껍질을 미리 벗겨 놓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나요? 자녀는 혼자 껍질을 벗겨 가면서 곶감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뜹뜨름한 맛을 느끼면서 말입니다. 좋은 부모는 자녀를 위해 감의 껍질을 벗겨 놓고, 곶감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징검다리를 미리 만들어 가는 사람입니다. 신앙의 1대는 힘들게 예수님을 믿습니다. 어느 누가 곶감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목회정보센타 김항안 목사님입니다. 김목사님은 불교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예수님을 믿어 목사가 되었는데, 목사안수를 받을 때 그분의 어머니는 김제 금산사에서 부처님께 빌었답니다. “우리 아들이 목사가 되오니 좋은 목사가 되게 해 주세요” 이 분이 독일에 유학을 가려할 때 비자 신청을 했는데, 1년 만에 어렵게 나왔습니다. 박사학위를 받는데 여러 해 걸렸습니다.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산전수전 다 겪었습니다. 박사학위를 마치고 국내에 들어왔습니다. 장신대를 나오고 독일 박사학위가 있는데, 그를 초청하는 교회가 없었답니다. 신학교에서 교수로 청빙한다는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부인은 어머님이 믿음 좋은 권사님이셨습니다. 그 아내는 3일 만에 독일 비자가 나왔습니다. 박사학위도 어렵지 않게 받고 국내에 들어왔습니다. 국내에 들어오자 대학교에서 조교수로 청빙되었습니다. 김목사님은 죽도록 고생만하고 있었는데, 부인은 장모님이 준비해 놓은 곶감을 맛있게 먹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기도의 도움 하나 받지 못하고, 혼자 땡감을 깎으며 씹어먹고 있으니 삶속에 기쁨이 없었겠지요? 김항안 목사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머니 생신때 일입니다. 식구들이 다 모여있는데 어머님이 불평하시더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왜 부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지 않느냐? 나는 너희들을 위해 부처님께 기도했는데 너희들은 항상 예수님께 감사기도 드리냐 나도 이제부터는 예수님을 믿겠다” 어머님께서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하시고 난 후에 신학교에서 강의 요청이 왔고 교회에서 집회 초청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1대 신앙으로 고생하는 분이 있습니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믿음을 끝까지 포기하지 마시고 확신가운데 거하면서 기도의 씨를 뿌리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역사합니다. 땡감을 깎으면서 곶감을 만들던, 징검다리를 만들던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역사합니다.
한 청년이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아주 극적으로 만났습니다. 성령의 은사를 체험하고 소년은 벅차오르는 감격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너무 열정적인 신앙으로 문제아로 불렸습니다. 수요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기숙사 3층에서 뛰어 내려 교회로 달려갔습니다. 교장 선생님이 불렀습니다. “교회냐, 학교냐, 둘 중 하나를 택하라” 소년은 미련없이 교회를 택했습니다. 기숙사를 나왔습니다. 부친은 6대 종손이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닥쳐오는 제사, 소년은 절하는 것을 거절했습니다. 아버지는 소년에게 말했습니다. “절을 하겠느냐, 집을 나가겠느냐” 소년은 짐꾸러미를 챙겨 집을 나섰습니다. 가족 중에서 예수님을 처음 믿음 연고로 혹독한 시련을 견디었습니다. 이 젊은이는 목회자의 길에 본인의 목숨을 걸었고, 가족은 그를 포기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 예수님을 향한 그리움에 굶주림과 가난을 참아내면서 신학도의 길을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잠실에서 맨주먹으로 맨땅에 헤딩하면서 장모님과 아내와 함께 그리고 갓 태어난 아들과 함께 개척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분당 새에덴 교회를 설립하였습니다. 재적 성도 4000명, 내년에는 죽전지역으로 연건평 1만여평 정도의 매머드 성전을 건축중입니다. 이 이름이 소강석 목사입니다. 43세의 젊은 나이에 맨몸과 맨손으로 맨땅에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짓고있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을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창대와 번성의 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삭이 그 복을 받습니다. 창세기 26장 3-4절입니다.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창26:3-4) 놀라운 복입니다. 아브라함이 복을 받고 아들도 복을 받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창26장 5절입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 하시니라”(창26:5) 아브라함이 자녀를 위해 꽂감을 미리 깎았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준비하고 아들이 그 축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모습이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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