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신 강단

내 성격을 치유하라(엡6장)

박도식 2021. 8. 15. 09:53
내 성격을 치유하라

에베소서 6: 4
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포인트 워드: 성격
활용: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품을 주셨다. 우리가 어떤 성품을 가져야 할 것인가? 하나님 말씀에 의해 생각해 보자.

성경을 가슴에 안고 고백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영혼의 양식이며 영적 전쟁에 무기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무더운 날씨에 여기까지 오신 여러분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환영하며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큰 은혜를 베푸시길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을 공동번역으로 읽겠습니다. “어버이들은 자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지 말고 주님의 정신으로 교육하고 훈계하며 잘 기르십시오”(엡6:4)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누구든지 부모님을 통해서 태어납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시는 분이 바로 부모님입니다. 우리는 부모님에게서 체질을 받고 태어납니다. 외모와 건강, 모든 성격까지도 다 부모를 닮고 있습니다. 우리의 음성까지도 부모의 음성을 닮아 갑니다.
때로는 아들에게서 아버지의 음성이 묻어 있고, 딸의 음성에서 어머님의 음성이 묻어 있습니다. 가족 간에서 목소리가 닮는 경우가 있어요.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의 언행을 자식들이 보고 자란다는 말입니다. 부모의 성품을 자녀들이 쏙 빼닮게 됩니다. 이 세상에 나를 닮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신비롭기도 하고 고맙기도 합니다. 그런데 자녀 입장에서는 다릅니다. 부모로부터 좋은 성품을 물려 받은 사람은 행복합니다. 좋은 부모 만난 것이 축복입니다. 그러나 욱하는 성품을 지니거나, 불평하는 성품, 게으른 성품, 남을 의지하는 성품을 지닌 사람은 불행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박씨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우리 집안에는 욱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합니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욕을 해 댔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저의 아버지의 모습이었고, 어머니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 집안에서 제 성품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이 제 딸입니다. 저의 어머니의 모습, 제 모습, 딸의 모습이 똑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변화가 일어나자 딸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자녀를 제자 삼으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물려 주어야지, 나쁜 것을 물려 줘서는 안 됩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여러분의 성격이 마음이 안 든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 성격을 고치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첫 번째, 하나님은 욱하는 성질을 고치라고 말씀합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4)

우리가 화를 내는 것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자기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감정은 “희노애락애오욕”입니다. 기쁘고 즐겁고 슬프고 화를 내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절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욱하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 감정의 표출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주변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 때문입니다. 감정을 참다가 한 번 터트리게 되면, 더 큰 사고를 불러 일으킵니다.

학자들은 36개월까지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 때, 아이들이 성품이 형성된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면, 배가 고픈데 웁니다. 그런데 엄마가 먹을 것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면, 아이는 더욱 힘차게 웁니다. 그래도 먹을 것을 주지 않으면,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자신도 믿을 수 없고, 남도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성경에 도마라는 제자가 나옵니다. 의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손바닥이나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아야 예수님의 부활을 믿겠다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합리적인 사람이죠? 그러나 의심이 많다는 것은 성장하면서, 제대로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배고플 때, 제대로 젖을 얻어 먹지 못했거나, 응아를 했는데, 부모님이 뒤처리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고통스러운 때, 부모가 아이의 고통을 알아 주지 않았기에 본인도 믿지 못하고, 남도 믿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 안에 욱하는 성질이 있다면, 이걸 고쳐야 합니다. 부모님이 반항적인 아이로 길렀습니다. 본인 잘못이 아닙니다. 부모님의 교육이 잘못된 것입니다. 부모님도 잘 몰랐기에 자녀를 대적하는 마음을 심어 주었습니다. 욱하는 성질을 가지게 했던 것입니다.

감옥에 들어가 있는 95%의 사람들이 후회하는 것이 있답니다. “그때 좀더 참았을걸” 한 순간의 감정을 이기지 못해서 돌이킬 수 없는 죄악을 저지른 것입니다.

어떤 분은 개를 키웁니다. 부인이 10년 동안 외도를 했습니다. 남자가 10년 만에 이 사실을 알고, 딸들을 죽이려고 합니다. 부인을 괴롭히는 것은 자식을 죽이면 된다고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딸들이 핸드폰을 켜고 친구와 연락하는 바람에 경찰의 습격으로 큰 사고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개를 패는데, 무지막지 하게 팹니다. 아버지가 늙고 활동력이 없자, 이렇게 말합니다. “저 놈은 왜 빨리 안 죽어. 아버지가 돼서 우리에게 해 준 것이 뭐야?”

신앙인들 가운데에도 감정이 난폭한 자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옳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 치유받아야 합니다. 다행해 우리 교인들 중에는 악한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나, 다른 신앙인들의 분노를 참지 못해서 심한 말을 해대고 인생을 끝내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칼을 쓰는 자는 칼에 죽고, 화를 쏘는 자는 활에 죽습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말에 의해 고통을 당합니다. 마찬가지로 화를 잘 내는 사람은 불같은 성격 때문에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도 불같은 성미 때문입니다. “낯빛이 변하는 것”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분하여 하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잠29:22)
(An angry man stirs up dissension. and a hot-tempered one commits many sins.)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16:32)

하나님이 가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창4:6)
하나님은 가인과 그 예물을 열납하지 않으셨습니다. 가인이 드린 예물과 가인 자신도 받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그 성품이 바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성품을 정당화 해서는 안 됩니다. 나쁜 성품은 바꾸어 내야 합니다. 자신을 바꾸는 것이 쉽지는 않지요? 그래도 해야 합니다. 욱하는 성질, 그것이 마귀입니다. 욱하는 성질을 이용해서 죄를 짓게 합니다. 우리 인생을 망가뜨리려는 악한 영의 작용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모가 자녀를 노엽게 합니다. 자녀들의 약을 올립니다. 자녀들을 기분좋게 하지 않습니다. 말로 상처와 아픔을 줍니다. 이걸 멈추어야 합니다.

저는 어느 목사님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72세입니다. 한의사입니다. 목사님입니다. 이분이 이런 말을 합니다. “아이들이 5살 될 때까지 아이들에게 존댓말을 썼습니다.” 제가 물어 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어요?” “예, 아이들이 좋은 것을 배우기 원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 존댓말을 쓰는 목사님이 자녀들에게 함부로 말을 하거나, 화를 내게 했을까요?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야고보와 요한은 불같은 성미의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별명이 우레의 아들(보아너게)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사마리아 지방을 통과하려 할 때, 지역감정 때문에 예수님과 일행을 받아 주지 않았습니다. 야보고가 말합니다.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다.” 그는 분노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야고보와 요한을 꾸짖었습니다. 결국 성령을 받고서 야고보는 제자들 중에 첫 번째 순교자가 되었고, 요한은 마지막까지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변해야 합니다. 성령님을 만나면, 분노의 성품이 온유한 성품으로 변합니다.

부모님들 중에 욱하는 분들이 있다면, 변화를 위해 기도하세요?
자녀들에게 좋은 본을 보이지 못한 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세요?
본인의 분노도 빠지고, 자녀들의 분노도 치료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깨닫고 회개할 때, 역사하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술을 마시는 습관을 끊으라고 말씀 합니다.

부모로부터 술을 배운 사람은 술을 마셔도 술에 의한 실수를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술에 대해 엄중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잠언 31장에서 왕의 어머니가 자녀에게 교훈하는 것입니다. “르무엘아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왕에게 마땅치 아니하고 왕에게 마땅치 아니하며 독주를 찾는 것이 주권자에게 마땅치 않도다 술을 마시다가 법을 잊어 버리고 모든 간곤한 백성에게 공의를 굽게 할까 두려우니라 독주는 죽게 된 자에게 포도주는 마음에 근심하는 자에게 줄찌어다.”(잠31:4-6)

이스라엘은 물이 부족하여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음료수와 같았습니다. 이스라엘에서 포도를 수확하는 것은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런데 왕의 어머니는 포도주를 금합니다. 술을 마시다가 법을 잊어버리고 백성들의 아픔을 외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잠언 23장은 적나라 하게 표현합니다.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없는 창상이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 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이것이 마침내 뱀같이 물 것이요 독사같이 쏠 것이며 또 네 눈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망령된 것을 발할 것이며 너는 바다 위에 누운 자 같을 것이요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을 것이며 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잠23:29-35)

술을 마시는 것은 나쁜 습관이다. 기분 나쁜 일이 생기면 몇 가지 해소 방법이 있다. 잠을 자는 것, 운 동하는 것, 술을 마시는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좋게 생각하는 것이지만, 이것은 쉽지 않다. 사람들이 가장 쉽게 선택하는 방법은 술을 마시는 것이다. 술에 힘을 의지하여 감정을 풀어내고 싶어 한다. 그런데 때로는 술이 독사같이 우리를 쏘고, 우리 인생을 망가뜨리게 된다. 술에 대한 좋은 감정보다 나쁜 결과가 훨씬 많다.

예전에 영화를 보았다. 부산에서 마약왕으로 활동하던 사람의 이야기이다. 영화에서 마약에 빠지면, 제일 먼저하는 것이 있다고 한다. “아내를 죽이다. 가정을 망가뜨린다.” 자기의 의지를 전혀 통제할 수 없기에 아내를 죽이고, 가정을 망가뜨리고 결국 자기도 마약에 의해 죽게 된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술을 마시게 되면, 결국 술에 의해 인생을 망가뜨린다. 음주 습관은 알콜의존증을 가져 온다. 술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최후의 상태까지 간다. 결국 술에 의해 인생을 망가뜨리는 것이다. 예전에 친구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가? 정치가 꿈인 친구이다. 정치에 발을 디뎌 놓고, 국회의원이 되려고 했다. 지역구에 출마하려면, 지역 경선에 나가야 한다.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경쟁자들을 물리치려고 로비도 해야 한다. 결국 친구는 술에 취해 거실에서 그대로 죽었다. 좋은 친구였는데, 안타깝다. 외대에서 공부해서 박사까지 되었는데, 그 수많은 세월을 공부했는데, 결국 술에 의해 인생을 마감한 것이다. 어떤 분은 알콜 중독인 줄 안다. 술 잔을 들고서 그대로 죽은 사람도 있다.

술을 좋아하는 자, 결국 술에 의해 죽는다. 술을 끊는 것이 쉽지 않지만, 그래도 끊어내야 한다. 요즘은 쉽지 않은 것이 달콤한 술이 나왔단다. 음료수 같이 맛있고, 달콤한 술이 나와서 유혹을 한단다. 처음에는 맛이 있다가 점점 알콜 도수가 올라가면, 그대로 습관이 되어 버린다.

어거스틴은 고백록에서 습관의 폭력을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다른 사람의 쇠사슬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의지의 쇠사슬에 묶여 있었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내 의지가 왜곡되어 육욕이 생겼고, 육욕을 계속 따름으로써 버릇이 생겼으며, 그 버릇을 저항하지 못해 필연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의지가 건전하고 올바른 의지가 아닌, 불건전하고 왜곡된 의지에 스스로 묶여 노예로 전락한 것이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나쁜 습관을 끊어야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감사한 것이 술을 먹지 않는 것이 감사하다. 술을 먹을 수 있었지만, 먹지 않은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세상에는 술보다 좋은 것이 있습니다. 성령 충만입니다. 성령충만과 술 충만이 거의 같다고 말합니다. ① 우선 기분이 좋아집니다. 술을 먹어도 기분이 좋고, 성령 충만을 받으면 기분이 최고입니다. 현실은 힘들어도 성령 충만을 받으면 행복합니다. ②또한 노래를 부릅니다. 술에 취해 노래를 부르고, 성령 충만을 받으면 찬양이 나옵니다. ③ 용감해집니다. 술에 취하면, 술기운에 무서울 것이 없고, 성령충만하면 담대합니다.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④ 취하면 혀가 꼬부라집니다. 성령충만하면 혀가 꼬부라져 방언을 받습니다. ⑤ 취하면 역사가 나타납니다. 술 취하면, 아무데나 오줌을 쌉니다. 때려 부수고 욕을 합니다. 성령에 취하면, 눈물이 나오고, 감사가 나오고, 찬양이 나옵니다.

다른 점도 있습니다. 술 취하는 장소는 술집이지만, 성령 충만의 장소는 교회입니다. 또한 술은 취하면 취할수록 돈이 많이 들지만, 성령에 취하면, 공짜입니다. 술에 취하면, 미친놈이 되지만, 성령에 취하면 성자가 됩니다. 술에 취하면, 부부싸움을 하지만, 성령에 취하면, 부부금술이 좋아집니다. 술에 취하면 가정이 지옥이 되지만, 성령에 취하면, 가정이 천국이 됩니다. 술에 취하면 가정이 불행하고 자녀가 불행합니다. 그러나 성령에 취하면 가정이 행복해지고, 자녀들이 행복합니다.

선택은 여러분 몫입니다. 술에 취해 살겠습니까? 성령 충만해서 살겠습니까?

셋째, 남에게 의존하며 살아가는 습관을 끊어야 합니다.

발달 심리학에서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스스로 행동할 수 있고,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부모님이 아이들의 요구를 다 들어 주면, 자녀들은 남에게 의존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집니다. 어떤 사람은 어려서 부모에게 의존합니다. 결혼하면 남편에게 의존합니다. 늙으면 자녀에게 의존합니다. 이것이 행복한 것처럼 보이지만, 불행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서로 의지하고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적 자립을 하지 못하고 심리적으로 자립을 하지 못하면, 얼마나 불행한가요? 예전에 어떤 분은 나이가 70이 넘어도 정신연령은 어린 사람을 보았습니다. 어느 목회자와 통화하면서, 30분이나 한 시간 이상 통화합니다. 특히 막내아들, 막내 딸, 외아들, 외동딸에게 이런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장남이나 장녀에게서도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독립이 되어야 하는데 늘 의존적인 생각을 가지면, 안 됩니다. 늘 남의 의견을 듣고 행동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늘 나라의 대사입니다. 우리 신앙인의 정체성을 디모데전서는 3가지로 말합니다. “군인, 농부, 일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군인들, 특히 장군들이어야 합니다. 늘 이등병이나 만년 병장처럼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장군들과 졸병은 행동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 전혀 다릅니다. 졸병들은 상관의 명령만 따릅니다.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사람에게 의존하려 하지 말고, 하나님께 의존하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모시고 있기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하는 능력이 없으면 얼마나 많은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지 모릅니다.

심리학에서 “성인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몸은 어른인데 그 내면은 어린 아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정신연령이 높지 못한 것입니다. 성인 아이는 과거에 어렸을 때, 상처 입은 모습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성인아이의 대표적인 예가 한밭제일교회 이영환 원로 목사님입니다. 이분은 혀가 짧아 발음이 분명하지 못합니다. 더듬거립니다. 배움도 짧습니다. 이분에게는 7살 때,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집안에서 형은 어머니가 업어 주고, 동생인 본인은 걸어다녀야 했습니다. 형이 딸들만 태어난 집에서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부모님 사랑을 받고 싶어 떼를 쓰고 소리를 지르며 발악을 했습니다.

그의 나이 7살 어머니가 대단한 결심을 합니다. 아들의 못된 버릇을 고치려고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고고 때립니다. 아들은 욕을 하면서 덤빕니다. 그러나 7살 아이가 절대 엄마를 이길 수 없었습니다. 그 이후로, 목사님은 성장했지만, 그의 정신 연령은 어린아이 같았습니다.
그가 목사가 되고, 개척을 했어도 정신 연령을 항상 어린아이 같았다고 합니다. 38세가 된 어느 날,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환상 가운데 한 아이를 보여 줍니다. 아프리카 흑인들처럼 바짝 마른 아이입니다. 자세히 보니, 본인이었습니다. 7살 때, 어머님께 사랑을 받지 못하던 아이. 그 아이를 끌어 안고 용서를 구할 때, 눈물이 흘러 내립니다. 목사님은 성인이었지만, 그 안에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기질이 다릅니다. 그러나 성격은 성장하면서 부모님이나 외부의 영향을 받습니다. 우리는 좋은 부모를 만나 좋은 기억을 가질 수 있고, 아니면 나쁜 상처를 지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내 안에 잘못된 인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성인 아이. 우리 안에 자라나지 못한 아이가 옛날 모습 그대로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의 내 모습과 과거의 내 모습을 용서하고 축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네 잘못이 아니야” “너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야.” 내면의 아이를 일으켜 세워주고, 축복해 주세요. 그러면, 우리는 남을 의존하는 자가 아니라, 떳떳한 성인으로 오늘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저희 딸의 아픔은 어렸을 때, 엄마가 집 밖에 내놓고 문을 잠근 일이었습니다. “엄마가 진짜 내 엄마 맞아. 엄마라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어.” 딸 아이의 아픔이었습니다. 저는 딸의 말을 들으면서 제가 아내에게 했던 행동을 회개합니다. 아내가 만두를 도와주러 어느 집에 갑니다. 그러면 아침에 나가서 밤에 들어 온 적이 있습니다. 신혼 초인데, 제가 화가 나서 문을 잠근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 제가 했던 그 행동으로 인해, 아내도 딸에게 문을 잠갔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회개하고, 아내와 딸에게도 회개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는 본의 아니게 부모님의 성품을 닮아갑니다. 때로는 욱하는 성질, 화를 참지 못하는 성품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부모님들도 아픔을 지닌 분들이기에 화를 푸는 방법을 몰랐던 것입니다. 어떤 분은 술을 마시고, 폭력을 행사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이것은 결국 자신의 인생을 망치고 남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입니다. 마지막으로 의존적인 사람, 내면이 성숙하지 못한 어린 아이로 사는 분들이 있습니다. 과거의 기억을 떠 올리고, 성장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할 것을 부탁합니다. 사람은 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못고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만났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성품을 만들어 가십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성령님께서 하시는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성격이 원만합니까? 아니면 마찰을 일으킵니다. 누구 잘못도 아닙니다. 부모님의 잘못도 아닙니다. 부모님도 몰라서 그랬습니다. 악한 귀신놈들 때문입니다. 부모님의 인생에 상처를 주고, 우리의 인생에 상처를 주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성령님 안에서 끊어내야 합니다. 분노의 감정, 술, 싸움을 좋아하는 성질, 남에게 의존하고 피해를 주려는 생각. 반항하는 성격. 열등감.이제는 끊어내고, 하나님의 아들, 딸로 당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변화되기를 원하는 자에게 큰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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