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능력으로 승리하라
마가복음 11:12-14, 20-23
12 이튿날 저희가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13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 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14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20 저희가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 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고
21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포인트 워드: 말
활용: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을 주셨다. 그 말이 가진 권세를 알고 우리도 활용하자.
성경을 가슴에 품고 따라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영혼의 양식이며, 영적전쟁에서 무기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세상에 되어지는 원리가 있습니다. “말한대로 된다.” 말이 씨앗이 되어 자라게 되고 결실하게 됩니다. “생각대로 된다.” 생각이 소중합니다. “꿈꾸는 대로 된다.” 희망을 가지면 그대로 됩니다. 그리고 “기도한 대로 된다.” 안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러나 인생은 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참으로 놀랍다. “된다 된다 잘 된다.” 이렇게 말하면 잘 된다. 그런데 “안 돼, 안 돼 진짜 안돼.” 그러면 진짜로 안 된다.
예수님이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 말씀합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6:63) 말은 영이요 생명입니다. 말을 잘하면 사람을 살릴 수 있고, 말을 잘못하면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영계가 말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말에 의해 천사들이 움직이고 악한 귀신들이 움직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거나 찬양하고 믿음의 말을 하면, 천사들이 활동을 하면서 그 믿음대로 말한대로 됩니다. 그러나 말이 부정적이면 악한 영들이 활동을 합니다. “행복하다. 감사하다. 기쁘다. 너무 좋다. 부족함이 없다.” 그러면 부족함이 없이 행복하게 산다. 그러나 “안 돼. 부족해. 힘들어. 괴로워. 늘 문제야.” 그러면 매일 행복하지 않습니다.
우리 한 번 해 봅시다. “된다 된다 잘 된다.” “좋아 좋아 아주 좋아.”
오늘 본문을 보세요.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아침 일찍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예수님이 배가 고프셨습니다. 멀리서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발견하시고 가까이 가봅니다. 그런데 잎은 무성한데 열매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실망하셨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14절입니다.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막11:14) 여기서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을까요? 13절에 보면,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막11:13)
무화과는 4월(유월절)부터 10월(초막절)까지 총 5번 열매를 맺습니다. 유월절 시기에 열리는 첫 열매는 ‘파게’라고 합니다. 작은 잎과 함께 맺히면서 당도가 떨어집니다. 상품 가치가 없습니다. 행인이나 가난한 자들의 먹거리입니다. 그 후에 열리는 무화과는 ‘테에나’입니다. 무화과는 잎과 열매가 함께 열리게 됩니다. 그런데 열매는 없고 잎만 무성했던 것이죠. 본문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말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식물과 동물은 태양 에너지를 먹고 삽니다. 그런데 말도 사람의 모든 환경과 운명을 변화시키고 움직이는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말이 주는 에너지는 태양 에너지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말은 엄청난 생명 에너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말의 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할 때 무엇으로 하셨습니까? 말로 하셨습니다. “빛이 있으라” 말을 하면 빛이 생깁니다. “물이 나뉘어라” 하면 물이 나뉘어 집니다. 히브리서 11장 3절입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니니”(히11:3) 하나님의 세계가 말로 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에서 말씀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말씀”은 곧 “말”입니다. 말씀은 곧 예수님입니다.
태초에 말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이 있었습니다. 말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말에는 신적인 권세가 있다는 것입니다. 말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힘이 있습니다. 없는 것을 있게 만듭니다. 불가능을 가능한 것으로 만듭니다. 안 되는 것을 되게 합니다.
탈무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말은 손이 없지만 손이 하는 일을 한다. 사람을 죽일 뿐만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선을 넘어선다. 왜냐하면 손은 가까이 있는 사람만 죽이지만 말은 멀리 있는 사람도 죽이기 때문이다. 말은 화살과 같지만 또한 화살을 넘어선다. 왜냐하면 화살은 손으로 막을 수 있지만 말이 쏘아대는 무서운 상상력은 피할 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말이 영이라고 하는 것은 ‘말은 마음의 색깔’입니다. 사람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합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를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잠18:21) 좋은 말을 하면, 좋은 열매를 거두고 나쁜 말을 하면, 나쁜 열매를 거둡니다.
이번 제주도 수련회에서 ‘비블리아’ 식물원에 갔습니다. 성경의 식물들을 재배하고 설명하는 곳입니다. 아브라함의 에셀나무를 봤어요. 성전 제사에 쓰이는 우슬초를 보았어요. 피를 묶혀 정결케 합니다. 이스라엘 식물들의 잎에는 은은한 향기가 납니다. 식물도 향기가 있듯이, 말에도 색깔이 있습니다.
요즘 제가 하는 훈련을 절대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쿵 저러쿵’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가급적 절제를 하려고 합니다. 시편 17편 3절 때문입니다.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나를 권고하시며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으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치 아니하리이다”(시17:3) 다윗이 입으로 범죄하기 좋은 상황입니다. 하나님이 시험하고 밤에 다윗을 찾아 오셨습니다. 그러나 흠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원망, 불평할 상황인데도 죄를 짓지 않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16장에서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복음은 전하고 얻어 맞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 밤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했습니다. 감옥에 있는 죄수들이 다 듣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찬양이 기적을 가져 왔습니다. 옥문이 열리고 매인 것이 모두 풀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 아닐까요? 원망할 상황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불평할 상황에서 하나님을 떠올리며 감사하는 것, 잃어버린 것을 생각하며 실의에 빠지기 보다,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따라합니다. “내 말에는 힘이 있다. 우리 말에는 힘이 있다. 내 말로 사람을 살릴 수 있다.”
둘째, 만물은 말의 지배를 받는다.
예수님은 무화과 나무에게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He said to the tree.) 사람과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나무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의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나무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말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파도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잠잠하라.” 사단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물러가라.” 여호수아는 태양에게도 말했습니다.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찌어다 하매”(수10:12)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10-11)
예수님의 이름은 살아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 자체에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능력 자체이기에 모든 만물을 향해서도 선포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연계는 예수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천사들도 하나님의 말을 듣습니다.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이루며 그 말씀의 소리를 듣는 너희 천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시103:20)
우리에게도 그 권세가 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요14:12)
예화) 에모토 마사루
일본인 과학자 에모토 마사루도 말하지 않습니까? “물은 답을 알고 있다.” 물에다 말을 합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면 물의 결정체가 육각형의 아름다운 모양으로 바뀝니다. 반면 물을 향해 저주합니다. “짜증나. 보기 싫어. 꺼져 버려.” 그러면 물의 결정체가 흉하게 깨어지고 일그러집니다. 물도 사람의 말을 듣습니다. 신기하지요?
이번 주에 어느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늦게 예수님을 믿었고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이 분은 사모님에 대해 불만이 많았습니다. “당신은 쓸모없는 사람이야. 당신이 하는 것이 뭐가 있어. 흑사리 껍데기 만도 못해.” 간 큰 남자였지요. 심지어 무슨 말을 했는지 아세요. “당신의 몸은 오골계야.” 여자의 몸을 오골계처럼 시커멓다는 것입니다. 치명적인 말을 했습니다.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니 사모님의 몸이 시커멓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말의 위력을 배우고 말을 바뀌었다고 합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씩 축복의 말을 했습니다. “당신은 사랑스러워. 당신은 참 아름다워. 내 인생에 당신을 만난 것이 축복이야.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야.” 그랬더니 사모님의 피부가 좋아지기 시작했답니다. 그리고 피부가 백옥같이 하얘졌다고 합니다. 사모님은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말합니다. “한번 벗어 볼까요?”
피부도 말을 듣습니다. 물도 말을 듣습니다. 나무도 말을 듣습니다. 파도도 말을 듣습니다. 말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도 지배합니다. 우리 생각과 마음은 컴퓨터의 본체와 같습니다. 무엇을 입력하느냐에 출력이 다릅니다. 무슨 소리를 듣느냐에 따라 우리 생각과 마음이 결정됩니다.
최근 뇌 전문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 뇌 세포는 230억개 라고 합니다. 이중 230개 뇌 세포 가운데 98%가 말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학계에서는 “뇌 속에 있는 언어중추 신경이 모든 신경을 다스린다.”고 합니다. 말이 모든 것을 다스린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나온 것이 “언어 치료법”입니다. 우리에게는 여러 가지 신경이 있습니다. 보는 것, 듣는 것, 느끼는 것, 기쁜 것, 슬픈 것 등. 모든 신경이 말에 따라 변한다는 것입니다. 환자로 하여금 하루 2-3차례 10분-15분 정도 언어치료를 시행합니다. “나는 병이 나았다. 나는 깨끗이 치료되었다.”를 말하게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미국 위스콘신 주의 한 병원에서 치료가 불가능한 말기암 환자에게 언어치료법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3주 후에 암은 흔적도 없이 깨끗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의사들은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말이 힘이 있음을 말합니다. 언어 치료법으로 환자들을 고칩니다. 그런데 성경은 말의 권세를 미리 말씀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잠18:21)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8:18) 성경은 과학을 뛰어넘습니다. 언어 중추 신경이 모든 신경을 지배하는 줄 과학자들은 연구를 통해 밝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으로 아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사는 것과 죽는 것이 말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말에는 엄청난 권세가 있습니다. 사람은 말의 열매를 먹고 삽니다. 성공한 사람은 반드시 성공을 만들어 준 말이 있습니다. 행복한 사람 배경에는 행복을 만들어준 말이 있습니다. 말은 보이지 않지만 무한한 창조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은 생명을 살리는 말을 해야 합니다. 절대 남을 죽이는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야. 나는 축복의 사람이야. 나는 잘 될 사람이야. 나는 예수님의 보혈로 사탄 마귀를 이긴다. 나는 예수님의 보혈로 병고침 받았다. 내 인생은 창창하다.” 자신을 축복하며 사는 것이 행복입니다.
셋째, 믿음의 말이 기적을 가져 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막11:22-23)
시너지 효과라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의 기능의 가치가 협동이나 협력하여 더 큰 이익을 가져 오는 것입니다. 상승효과라고도 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 역사를 이루고,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면 기적이 이루어집니다. 혼자할 수 있지만, 함께 하면 더 큰 효과를 가져올 수가 있습니다. 말이 힘이 있습니다. 믿음도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있는 말은 더욱더 강력한 힘을 가져 옵니다.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막11:23)
믿음은 능력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큰 믿음은 우리 삶에 자산입니다. 믿음이 큰 사람은 마음의 그릇이 넓습니다. 담대합니다. 믿음이 크면, 두려움이 없습니다. 믿음이 크면 능력이 나타납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으리라”(막16:16)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막16:17)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16:18)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라.”(막11:22)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막11:23) 믿음의 말, 믿음의 기도가 큰 역사를 가져 옵니다.
말세가 될수록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8:8절입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눅18:8) 믿음의 말을 해야 하는데 믿음이 없는 말을 합니다. 믿음으로 행동해야 하는데, 믿음이 없이 행동합니다. 믿음으로 선포해야 하는데, 믿음이 없이 선포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고 믿음을 가지고 선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치료하십니다.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필요를 채워 주십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4:19)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아멘.
“내게 능력 주시는 자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하나님은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합니다. 내 힘으로는 안 돼도, 하나님이 하시면 됩니다. 의사들은 불가능하다고 해도, 하나님은 치료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말을 하고, 믿음으로 선포해야 합니다.
예전에 어느 목사님들이 말합니다. “하나님이 요즘은 출장가셨나봐.” “요즘은 하나님 보다 돈의 위력이 더 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렇게 말할까요?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너는 믿음이 없구나. 믿음을 키워야 한다.”
우리는 영적인 용사들입니다.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영혼을 구원할 자들입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1절입니다.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계12:11) “자기의 증거하는 말”이 중요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나는 존귀한 자다. 나는 잘 될 사람이다. 나는 축복의 사람이다. 내 인생은 행복하다. 나는 사탄 마귀 귀신을 이긴다. 내 앞길은 탄탄하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또한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말한 것이 그대로 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말한대로 된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분명히 증거합니다.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막11:23)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14:28)
말의 권세를 믿으세요. 그리고 선포하세요. 그 말이 그대로 될 줄 믿으세요. 그러면 그것이 현실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마가복음 11:12-14, 20-23
12 이튿날 저희가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13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 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14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20 저희가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 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고
21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포인트 워드: 말
활용: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을 주셨다. 그 말이 가진 권세를 알고 우리도 활용하자.
성경을 가슴에 품고 따라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영혼의 양식이며, 영적전쟁에서 무기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세상에 되어지는 원리가 있습니다. “말한대로 된다.” 말이 씨앗이 되어 자라게 되고 결실하게 됩니다. “생각대로 된다.” 생각이 소중합니다. “꿈꾸는 대로 된다.” 희망을 가지면 그대로 됩니다. 그리고 “기도한 대로 된다.” 안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러나 인생은 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참으로 놀랍다. “된다 된다 잘 된다.” 이렇게 말하면 잘 된다. 그런데 “안 돼, 안 돼 진짜 안돼.” 그러면 진짜로 안 된다.
예수님이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 말씀합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6:63) 말은 영이요 생명입니다. 말을 잘하면 사람을 살릴 수 있고, 말을 잘못하면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영계가 말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말에 의해 천사들이 움직이고 악한 귀신들이 움직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거나 찬양하고 믿음의 말을 하면, 천사들이 활동을 하면서 그 믿음대로 말한대로 됩니다. 그러나 말이 부정적이면 악한 영들이 활동을 합니다. “행복하다. 감사하다. 기쁘다. 너무 좋다. 부족함이 없다.” 그러면 부족함이 없이 행복하게 산다. 그러나 “안 돼. 부족해. 힘들어. 괴로워. 늘 문제야.” 그러면 매일 행복하지 않습니다.
우리 한 번 해 봅시다. “된다 된다 잘 된다.” “좋아 좋아 아주 좋아.”
오늘 본문을 보세요.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아침 일찍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예수님이 배가 고프셨습니다. 멀리서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발견하시고 가까이 가봅니다. 그런데 잎은 무성한데 열매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실망하셨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14절입니다.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막11:14) 여기서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을까요? 13절에 보면,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막11:13)
무화과는 4월(유월절)부터 10월(초막절)까지 총 5번 열매를 맺습니다. 유월절 시기에 열리는 첫 열매는 ‘파게’라고 합니다. 작은 잎과 함께 맺히면서 당도가 떨어집니다. 상품 가치가 없습니다. 행인이나 가난한 자들의 먹거리입니다. 그 후에 열리는 무화과는 ‘테에나’입니다. 무화과는 잎과 열매가 함께 열리게 됩니다. 그런데 열매는 없고 잎만 무성했던 것이죠. 본문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말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식물과 동물은 태양 에너지를 먹고 삽니다. 그런데 말도 사람의 모든 환경과 운명을 변화시키고 움직이는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말이 주는 에너지는 태양 에너지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말은 엄청난 생명 에너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말의 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할 때 무엇으로 하셨습니까? 말로 하셨습니다. “빛이 있으라” 말을 하면 빛이 생깁니다. “물이 나뉘어라” 하면 물이 나뉘어 집니다. 히브리서 11장 3절입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니니”(히11:3) 하나님의 세계가 말로 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에서 말씀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말씀”은 곧 “말”입니다. 말씀은 곧 예수님입니다.
태초에 말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이 있었습니다. 말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말에는 신적인 권세가 있다는 것입니다. 말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힘이 있습니다. 없는 것을 있게 만듭니다. 불가능을 가능한 것으로 만듭니다. 안 되는 것을 되게 합니다.
탈무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말은 손이 없지만 손이 하는 일을 한다. 사람을 죽일 뿐만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선을 넘어선다. 왜냐하면 손은 가까이 있는 사람만 죽이지만 말은 멀리 있는 사람도 죽이기 때문이다. 말은 화살과 같지만 또한 화살을 넘어선다. 왜냐하면 화살은 손으로 막을 수 있지만 말이 쏘아대는 무서운 상상력은 피할 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말이 영이라고 하는 것은 ‘말은 마음의 색깔’입니다. 사람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합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를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잠18:21) 좋은 말을 하면, 좋은 열매를 거두고 나쁜 말을 하면, 나쁜 열매를 거둡니다.
이번 제주도 수련회에서 ‘비블리아’ 식물원에 갔습니다. 성경의 식물들을 재배하고 설명하는 곳입니다. 아브라함의 에셀나무를 봤어요. 성전 제사에 쓰이는 우슬초를 보았어요. 피를 묶혀 정결케 합니다. 이스라엘 식물들의 잎에는 은은한 향기가 납니다. 식물도 향기가 있듯이, 말에도 색깔이 있습니다.
요즘 제가 하는 훈련을 절대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쿵 저러쿵’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가급적 절제를 하려고 합니다. 시편 17편 3절 때문입니다.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나를 권고하시며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으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치 아니하리이다”(시17:3) 다윗이 입으로 범죄하기 좋은 상황입니다. 하나님이 시험하고 밤에 다윗을 찾아 오셨습니다. 그러나 흠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원망, 불평할 상황인데도 죄를 짓지 않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16장에서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복음은 전하고 얻어 맞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 밤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했습니다. 감옥에 있는 죄수들이 다 듣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찬양이 기적을 가져 왔습니다. 옥문이 열리고 매인 것이 모두 풀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 아닐까요? 원망할 상황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불평할 상황에서 하나님을 떠올리며 감사하는 것, 잃어버린 것을 생각하며 실의에 빠지기 보다,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따라합니다. “내 말에는 힘이 있다. 우리 말에는 힘이 있다. 내 말로 사람을 살릴 수 있다.”
둘째, 만물은 말의 지배를 받는다.
예수님은 무화과 나무에게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He said to the tree.) 사람과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나무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의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나무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말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파도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잠잠하라.” 사단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물러가라.” 여호수아는 태양에게도 말했습니다.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찌어다 하매”(수10:12)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10-11)
예수님의 이름은 살아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 자체에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능력 자체이기에 모든 만물을 향해서도 선포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연계는 예수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천사들도 하나님의 말을 듣습니다.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이루며 그 말씀의 소리를 듣는 너희 천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시103:20)
우리에게도 그 권세가 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요14:12)
예화) 에모토 마사루
일본인 과학자 에모토 마사루도 말하지 않습니까? “물은 답을 알고 있다.” 물에다 말을 합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면 물의 결정체가 육각형의 아름다운 모양으로 바뀝니다. 반면 물을 향해 저주합니다. “짜증나. 보기 싫어. 꺼져 버려.” 그러면 물의 결정체가 흉하게 깨어지고 일그러집니다. 물도 사람의 말을 듣습니다. 신기하지요?
이번 주에 어느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늦게 예수님을 믿었고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이 분은 사모님에 대해 불만이 많았습니다. “당신은 쓸모없는 사람이야. 당신이 하는 것이 뭐가 있어. 흑사리 껍데기 만도 못해.” 간 큰 남자였지요. 심지어 무슨 말을 했는지 아세요. “당신의 몸은 오골계야.” 여자의 몸을 오골계처럼 시커멓다는 것입니다. 치명적인 말을 했습니다.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니 사모님의 몸이 시커멓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말의 위력을 배우고 말을 바뀌었다고 합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씩 축복의 말을 했습니다. “당신은 사랑스러워. 당신은 참 아름다워. 내 인생에 당신을 만난 것이 축복이야.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야.” 그랬더니 사모님의 피부가 좋아지기 시작했답니다. 그리고 피부가 백옥같이 하얘졌다고 합니다. 사모님은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말합니다. “한번 벗어 볼까요?”
피부도 말을 듣습니다. 물도 말을 듣습니다. 나무도 말을 듣습니다. 파도도 말을 듣습니다. 말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도 지배합니다. 우리 생각과 마음은 컴퓨터의 본체와 같습니다. 무엇을 입력하느냐에 출력이 다릅니다. 무슨 소리를 듣느냐에 따라 우리 생각과 마음이 결정됩니다.
최근 뇌 전문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 뇌 세포는 230억개 라고 합니다. 이중 230개 뇌 세포 가운데 98%가 말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학계에서는 “뇌 속에 있는 언어중추 신경이 모든 신경을 다스린다.”고 합니다. 말이 모든 것을 다스린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나온 것이 “언어 치료법”입니다. 우리에게는 여러 가지 신경이 있습니다. 보는 것, 듣는 것, 느끼는 것, 기쁜 것, 슬픈 것 등. 모든 신경이 말에 따라 변한다는 것입니다. 환자로 하여금 하루 2-3차례 10분-15분 정도 언어치료를 시행합니다. “나는 병이 나았다. 나는 깨끗이 치료되었다.”를 말하게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미국 위스콘신 주의 한 병원에서 치료가 불가능한 말기암 환자에게 언어치료법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3주 후에 암은 흔적도 없이 깨끗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의사들은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말이 힘이 있음을 말합니다. 언어 치료법으로 환자들을 고칩니다. 그런데 성경은 말의 권세를 미리 말씀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잠18:21)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8:18) 성경은 과학을 뛰어넘습니다. 언어 중추 신경이 모든 신경을 지배하는 줄 과학자들은 연구를 통해 밝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으로 아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사는 것과 죽는 것이 말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말에는 엄청난 권세가 있습니다. 사람은 말의 열매를 먹고 삽니다. 성공한 사람은 반드시 성공을 만들어 준 말이 있습니다. 행복한 사람 배경에는 행복을 만들어준 말이 있습니다. 말은 보이지 않지만 무한한 창조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은 생명을 살리는 말을 해야 합니다. 절대 남을 죽이는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야. 나는 축복의 사람이야. 나는 잘 될 사람이야. 나는 예수님의 보혈로 사탄 마귀를 이긴다. 나는 예수님의 보혈로 병고침 받았다. 내 인생은 창창하다.” 자신을 축복하며 사는 것이 행복입니다.
셋째, 믿음의 말이 기적을 가져 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막11:22-23)
시너지 효과라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의 기능의 가치가 협동이나 협력하여 더 큰 이익을 가져 오는 것입니다. 상승효과라고도 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 역사를 이루고,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면 기적이 이루어집니다. 혼자할 수 있지만, 함께 하면 더 큰 효과를 가져올 수가 있습니다. 말이 힘이 있습니다. 믿음도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있는 말은 더욱더 강력한 힘을 가져 옵니다.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막11:23)
믿음은 능력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큰 믿음은 우리 삶에 자산입니다. 믿음이 큰 사람은 마음의 그릇이 넓습니다. 담대합니다. 믿음이 크면, 두려움이 없습니다. 믿음이 크면 능력이 나타납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자는 정죄를 받으리라”(막16:16)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막16:17)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16:18)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라.”(막11:22)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막11:23) 믿음의 말, 믿음의 기도가 큰 역사를 가져 옵니다.
말세가 될수록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8:8절입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눅18:8) 믿음의 말을 해야 하는데 믿음이 없는 말을 합니다. 믿음으로 행동해야 하는데, 믿음이 없이 행동합니다. 믿음으로 선포해야 하는데, 믿음이 없이 선포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고 믿음을 가지고 선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치료하십니다.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필요를 채워 주십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4:19)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아멘.
“내게 능력 주시는 자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하나님은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합니다. 내 힘으로는 안 돼도, 하나님이 하시면 됩니다. 의사들은 불가능하다고 해도, 하나님은 치료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말을 하고, 믿음으로 선포해야 합니다.
예전에 어느 목사님들이 말합니다. “하나님이 요즘은 출장가셨나봐.” “요즘은 하나님 보다 돈의 위력이 더 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렇게 말할까요?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너는 믿음이 없구나. 믿음을 키워야 한다.”
우리는 영적인 용사들입니다.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영혼을 구원할 자들입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1절입니다.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계12:11) “자기의 증거하는 말”이 중요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나는 존귀한 자다. 나는 잘 될 사람이다. 나는 축복의 사람이다. 내 인생은 행복하다. 나는 사탄 마귀 귀신을 이긴다. 내 앞길은 탄탄하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또한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말한 것이 그대로 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말한대로 된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분명히 증거합니다.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막11:23)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14:28)
말의 권세를 믿으세요. 그리고 선포하세요. 그 말이 그대로 될 줄 믿으세요. 그러면 그것이 현실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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