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반응이다
신앙은 반응이다
욥기 1:19-22
신앙은 반응입니다. 사건 앞에서 육적인 반응을 할 것인가? 아니면 영적인 반응을 할 것인가?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신28:1)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경험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중요하다.
육적반응: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숭배 술수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냄 당짓는 것 분리 이단 투기 술취함 방탕함 (갈5:19-21)
악영이 역사, 귀신이 나타남, 문제가 발생, 하나님 영광을 가린다.
영적 반응: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갈5:22-23)
성령이 역사, 천사들이 도움, 문제 해결,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14:21)
욥은 동방의 의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악에서 떠난 자라고 말씀합니다(욥1:1). 자녀의 죽음, 물질의 손실, 질병의 문제, 가정의 파괴, 인간관계의 단절. 하나님은 욥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영적 반응을 요구하시나요?
첫째,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예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욥1:20)
엎드려 경배하다(프로스퀴네오).
사람들이 힘들고 어려우면- 하나님께 책임전가, 원망 불평, 예배를 쉼, (예-욥의 아내)
“그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2:9)
욥은 아내에게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욥은 고난 속에서 예배를 중단하지 아니했습니다. 이것이 비밀입니다. 불이 떨어지는 예배의 회복- 아브라함, 모세, 다윗, 솔로몬, 엘리야의 제단, 마가의 다락방
간증: 선민교회 사모의 딸- 케냐 단기 선교-원인을 찾아라. 아내-아들의 사고 앞에 먼저 기도했다.
하나님은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롬2:1)
예화2) 여호수아
아이성 전투에서 3000명이 올라갔다(36명이 죽음). 이 때 여호수아의 반응을 보자.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무릅쓰고 저물도록 있다가 여호수아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붙여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수7:6-7) 여호수아는 기도한다. 하나님 응답-아간의 범죄(유다지파, 외투 한 벌, 은 이백 세겔, 금 오십 세겔을 장막에 숨김)
예배의 자리에서 승부를 봐라. 회개하라. 남의 탓이 아니라 내 탓이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찬송한 권사님-땅의 용도 변경)
둘째, 하나님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욥1:21)
욥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인정을 합니다.
주권을 세워라-주일성수-시간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다.
십일조- 물질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신8:18)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대상29:11)
한나는 이것을 알았습니다. 사무엘상 2장 6-7절입니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시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삼상2:6-7) 사도바울도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합니다.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팍케 하시는도다”(롬9:18)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로드쉽(lordship)이라고 한다.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절대적인 것을 싫어한다. 상대적인 것을 좋아한다. 성경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의 이름이 없다고 하셨다. 하나님께는 절대 주권이 있다. 바울은 하나님은 토기장이요 우리는 그릇이라고 한다.
예화) 토마스 목사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이 일찍 죽는 것이다. 과연 그 죽음의 의미가 무엇일까?
부인이 24살에 죽음( 대동강에서 순교,)-성경책을 줌. 최치량 박영식(널다리골, -장대제, 장대현교회)
최치량-여관의 종업원, 장대현교회 초대 장로, 박영식-여관업(평양관리, 한문성경으로도배)-마펫선교사
셋째, 하나님은 원망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1:22)
욥은 자기가 처한 고난 속에서 입술을 철저하게 지켰다.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21절)
왜 원망이 생기는가? 내가 옳고 하나님이 틀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싸우는 것이 원망이다.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잠19:3)
우리가 쉽게 짓는 죄가 불평과 원망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마라의 쓴물)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원망을 하나님을 향한 원망으로 받아들이셨다. 왜? 모든 환경은 하나님이 놓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건을 놓으시고 자녀들의 행동을 달아보시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행동하는가? 사랑을 실천하는가? 보셨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의도를 잘 몰랐다.
예화) 펄벅의 어머니-22살에 결혼, 7남매 둠, 4명의 자녀가 죽음, “나는 내 어머니의 얼굴 속에서 고통스런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우울한 노래를 들은 적이 없다. 언제나 희망의 이야기 믿음의 이야기만 들었다.”
가뭄 때, 중국인들이 죽이려 옴- 저녁 때, 차와 다과를 준비하고 찬송을 불렀다. 다음 날 새벽에 비가 왔다.
양계장이 불이나자 남편에게 감사-당신이 없어서 다행이다. 가구점이 불나자 남편에게 원망-심장병, 고혈압, 당뇨, 관절염으로 고생하다 죽음
출애굽기 16장 8절이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의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으니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출16:8) 주의 종을 향한 원망은 곧 하나님께 향한 원망이라는 것이다. 환경을 향한 원망은 곧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 환경을 놓으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조금만 힘이 들어도 원망과 불평을 한다. 짜증을 낸다. 그것은 하나님과 싸우는 것이다. 원망한다고 해결책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힘든 상황에서 불평과 원망하는 것은 완전히 육적인 반응이다. 그 가운데서는 하나님을 찾아볼 수 없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입을 다물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나를 돌아보면서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한 삶을 되돌아 보면서 회개하고 용서해야 한다.
“유덕한 여자는 존영을 얻고 근면한 남자는 재물을 얻느니라”(잠11:16) 유덕의 뜻은 버들 유, 덕 덕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유들유들하고 덕스러우면 존귀와 영광이 온다는 것입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잠15:1)
어느 목사님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시더랍니다. “네 입에 독이 있다.” 이분은 별명이 싸움닭이었습니다. 시어머니와도 싸우고, 신우들과도 싸우고 남편과도 싸우고. 결과는 15번이나 죽었다가 살아났고, 완전히 망했습니다. 쫄딱 망했습니다. 그러면서 금식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다. 그리고 부드러운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사람들과 싸우면 가난해 집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48)
십자가 오른편(사랑하는 자, 호의적인 자, 축복하는 자, 좋은 사람)
십자가 왼편(악담하는 자, 조롱하는 자, 미워하는 자, 못 마땅한 자) 십자가를 이루며 살라.
생각을 바꾸면 희망이 보인다. “자살->살자, 역경->경력, 내 힘들다-> 다들 힘내.”
우리는 욥기를 통해 한 사람이 중요함을 안다. 한 사람만 영적으로 변화받으면 된다. 나 혼자라도 승리하면 된다. 욥이 극심한 고난 속에서 승리했더니, 하나님은 다시 10남매를 주셨다. 물질도 이전보다 갑절로 주셨다. 하나님은 욥이 고난 속에서 승리하는 것을 보셨다.
욥의 인내- 예배, 주권인정, 감사-30년 동안 했다. 욥기42편 16절-욥이 일백 사십년을 살면서 아들과 손자 사대를 보았고(70인역-170을 더 살고 240에 죽음) 70세-100세까지가 연단의 과정일 것이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우리 힘으로는 이 모든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성령님의 도우심으로는 가능하다. 성령님이 반드시 승리하게 하신다. 우리는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해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이것이 영적인 반응이다.
“의와 공평을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잠21:3)
어느 목사님 간증.
전도를 하는데 딸같은 청년에게 전도지를 줍니다. 그런데 돌아와서 전도지를 돌돌 말더니 목사님의 머리통을 내려쳤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예수님을 떠올렸습니다. 속에서 올라오는 감정을 누르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랬더니 교회가 부흥되더랍니다.
예화) 파주 삼마교회 안수집사-씨름 선수 50대, 30대 여자가 창문을 내리고 말합니다. “야, 너 일로와봐. 네가 장로냐?”
고개 숙이고 말합니다. “죄송합니다.” 신앙인에게서 예수가 나와야 한다. 영적인 반응을 하자. 성령님이 역사하신다.
(찬양-아름다운 것을 지키라-1069, 나를 사랑하는 주님-6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