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천국 방언
마태복음 12장 35-37
35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37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포인트 워드: 말
활용: 하나님의 사람은 말이 보배이다. 그러나 말을 잘못하면 축복을 쏟아버릴 수 있다. 말에 대한 중요성과 더불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그릇이 되게 한다.
오늘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말씀은 마태복음 5:21-26절입니다. “사랑의 천국 방언”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잊지 아니하시고 이렇게 예배 드리려고 올라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마음이 예쁘고 발걸음이 아름다워서 환영하시고 여러분의 가정에 큰 은총을 부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일생동안 4개의 천국을 만들어 가여 한다고 했습니다. 혹시 기억하는 분이 계세요? 심령천국, 가정 천국, 교회 천국, 사회천국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라도 내 마음이 천국이 되어야 합니다. 내 마음이 지옥같다면 불행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신 맘은 천국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가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벧전5: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생각과 마음을 지키시리라”(빌4:6-7)
오늘을 교회를 천국으로 바꾸는 비결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어떻게 하면 성신교회가 천국같은 교회로 바꿀 수 있을까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사랑의 천국방언은 무엇인가요?
첫째,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본문 36절에서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12:36-37)
우리는 누구나 말을 합니다. 그런데 말로 인해 천국을 만들어 갈 수 있고, 지옥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했던 말에 의해 심판을 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인들이 경각심을 가져야 할 말이 예수님 말씀입니다. 물론 사도바울이 쓴 바울 서신도 중요합니다. 베드로나 요한서신도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직접하신 말씀이 중요합니다.
마태복음 5장 22절에서 말씀합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인간 쓰레기 같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5:22) 예수님은 유대인 형제들에게 “인간 쓰레기, 바보 같은 놈, 천치, 미련한 놈” 이렇게 말하면 지옥불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에 오늘날 우리는 이 말씀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설마 욕을 했다고 지옥에 가겠어? 설마 설마 했다가는 큰 일 납니다. 예수님은 지옥불에 들어간다는데 목사님들은 안들어 간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욕을 하면서 살았잖아요? 그러면 회개하면 됩니다. “예수님 잘못했어요. 제가 모르고 죄를 지었어요. 다시는 형제를 향해 욕이나 저주를 하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감정이 불편할 수 있습니다. 분노를 폭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명심하세요. 절대 “바보, 천치, 멍청한 놈, 미련한 놈, 인간 쓰레기” 이런 말을 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성도들을 향해 이런 말을 한다면,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서운하실까요?
성도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그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바보같이 생각하는 그 한 사람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은 부족한 형제 자매를 향해 비난하고 조롱한다면,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서운할까요?
교회를 천국으로 만드는 첫 번째 말은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입니다.
왜 죄송합니까? 서로 서로 죄송한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도 맛있는 것을 사 준 적이 없어서 죄송합니다. 함께 예배 드리면서도 축복기도를 해 준 적어 없어서 죄송합니다. 함께 예배 드리면서도 안부 전화 한 번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큰 교회들은 같은 교회에 다니면서도 이름을 몰라서 죄송합니다.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을 함부로 합니다. “어, 김집사, 이리와봐” 나이가 어린 사람을 하대하며 무시합니다. 안 됩니다. 오히려 “김집사님, 이리 오세요.” 말 끝을 올리기 보다 내리는 것이 듣기 좋습니다. 말을 함부로 했다면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우리 한 번 연습을 해 볼까요? “목사님! 죄송합니다.” “집사님, 죄송합니다.” “성도님! 죄송합니다.” 우리가 늘 이웃에게 미안한다는 마음으로 사랑의 빚을 지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하는 훈련은 “미안합니다. 제가 틀렸고 당신이 맞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내가 항상 옳습니까? 내 옮음을 주장하지 않는 비결은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입니다.
몇 주 전에 유아실 에어컨이 4일 동안이나 켜 있었습니다. 아동부 아이들이 켜 놓고 갔는데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이 사건 앞에서 누구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책망을 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제가 잘 살피지 못해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둘째, “제 탓입니다.”
손으로 가슴을 치면서 해야 합니다. “제 탓입니다.” “제 탓입니다.” “다 제 탓입니다.” 어느 목사님은 당회를 하다가 의견이 안 맞으면 당회를 멈춥니다. 그리고 말한 답니다. “장로님들! 다 제 탓입니다. 제 잘못입니다. 제가 부족해서 그래요.” 그러면 장로님들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담과 하와 이후로 사람들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책임을 전가하려고 합니다. 아담은 하와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와는 뱀 때문이라고 합니다. 죄를 지으면 책임을 전가하려고 하지만, 은혜를 받으면 책임을 지려고 합니다. “제 탓입니다.”
우리 사회가 갈등 사회입니다. 특히 정치인들이 갈등을 합니다. 본인들도 문제인 줄 압니다. 국민들도 다 싫어합니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자기 잘못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국민성이 이렇습니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그런데 잘못이 없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끝까지 책임을 물으려고 합니다. 천국의 언어가 무엇인가요? "제 잘못입니다. 제 탓입니다.“
어느 교회 젊은 부부 이야기입니다. 이 교회는 사랑의 천국 언어를 훈련하는 교회입니다. 성도들이 가슴을 치며 “제 탓입니다.”를 외칩니다. 이 부부에게는 돌이 갓 지난, 어린 아기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엄마 아빠가 대판 싸우는 것입니다. 고함을 치고, 가구를 던지고 부수고 막 싸웁니다. 이 때 아기가 시끄러운 소리에 밖으로 나왔습니다. 부모들이 싸우는 것은 전쟁터에서 병사가 죽는 것을 보는 고통과 같다고 합니다. 겁에 질린 아기는 엄마 아빠 어느 누구에게도 가지 못하고 마루 중간에 앉았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배운 대로 자기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말하더랍니다. “나 땜, 나 땜, 엄마 나 땜.” 그리고 아빠를 바라보면서 “아빠 나 땜, 나 땜” 하면서 울더랍니다. 엄마 아빠가 싸우다가 그만 어린 아기를 서로 붙들고 엉엉 울었다고 합니다.
부부로 살다보면 좋을 때도 있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 오늘 힘든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내 잘못이다.” 인정해야 합니다. 많은 부부들이 서로의 잘못을 탓합니다. “너 때문이야. 내 인생이 힘든 것은 너를 만나서 그래.” 어느 중년 부인은 남편에게 말했다잖아요. “야 이 새끼야, 내 청춘 돌려줘.” 나의 불행은 남의 탓이 아닙니다. 내 탓입니다. 모든 일을 “내 탓”으로 돌릴 때, 우리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봅니다.
가슴을 치면서 훈련해 볼까요? “내 탓입니다. 내 잘못입니다.”
세 번째, 사랑의 천국 방언은 “잘 했습니다.”입니다.
어렸을 때가 생각이 납니다. 숙제를 해가면, 동그라미를 크게 그려 줍니다. 동그라미가 선이 몇 개인가가 중요합니다. 그 다음에는 “참 잘했어요, 잘 했어요” 글씨가 쓰여진 도장을 찍어 줍니다. 누구나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칭찬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시련하느니라 미련한 자를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찌라도 그의 미련은 벗어지지 아니하느니라”(잠27:21-22)
칭찬은 어리석은 자로 하여금 지혜롭게 만드는 비결입니다.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권사님 수고하셨습니다. 집사님 수고하셨네요. 목사님 수고하셨습니다.” 이런 칭찬이 교회를 아름답게 만들어 갑니다. 칭찬하는 것도 습관입니다. 윽박지른다고 해서 사람이 변하면 백번 천번 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윽박지르고 책망한다고 해서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잘못한 남편이나 아내도 교우들도 윽박지른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분위기만 살벌해 지지요. 오히려 칭찬과 격려가 문제를 해결하게 됩니다.
땅 속에는 지하수가 흐르고 있습니다. 엄청난 지하수가 있어도 끌어 올려야 사람이 쓸 수 있습니다. 끌어 올리지 못하면 땅속에 물이 많아도 사람들은 부족하여 고통당하고 식물들은 고사되어 갑니다. 누구나 잠재력이 있습니다. 잘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걸 끄집어 내는 것이 칭찬입니다. “참 잘했어요. 수고했어요. 역시 대단해요.” 이런 말들이 아름다운 말들입니다. “그것 밖에 못해. 싹수가 노랗네. 형편없는 녀석이네.” 이런 말은 가정이나 교회를 지옥으로 만드는 말입니다.
우리 따라 해 봅시다. “잘 했습니다. 최고예요. 멋있습니다.”
예화) 안데르센의 “썩은 사과”
어떤 시골에 늙은 농부 내외가 살았다. 재산이라고는 말 한 필뿐이었다. 할머니는 남편에게 장에 가서 이 말을 팔거나 그렇지 않으면 더 좋은 것과 바꾸어 오라고 부탁했다. 이 할아버지는 장에 가서 썩은 사과와 바꿨다. 이것을 본 어느 부자는 틀림없이 집에 돌아가면 그 부인에게 야단을 맞을 것이라 생각해서 노인과 내기를 했다. 노인은 집에 들어서자 부인에게 바꿔온 이야기를 했다.
“처음에는 말과 암소를 바꿨지.” “우유를 먹게 되었으니 고맙지요.”하고 부인은 좋아했다.
“그런데 다시 암소와 양과 바꿨어.” “그건 더 좋지요. 양이 먹을 풀은 들에 가득하고 또 양젖을 먹고 털옷까지 입게 되었으니, 할아버지는 참 고마워!”
“그런데 그걸 암탉과 바꿨지” “잘 바꿨어요. 암탉은 알을 낳고 알이 햇병아리가 되면 우리는 양계장 주인이 되겠군요.”
“이번엔 암탉과 썩은 사과와 바꿨어.” “그럼 더 칭찬을 해야겠네요. 글쎄, 옆집에 파 한 뿌리를 꾸러 갔더니 썩은 사과 한 개도 없대요. 이젠 그 집에 내가 썩은 사과를 꾸어 줄 수 있게 되었으니 고마워요.”하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영감님이 말할 때마다 오히려 감탄하며 기뻐한 것이다. 창틈으로 엿듣던 두 영국인은 결국 금화 한 자루를 잃게 되었다. 영감님은 말 한 필로 썩은 사과 한 상자와 금화 한 자루를 얻는,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린 엄청난 장사를 한 셈이다.
네 번째로 천국 방언은 “감사합니다.”입니다.
하나님도 사람들이 “감사합니다.”를 많이 하길 바랍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51:23)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구원을 보여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수한 것은 감사를 잃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홍해를 가르고 건넜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놀라운 일을 이루렸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잊어 버리고 원망과 불평을 할 때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하는 자에게 불뱀을 보내서 죽게 만들었습니다.
교회가 천국으로 바뀌는 것은 너무나 쉽습니다. 말만 바꾸면 됩니다. “집사님, 기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권사님 감사해요.” “애들아, 고맙다.” 이런 말이 분위기를 아름답게 만들어 갑니다. 원망 불평을 많이 하는 것은 분위기를 살벌하게 만듭니다. 남의 탓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사합니다.”는 2초 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2초의 말 한 마디가 교회를 행복하게 가정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유대인의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행복에서 불행으로는 한 순간이다. 그러나 불행에서 행복으로는 영원한 시간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부부 사이에 말입니다. 남편이 아무리 잘 해 줘도 말 한 마디 서운하게 하면 그것이 평생 간답니다. 교인들끼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소에 잘 해줘도 말 한 마디 섭섭하게 하면 평생을 갑니다. 섭섭 마귀가 성도 사이를 이간 시킵니다. 우리는 이 영적 비밀을 알아야 합니다.
가정의 평화나 교회의 평화도 한 순간에 깨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쓰임받은 이유가 있습니다. 시편17편 3절입니다.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나를 권고하시며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으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치 아니하리이다. 사람의 행사로 논하면 나는 주의 입술의 말씀을 좇아 스스로 삼가서 강포한 자의 길에 행치 아니하였사오며”(시17:3-4)
그런데 원망 불평하던 사람들의 최후는 어떤가요?
“저희 입술의 말은 곧 그 입의 죄라 저희의 저주와 거짓말을 인하여 저희로 그 교만한 중에서 사로잡히게 하소서”(시59:12)
“저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 아니하더니 복이 저를 멀리 떠났으며 또 저주하기를 옷 입듯 하더니 저구가 물 같이 그 내부에 들어가며 기름같이 그 뼈에 들어갔나이다 저주가 그 입은 옷 같고 항상 띠는 띠와 같게 하소서”(시109:17-19)
“감사합니다.” 이 말 한마디에 사람의 마음이 움직입니다.
마지막으로 천국 방언은 “사랑합니다.”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단어입니다. 용서와 축복은 하나님의 단어입니다. 마귀에게 사랑이란 없습니다. “사랑하며 축복합니다.” 이 말은 사람의 감정을 달래는 말입니다.
이런 동영상이 있죠? 술에 취한 사람이 분노를 폭발합니다. 격한 싸움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공익 요원이 술취한 사람을 뒤에서 끌어 안습니다. 감정적으로 행동하던 사람이 수그러 집니다. 세상 사람들이 쉽게 목숨을 끊습니다. 인생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누군가 그를 위해 기도하고 사랑한다고 말했다면,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요?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이름 높여 드립니다.
주의 나라 찬양 속에 임하시니 능력의 주께 찬송하네
전능하신 하나님 찬양 언제나 동일하신 주
전능하신 하나님 찬양 영원히 다스리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찬양드리니 행복합니다.
하나님 내 아버지가 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언제나 우릴 돌보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사랑해요. 이 말처럼 아름다운 말이 어디 있나요?
우리 함께 고백해 볼까요? “하나님, 사랑해요”
오늘은 교회를 천국으로 만드는 말에 대해 배웠습니다. 이제 우리가 연습을 해야 합니다. “죄송합니다. 내 탓입니다. 잘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짧은 단어들이 우리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 줍니다. 가정을 아름답게 하고, 교회를 천국으로 만들어갑니다.
천국 방언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사용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영혼들을 살리는 거룩한 역사가 일어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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