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신 강단

손바닥에 새긴 하나님의 사랑

박도식 2022. 6. 15. 15:46

손바닥에 새긴 하나님의 사랑

이사야 49:14-17

14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어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찌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16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17 네 자녀들은 속히 돌아오고 너를 헐며 너를 황폐케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

 

포인트 워드: 사랑

목적: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나를 손 바닥에 새기며 나를 축복하신다.

 

성경을 가슴에 안고 고백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영혼의 양식이며, 영적전쟁에 무기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내리사랑이 있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그냥 사랑합니다. 특히 손자 손녀는 더욱더 말로 할 수 없습니다. 손자 손녀가 오면 뭐라도 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효는 아랫사람이 윗 사람을 섬겨야 합니다. 그래서 힘든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있잖아요? 아버지가 어린 아들이 물어 봅니다. “아빠, 저게 뭐야?” “, 까치란다.” 아들이 또 물어 봅니다. “아빠, 저게 뭐야?” “, 까치란다.” 아들이 100번 물어 보았는데, 아버지는 화를 내지 않고 어김없이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 까치란다.” 그런데 아버지가 늙어 치매가 걸렸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어 봅니다. “아들아, 저게 뭐냐?” “아버지, 까치예요.” 치매걸린 아버지가 또 물어봅니다. “아들아, 저게 뭐냐?” “까치라니까요?” 짜증을 냅니다. 내리사랑은 그냥 사랑하는 것입니다. 효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 더 클까요? 아니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더 클까요? 하나님의 사랑은 내리사랑입니다. 그냥 우리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하다고 힘을 다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희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49:16)

 

우리는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신다.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어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찌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49:14-15)

 

물망초의 꽃말이 나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물망초는 사연이 있다. 옛날에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도나우강가를 걷다가 도나우강 섬에서 자라는 이 꽃을 보았다고 한다. 청년은 애인에게 이 꽃을 꺾어 주기 위해 그 섬까지 헤엄쳐 갔다. 그러나 꽃을 꺾어 오는 길에 급류에 휘말리게 되고, 그는 마지막 힘을 다해 꺾어 왔던 꽃을 애인에게 던져주며 나를 잊지 말아요(forget-me-not)” 한마디를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혼자 남은 여인은 물망초를 꽂아 장식하며 청년을 기억했다고 합니다.

 

물망초는 작지만 아름답습니다. 사람들 속에 잊혀진다는 것이 슬픈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 속에 남아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소중한 사람은 기억되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루어냈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1970년 대에는 화장실도 대문 옆에 있었습니다. 위생상태도 말이 아니었습니다. 보릿고개도 있었습니다. 머리는 잘 감지 않아서 냄새가 났고, 심지어 양치질도 하지 않아서 학교에서 일주일 한 번 씩 위생 검사를 했습니다. 손톱 검사, 양치질 검사. 우리가 어린 시절에는 이나 벼룩이 참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좋은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전적인 부모 세대들의 헌신과 하나님의 축복 때문입니다.

 

그런데 젊은 세대들은 부모님의 세대들의 땀과 헌신을 잊어 버립니다.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들이 얼마나 땀흘렸는지 모릅니다. 잊혀진 것처럼 서글픈 것은 없습니다.

 

본문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힘든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잊은 것은 아닐까?’ 그런데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하나님은 절대로 저와 여러분을 잊어 본 적이 없습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27:10)

다윗왕의 고백입니다. 정확히 어떤 연유로 이 글을 썼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짐작은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막내로 태어나 부모님께 인정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형들을 대하는 것과 본인을 대하는 것이 분명 차이가 있었을 것입니다. 사무엘이 찾아 왔을 때, 7형제들이 다 모였습니다. 그러나 다윗만 제외시켰습니다. 또한 블레셋이 쳐들어 왔을 때, 다윗은 아버지 심부름으로 형들에게 도시락을 주기 위해 갔습니다. 다윗은 장인에게도 버림을 받았습니다. 사울이라는 장인은 10년 정도 다윗을 죽이려고 눈에 불을 키고 다녔습니다.

다윗이 누구를 의지했겠습니까?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부모님들 중에는 자식을 앵벌이로 삼는 분들이 있습니다. 자식을 버린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절대 버리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여러분들이 누구인가요?

하나님이 기억하신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말씀합니다. “내가 너를 기억할께. 내가 너를 잊지 않을께.”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던지, 하나님을 절대 우리를 잊지 않습니다. 인천에 살던지, 서울에 살던지, 한국에 살던지, 미국에 살던지. 하나님은 여러분을 잊지 않습니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처럼, 한 번 예수 믿었으면,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를 손바닥에 새겨 놓았습니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49:16)

 

사람들이 사랑하면, 서로 문신을 하면서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예전에 어느 타드 벤틀리라는 젊은 목사는 자신의 몸에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이런 문신을 했었습니다. 타락한 삶을 살다가 예수님을 믿어 목사가 되었기에 자신의 몸에 문신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문신을 금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본인의 손바닥에 우리 이름을 새겨 놓았다고 말씀합니다. 손은 어떤 곳인가요? 일을 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손바닥에 우리 이름을 새겼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한시라도 우리를 잊지 않고 기억하신다는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과 언약을 맺으시면, 그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는 분입니다.

 

내가 야곱과 맺은 내 언약과 이삭과 맺은 내 언약을 기억하며 아브라함과 맺은 내 언약을 기억하고 그 땅을 기억하리라”(26:42)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겼다는 것은 영원히 우리를 잊지 않고 매 순간순간마다 우리를 살피고 돌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의 사진을 핸드폰에 저장을 합니다. 노트북의 맨 처음 화면에 올려 놓습니다. 왜요? 자식들을 잊지 않고, 자랑하기 위함이 아닌가요?

하나님도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우리의 이름 하나 하나를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겨 놓고 날마다 우리를 축복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떤가요?

하나님을 금새 잊어 버립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우상을 만들어 절하면서 자기를 애굽에서 인도한 신이라고 말을 합니다. 모세 당시에도 그랬습니다. 홍해의 기적을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인도함을 받고도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돌에 새겨서 말씀을 기억하라고 절대 잊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 사람들은 그 은혜를 잊어 버립니다. 십계명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신명기 910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두 돌판을 내게 주셨나니 그 돌판의 글은 하나님이 손으로 기록하신 것이요 너희의 총회 날에 여호와께서 산상 불 가운데서 너희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이니라”(9:10)

모세의 십계명은 유다가 망하고 바벨론 포로가 될 때까지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다가 멸망하고 시드기야 왕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면서 하나님의 법궤와 십계명의 돌판이 역사에게 자취를 감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큰 돌에다가 하나님의 율법을 기록해서 후대 자손들이 볼 수 있도록 보존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 831-32절입니다.

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한 것과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든 제단이라 무리가 여호와께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그 위에 드렸으며 여호수아가 거기서 모세가 기록한 율법을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그 돌에 기록하매

 

출애굽기 28장에서는 대제사장이 입는 에봇에는 크고 귀한 보석들이 14개가 달려 있습니다. 양 쪽 어깨에 호마노라는 두 개의 보석을 다는데, 이스라엘 12아들들의 이름을 새깁니다. 대제사장의 옷의 가슴에 달린 흉패에 달린 12개의 아름다운 보석에는 이스라엘 12지파의 이름을 새깁니다. 이름을 새긴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눈에는 보석처럼 존귀하고 아름다운 존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제사장은 항상 이스라엘 12지파의 백성들을 자기 가슴에 품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떤가요?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을 보석처럼 소중하게 여기며 하나님의 손바닥에 우리 이름을 새겨 놓고 돌보고 계십니다.

 

부모님 중에는 미혼모가 있습니다. 자녀를 낳았지만, 키울 형편이 못되어 고아원이나 베이비 박스에 놓고 가기도 합니다. 장애를 지니고 태어난 자녀를 버리고 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 우리를 잊지 아니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겨 놓았습니다.

 

아가서 86절입니다. 너는 나를 도장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같이 잔인하며 불길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8:6) 솔로몬 왕의 팔에 술람이 여인의 이름을 새긴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마치 도장을 새기듯이 주님의 팔에 우리 이름을 새기고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겨진 분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의 이름이 그분의 손바닥에 새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람처럼 생각하지 마세요. 사람 손에 어떻게 이름을 새길까? 하나님의 손은 큽니다. 하나님의 손은 우주보다 큽니다. 하나님의 손바닥과 팔에 우리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아바라 부를 때, 주가 들으시네

 

셋째, 하나님은 사랑의 증거를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5:8)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의 증거를 요구합니다. 선물을 사오라는 말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죄인되었을 때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죄에 빠진 인간들, 미움과 시기, 질투 속에 사는 자들을 위해, 연약한 자들을 위해. 하나님과 원수된 자들을 위해 자기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참히 못박혀 죽게 만드셨습니다.

 

십자가의 처형은 그 당시 최고의 형벌입니다. 신명기에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아래 있다고 말씀합니다. 로마인들에게는 십자가 형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누구나 고종명을 원합니다. 잘 죽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사람의 인권을 무시한 잔인한 형벌입니다. 사람을 짐승처럼 대우해서 못을 박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그렇게 버리셨습니다. 왜요? 저와 여러분을 무척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천국가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1 얼마나 아프셨나 못박힌 그 손과 발/ 죄없이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

하늘도 모든 땅도 초목들도 다 울고/ 해조차 힘을 잃고 온누리 비치잖네/

 

2 나의 죄 너희의 죄 우리의 모든 죄를/ 모두다 사하시려 십자가 달리신 주/

얼굴과 손과발에 흐르는 그 귀한 피/ 골고다 언덕위에 피로 붉게 적셨네/

 

후렴) 아 아 끝없어라 주의 사랑 언제나

아 아 영원토록 구원의 강물 넘치네.

 

하나님은 고린도후서 13:5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고후13:5)

 

하나님은 우리 이름을 손바닥에 새기고, 팔에 새기셨는데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예수님의 신부라는 확증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한다는 확증이 무엇일까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마음에 새기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6:5)

 

마음에 새긴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미간이 붙여 잊지 않는 것입니다. 집의 좌우 설주에도 새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속에 두고 잊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쉽게 은혜를 잊습니다. 말씀도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내 맘대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도장으로 새기듯, 마음에 새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3:3)

둘째, 이마에 새기는 것입니다.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14:1)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22:4)

 

예수님은 예수님을 잘 믿는 자들의 이마에 구원받은 표시를 새깁니다. 예수님의 이름과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입니다. 이 이름은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이름이 새겨진 사람과 새겨지지 않은 자들이 있어요. 우리 모두는 이름이 새겨진 자들입니다.

 

이름이 새겨진 자들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름이 새겨진 자들만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요?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이와 여자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하지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9:6)

 

하나님께서 성전에서부터 심판을 시작하신답니다. 그리고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한답니다. 왜 그럴까요? 성전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명을 감당한 교회와 그렇지 못한 교회로 갈라입니다. 늙은 자들이 중요합니다. 이들은 먼저 하나님을 만난 자들이요, 은혜를 체험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 사명이 있습니다. 그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20:4)

 

분명히 이마에 인맞은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이마에 구원받은 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4:30)

 

한번 성령의 인치심을 받았다고 죄를 짓고 함부로 살면 안 됩니다. 우리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성령을 근심하게 하거나 성령을 모독하면 그 인치심이 소멸될 수 있습니다. 만일 자기 이마에 예수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지 않으면 그는 자동적으로 적그리스도의 이름이 새겨지게 되고 적그리스도의 이름이 새겨진 자들은 영원히 구원을 받지 못하고 심판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로 자신의 손바닥과 팔에 우리의 이름을 도장을 새기듯이 새기시면서 영원히 잊지 않고 사랑하십니다. 여러분들은 소중한 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절대 잊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을 사랑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