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신 강단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다

박도식 2022. 6. 15. 15:41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의 복

마태복음 5:10-12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으니라

 

포인트 워드:

목적: 하나님 앞에 우리는 복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인가?

 

성경을 가슴에 안고 고백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영혼의 양식이며, 영적전쟁에 무기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한국 사회를 표하는 3가지 3불이 있습니다. ‘불법의 시대, 불륜의 시대, 불신앙의 시대한국 사회는 정치인들부터 불법을 저지릅니다. 내로남불이 너무나 팽배해져 있습니다. ‘검수완박법으로 정치인들이 죄를 저질러도 처벌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불륜이 심합니다. 음란이 팽배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의 정절이 여지없이 깨어지고 있습니다. 불신앙이 팽배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데 실제로는 믿지를 않습니다. 수많은 신앙인들이 진짜는 믿음이 없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서 살아갑니다. 기적의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3불의 시대에 우리는 믿음을 유지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리 사랑과 효를 비교해 볼까요? 내리 사랑은 자연적입니다. 그냥 사랑이 갑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고, 손자 손녀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런데 효는 다릅니다. 아랫 사람이 윗 사람을 사랑하며 섬겨야 합니다. 그래서 힘든 것입니다. 내려가기는 쉽지만 올라가는 것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 사회의 흐름이 불법의 시대, 불륜의 시대, 불신앙의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면 살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신앙인들은 이 시대를 따라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시대 흐름을 거스르며 살아야 합니다.

 

어느 성도님은 IT 기업의 본부장입니다. 부하 직원들이 50명입니다. 그런데 백신을 맞지 않았습니다. 백신에 대한 부작용이 방송이 되었습니다. 회사에서는 왜 백신을 맞지 않느냐고 항의가 들어 옵니다. 그러나 본인은 맞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선포합니다. “내가 백신을 맞지 않아서 회사에 도움이 안 된다면 사표내겠습니다.” 그랬더니, 결국 백신에 대해 강요하는 것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지금 시대는 예수님을 믿는 것이 어려운 시대입니다.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려고 하면, 박해가 주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본문을 통해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는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이 것임이라”(5:10) 예수님 때문에 박해를 받는 자는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8(심애온의 긍마화의)는 결국 천국에 가는 자의 삶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하면 천국이 임하고, 애통하는 자 되고, 온유한 자가 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됩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되고,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됩니다. 천국의 사람들은 화평을 이루어가고, 신앙이 깊어지면, 박해를 받아 순교하고 영원한 천국에 들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유교에서는 5복을 말합니다. “, , 부귀, 강녕, 고종명죽을 때 평안하게 죽는 것이 복이랍니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이 최고의 죽음입니다. 순교가 최고의 복입니다. 왜 그럴까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가 어떤 복을 누릴까요?

 

첫째,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기 때문입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5:11-12)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면 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넓은 길을 제시합니다. 편안하고 쾌락이 있고 즐거운 길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좁은 길을 따라가라고 말씀합니다.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술도 마셔야 하고, 담배도 피워야 합니다. 뇌물도 주고, 23차 까지 가야 합니다. 아니면 접대하는 일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삶을 멈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고난을 받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찬송가 376장입니다. “불같은 시험 많으나 겁내지 맙시다 구주의 권능 크시니 이기고 남겠네.”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 전서 4:13-14절에서 말씀합니다.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벧전4:13-14) 박해를 받는 것은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일이랍니다. 예수님이 영광 중에 오실 때에 우리로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영이 우리를 우리 위에 있다고 말씀합니다.

 

세상은 출세하는 것이 복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믿음 때문에 고난당하는 것이 복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늘에서 상이 크다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고난받는 것을 기뻐하였습니다.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1:24) 교회 공동체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남은 고난을 자신의 육체에 채운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받는 고난을 본인도 몸소 받는다는 것입니다.

 

예화) 노량진 교회 소년부 이북선 안수집사 간증

교회학교는 유아부 유치부 유년부 초등부 소년부 중등부 장년부가 있습니다. 소년부는 초등학교 5-6학년을 의미합니다. 소년부 선생님이 60대 중반의 할아버지였는데, 연초에 자기 반에 8명이 있었는데, 막상 반을 맡고 보니 2명이 나오더랍니다. 잃어버린 양을 찾아 심방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노량진 교회 뒤편에는 달동네가 많았다고 합니다. 한 집에 찾아가서 아들을 찾게 됩니다. “어디서 오셨나요?” “, 노량진 교회 소년부에서 왔습니다.” 그러자 아이 엄마가 말 없이 집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더니 바가지에다 소금을 담아 가지고 나와서 얼굴에 확 뿌려버리더랍니다. 얼떨결에 소금 세례를 받았습니다.

 

소금이 눈에 들어와서 얼마나 쓰라리던지 눈을 뜰 수가 없어서 벽을 더듬어 그 자리를 피한 후 전봇대를 붙잡고 서 있는데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지더랍니다. 그때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신 예수님이 떠올랐습니다. 예수님은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사랑해 주셨는데 예수님 때문에 본인이 복음을 전하다가 이렇게라도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웠는지 몰랐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소금이 눈에 들어가서 쓰라려서 울고 나중에는 십자가의 사랑이 너무 감사하고 감격스러워서 눈물이 나오더랍니다. 그 해에 28명까지 출석하는 반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대접받으려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의를 위해 살려고 하면, 때로는 욕도 얻어 먹습니다. 핍박도 받습니다. 모든 악한 말도 듣습니다. 이 때 낙심하지 마시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기 바랍니다. 저도 멱살을 잡혀 본 적이 있습니다. 또라이라는 소리도 들어봤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것은 즐겁고 행복한 일입니다.

 

둘째, 하늘의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상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납니다. 하늘나라에서 상을 받기 원합니다. 하늘에서는 생명책이 있습니다. 생명책에 쓰여진 자들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생명책에 쓰여진 자들 중에 기념책에 기록이 된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특별한 분들입니다.

의인을 기념할 때에는 칭찬하거니와 악인의 이름은 썩으리라”(10:7)

 

하나님은 천국 시민이 다 모인 가운데 기념책에 기록된 자들의 이름, 그들의 행적을 공개할 것입니다. 그 때, 수 천, 수만의 백성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낼 것이고, 하나님은 큰 상을 주실 것입니다. 면류관도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것입니다. 하늘나라에서 큰 상을 받는 것이 최고입니다.

19세기 위대한 설교가 찰스 스펄전 목사님은 말합니다. “하늘에서 면류관을 쓴 자들 중에 이 당에서 가시관을 쓰지 않은 자들은 하나도 없다.”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것은 이 땅에서만 자손대대로 복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늘의 상도 크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옆의 사람에게 축복해 볼까요?

집사님, 하늘의 상이 큽니다.” “권사님, 하늘의 상이 큽니다.” “목사님, 하늘의 상이 큽니다.”

 

어느날 하나님께서 닭과 개, 돼지를 부르시더니 인간 세상에 가서 일을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닭이 인간 세상에 와 보니까 사람들이 너무 게을러 늦잠을 자서 새벽마다 꼬끼오라고 소리를 질러댔답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일찍 일어나는 것을 보신 하나님께서 닭에게 벼슬을 상으로 주어서 닭 머리에 벼슬이 있다고 합니다. 개도 인간 세상에 와 보니까 도둑이 너무 많아서 밤마다 멍멍짖어 댔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잘 했다고 하시면서 개가 원래 다리가 3개였는데 상으로 뒷다리를 하나 더 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소변을 볼 때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다리가 젖을까봐 번쩍 든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돼지도 인간 세상에 왔는데, 별로 할 일이 없는 것같아 그냥 먹고 놀고 잠만 잤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꾸짖으시면서 코를 치셔서 돼지코가 납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 기독교 역사 가운데 가장 예수님을 믿기 좋은 시절에서 태어났습니다. 초대 교회는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얻어 맞고 감옥에 갇히고 온갖 고생을 다했습니다. 우리 어머니는할머니가 팔을 물어 뜯었다고 하잖아요? 머리 끄댕이를 잡아 당기는 수모, 멍석말이를 당하는 고통을 당한 분도 있었습니다. 우리 시대에 이런 고통을 당하는 분들은 없잖아요?

 

우리 신앙이 자만하거나 나태하거나 침체해선 안 됩니다. 우리에게는 영생의 소망이 있고, 이 땅에 사명이 있고, 머지 않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하늘의 상과 면류관이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11:6)

 

우리나라에 많은 선교사들이 왔습니다. 우리나라 의료분야의 여성 개척자가 로제타 홀입니다. 뉴욕 빈민가 무료 진료소에서 인턴 과정을 밟는 중 우연히 미국 감리교 해외 여선교회에서 발행하는 책자를 읽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가려하지 않는 곳에서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하라”(메리 라이언 학장의 글). 로제타 선교사는 중국으로 가려고 했지만, 조선이라는 미지의 나라에 배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조선에 도착하여 짐을 푼 그 다음날부터 보구여관(여성을 보호하고 구제하는 곳)에서 언어도 통하지 않고 도와줄 간호사도 없어서 혼자 진료 순서를 정하는 일부터 약을 나누어 주는 일까지 도맡아 하루종일 환자들과 씨름했습니다. 처음에는 모두들 이상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 보았습니다. 진료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되어갈 무렵, 15살 소녀가 찾아 왔습니다. 그 소녀는 화상을 입어 손가락 3개가 손바닥에 붙어 있어서 결혼도 못하고 가족들에게도 외면당하고 살고 있었습니다. 로제타 선교사님은 그녀의 고통을 헤아려서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는 피부이식수술을 시도했습니다. 그것도 부족한 피부를 자신의 팔에서 떼어 이식해 주었습니다. 이 소문이 조선 사회에 큰 감명을 주었습니다. 소녀의 가족들을 비롯해 이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돌아 왔습니다. 평양에 최초의 병원과 맹인농아학교를 세우고 한국에서 44년간 의료선교를 하고, 한국 여성의 인권운동을 위해 수고했습니다.

 

왜 그녀가 무엇 때문에 처녀의 몸으로 고향 산천을 떠나 부모 형제를 떠나 태평양을 건너 미지의 땅 조선와서 이런 엄청난 사랑을 행할 수 있었을까요? 선교사들에게는 한 가지 믿음이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1126절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11:26)

 

선한 싸움을 싸우고 평생 믿음을 지킨 자들에게는 의의 면류관이 주어지고(딤후4:7-8), 모든 시험을 참고 죽도록 충성한 자들에게는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지며(1:12, 2:10), 맡겨주신 양 무리들에게 본이 되는 자들에게는 영광의 면류관이 주어집니다(벧전4:3-4). 많은 사람들을 예수님께 인도한 자들에게는 소망과 기쁨과 자랑의 면류관이 주어질 것입니다(살전2:19-20). 이처럼 인생은 잠시 잠깐 머무는 이 땅에서 끝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 이후에 영원한 천국과 소망과 상급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도 말씀합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16:33)

 

셋째, 동일한 고난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본문 12절 하반절을 다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5:12)

 

우리가 어렸을 때, 벌을 받으면 함께 받으면 견딜만 합니다. 그런데 혼자 벌 받으면 힘이 듭니다. 예수님을 믿어 고난받는 것이 나 혼자만 받는다면 힘이 들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에 선지자들도 고난을 받았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도 고난을 받았습니다. 말세의 우리도 고난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만 힘들고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스펄전 목사님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자녀를 풀무에 던지실 때는 하나님께서도 그 자녀와 함께 그 안에 같이 들어가신다.”

 

우리가 인생의 고난을 당할 때 잘못 믿는 5가지 거짓된 신화(5 false myths)가 있습니다. 첫째는 나만 고난을 당하는 줄 아니다. 그런데 고난당하지 않은 성도나 주의 종이 없다는 사실입니다(16:24, 14:22). 둘째는 내가 당하는 고난이 제일 큰 줄 압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나와 비교할 수 없는 고난을 겪은 성도나 주의 종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그 고난이 다 헛고생인 줄 아니다. 그러나 지내고 나면, 그 고난은 우리에게 주어진 변장된 은혜요, 축복이요, 영광이라는 것입니다(8:18). 넷째는 그 고난을 아무도 안 알아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고난은 가장 먼저 예수님이 아시고(벧전1:7), 주의 종들이 알고, 교인들이 알고, 가족들도 알고 자손대대로 알아 줄 날이 꼭 다가온다는 사실입니다(고전15:58). 마지막 다섯째는 이 고난의 끝이 없는 줄 압니다. 그러나 고난은 터널과 같아서 언젠가는 끝이 있습니다. 고난을 터널을 빠져 나오면, 광명의 햇살을 대할 날이 꼭 온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향료는 꽃이나 열매에서 추출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고래 기름에서 추출한 것이 가장 향기로운 향료가 되는데, 그것도 보통 고래의 기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병든 고래의 기름에서 가장 향기로운 향료가 나온다고 합니다. 우황청심환의 우황도 병든 소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로키 산맥에서 나무가 자랄 수 없는 수목한계선에서 비바람을 맞고 겨우 웅크리고 앉아 있는 마무가 가장 공명이 잘 되는 최상의 바이올린이 된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난세에 영웅이 나오고, 거친 파도에서 노련한 항해사가 나오듯이 우리의 믿음 생활도 힘들고 어려울수록 진짜 성도가 되어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가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말로 다할 수 없는 핍박과 환난 속에서 마라나타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서로 위로 하고 축복하며 천국의 소망을 불태웠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인 미국을 향해 갔던 청교도들은 “The best thing has not come yet.”(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하며 서로 위로하며 천국의 소망 가운데 일어섰습니다

 

예화) 김주기 권사

197120살의 꽃다운 나이에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독일에 간호원으로 갔던 권사님이 있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시체를 닦으면서 환자들을 섬기면서 살았습니다. 매일 밤이면 부모 형제에 대한 그리움 속에 외로움의 눈물을 흘리며 일해야 했습니다. 한국에 가고 싶었지만, 비행기삯이 아까워 고국에 돌아오고 싶은 마음까지 꾹 누르고 살았습니다.

 

19787년 만에 꿈에 그리던 고국에 돌아 왔을 때, 뜻밖의 불행이 닥쳐왔습니다. 그 다음해 4월 불의의 사고로 뇌를 다쳐서 온 몸이 마비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때의 심정은 기어서라도 한강대교까지 갈 수 있다면, 목숨을 끊고 싶은 심정이었답니다.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꾸준히 재활치료를 받은 후 간신히 걸을 수 있게 되었지만, 3급 지체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기초생활 수급자로 월 40만원을 받으면 살게 되었습니다. 권사님은 엄청난 고난을 겪고 나니 어느 순간 인생이 달라보이기 시작합니다. 고통당하는 이웃의 아픔이 느껴집니다. 어차피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떠나갈 인생인데, 고통당하는 이웃을 위해 살려고 마음을 먹습니다. 어느 날 장애인을 위한 병원이 부족하다는 소식을 듣고 2007년부터 생활비를 쪼개 매월 3만원씩 기부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어려운 삶 속에서도 기부는 삶의 즐거움이라고 말합니다. 인생의 고난 속에서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삶이 큰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세는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더 좋아했습니다.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고난받는 것을 더 좋아한 분입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천국의 사람들은 이 땅보다는 천국에 더 큰 소망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의를 위하여 믿음으로 살 때, 하늘에서는 상이 큼니다. 우리도 이런 믿음으로 박해를 이겨내고 평생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살아가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