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을 인정하고 동역하라
요한복음 14장 15-21절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20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목적: 장자권에서 중요한 것은 성령님의 역사이다.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성령님을 인정하고 동역해야 한다.
포인트 워드: 성령님
성경을 가슴에 안고 고백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영혼의 양식이며, 영적전쟁에 무기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예수님이 왜 승천하셨을까요? 12명의 제자들도 믿음이 약하고, 아직 기독교가 뿌린 내린 것이 아닌데 말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함입니다. 영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합니다. 육체를 지니고는 한정된 곳에서 사역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함께 하면,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24장 49절에서 말씀합니다. “볼찌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눅24:49) 성령을 받기 전의 제자들은 겁쟁이였습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3번이나 부인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에도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죽음과 박해의 고통이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의 체험이 있고나서는 담대하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외칠 수 있었습니다. 성령받기 전의 제자와 성령체험 후의 제자들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제가 부목사로 있던 교회 목사님은 어른이 되어서도 화장실을 혼자가지 못했습니다. 꼭 사모님을 깨워서 갔답니다. 사모님이 화장실 밖에서 기다려야 꼭 볼일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40일 금식기도를 합니다. 철원의 대한수도원에서 기도하는데 38일째 되어서 성령의 불이 본인에게 떨어지는 체험을 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담대함이 생겼습니다. 화장실에 혼자 가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장자권의 축복을 누리고자 하는 우리에게 성령님은 너무나 소중한 분입니다. 성령의 충만이 능력 충만이며, 성령 충만이 행복 충만입니다. 성령충만이 믿음충만입니다. 성령충만이 사랑충만입니다. 성령충만이 담대함을 가져다 줍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성령님이 누구신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겠습니다.
첫째, 성령님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14:16)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기도의 내용은 “보혜사 곧 성령님을 제자들에게 보내 주옵소서.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입니다. 보혜사는 돕는 자를 말합니다. 헬라어로는 ‘옆에서 돕는 자’를 말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돕는 일을 하시는 분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약속이며,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성령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사랑하는 제자들과 헤어져야 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해야 성령님이 이 땅에 내려 오시기 때문입니다. 한 두 사람에게만 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으로 함께 하기 위함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신앙생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분입니다. 누구든지 성령님이 아니고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게 합니다. 예수님이 물 위를 걷는 것도 믿어집니다. 문둥병자가 고침받은 것도 믿어집니다. 눈먼 사람이 눈을 뜬 것도 믿어집니다. 죽은 자가 살아난 것도 믿어집니다. 하나님께 불가능이 없음을 믿어지게 만듭니다.
베드로가 성령을 체험하고 나서 설교할 때 이렇게 합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행2:38-39) 성령을 선물로 받는 비결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회개하라.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 셋째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회개하는 것이나,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모두 나를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영혼을 정결하게 하고서 성령님이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알고보면, 회개하는 것도, 세례하는 것도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아무튼 베드로는 분명히 성령님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은 선물입니다.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을 받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모하는 심령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는다는 말은 2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내주하시는 성령입니다. 여기에 있는 성도들은 모두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받았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 둘째가 임하시는 성령도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아야 한다는 말은 주로 임하시는 성령을 말합니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심으로 권능을 받게 됩니다. 능력이 생기고 은혜가 충만하고 담대함을 가지게 됩니다. 성령을 받으면 소심했던 사람이 대담한 사람이 되고, 겁쟁이가 용기 있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임하시는 성령을 받기 위해 사모해야 합니다.
웨슬레 목사님도 성령 받기 전에는 미국 선교에 실패했다. 무디 목사님도 성령받기 전에는 졸리는 설교를 했다. 그는 초등학교만을 나왔다. 엉터리 설교자였다. 이삭의 아들, 아브라함이라고 했고, 문법적으로 맞지 않는 표현을 했다. 그러나 그의 나이 34살, 어느 11월에 뉴욕 거리를 걸어가면서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제게도 성령으로 충만하게 해 주옵소서.” 그런데 정말 하늘에서 불덩어리가 떨어집니다. 길 거리에서 불덩어리가 떨어지니, 키가 큰 무디 목사님이 그 자리에서 껑충껑충 뛰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구경을 합니다. 급하게 친구 집으로 뛰어 들어갑니다. 방을 하나 빌려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성령의 불이 얼마나 쏟아지는지 나중에는 감당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도 기도하지요. “하나님이여 손을 떼 주소서. 그대로 있으면 나 죽겠습니다. 그만 부어 주옵소서.” 그 이후부터 무디는 이전의 무디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말씀을 선포할 때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종이 되었습니다. 성령의 불을 받기 전에는 성도들을 졸게 만드는 목사였습니다. 성령을 받고서는 교인들에게 은혜를 끼치는 주의 종으로 바뀌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삶에 문제가 있나요?
“그 날에 그의 무거운 짐이 네 어깨에서 떠나고 그의 멍에가 네 목에서 벗어지되 기름진 까닭에 멍에가 부러지리라”(사10:27)
“기름진 까닭에 부러지리라” 성령님의 상징이 기름입니다. 성령충만하면 무거운 짐이 어깨에서 떠나게 됩니다. 멍에가 벗어집니다. 문제가 해결됩니다. 이렇게 좋은 성령님,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님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 모두 이 선물을 받기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충만함을 위해서 말입니다. 따라해 볼까요? “하나님, 성령의 불을 주옵소서.” “하나님,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둘째, 성령님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신다.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14:16)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14:17-18)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성령님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는 성령의 내주하심을 말씀합니다. 성령님께서는 하늘나라에 사셨습니다. 하늘나라는 끝도 없습니다. 근심걱정이 없고 눈물도 없는 곳입니다. 천사들의 찬양을 받는 곳입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엄청난 축복입니다. 우리 속은 너무나 좁습니다. 좁아도 너무 좁습니다. 그렇다고 청결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악한 생각, 더러운 생각, 냄새나고 썩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 속을 볼 때, 너무나 누추합니다. 성령님이 거하시기에는 너무나 송구합니다. 그런데 성령님은 기꺼이 우리의 심령에 들어오셔서 영원토록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절대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3:16) 우리 몸을 성전으로 삼으셨습니다.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면서 무엇을 하시나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십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롬8:16) 하나님이 보실 때, 성령님과 함께 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잘생기고 아름다워도 성령님이 없는 자는 영적으로 죽은 자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향해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합니다. 성령님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절대 아버지라 부를 수 없습니다. 불신자들에게 하나님 아버지라고 불러보라고 해 보세요. 절대 못합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이 그들에게는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은 또한 너무나 귀중한 일을 하십니다. 우리 영혼을 보호해 주십니다. 악한 귀신들이 우리 영혼을 사로잡지 못하게 하십니다.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치 아니하리라”(눅21:17-18)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게 합니다. 그런데 기독교 역사에 의하면, 많은 성도들이 순교의 피를 흘렸습니다. 목 베임을 당하고, 사자밥이 되기도 했습니다. 머리털이 상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면 성경이 잘못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향해 말씀합니다. 악한 영은 우리 몸과 마음은 공격할 수 있지만, 성령님이 계신 우리의 영혼을 절대 공격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영혼을 보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비슷한 말씀이 요한일서 5장 18절입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이나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5:18)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는 예수님이며, 성령님입니다. 성령님이 저와 여러분의 영을 지키매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한다고 하십니다. 할렐루야! 우리 성도들은 절대 지옥에 가지 않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신 성령님이 강력한 보호막입니다.
그러면 질문해 볼께요. 예수님을 믿다가 치매에 걸렸다면 그 사람이 천국에 갈까요? 지옥에 갈까요? 만약에 제가 치매걸려 예수님은 없다라고 말한다면 제가 천국에 갈까요? 지옥에 갈까요? 정답은 천국에 갑니다. 악한 마귀의 공격으로 치매 걸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영혼만은 절대 공격할 수가 없습니다. 내 영혼은 성령님이 보호해 주십니다. 이걸 아셔야 합니다. 예수 믿다가 치매 걸린 분도 천국간다.
미국 새들백 교회에서 있던 이야기입니다. 노인들이 드리는 예배에 40여 명이 모였답니다. 헌금 위원이 치매 걸린 할아버지입니다. 헌금함을 들고 다닙니다. 옆에 한 사람이 도와줍니다. 새들백 교회의 노인 예배가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하나가 되는 모습, 정상인과 치매 걸린 자가 하나가 되는 모습. 하나님이 원하는 모습이 아닐까요?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악한 영들과의 싸움을 돕습니다. 하나님이 돕지 않으면 악한 영과의 싸움에 승리할 사람이 누구입니까? 육체를 지닌 사람이 영적인 존재와 절대 싸워 이길 수 없습니다. 2000마리 귀신들린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그 귀신이 돼지떼에 들어갔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안에도 어둠의 영들이 많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함께 하셔서, 이 악한 영들의 공격에서 우릴 보호해 줍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의지할 때, 성령님의 능력을 부어주시고, 악한 영들을 이기게 하십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악한 영들아, 예수님의 이름으로 떠나가라.
성령님이여, 나를 도우소서.”
셋째, 성령님은 진리의 영입니다.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14:17)”
성령님은 우리에게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말씀하신다. 성령님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영이시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성령님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구원자임을 믿게 하신다. 우리가 아무리 예수님을 믿고자 해도 성령님이 돕지 않으면 믿어지지 않는다.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역할이 중요하다. 성경은 예수님에 대해 증거하는 책이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5:39) 구약은 다시 오실 예수님에 대한 책이며, 신약은 이 땅에 오신 예수님에 대한 책이다. 성령님이 성경 말씀이 진리임을 믿어지게 한다.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시다. 성령님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하십니다. 성령님은 또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떠오르게 하시고 생각나게 하신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14:26) 성령님은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스승이십니다.
어느 기도원에 200여명이 모여 장애를 가진 아이의 치유를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중보기도를 인도하시는 목사님이 회중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람 있습니까? 만약 있으시다면 자기가 들은 성령님의 음성을 나누어 줄 것을 부탁드립니다.” 어느 목사님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공개적으로 성령님의 음성을 나누기를 거절하였습니다. 그리고 장애아이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조그만 방으로 불러서 말합니다. 아이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당신은 이 아이를 임신했을 때 당신의 주먹으로 당신 아내의 배를 쳤습니다. 당신은 팔꿈치로 당신의 아내를 내려찍었습니다. 당신은 배속의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난 너를 원하지 않아”. 주님께서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이 아이가 장애를 입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당신이 매일같이 아내와 아이에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면 아이를 치료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저는 모태신앙으로 통합측에서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었고, 은혜도 많이 받았습니다. 성령충만한 목회자 아래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은 삶의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저 목회자에게 의존할 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제가 목회하면서 하나님은 놀라운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영적반응’입니다. 매 사건마다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하나님이 관심을 가지고 본다는 것입니다. 육적인 반응은 누구나 다 합니다. 화가 날 때, 화 내고, 미운 사람이 있으면 미워하고, 싫은 사람이 있으면 험담하는 것은 누구나 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원하지 않으시고, 다르게 행동하길 바라셨습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기 원하셨습니다. 이것이 영적반응입니다. 저는 이 진리를 깨닫게 하신 성령님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의 영혼입니다. 눈에 보이는 성전보다 심령성전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룩훈련, 믿음훈련, 사랑훈련을 합니다.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해서 말입니다.
아내가 이런 기도를 드렸단다. “하나님, 영적반응을 훈련시키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교회가 문을 닫게 해 주세요. 그러나 우리가 하는 이 사역을 주님이 기뻐하시면 교회가 부흥하게 하옵소서.”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시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게 하신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내 영혼이다. 육적으로 풍요를 누릴찌라도 영혼이 궁핍한 자가 있다. 겉으로 화려해도 영혼이 정결치 않은 자가 있다. 하나님은 심령성전을 정결케 하라고 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거룩훈련을 한다. 믿음훈련, 순종훈련, 사랑훈련을 한다. 하나님의 권능으로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서 말이다.
성령님이 없이는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마음껏 역사하도록 우리를 거룩하게 합시다. 성령충만을 사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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