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능력으로 승리하라
히브리서 4:12-13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시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포인트 워드: 말씀
활용: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다. 말씀은 성령의 검이다. 말씀은 악한 영을 물리치고 죄악을 물리칠 수 있다. 우리는 말씀의 능력으로 무장해야 한다.
성경을 가슴에 안고 따라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영혼의 양식이며, 영적전쟁에 무기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우리가 일생동안 영혼육의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가 잘 되어야 합니다.
영의 축복은 성령충만, 혼의 축복은 행복과 감사, 기쁨과 즐거움, 자유 누림입니다. 육의 축복은 건강, 가족의 복, 자녀의 복, 물질의 복, 사업의 복, 만남의 복, 대인관계의 축복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 복을 받고 누려야 합니다.
그런데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 되기를 원하지만, 악한 원수 마귀는 우리가 멸망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사탄 마귀 귀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지 않으면, 우리는 늘 고통 속에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악한 마귀와의 싸움에서 어떻게 승리할까요? 성령의 능력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기도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기도할 때, 악한 영들은 떠나게 됩니다. 찬양의 능력으로 이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군대 총사령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츠바오트(체바오트)의 하나님, 하나님을 찬양할 때, 천사들이 우리를 돕습니다. 그리고 강력한 영적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무기들을 다듬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강력한 무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검이라고도 표현합니다.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6:17)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습니까? 내 영혼의 양식이며 영적 전쟁에서 강력한 무기입니다. 본문을 통해 말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는 생물체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만 하셔도 천지 만물이 그대로 만들어 집니다. “빛이 있으라” 선포하면, 그대로 됩니다. “뭍이 드러나라.” 하시면 그대로 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물이 변하여 포도주됐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이 바람과 바다를 꾸짖는 경우를 보세요. 파도가 잔잔해 지고, 바람이 멈추게 됩니다.
말씀은 생명이 있는 씨앗과 같습니다.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혹 100배 혹 60배 혹 30배가 되느니라” (마13:23)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30배와 60배와 100배가 되었느니라” (막4:8)
하나님의 말씀은 엄청난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고 마음에 새기면, 그 말씀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낙심된 경우에 말씀을 묵상해 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일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어느 목사님은 삶을 마감하고 싶을 때, 말씀이 떠오릅니다.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시42:5)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아멘으로 받는 것이 말씀을 먹는 것입니다. “아멘. 아멘” 이것이 중요합니다. 선포되는 말씀을 아멘으로 받지 않으면, 그 말씀은 내게서 역사할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가 밥을 하면, 밥 숟가락으로 내가 떠 먹어야 합니다. 아멘이 밥을 먹는 것입니다. 아멘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1:20)
우리 한번 연습을 하겠습니다. “아멘 아멘”
하나님의 말씀은 로고스의 말씀과 레마의 말씀이 있습니다. 로고스는 창세기 1장부터 요한계시록 22장 21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논리적, 문자적인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주어진 말씀이 되기 위해서는 레마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내게 주어진 말씀이 필요합니다. 삶의 문제 앞에서 하나님이 주신 말씀, 기도하다 깨달은 말씀, 내 안에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쉽게 표현하면, 우물이 있는데 우물의 물을 내가 먹어야 합니다. 우물의 물, 이것을 생수라고 하면, 로고스라고 합니다. 우물의 물을 끌어 올린 한 통의 물, 이것을 레마라고 합니다. 우물에 물이 넘쳐도 내 입에 시원한 물이 들어가야 갈등을 해소합니다. 피아노 건반의 개수가 88개입니다. 이것이 로고스입니다. 그러나 피아오 음정은 레마라고 합니다. 우리는 모두 레마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나를 붙잡아 주는 말씀, 내게 힘을 주는 말씀, 내가 평생 붙잡고 살아야 할 말씀이 필요합니다. 그 말씀이 살아서 내 인생을 이끌어 갑니다.
하나님 말씀은 다 좋아요? 이것은 틀린 말입니다. 내 남편, 내 아내가 있듯이 내가 은혜 받은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23:10)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시84:5)
옆에 사람에게 물어 봅시다. “집사님은 레마의 말씀이 있습니까?”
둘째,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 수술을 하는 칼입니다.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수술을 하는 칼입니다. 칼도 종류가 있잖아요? 회를 뜨는 칼, 고기를 자르는 칼, 연필을 깎는 칼, 수술을 하는 칼,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검입니다. 날카롭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영혼도 수술하고, 육신도 수술하는 칼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 악한 영이 떠나고 병이 고침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불방망이 같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렘23:2)
손양원 목사님의 집회에서는 말씀을 듣다가 시각장애인이 눈을 떴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설교할 때에 성령님이 강하게 임하셨습니다. 마가의 다락방 같은 성령의 역사가 고넬료의 가정에 임했습니다. 말씀 그 자체에 엄청난 능력이 있어서 영혼이 병든 자를 고쳐 주고 만져 주고 싸매어 줍니다. 육신이 병든 자로 고쳐 주고 싸매어 주고, 온전케 합니다.
여러분에게 아멘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아멘, 아멘” 하는 순간, 그 말씀이 내 심령속에 새겨집니다. 그 말씀이 나를 치료하고 그 말씀이 나를 변화시킵니다. 아멘을 자주하는 것이 내 영혼에 엄청난 유익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혼과 영을 쪼갭니다. 만약 우리가 나쁜 생각을 먹었다고 가정해 보세요.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잘못된 생각을 깨닫게 합니다. 어떤 신앙인이 상처가 많았습니다. 아버지에게 죽도록 맞았고,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가득찼습니다. 나이 50이 되어 70이 넘은 아버지를 대하는데, 동네 이웃 아저씨 대하듯 합니다. 반말도 하고, 차마 입으로 할 수 없는 말까지 합니다. 그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를 죽이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잠을 자고 있는 아버지를 향해 칼을 빼서 죽이고 싶었답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잘못된 생각을 고쳐 주셨다는 것입니다. “살인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약속있는 첫계명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혼의 생각을 쪼개어줍니다. 우리 생각이 모두 하나님의 생각이 아닙니다. 모두 사탄의 것도 아닙니다. 모두 내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사탄의 공격이 제일 심한 곳이 생각입니다. 생각이 영적 전쟁의 최선전입니다. 부정적인 생각, 부정적인 감정을 하나님 앞에 내어 놓아야 합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엡4:26-27)
새가 우리 머리 위를 날아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내 머리에 둥지를 틀게 하는 것은 전적으로 내 책임입니다. 우리도 부정적인 생각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악한 영이 집을 짓기 시작합니다.
예화) 어느 사모님
어느 사모님이 있었습니다. 은사도 있었고, 능력도 있었습니다. 병도 고치기도 하고, 상담도 은혜스럽게 잘 했습니다. 예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탄이 사모님 귓가에서 속삭입니다. “너는 아직 예뻐. 세상에 가면 인기가 좋을 거야.” 처음에는 사탄을 물리칩니다. “사탄아, 예수 이름으로 물러가라.” 그런데 또 사탄이 찾아 옵니다. 한 번, 두 번, 생각 속에 계속 유혹해 옵니다. 그랬더니, 사탄의 생각을 받아 들입니다. “그래. 나는 아직 젊어. 나는 예뻐. 내가 지금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 그래서 남편과 이혼을 하고, 세상의 쾌락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믿음을 다 잃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합니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4:7)
사람들이 남의 말을 하기 좋아합니다. 그것도 좋은 이야기보다 흉을 보는 이야기 말입니다. 이것은 탈무드에서는 3명을 죽인다고 합니다. 말하는 본인이 죽고, 말을 듣는 사람이 죽고, 대화의 대상을 죽이는 것입니다. 3명을 죽이는 것이 남의 흉을 보고, 뒷담화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걸 멈추어야 합니다. 남에 대해 좋은 말이 아니면 절대 입을 열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말, 용기를 주는 말, 격려하는 말, 응원해 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갭니다. 말씀이 부딪쳐 오면, 아픕니다. 그런데 수술을 할 때, 아프지 않은 곳이 어디 있나요? 아퍼도 참아야 합니다. 그래야 암덩어리를 떼어 내고 고름을 제거할 수 있잖아요? 하나님 말씀이 내 귀에 들려서 내 안에서 파장이 일어나면, 좋은 것입니다. 내 안의 잘못된 것을 고치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바른 소리를 하면, 듣기 싫어합니다. 이걸 주목해야 합니다. 바른 말은 누구나 듣기 싫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귀입니다. 악한 영입니다. 이걸 들을 수 있을 때,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저는 아이들이나 아내, 성도님들이 하는 말을 듣습니다. 특히 책망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좋습니다. 나를 고쳐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아들이 말합니다. “아빠는 심술부리는 말투가 있어요.” “그래 알았다. 아빠가 고칠께.” 어느 날, 아들에게 짜증을 낼 때가 있었습니다. 교회에 와서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감동을 줍니다. “왜 집에 가서 아들에게 짜증을 내니?” 집에 와서 아들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아들아, 너도 당황했지? 아빠가 집에 오자 마자, 화를 내서? 그런데 아빠의 혈통을 타고 분노의 악한 귀신이 있나봐? 미안하다.” 그러면 아들도 용서해 줍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인 엑스레이입니다.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마음과 생각과 뜻을 살피는 엑스레이와 같다는 말씀입니다. 말씀에 비추어 보아야 내 생각이 건강한지 병들었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엑스레이를 찍어야 우리 몸에 문제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듯이,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보아야 내 생각이 어떤 지 알게 됩니다. 방지일 목사님은 “성경은 죄를 찾는 현미경”이라고 말했습니다. 성경 말씀을 읽어야 내 생각이 어떤 지 알 수 있습니다.
내 생각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닙니다. 남의 생각이 모두 틀린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입니다. 언제나 “내가 옳다.”는 생각이 가득차 있습니다. 내가 틀리고 상대방이 옳은데 말입니다. 이것을 바꾸어 내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회개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십계명을 생각하면서 내 삶을 되돌아 보아야 합니다. 팔복의 말씀을 떠올리면서 나를 돌아 보아야 합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고 있는가 나를 돌아 보아야 합니다. 베드로후서1장에서는 신의 성품을 말씀합니다. 과연 나에게 신의 성품이 있는가? 없다면, 문제입니다. 내 모습 가운데 예수님의 모습이 없다면 예수님을 잘못 믿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과연 그 사람이 천국갈 수 있을까요? 윤석전 목사님은 과감하게 외칩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예수 믿다가 지옥가는 사람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성경에 게하시가 나옵니다. 엘리사 시대의 사환입니다. 아람의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에 걸려 엘리사에게 왔습니다. 엘리사는 요단강에 7번 씻으라고 말합니다. 결국 문둥병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게하시가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스스로 이르되 내 주인이 이 아람 사람 나아만에게 면하여 주고 그 가지고 온 것을 그 손에서 받지 아니하였도다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저를 쫓아가서 무엇이든지 그에게서 취하리라 하고”(왕하5:20) 게하시는 수석 비서와 같은 존재인데,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탐욕이 그와 자손들에게 문둥병을 가져 왔습니다.
구약에서 아간은 어떤가요? 여리고 성을 점령했을 때,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의 금 한덩이”를 취하여 자기 장막에 숨겨 놓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명령은 단호했습니다. “너희는 바칠 물건을 스스로 삼가라 너희가 그것을 바친 후에 그 바친 어느 것이든지 취하면 이스라엘 진으로 바침이 되어 화를 당케 할까 두려우니라 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니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찌니라”(수6:18-19) 여리고는 가나안 지방의 첫 성입니다. 여리고의 노획물은 하나님께 드릴 첫 예물입니다. 그런데 아간이 하나님의 것을 훔쳤을 때, 아이성에서 패배하게 됩니다. 36명이 죽게 되었습니다. 탐욕을 누구나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내 생각이 어떤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예화) 배종부 목사님이 이야기
교회에서 몽골에 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 5-6년 동안 수천만원의 선교비를 지원했습니다. 그런데 오해가 생겨서 목사님과 선교사님이 서로 불편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선교사님이 한국에 들어 왔다가 출국하기 하루 전에 카톡으로 문자를 보냅니다. “내일 출국 합니다.” 국내에 들어오면 파송교회를 찾아 가야 하는데, 그냥 돌아가는 것입니다. 대부분 이런 경우는 감정적으로 많이 상할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목사님에게 말씀합니다. “그 선교사에게 500만원을 보내라.” 목사님이 순종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500만원을 송금합니다.
사람들은 자기 감정대로 살고 감정대로 행동을 합니다. 내 생각, 내 감정이 하나님이 보시에 어떤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에 비추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많이 깨닫게 됩니다.
미국의 로버트 슐러 목사님은 “교회 부흥을 원하면 절대 부정적인 설교를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주장한 노만 빈센트 필 박사도 “죄와 심판과 징계와 같은 마음에 찔리는 설교는 하지 말고 희망과 확신과 가능성만을 말하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런 주장들은 비성경적인 주장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라면 귀에 거슬리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겸손하게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잘못 믿으면 지옥에 갑니다. 이걸 아셔야 합니다.
본문 13절에서 중요한 말씀을 합니다.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히4:13)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날이 옵니다. 어느 누구도 거짓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말씀을 읽고 듣고 지켜 행하는 능력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에 능력이 있습니다. 사람의 위로 1000마디 보다,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가 사람을 살리고 힘을 줍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예수님이 백마를 타고 오시는 모습을 소개합니다. 충실과 진실한 분입니다. 눈이 불꽃같고 머리에는 많은 면류관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옷을 소개합니다. “그가 피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계19:13) 예수님은 말씀의 옷을 입고 오십니다.
세상 것들은 다 없어집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을 보면 없어지지 않는 영원한 것 3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둘째, 하나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24-25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셋째, 주의 뜻을 행하며 살았던 삶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요한일서 2장 17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하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도 영원히 거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짧은 인생을 그냥 살지 말고 가장 가치 있게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가치 있게 사는 것입니까?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 때 하나님은 그 시간을 다 기억해주시고, 영원한 나라에서 큰 상급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히브리서 4:12-13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시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포인트 워드: 말씀
활용: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다. 말씀은 성령의 검이다. 말씀은 악한 영을 물리치고 죄악을 물리칠 수 있다. 우리는 말씀의 능력으로 무장해야 한다.
성경을 가슴에 안고 따라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영혼의 양식이며, 영적전쟁에 무기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우리가 일생동안 영혼육의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가 잘 되어야 합니다.
영의 축복은 성령충만, 혼의 축복은 행복과 감사, 기쁨과 즐거움, 자유 누림입니다. 육의 축복은 건강, 가족의 복, 자녀의 복, 물질의 복, 사업의 복, 만남의 복, 대인관계의 축복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이 복을 받고 누려야 합니다.
그런데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 되기를 원하지만, 악한 원수 마귀는 우리가 멸망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사탄 마귀 귀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지 않으면, 우리는 늘 고통 속에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악한 마귀와의 싸움에서 어떻게 승리할까요? 성령의 능력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기도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기도할 때, 악한 영들은 떠나게 됩니다. 찬양의 능력으로 이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군대 총사령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츠바오트(체바오트)의 하나님, 하나님을 찬양할 때, 천사들이 우리를 돕습니다. 그리고 강력한 영적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무기들을 다듬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강력한 무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검이라고도 표현합니다.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6:17)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습니까? 내 영혼의 양식이며 영적 전쟁에서 강력한 무기입니다. 본문을 통해 말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는 생물체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만 하셔도 천지 만물이 그대로 만들어 집니다. “빛이 있으라” 선포하면, 그대로 됩니다. “뭍이 드러나라.” 하시면 그대로 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물이 변하여 포도주됐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이 바람과 바다를 꾸짖는 경우를 보세요. 파도가 잔잔해 지고, 바람이 멈추게 됩니다.
말씀은 생명이 있는 씨앗과 같습니다.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혹 100배 혹 60배 혹 30배가 되느니라” (마13:23)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30배와 60배와 100배가 되었느니라” (막4:8)
하나님의 말씀은 엄청난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고 마음에 새기면, 그 말씀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낙심된 경우에 말씀을 묵상해 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일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어느 목사님은 삶을 마감하고 싶을 때, 말씀이 떠오릅니다.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시42:5)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아멘으로 받는 것이 말씀을 먹는 것입니다. “아멘. 아멘” 이것이 중요합니다. 선포되는 말씀을 아멘으로 받지 않으면, 그 말씀은 내게서 역사할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가 밥을 하면, 밥 숟가락으로 내가 떠 먹어야 합니다. 아멘이 밥을 먹는 것입니다. 아멘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1:20)
우리 한번 연습을 하겠습니다. “아멘 아멘”
하나님의 말씀은 로고스의 말씀과 레마의 말씀이 있습니다. 로고스는 창세기 1장부터 요한계시록 22장 21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논리적, 문자적인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주어진 말씀이 되기 위해서는 레마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내게 주어진 말씀이 필요합니다. 삶의 문제 앞에서 하나님이 주신 말씀, 기도하다 깨달은 말씀, 내 안에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쉽게 표현하면, 우물이 있는데 우물의 물을 내가 먹어야 합니다. 우물의 물, 이것을 생수라고 하면, 로고스라고 합니다. 우물의 물을 끌어 올린 한 통의 물, 이것을 레마라고 합니다. 우물에 물이 넘쳐도 내 입에 시원한 물이 들어가야 갈등을 해소합니다. 피아노 건반의 개수가 88개입니다. 이것이 로고스입니다. 그러나 피아오 음정은 레마라고 합니다. 우리는 모두 레마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나를 붙잡아 주는 말씀, 내게 힘을 주는 말씀, 내가 평생 붙잡고 살아야 할 말씀이 필요합니다. 그 말씀이 살아서 내 인생을 이끌어 갑니다.
하나님 말씀은 다 좋아요? 이것은 틀린 말입니다. 내 남편, 내 아내가 있듯이 내가 은혜 받은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23:10)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시84:5)
옆에 사람에게 물어 봅시다. “집사님은 레마의 말씀이 있습니까?”
둘째,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 수술을 하는 칼입니다.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수술을 하는 칼입니다. 칼도 종류가 있잖아요? 회를 뜨는 칼, 고기를 자르는 칼, 연필을 깎는 칼, 수술을 하는 칼,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검입니다. 날카롭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영혼도 수술하고, 육신도 수술하는 칼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 악한 영이 떠나고 병이 고침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불방망이 같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렘23:2)
손양원 목사님의 집회에서는 말씀을 듣다가 시각장애인이 눈을 떴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설교할 때에 성령님이 강하게 임하셨습니다. 마가의 다락방 같은 성령의 역사가 고넬료의 가정에 임했습니다. 말씀 그 자체에 엄청난 능력이 있어서 영혼이 병든 자를 고쳐 주고 만져 주고 싸매어 줍니다. 육신이 병든 자로 고쳐 주고 싸매어 주고, 온전케 합니다.
여러분에게 아멘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아멘, 아멘” 하는 순간, 그 말씀이 내 심령속에 새겨집니다. 그 말씀이 나를 치료하고 그 말씀이 나를 변화시킵니다. 아멘을 자주하는 것이 내 영혼에 엄청난 유익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혼과 영을 쪼갭니다. 만약 우리가 나쁜 생각을 먹었다고 가정해 보세요.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잘못된 생각을 깨닫게 합니다. 어떤 신앙인이 상처가 많았습니다. 아버지에게 죽도록 맞았고,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가득찼습니다. 나이 50이 되어 70이 넘은 아버지를 대하는데, 동네 이웃 아저씨 대하듯 합니다. 반말도 하고, 차마 입으로 할 수 없는 말까지 합니다. 그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를 죽이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잠을 자고 있는 아버지를 향해 칼을 빼서 죽이고 싶었답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잘못된 생각을 고쳐 주셨다는 것입니다. “살인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약속있는 첫계명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혼의 생각을 쪼개어줍니다. 우리 생각이 모두 하나님의 생각이 아닙니다. 모두 사탄의 것도 아닙니다. 모두 내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사탄의 공격이 제일 심한 곳이 생각입니다. 생각이 영적 전쟁의 최선전입니다. 부정적인 생각, 부정적인 감정을 하나님 앞에 내어 놓아야 합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엡4:26-27)
새가 우리 머리 위를 날아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내 머리에 둥지를 틀게 하는 것은 전적으로 내 책임입니다. 우리도 부정적인 생각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악한 영이 집을 짓기 시작합니다.
예화) 어느 사모님
어느 사모님이 있었습니다. 은사도 있었고, 능력도 있었습니다. 병도 고치기도 하고, 상담도 은혜스럽게 잘 했습니다. 예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탄이 사모님 귓가에서 속삭입니다. “너는 아직 예뻐. 세상에 가면 인기가 좋을 거야.” 처음에는 사탄을 물리칩니다. “사탄아, 예수 이름으로 물러가라.” 그런데 또 사탄이 찾아 옵니다. 한 번, 두 번, 생각 속에 계속 유혹해 옵니다. 그랬더니, 사탄의 생각을 받아 들입니다. “그래. 나는 아직 젊어. 나는 예뻐. 내가 지금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 그래서 남편과 이혼을 하고, 세상의 쾌락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믿음을 다 잃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합니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4:7)
사람들이 남의 말을 하기 좋아합니다. 그것도 좋은 이야기보다 흉을 보는 이야기 말입니다. 이것은 탈무드에서는 3명을 죽인다고 합니다. 말하는 본인이 죽고, 말을 듣는 사람이 죽고, 대화의 대상을 죽이는 것입니다. 3명을 죽이는 것이 남의 흉을 보고, 뒷담화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걸 멈추어야 합니다. 남에 대해 좋은 말이 아니면 절대 입을 열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말, 용기를 주는 말, 격려하는 말, 응원해 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갭니다. 말씀이 부딪쳐 오면, 아픕니다. 그런데 수술을 할 때, 아프지 않은 곳이 어디 있나요? 아퍼도 참아야 합니다. 그래야 암덩어리를 떼어 내고 고름을 제거할 수 있잖아요? 하나님 말씀이 내 귀에 들려서 내 안에서 파장이 일어나면, 좋은 것입니다. 내 안의 잘못된 것을 고치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바른 소리를 하면, 듣기 싫어합니다. 이걸 주목해야 합니다. 바른 말은 누구나 듣기 싫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귀입니다. 악한 영입니다. 이걸 들을 수 있을 때,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저는 아이들이나 아내, 성도님들이 하는 말을 듣습니다. 특히 책망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좋습니다. 나를 고쳐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아들이 말합니다. “아빠는 심술부리는 말투가 있어요.” “그래 알았다. 아빠가 고칠께.” 어느 날, 아들에게 짜증을 낼 때가 있었습니다. 교회에 와서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감동을 줍니다. “왜 집에 가서 아들에게 짜증을 내니?” 집에 와서 아들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아들아, 너도 당황했지? 아빠가 집에 오자 마자, 화를 내서? 그런데 아빠의 혈통을 타고 분노의 악한 귀신이 있나봐? 미안하다.” 그러면 아들도 용서해 줍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인 엑스레이입니다.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마음과 생각과 뜻을 살피는 엑스레이와 같다는 말씀입니다. 말씀에 비추어 보아야 내 생각이 건강한지 병들었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엑스레이를 찍어야 우리 몸에 문제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듯이,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보아야 내 생각이 어떤 지 알게 됩니다. 방지일 목사님은 “성경은 죄를 찾는 현미경”이라고 말했습니다. 성경 말씀을 읽어야 내 생각이 어떤 지 알 수 있습니다.
내 생각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닙니다. 남의 생각이 모두 틀린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입니다. 언제나 “내가 옳다.”는 생각이 가득차 있습니다. 내가 틀리고 상대방이 옳은데 말입니다. 이것을 바꾸어 내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회개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십계명을 생각하면서 내 삶을 되돌아 보아야 합니다. 팔복의 말씀을 떠올리면서 나를 돌아 보아야 합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고 있는가 나를 돌아 보아야 합니다. 베드로후서1장에서는 신의 성품을 말씀합니다. 과연 나에게 신의 성품이 있는가? 없다면, 문제입니다. 내 모습 가운데 예수님의 모습이 없다면 예수님을 잘못 믿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과연 그 사람이 천국갈 수 있을까요? 윤석전 목사님은 과감하게 외칩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예수 믿다가 지옥가는 사람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성경에 게하시가 나옵니다. 엘리사 시대의 사환입니다. 아람의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에 걸려 엘리사에게 왔습니다. 엘리사는 요단강에 7번 씻으라고 말합니다. 결국 문둥병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게하시가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스스로 이르되 내 주인이 이 아람 사람 나아만에게 면하여 주고 그 가지고 온 것을 그 손에서 받지 아니하였도다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저를 쫓아가서 무엇이든지 그에게서 취하리라 하고”(왕하5:20) 게하시는 수석 비서와 같은 존재인데,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탐욕이 그와 자손들에게 문둥병을 가져 왔습니다.
구약에서 아간은 어떤가요? 여리고 성을 점령했을 때,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의 금 한덩이”를 취하여 자기 장막에 숨겨 놓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명령은 단호했습니다. “너희는 바칠 물건을 스스로 삼가라 너희가 그것을 바친 후에 그 바친 어느 것이든지 취하면 이스라엘 진으로 바침이 되어 화를 당케 할까 두려우니라 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니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찌니라”(수6:18-19) 여리고는 가나안 지방의 첫 성입니다. 여리고의 노획물은 하나님께 드릴 첫 예물입니다. 그런데 아간이 하나님의 것을 훔쳤을 때, 아이성에서 패배하게 됩니다. 36명이 죽게 되었습니다. 탐욕을 누구나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내 생각이 어떤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예화) 배종부 목사님이 이야기
교회에서 몽골에 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 5-6년 동안 수천만원의 선교비를 지원했습니다. 그런데 오해가 생겨서 목사님과 선교사님이 서로 불편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선교사님이 한국에 들어 왔다가 출국하기 하루 전에 카톡으로 문자를 보냅니다. “내일 출국 합니다.” 국내에 들어오면 파송교회를 찾아 가야 하는데, 그냥 돌아가는 것입니다. 대부분 이런 경우는 감정적으로 많이 상할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목사님에게 말씀합니다. “그 선교사에게 500만원을 보내라.” 목사님이 순종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500만원을 송금합니다.
사람들은 자기 감정대로 살고 감정대로 행동을 합니다. 내 생각, 내 감정이 하나님이 보시에 어떤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에 비추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많이 깨닫게 됩니다.
미국의 로버트 슐러 목사님은 “교회 부흥을 원하면 절대 부정적인 설교를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주장한 노만 빈센트 필 박사도 “죄와 심판과 징계와 같은 마음에 찔리는 설교는 하지 말고 희망과 확신과 가능성만을 말하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런 주장들은 비성경적인 주장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라면 귀에 거슬리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겸손하게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잘못 믿으면 지옥에 갑니다. 이걸 아셔야 합니다.
본문 13절에서 중요한 말씀을 합니다.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히4:13)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날이 옵니다. 어느 누구도 거짓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말씀을 읽고 듣고 지켜 행하는 능력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에 능력이 있습니다. 사람의 위로 1000마디 보다,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가 사람을 살리고 힘을 줍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예수님이 백마를 타고 오시는 모습을 소개합니다. 충실과 진실한 분입니다. 눈이 불꽃같고 머리에는 많은 면류관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옷을 소개합니다. “그가 피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계19:13) 예수님은 말씀의 옷을 입고 오십니다.
세상 것들은 다 없어집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을 보면 없어지지 않는 영원한 것 3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둘째, 하나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24-25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셋째, 주의 뜻을 행하며 살았던 삶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요한일서 2장 17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하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도 영원히 거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짧은 인생을 그냥 살지 말고 가장 가치 있게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가치 있게 사는 것입니까?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 때 하나님은 그 시간을 다 기억해주시고, 영원한 나라에서 큰 상급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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