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신 강단

은혜 위에 은혜러라(요1장)

박도식 2022. 1. 19. 15:03

은혜의 하나님

요한복음 1:14-16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거하여 외쳐 가로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포인트 워드: 은혜

활용: 한 해를 마감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시다.

 

성경을 가슴에 안고 고백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영혼의 양식이며 영적 전쟁에 무기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오늘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말씀은 사무엘상 7:12-14절입니다. “에벤에셀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요한 312절에서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해 지기를 바랍니다. 주 예수님의 은혜가 충만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교회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가 은혜입니다. 은혜라는 말은 영어로 ‘grace'이며, 히브리어로 헤세드입니다. 헬라어는 카리스라고 합니다. “동정하다. 호의를 베풀다. 열망하다. 자비롭다. 우정 친절 기쁨 총애 매력...” 등의 의미를 갖습니다.

 

쉽게 말하면, 은혜는 자격이 없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교회에 오면 선물을 받습니다. 영생의 선물을 받습니다. 영혼이 복을 누립니다. 성령충만의 복을 받습니다. 혼이 복을 받습니다. 두려움이나 염려 근심보다 평안하고 평강을 누립니다. 기쁨과 즐거움을 누립니다. 자유와 해방을 얻게 됩니다. 눌리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달라 붙어 괴롭히는 것들을 떨쳐 버릴 수 있습니다. 육의 선물을 받습니다. 건강을 선물로 받습니다. 장수의 복도 받습니다. 가정 화목의 복을 받습니다. 큰 소리 나던 가정에 예수님이 오시면, 사랑이 꽃피는 가정으로 바뀌어집니다. 직장도 얻게 되고, 물질의 복도 받습니다. 대인관계도 원만하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은혜를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을 가득 받은 사람 되어야 인생이 살맛나고 행복합니다.

 

오늘은 한 해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한 해를 되돌아 보면서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 삶은 하나님의 보살핌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은혜를 받아야 행복합니다.

첫째, 깨달음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1:16)

 

깨달음의 은혜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100배 축복을 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100배로 축복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3:23절입니다.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13:23) 100배 복을 얻기 위해서는 좋은 땅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입니다.

 

쉽게 표현하면, “아하~ 이것이구나.” “하나님의 은혜가 이것이구나. 하나님의 사랑이 이것이구나. 하나님께서 이걸 원하시는구나. ~ 이것 때문이었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시편 4920절에서 말씀합니다.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49:20)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최고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구원자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예수님이 해결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생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이 세상 최고의 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빛입니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쫓겨납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15절입니다. 빛이 어두움에 비치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1:5) 111절에 보면,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1:11)

 

사랑하는 여러분,

깨달음의 은혜를 받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깨달아야 은혜가 밀려옵니다.

이에 블레셋 사람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경내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삼상7:13)

 

사무엘상 7장에서 중요한 단어는 여호와의 손이 막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지켜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이전에는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내 집 드나들듯이 침략했습니다. 피해를 주지 않으면 좋은데, 꼭 올 때마다 사람을 죽이고, 농산물을 빼앗아 갔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 갔습니다. 이스라엘은 블레셋과 싸울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개입하시니 전세가 역전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블레셋 사람들을 막았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침략하고 싶어도 침략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방패막이요, 보호막이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에벤에셀의 하나님은 우리의 방패요, 보호자입니다. 잠언 1810절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은 그의 견고한 성이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18:10)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을 보호해 주시고, 우리는 안전함을 얻습니다. 그런데 부자는 무엇을 방패막으로 삼나요? 그의 재물입니다. 18:11절입니다.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라 그가 높은 성벽같이 여기느니라재물을 성벽처럼 여기지만, 재물은 언제든지 내 곁에서 떠날 수 있습니다. 재물은 정함이 없다고 합니다. 내 주머니에서 남의 주머니로 가는 것이 재물입니다.

 

저의 어머니가 저를 생각할 때,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 한 가지는 제가 대학 등록금이 필요할 때, 어머니에 버스에 등록금 뭉치를 놓고 내린 적이 있었답니다. 버스에서 내려보니 돈 보따리가 없는 것입니다. 택시를 타고 버스 정류장에 갔더니, 그 보따리가 그대로 있더랍니다. 30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cctv도 없는 시대였습니다. 누가 가져가면 그만입니다. 지금처럼 분실물을 잘 보관하던 때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손이 그 보따리를 지켜 주셨습니다. 에벤에셀의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지켜 주시는 분입니다.

 

저는 깨달음의 은혜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깨달아야 나를 바꾸어 낼 수가 있습니다. 저는 남을 바꾸어 내려고 설교하지 않습니다. 나를 바꾸려고 설교합니다. 남에게 예배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먼저 진짜 예배자가 되려고 노력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중요한 것이 내가 변하는 것입니다.

 

지난 수요일 설교제목입니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람이 되자우리는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또한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람은 다 자기 하기 나름이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 복을 받는 것도 다 자기 하기 나름입니다. 복받을 사람은 복을 받게 믿고 행동합니다. 잘 될 사람은 잘 되게 행동합니다. 너무 중요한 말입니다. “사람은 다 자기 하기 나름이다.” 이걸 깨달는 것이 축복입니다.

 

상대방의 모습이 내 모습인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정치인들의 거짓말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세요. 나는 내 안의 거짓말을 회개합니다. 김건희씨의 거짓 이력서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하세요. 예전에 목사님이 거짓 박사학위를 받은 분들이 많습니다. 돈으로 학위를 산 분 들입니다. 목사님들이 설교할 때, 목사 가운을 입어야지, 박사 가운을 입는 것을 잘못된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어느새 박사 가운을 입고 설교를 하는 분위기입니다. 우리 사회 속에 만연한 거짓을 나부터 회개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부터 거짓 이력서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깨달아야 할까요?

-죄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없이는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무엇으로 용서받을 수 있나요? 감옥에 갔다 오면 됩니까? 아니요. 벌금을 내면 됩니까? 아니요. 오직 어린 양 예수의 피가 우리를 죄에서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서1:7)

 

- 악한 자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보니 어떤가요? 우리에게 선한 것이 있던가요? 아니요. 없습니다. 행동은 착할지 몰라도, 마음 속에는 미움이 있고, 시기심이 있고, 교만함이 있고, 음란함도 있습니다. 온갖 종류의 쓰레기가 마음에 가득차 있습니다. 신앙인들도 시기심이 강한 사람이 있습니다. 남이 축복을 받으면, 칭찬하고 격려해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도 그 복을 받지 못했다고 토라지고, 미워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선한 것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 선합니다.

- 우리가 교만한 것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 없이 살려고 했던 것이 교만 아닌가요?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 내 힘과 내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교만 아닌가요? 하나님을 섬기면서 기도하지 않는 것이 교만 아닌가요?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더라구요. 머리를 감지 않는 미용사 어때요? 손을 씻지 아니하는 요리사 어떤가요? 겁이 많은 권투선수는요? 수영을 못하는 해군병사는 어때요? 그런데 기도하지 않는 성도는 이와 같답니다. 전도하지 않는 성도는 이들과 동급이랍니다. 불편한 진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돕지 않으면 잠시라도 살 수가 없습니다. 이걸 깨달아야 합니다.

깨닫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말씀을 들어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둘째, 만남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16:9)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 도움을 주시기 위해 사람과의 만남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어릴 때는 부모님과의 만남을,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선생님과의 만남을 주셨습니다. 장성해서는 배필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만남을 통해서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는 모든 만남을 은총의 만남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루에도 수 없는 사람을 만납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왔습니다. 그들과 어떤 관계로 지내고 있습니까? 은총의 만남으로 만들어 가십니까? 아니면 절대 만나지 말아야 할 만남으로 만들어 가십니까?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적을 만들면 안됩니다. 인자무적(仁者無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진 사람은 적을 만들지 않습니다. 옆의 사람이 나를 돕는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잠언 196절에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그러운 사람에게는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고 선물을 주기를 좋아하는 자에게는 사람마다 친구가 되느니라”(16:9) “선물은 그 사람의 길을 너그럽게 하며 또 존귀한 자의 앞으로 그를 인도하느니라”(18:16) 좋은 인간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에게는 만남의 복이 있어야 합니다. 저희 딸은 플릇 레슨 선생님을 잘 만났습니다. 이 분은 서울대를 나온 분입니다. 유학을 했습니다. 잘 가르치기에 좋은 선생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 상담을 해주기에 좋은 분이라는 것입니다. 레슨을 하면서 이런 저런 상담을 합니다. 만남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손현보 목사님은 대학을 합격하고도 등록금이 없었습니다. 작은 아버지는 등록금을 주지 못할망정, 비웃기만 합니다. 어머니는 가난한 현실 때문에 탄식합니다. 그런데 동네에서 성장한 형을 찾아 갑니다. 중입니다. 절에 갑니다. 그 중이 등록금을 줍니다. 하나님은 손 목사님을 위해 필요한 사람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개인간증:

외국어 대학에 들어갈 때, 이정희 강사님을 만나게 하셨다. 성충교회에서 8년이란 세월을 보냈다. 그곳에서 아내를 만났고, 아들을 낳을 수 있었다. 강사님을 통해 기도 세계의 훈련을 받았다. 그분은 금식기도로 영력을 쌓았다. 40일 금식 24, 76, 73일 금식. 그녀는 진짜 성령님의 사람이었다.

 

윤석전 목사님을 통해 순교정신을 배울 수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주일을 성수한다는 이유로 남편이 2번인가 목을 메 죽였다. 죽은 엄마의 시체를 끌어 안고 자녀들이 울었다. 죽은지 5시간이 되었는데, 예수님이 그 어머니를 다시 돌아가라고 하셨단다. 아이들이 운다고. 신앙을 위해 숱한 고난을 당했다. 아버지가 어머니의 손톱을 뺐다. 윤석전 목사는 주일에 아버지가 교회에 찾아와 말씀을 배우는 아들을 들고 돌판에 던졌다. 그런데도 아무렇지 않았다. 산순교의 신앙인이다. 예수님을 믿으려면, 철두철미의 신앙을 지켰다.

 

배종부 목사님을 통해 섬김과 나눔의 삶을 배웠다. 오늘의 우리가 있기까지 음으로 양으로 도우신 분들이 있습니다. 이들과의 만남을 축복의 만남으로 만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사람들의 관계가 틀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훈을 삼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문둥병 군인 나아만은 계집종을 통해 엘리사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엘리사 말대로 요단강에 7번 물에 담그고 나서 깨끗하게 고침받았다. 시각장애인 바디매오는 어떤가? 예수님을 만나고 눈을 뜨게 되었다. 중풍병자들은 예수님을 만나고 고침받았다.

 

기독교는 만남의 종교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더욱이 하나님과의 만남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저와 여러분은 모든 만남을 은총의 만남으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축복의 만남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셋째, 해석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세상 만사는 우리 안의 해석에 의해 결정됩니다. 좋게 해석을 하면, 좋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러나 부정적으로 해석을 하면,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옵니다. 고난과 연단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고난과 연단 속에서 불평과 원망을 한다고 해서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시니라”(4:9)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1:20)

 

우리나라는 추운 겨울이 있습니다. 겨울은 겨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습니다. 추운 겨울을 지나야 내년 3월에 개나리가 노랗게 필 수 있습니다. 튜울립도 필 수 있습니다. 춘화현상이라고 합니다. 추위를 경험하지 않으면 어떤 식물을 꽃을 피울 수 없답니다. 호주에 개나리를 심었더니, 푸르기는 한데, 꽃이 피지 않더랍니다.

 

교회에서 사람들이 시험을 듭니다. 왜 시험이 들까요? 생각이 잘못되어서 그렇습니다. 섭섭함을 느낍니다. 서운함을 느낍니다. 그런데 마음을 고쳐 먹으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교훈하신다. 하나님께서 내 행동을 달아 보신다. 여기서 승리하자.’

 

저는 해석의 은혜가 너무 귀합니다. 시험이 올 때, 믿음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해석만 잘해도 믿음 생활을 잘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시험을 볼 때, 해석만 잘 해도 복을 받습니다. 어떤 사람은 초등학교 때, 이렇게 시험보았다고 해요. “, 압니다. 아니요. 모릅니다.” 정답을 써야 하는데, 본인이 알고 있는지, 모르는 지를 적으니 선생님이 말씀하더랍니다. “, 너 장난하냐?” 그 이후로 공부에 흥미를 잃었다고 하죠? 참 귀한 인재를 놓친 것이고, 자기 인생에서 공부할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넷째가 별세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2:20)

 

별세는 나를 바꾸어 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듯이 나도 삶의 영역에서 자신을 죽이는 것입니다. 특히 남이 틀렸다고 판단 정죄하는 것을 멈추어야 합니다. 남들이 그렇게 말하는데는 분명 이유가 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합니다. 모르기 때문입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이러쿵 저러쿵 말하기 보다, 알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2021년 제 개인에게 최고의 은혜는 별세의 은혜입니다. 가정은 별세의 장소이다. 가정에서 나를 바꾸어 내야 합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내 몸처럼 사랑하라.”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자녀들아, 주 안에서 순종하라.” “부모들아,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사랑하는 여러분,

별세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변하고 삶이 변하고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교회도 별세의 장소인 것을 아시죠? 여러 사람이 모이다보면, 다른 사람의 부족한 면이 보입니다. 그럴 때에도 남이 틀렸다고 말하기 보다, 모른다고 생각하고 이해하고 도우려고 해야 합니다.

 

예전에 어느 성도님들이 잠옷을 입고 교회에 온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성도들은 그것이 잠옷인지 잘 몰랐나 봐요? 젊은 사람들 중에는 수퍼에 갈 때, 자끔 입고 다니는 분들이 있더라구요. 그 교인들은 우리 도움이 필요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어떤 집사님이 말하더라구요? “목사님, 저분들은 잠옷입고 왔어요?”

 

여러분,

솔직히 여러분이 잠옷인 줄 알면 그걸 입고 교회에 올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틀렸다고 말을 할 수가 없어요?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습을 지켜 보고 계십니다.

 

교회는 별세의 장소입니다. 교회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자기 주장만을 내세우고 싸우는 것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내 생각이 분명히 옳아도 평화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별세의 장소가 교회입니다.

 

직장도 별세의 장소입니다. 이것이 쉽지 않죠?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데? 특히 예수님을 모르는 자들이 있는데? 화가 날 일이 있는데? 화를 내고 싶으면 내세요? 화 내는 것이 틀린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지혜롭게 감정을 처리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1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한 해동안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가 참으로 크고 귀합니다.

우리 함께 큰 소리로 하나님께 외쳐볼까요?

하나님 깨달음의 은혜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만남의 은혜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해석의 은혜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별세의 은혜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제가 변하겠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이제 2021년은 이제 6일 남았습니다.

하나님은 여기까지 도우셨습니다. 에벤에셀 하나님은 승리의 복을 주셨습니다. 에벤에셀 하나님은 빼앗긴 것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에벤에셀 하나님은 장래에도 동일하게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검은 띠가 새로운 출발인 것처럼, 오늘이 나를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새로운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