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신 강단

환경을 바꾸어 살자

박도식 2021. 10. 27. 16:02

환경을 바꾸어 살자

사도행전 16:25-32

25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검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28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가로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고

30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31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포인트 워드: 변화  

활용: 성령님의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별세의 삶이다. 다르게 살아야 한다. 이 땅을 변화시키는 삶을 살아야 한다.

   

성경을 가슴에 안고 고백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영혼의 양식이며 영적 전쟁에 무기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한신교회 이중표 목사님의 목회는 “별세 목회”였습니다. 목회자 세미나를 하면서 많은 목회자들에게 은혜를 끼쳤습니다. 어떤 분은 감자탕 목회, 어떤 분은 머슴 목회, 어떤 분은 스펀지 목회, 어떤 분은 카말레온 목회를 말합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별세 목회’가 가장 신앙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별세라는 말은 이별 별(), 세상 세() “세상을 이별한다, 세상을 떠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의미가 하나 있는데 다를 별(), 세상 세() '다른 세상'이라는 말입니다. “이 세상을 이별한다는 뜻이 있고 다른 세상을 간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별세라는 단어 속에는 두 가지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별세'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십자가의 죽음이고 다른 세상으로 가는 것이 부활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별세 하면 다른 세상이 없습니다. 죽음으로 끝납니다. 그래서 별세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별세가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별세를 좋아합니다.

 

예수님의 별세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며 그것을 통해서 이루려는 뜻이 세상을 바꾸는 것입니다. 다른 세상을 우리에게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자에게는 가정도 더 좋은 가정, 내 인생도 더 좋은 인생, 사는 날도 더 좋은 날로 바꾸어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면 별세의 은혜를 많이 받든 적게 받든 다 받는 것입니다.

 

 

별세라는 단어 속에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세상을 이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이별해야 됩니다. 나쁜 세상을 이별해야 됩니다. 그래야 거룩해집니다. 두 번째, 예수님과 함께 다른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세 번째, 다른 세상으로 바꾸어야 됩니다.

 

이중표 목사님은 별세의 목회를 실천하다 천국에 가셨습니다. 참 좋은 말씀입니다. 별세 목회, 우리도 별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을 살지만, 예수님과 함께 다른 세상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또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위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빌립보 지역에서 복음을 전파하다 감옥에 갇힌 바울에 대한 말씀입니다. 바울은 별세의 삶을 산 분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복음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요, 가말리엘 문하생이었습니다. 길리기아 다소 성의 사람이며, 로마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 때문에 온갖 고생을 다했습니다. 그의 일생은 고난의 일생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을 전파하다 감옥에 갇힌 바울이 별세의 삶을 사는 것을 살펴 보고자 합니다. 그는 그가 처한 환경을 최고의 환경으로 바꾸었습니다. 그가 바꾼 환경은 무엇인가요?

 

첫째, 바울은 감옥을 수도원으로 바꾸었습니다.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16:25)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감옥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입니다. 살기 힘든 곳입니다. 감옥은 자유가 없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착고에 차여 있습니다. 미래가 없습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죽음의 위협을 받고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는 이 곳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합니다. 감옥은 슬픔이 존재하고, 고통이 존재하는 곳입니다. 축축합니다. 고통의 신음 소리가 들리는 곳입니다. 이런 곳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장소로 만들었습니다. 놀라운 변화입니다.

 

멋지지 않습니까? 온 몸은 얻어 맞고 착고에 차여 있는데, 하나님을 향해 찬양하며 기도하면서 감옥을 수도원으로 바꾸었습니다. 성령님이 역사하는 기적의 현장으로 만든 것입니다. 이것이 별세의 은혜입니다. 감옥에서 드리는 찬양은 뜨거움이 있습니다. 간절함이 있습니다. 진실함이 있습니다. 감동이 있습니다.

 

“찬양하라 내 영혼아 찬양하라 내 영혼아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찬양하라.

 

 

온 몸은 피투성이인데, 몰골이 흉한데 찬양을 드립니다. 기가 막힙니다.

감옥은 노래부르는 곳이 아닙니다. 희망을 상실한 자들이 모인 곳입니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고 불행한 자들이 모인 곳입니다. 바울과 실라의 찬양은 진정한 신앙이 무엇인지 보여 줍니다. 신앙이란 고통스런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최악은 환경에서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지옥같은 감옥을 수도원의 은혜의 향기로 가득하게 만들어 내는 것. 멋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원합니다. 감옥같은 환경을 수도원으로 만들어라. 희망이 없는 곳에 찬양의 꽃을 피워라. 희망을 꽃을 피워라. 하나님이 계신 곳에 은혜가 밀려 옵니다. 희망이 밀려 옵니다.

 

바울과 실라의 찬양은 기적을 가져왔습니다. 땅이 진동했습니다. 옥문이 열렸습니다. 사슬이 풀렸습니다. 간수는 놀랐습니다. 죄수들이 다 도망간 줄로 알았습니다. 스스로 자결하려 했습니다.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말합니다. 28절입니다.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16:28) 간수는 등불을 가지고 바울과 실라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말합니다.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16:30) 바울이 당당하게 말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집이 구원을 얻으리라”(16:30)

 

수도원과 감옥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감옥은 억지로 들어가는 곳입니다. 수도원은 자유로운 결단에 의해 들어 갑니다. 감옥은 죄성이 드러나는 곳입니다. 수도원은 영성이 드러나는 곳입니다. 감옥은 원망, 불평, 탄식이 있는 곳입니다. 수도원은 감사와 찬양, 은혜가 있는 곳입니다. 감옥은 지옥으로 통하는 곳이고, 수도원은 천국으로 통하는 곳입니다. 사도바울은 감옥에 들어 갔으나, 수도원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기도와 찬양이 능력입니다. 감옥같은 현실을 수도원으로 바꾸는 능력입니다. 우리가 인생의 길이 막힐 때, 답답하고 괴로울 때, 기도와 찬양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높일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문제가 하나하나 해결될 것입니다. 어느 곳에 있든지, 기도하는 곳은 기도원이요 수도원입니다. 하나님의 문이 열리는 곳입니다.

 

사람들은 마음 먹기에 따라, 감옥에 살기도 하고, 수도원에 살기도 합니다. 마음 먹기에 달려 있습니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4:23)

 

자유로운 삶에서 원망과 불평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면, 지옥같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고, 악한 영에게 눌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편한 환경 속에서 찬양하며 기도하는 자는 수도원으로 만드는 능력자들입니다. 이들이 별세의 신앙을 가진 자들입니다.

 

예화) 호주 감옥에 들어간 윤치영 목사

청소년 선교하다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청소년 유괴범, 성추행, 죄질이 무겁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기도 응답이 없습니다. 전도하다 감옥에 갇혔는데 괴롭습니다. 하나님께서 환상을 보여 주는데, 감옥에 악한 영들이 가득합니다. 죄수들이 마음에 원망과 불평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 사탕을 줍니다. 전력질주하여 받아가려고 합니다. 매일 한끼씩 한 사람들과 함께 먹습니다. 사람들이 사랑을 받으면서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치료가 일어납니다. 기적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환경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이 성전이며 기적의 현장입니다. 사방이 가로 막혀 있어도 기도하는 자에게 하늘의 문이 열립니다. 우겨쌈을 당하고 답답함을 당하여도 핍박을 받고 거꾸러 뜨림을 받고도 능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바울은 감옥을 별장으로 만들었습니다.

 

별장은 특별한 공간입니다. 사람들에게 쉼을 제공합니다. 위로를 제공합니다. 별장이 한강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깊은 산속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강변이나 바닷가에 별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마음 속이 별장입니다.

 

깊은 산속이나 바닷가의 별장은 경치가 좋습니다. 그런데 별장에는 부자가 사는 곳이 아니라 별장지기가 삽니다. 부자는 일년에 한 두 번이나 갈까 말까 합니다. 부자가 별장에 갈 때, 기분 좋게 가기도 하지만, 근심을 가지고 갑니다. 괴로운 사람은 별장에 가도 마음이 괴롭고 평안이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천국인 사람들은 어디를 가든지 행복합니다. 행복이 소유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마음에서 흘러 나오는 감사가 있는 곳이 별장입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 감옥에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곳에 하나님이 임재하셨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가 별장입니다. 하늘의 위로가 있고 평안이 있습니다. 삶의 모든 염려와 근심 걱정이 한 순간에 사라지는 것입니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 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는 장소가 별장입니다. 찬양은 감옥을 별장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찬양은 곡조 있는 기도라고 하잖아요. 찬양은 3가지의 힘이 있습니다. 위로 올라가는 힘, 가슴으로 파고드는 힘, 밖으로 뻗어나가는 힘. 위로 올라가는 힘은 하늘 문을 여는 힘입니다. 가슴으로 파고드는 힘은 내 속에 자유와 평화, 위로를 줍니다. 밖으로 뻗어가는 힘은 답답한 환경을 열리게 만듭니다. 찬양하는 곳에 천사들이 역사합니다. 영광스런 장소가 됩니다. 놀라온 변화가 바울과 실라의 기도와 찬양 속에 일어났습니다.

 

감옥은 죄수가 있는 곳인데 찬양하면 천사가 있는 곳이 됩니다.

“높은 산이 거친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4:11-12)

 

로마 감옥에서 바울은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합니다. 어떤 형편에서든지 자족하는 비결입니다. 감옥에 살지만, 딴 세상을 사는 것입니다. 별세의 삶을 살기로 결심합니다. 놀라운 신앙입니다. 이곳에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임합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 되었네.

 

455장은 한국인들이 즐겨 부르는 찬송 중에 하나입니다. 이 곡은 청소년을 선도하는 히윗이라는 여사가 작사한 것입니다.

1887년 어느 겨울 날 히윗 여사는 전도하려던 불량 소년이 던진 스레트로 척추를 맞아 7개월동안 병상생활을 하게 됩니다. 병상에 누워서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소년을 원망하고, 증오하고, 탄식하고, 때로는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그의 심령을 감옥처럼 만들어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날 한 흑인 소녀가 병실을 청소하면서 즐겁게 찬송을 부르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너는 무엇이 즐거워서 그렇게 찬송을 부르니” “주님께서 모든 형편과 사정이 찬송으로 변할 수 있는 힘을 주셨으니 즐거울 수 밖에요.” 이 말을 들은 히윗 여사는 큰 충격을 받고 ‘나는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노라 하면서 내 심령은 감옥에 갇힌 죄수처럼 살았구나!’ 그는 원망과 불평으로 살아온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믿음 없음을 깨닫고 회개하면서 참회의 시를 쓴 것이 찬송 455장 시입니다.

 

세 번째, 바울은 감옥을 교회로 만들었습니다.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고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29-32).

 

간수는 죄수들이 탈출한 줄 알고 놀랐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간수를 안심시켰습니다. 감격한 간수는 무릎을 꿇고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지 물었습니다. 바울은 상처입고 갇힌 죄수의 몸으로 도리어 간수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밤 그 시에 간수가 저희를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세례를 받은 후 저희를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33-34).

 

밤중에 빌립보 교회가 탄생됩니다. 빌립보 교회는 빌립보 감방에서 사도 바울이 간수를 전도함으로 탄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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