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첫 사랑을 회복하라
요한계시록 2:5-6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포인트 워드: 처음 사랑
활용: 우리가 예수님을 처음 만날 때, 세상을 가진 것처럼 좋아했다. 그러나 인생을 살면서 우리의 신앙은 어떠해졌는가? 한 번 되돌아 보자.
성경을 가슴에 안고 따라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영혼의 양식이며, 영적전쟁에 무기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성경에 세례요한이 나옵니다. 예수님보다 6개월 전에 태어나서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였습니다. 그가 요단강에서 세례를 줄 때였다. 예수님을 보자, 이렇게 말합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1:29) 예수님을 보자, 성령의 감동으로 메시야인 것을 알았습니다. 요한복음 1장 30절에는,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 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 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요1:30)
그런데 세례요한이 감옥에 갇혔을 때,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서 메시야인 것을 확인하게 합니다. “저희가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세례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말하기를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더이다 하니”(눅7:20) 예수님은 요한의 제자들에게 말합니다.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고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병이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눅7:22) 그러면서 이렇게 당부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눅7:23)
분명 세례요한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어린양인줄 알았지만, 어느 새 믿음이 약화되었나 봅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세례요한의 모습이 곧 우리의 모습아닌가요? 성령충만할 때는 믿음이 충만했습니다. 그러나 감옥에 갇혀 있고,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때는 반신반의하게 되었습니다. 성령충만이 사라지면, 믿음도 식어지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도 식어지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에베소 교회를 보세요.
사도바울이 소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할 때, 가장 심혈을 기울인 교회였습니다. 사도행전 19장, 20장을 보면, 바울은 눈물과 겸손으로 3년 동안 섬겼다고 합니다. 특히 두란노서원에서는 밤낮 쉬지 않고 각 사람을 가르쳤습니다. 에베소 교회에서는 성령의 역사도 강했습니다.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들이 책을 모아서 불살랐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에베소 교회에 큰 문제점이 발생했습니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처음 사랑은 사도바울을 통해 복음을 전해 들었을 때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랑입니다. 자복하고 회개했던 사랑, 예수님만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원자임을 안 것입니다. 그 분을 만난 것입니다. 병도 낫고, 귀신도 떠나고, 마술 책들도 다 불태우고, 오직 예수를 위해 살려고 결심하던 때였습니다. 우상숭배를 그치고 새 출발하던 시기였습니다.
십자가만 생각해도 눈물이 나던 시기입니다. 보혈 찬송만 불러도 눈물이 나고, 가슴이 뜨거워지던 시기였습니다. “예수님” 이름만 불러도 기분이 좋던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는 말씀으로 은혜받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던 시기였습니다. 교회 일이라면 열 일을 제처 놓고 앞장서던 시기였습니다. 감동적인 장면은 사도행전 20:36-38절입니다. 사도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 밀레도 섬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불러다가 말씀을 증거하고, 해변가에서 하나님께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장로님들은 크게 눈물을 흘리고 석별의 정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40년이 지난 후, 사도 요한이 하나님께 받은 에베소 교회의 모습은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였습니다. 처음 믿을 때의 그 열심과 순수한 마음이 퇴색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본문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오늘날 우리가 들어야 할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우리가 처음 사랑을 회복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어디서 떨어졌는지 생각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계2:5)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람은 생각을 통해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생각없이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허무합니다. 영적으로 퇴보했다면, 언제부터 퇴보했는지 살펴보고 다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 합니다. 세례요한이 불같은 말씀을 선포할 때는, 예수님을 척하면 알아 보았습니다. 그러나 감옥에 갇혀서는 반신반의합니다. 그만큼 성령충만을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언제 가장 뜨거웠습니까?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압니다. 일제치하에서 가장 뜨거웠습니다. 해방 후에는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든 시기에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금식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했습니다. 철야기도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특히 1970년대 80년대에는 기도의 함성이 뜨거웠습니다. 여의도 5.16광장, 지금의 여의도 공원 부지에서 수 백 만 명이 모여 기도 합주회를 드렸습니다. 90년대 초에도 산기도가 활발했었습니다. 그러나 경제가 발전할수록 기도의 소리가 약화되었습니다. 학자들은 GNP의 증가와 종교활동을 분석합니다. GNP가 증가할수록 2만불, 3만불의 시대에는 종교 생활에 소홀해 진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로마 황제가 신하들을 불러 놓고 그리스도인을 없앨 방법을 논의 했습니다. 황제가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을 죽이는 법을 만들자.” 한 신하가 황제 의견에 반대합니다. “믿는 자들을 죽여 순교자로 만들면, 그리스도인들이 더욱 순교자들을 추앙하기 때문에 역효과가 난다.” 대신 고문할 것을 요구합니다. 다른 신하는 말합니다. “예수쟁이들은 고문을 받으면 십자가 고난에 동참한다고 좋아합니다. 고문받으면 하늘의 상급이 많다고 좋아합니다. 오히려 고문의 흔적을 자랑합니다.” 그때 구석에 있던 한 신하가 조용하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편안하게 즐기고 놀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놓으면 간단합니다. 그들은 그런 환경 속에서 죄를 지을 것이고 그러면 기독교는 있어도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을 없애는 가장 무서운 요인은 외부의 박해가 아니라 내부의 타락과 부패입니다.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대상이 생기면 사랑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 대상이 물질이 될 수도 있고, 세상 명예, 권세, 세상 쾌락일 수도 있습니다.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이 하나님과의 사랑을 멀어지게 하는 요소가 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에 대한 처음 사랑이 식어지고 점점 둔해지기 시작합니다. 나태하게 되고 결국 하나님과 멀어지게 됩니다. 기도에 힘을 쏟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감각을 상실하고 남은 것이라고는 자기 욕심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살기 편해지면 기도 생활, 교회 생활이 소원해 집니다. 그러나 힘들고 어려울 때, 간절해 집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똥줄이 타야 간절해집니다. 돈이 없거나, 각종시험을 앞에 두고, 열심히 기도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간절함이 없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에서는 말세에 대한 말씀입니다.
딤후 3: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말세에는 고통하는 때가 이유가 있습니다.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였다고 합니다.
왜 우리 시대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렀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기 보다, 자기 사랑에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돈을 사랑하고 자랑하고 교만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사도요한은 권면합니다. 본문 5절입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여기의 “생각하라”는 원어로 ‘므네모뉴에’ 이며 현재 명령형입니다. ‘마음에 간직하다, 기억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일시적으로 생각하고 그칠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멀어져 있는 자신의 상태를 겸허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무엇이 문제이고,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왜 사랑이 식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현재의 각박한 상황과 처음의 뜨거웠던 사랑의 모습을 비교해야 합니다. 무슨 까닭에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현재의 형편과 영적생활의 현주소를 찾아야 합니다.
어디서 처음 믿음과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습니까?
언제부터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습관적이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찬송을 불러도 감사와 감격이 넘쳐야 합니다. 말씀을 들어도 아멘, 아멘 하면서 화답해야 합니다. 물질을 드려도 감격해서 눈시울이 뜨거웠던 감격을 회복해야 합니다.
오늘 나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걸 잊으면 안 됩니다. 오늘 내가 보낸 하루는 어제 죽은 자들이 그토록 살고 싶었던 내일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오늘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부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내 맘대로 온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불러 주셨기에 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잘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내 머리는 기름이 있고, 입에는 입냄새가 나고, 몸에는 땀 냄새가 난다. 앞에는 오줌 냄새, 뒤에는 똥냄새, 발에는 꼬랑내가 난다. 나에게서 선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나같은 죄인이 용서함 받음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없이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나의 실존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고는 처음 사랑을 찾기 어렵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진심으로 회개할 것을 원하십니다.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2:5)
자신의 모습을 본인이 누구보다 잘 압니다.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라.” 주님은 우리 마음의 변화를 잘 압니다. 우리만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은혜가 떨어지고, 감사가 떨어지고, 원망과 불평만 늘어가고, 교만함 마음만 늘어가는데, 본인만 모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른손으로 교회를 붙잡고 계셨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그 은혜에서 떨어진 교회인데, 본인들이 모르다니 참 불쌍합니다. 어느새 라오디게아 교회 모습으로, “눈 멀고, 벌거벗고,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변한 것입니다.”
“회개하라” 이 말은 누구나 싫어합니다. 마치 문제 있는 사람이나 신앙인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회개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음인줄 아시나요? 지옥에 있는 사람들이 이런 말을 많이 한답니다. “몰랐어요. 몰랐어요. 용서해 주세요.” 회개하고 싶어도 회개할 수 없는 곳이 지옥입니다. 회개하지 않았기에 지옥에 떨어집니다.
에베소 교회는 큰 교회였습니다. 에베소가 큰 도시였습니다. 소아시아의 장자교회였습니다. 본이 되었던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촛대를 옮기면, 아무 쓸모없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겉만 화려하고, 번지르르하지, 영적인 파워나 능력은 전혀 없는 박물관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앙꼬없는 찐빵, 김빠진 사이다” 같은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40년 전, 복음을 접했을 때의 감격, 회개, 그 열심을 되찾아야 합니다.
바울 이후 40년 후에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가 될 줄 누가 알았습니까?
영국 교회가 그랬습니다. 많은 선교사를 파송했었습니다. 선교사의 아버지 윌리엄 테리, 미안마 선교사 아도니람 저드슨, 한국 최초의 순교자 토마스 목사님, 설교의 황태자 스펄전 목사님,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 강해설교의 아버지 로이드 존스 등 훌륭한 목사님들과 선교사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그런데 지금 영국 교회는 어떤가? 술집으로 팔리고 있다. 나이트 클럽이 되거나, 암벽 등반 장소가 되거나, 무슬림의 모스크로 변하고 있다.
영국 사회는 차별금지법이 통과되었다. 전도를 마음껏 할 수가 없다. 동성애가 성행한다. 예전의 거룩한 나라가 아니다. 지금 영국 교회는 피폐해지고 있다.
한국 교회는 어떤가?
2020. 10. 15 국민일보 기사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이 신앙생활을 하던, 웅천교회가 술집, 음식점, 카페로 변하고 있다. 1900년 옛 진해시에 설립된 웅천교회는 웅천읍성 성 돌 위에 세워져 역사적으로나 순교적으로 보나 보존되어야할 기독교 유적이다. 그러나 웅천교회가 1.6km 떨어진 신도시로 이전하면서 민간에 매각되었다. 새 인수자는 예배당 건물 그대로 유지한 채 리모델링을 하고, 음식점, 술집, 카페, 개척교회에도 임대해 주었다.
회개는 마음의 변화이지만, 행위의 변화입니다. 생각과 회개, 행위의 변화가 없다면, 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예전의 에베소교회는 하나님의 자랑거리였지만, 지금은 회개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목사와 성도들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촛대를 옮기시리라” 이 말은 성령님이 떠나신다는 말과도 동일합니다. 물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은 함께 계시지만, 잠잠히 계시겠다는 것입니다.
동인천 성령 센터의 이병호 목사님이 그런 분입니다. 이천석 목사님 안수를 받고 영계가 열렸습니다. 30대에 큰 교회 부흥집회도 많이 했습니다. 헌금 봉투만 보면, 액수를 알 정도가 되었습니다. 영적인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헌금을 많이 하면, 기도를 세게 해주고, 적게 하면, 대충해주는 일을 하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거두어 가셨습니다. 영계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환상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성령의 감동도 없었습니다. 본인이 한강 다리위에서 뛰어내리려고 까지 했다고 합니다. 동대문에서 옷장사를 합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가 뼈를 깎는 회개, 참회의 회개를 통해, 은혜가 회복되니, 일본에 가서 노숙자 사역을 한 것입니다.
회개에는 단계가 있습니다. 1) 죄를 인정해야 합니다. 2) 죄를 슬퍼해야 합니다. 죄에 대해 철저하게 탄식하고 가슴치며 울어야 합니다. 3) 죄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죄를 인정하고, 슬퍼해도 변하지 않으면 참된 회개가 아닙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마귀는 분리자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이간질합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를 분리시킵니다. 결국에는 인간의 몸과 영혼을 분리시킵니다. 사람을 지옥으로 끌고 가는 것이 제일 목적입니다. 속이고 죽이고 빼앗는 것이 목적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하나님과 멀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모든 관계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다리를 놓으시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았습니다. 사람과 그 사람의 속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았습니다. 회복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영혼육이 잘 되는 복을 주셨습니다.
처음 행위를 가지라는 말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라는 말입니다. 세상 유혹에 빠지지 말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라는 것입니다. 본문 7절에서 말씀합니다.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성령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 아버지 하면, 하나님께서 그래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무엇을 줄까?” 이런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불렀는데, 친밀하지 않으면, 아무 응답이 없다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언제 뜨겁게 기도하고 뜨겁게 찬양드렸습니까?
언제 말씀을 읽으면서 울었고, 교회 오는 것이 행복했습니까?
저는 외국어 대학에서 말씀 읽을 때, 그때가 너무 좋았습니다. 학교에서 모든 공부를 하기 전에 성경을 읽었습니다. 때로는 수만볼트의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지만,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나같이 부족한 자가 목사 안수 받을 때, 아멘 아멘 하면서 안수받던 것을 기억합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상을 주고 싶다는 말이 아닐까요? 처음 사랑과 열정으로 하나님을 섬긴다면,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속한 모든 것을 다 주고자 하신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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