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신 강단

순교신앙

박도식 2021. 6. 1. 20:05

순교 신앙

갈라디아서 2:20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포인트 워드: 순교(별세)

활용: 알곡이 되기 위해서는 순교신앙을 가져야 한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살아야 한다. 예수님을 위해 고난받는 것보다 더 좋은 축복이 어디 있는가?

 

성경을 가슴에 안고 고백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영혼의 양식이며, 영적전쟁에 무기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오늘은 알곡 신앙 7번째 시간입니다. 우리 같이 한 번 외쳐보겠습니다. 창조신앙, 임마누엘 신앙, 십자가 신앙, 부활신앙, 성령신앙, 제자도 신앙, 순교신앙(별세신앙)

 

예수님을 믿으면서 꼭 알아야 할 사실입니다. 천국에 누가 들어갈까요?

알곡은 확실히 들어갑니다(3:12). 쭉정이나 가라지는 지옥에 갑니다.

기름준비가 된 자들은 확실히 들어갑니다(25:10).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가 항상 되어 있습니다. 기름준비가 안 된 자들은 지옥에 갑니다.

양같은 자들은 확실히 들어갑니다(25:34). 염소같은 사람들은 지옥에 갑니다.

신의 성품에 참여한 자들은 천국에 넉넉히 들어갑니다(벧후1: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벧후1:11) 신의 성품예수님의 성품을 가진 자들은 천국에 갑니다.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예수님을 위해 헌신 충성한 자들은 천국에 갑니다(10:29-3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10:29-30)

예수님을 위해 핍박을 받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수고한 자들은 내세에 영생이 약속되었습니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5:11-12)

순교자들은 천국에 갑니다(20: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하니”(20:4)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입니다.

 

신앙인에게 최고의 영광은 순교입니다. 목 베임을 받거나, 돌에 맞거나, 기름 가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복음을 위하여 이런 고통을 감내했습니다. 초대교회 교부였던 터툴리안은 말합니다.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 되고, 교회는 순교자의 피를 먹고 자란다.”

 

순교는 신앙의 꽃이다. 그런데 우리는 순교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산순교를 말하고 싶다. 살아 있으나 죽은 자의 삶을 사는 것이다. 다른 말로는 별세의 삶이다. 오늘날 순교신앙을 찾기 어렵지만, 신앙인들은 예수님을 위해서 핍박을 받을 줄 알아야 하고, 예수님을 위해 죽을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진짜 신앙인이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첫째, 산 순교를 위해 자신을 십자가에 못받는 과정이 필요하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2:20a)

 

아생교사, 아사교생이란 말이 있습니다. “내가 살면 교회가 죽고, 내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 개인의 삶이나 교회 공동체 민족 공동체에 항상 문제는 자아이다. 내 자신을 내세우고, 나를 자랑하고 싶어 한다. 모든 것을 내 중심으로 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신앙인은 나 중심이 아니라, 예수님 중심이다. 말씀 중심이다.

 

사도바울은 멋진 말을 했다. “내가 십자가에 못박혔다.” 내가 죽었다는 말입니다. 나의 고집, 아집, 이기심, 악한 감정, 교만, 음란, 인색함. 내 자신의 추한 모습을 모두 십자가에 못박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짜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자기 감정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성깔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옛날 성깔 그대로 있는 분은 아직 십자가에 못박지 않은 사람입니다. 토라지고, 미워하고, 시샘하고, 험담하고, 비방하는 분들은 아직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려면, 예수로 살고 예수로 죽어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존재를 십자가에서 찾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5:24) 자기의 감정, 욕심, 이기심, 시기심 등을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자기를 보는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십자가에서 자기의 가치를 발견합니다. 예수님을 죽이면서 까지 구원하고자 했던 한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의 피로 값지게 산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죽으면서 구원받았기에 절대로 인생을 함부로 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자기를 못박고,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매일 다짐합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자들의 삶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세상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라고 합니다. 화가 나는데 어떻게 감정을 조절할 수 있습니까? 미운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모른 채 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본성은 똑같이 미워하고 악담하고 복수해야 시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원수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라고 합니다. 우리는 내가 복수해야 시원한데, 하나님께 맡기라니, 그래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성깔을 십자가에 못 박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힘들지만, 그 길만이 주님을 기쁘게 하는 길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힘이 들겠어요?

 

예화) 김익두 목사

일제시대에 평안도 신천에 유명한 깡패가 있었습니다. 김익두입니다. 사람들은 김익두를 만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할 정도였습니다. 기생충 같고 거머리같은 존재였습니다. 인간 말종입니다. 그런 김익두 목사님은 예수님을 믿고 지역 주민들에게 부고장을 돌렸습니다. “김익두는 죽었다.”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매일 동네를 다니면서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 저 사람은 얼만 전에 깡패였는데.” 그러면, “옛날 김익두는 죽었습니다. 예수 믿으세요.” 하고 다녔습니다.

 

한 번은 부엌에서 설거지 하던 아주머니가 김익두 목사님을 시험합니다. 문 앞에 와서 예수 믿으세요.” 할 때, 설거지 물을 얼굴에 확 뿌려버렸습니다. “죽었나 살았나 보자.” 했더니, 김익두 목사님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합니다. “내가 죽었느니 당신이 살았지 않소.” 옛날의 김익두였다면, 그 아주머니는 벌써 죽었을 것입니다. “내가 죽었으니 당신이 살았지, 내가 만일 옛날 사람이면 당신은 벌써 죽었을 것이요?”

 

산순교신앙(별세신앙)을 가진 자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과정을 경험해야 합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가 나와야 합니다. 말하는 것도 예수님처럼, 행동하는 것도 예수님처럼.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말했습니다. 목사와 장로는 눈에 보이는 예수다. 예수가 나와야 한다.”

 

형제의 모습 속에 보이는 하나님 형상 아름다워라

존귀한 주의 자녀 됐으니 사랑하며 섬기리

우리의 모임 중에 임하신 하나님 영광 아름다워라

존귀한 왕이 여기 계시니 사랑하며 섬기리

 

둘째, 순교신앙은 예수로 사는 것이다.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2:20)

 

우리는 날마다 내가 살아간다. 어떻게 예수로 살까?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다. 어떤 믿음인가? 나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산다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가? 성령님이 함께 하시면 된다.

 

바울이 순교적 삶을 살지 않았는가? 베드로도 그랬다. 야고보도 그랬다. 수많은 제자들이 순교적인 삶, 별세의 삶을 살았다. 육체는 이 땅에 살지만, 마음과 생각은 항상 주님 생각이었고, 천국 생각이었다. 천국의 가치로 이 땅의 삶을 살았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85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맘이 좋거든

주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예수의 넓은 사랑을 어찌다 말하랴

그 사랑 받은 사람만 그 사랑 알도다

사랑의 구주 예수여 내 기쁨 되시고

이제와 또한 영원히 영광이 되소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도 예수로 죽고 예수로 부활해라. 성질을 죽이고, 예수님으로 살아라. 기적이 일어난다. 성막에서도 성전 뜰에는 번제단이 있었습니다. 소나 양, 염소를 잡습니다. 그리고 물두멍에서 손을 씼습니다. 성전 뜰에는 죽이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성막 안에는 떡상, 분향단, 등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입니다. 성전 뜰에서 죽이면, 성막 안에서 살리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순교신앙입니다. 우리 삶의 최고의 변화는 내가 변화받는 것입니다.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적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목적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처럼 살기 위해서입니다. 담배를 끊고, 술을 끊는 것도 변화입니다. 부정한 행위를 끊는 것도 변화입니다. 그런데 자신만을 위해 살던 내가 예수님을 위해 살게 된다는 것이 변화입니다. 이기적인 사람이 이타적인 사람이 된다는 것이 변화입니다.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죽은 자들이 천국에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들에게는 예수님이 삶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 이후로 모든 사람들은 자기 잘난 맛에 삽니다. 우리는 늘 자기의 옮음을 주장하려고 합니다. 남의 탓하기를 좋아합니다. 아담은 하와탓, 하와는 뱀의 탓을 합니다. 우리는 탓을 하고, 지적질하기를 좋아합니다. 내가 선생이 되어 남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그런데 십자가를 지는 사람은 탓을 하지 않습니다. 남의 모습을 통해 나의 모습을 봅니다. 나를 바꾸어 내려고 합니다. 거짓말하는 사람을 보면, 내 안에 있는 거짓은 무엇인가 살펴 봅니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을 만나면, 행동하지 않고 말만 하는 내 모습을 봅니다. 나를 바꾸어 내는 자가 진짜 성동들입니다.

 

예화) 어느 권사 이야기

장로님 부인입니다. 권사가 된지, 20년입니다. 이 가정이 돈이 있습니다. 힘이 있습니다. 목사님을 모셔오면 꼭 내보내는데 앞장을 섰습니다. 10명을 내 보냈습니다. 2년이 한 명씩 갈이치운 것입니다. 처음에는 좋다고 모셔 왔는데, 나중에는 마음에 안 들어서 쫓아냅니다. 그리고 목사님을 새로 모셔 오면, 1년 조금 넘으면 마음에 안맞습니다. 하루는 이 권사님이 딸에게 전화합니다. “, 목사님 설교가 은혜가 안 된다.” 또 목사를 내 보낼 작정입니다. 딸이 책을 한 권 보냅니다. “나는 매일 죽는다.”(이중표저) “어머니 이 책 읽으면 해결됩니다.”

 

권사님이 그 책을 읽으면서 통곡했답니다. “내가 20년 권사, 예수 잘못 믿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처럼, 나도 죽어야 하는데, 내가 죽지 못했구나.” 내가 죽고 예수로 사는 것이 우리 신앙입니다. 이것이 순교신앙, 별세신앙입니다. 이 땅을 살면서 죽은 사람처럼 사는 것입니다. 하늘나라 가치로 사는 것입니다.

 

신성종 목사님이 8일 동안 천국에 가서 본 결과입니다. 개인적인 체험입니다. 그러나 참고할 만 합니다. 하나님 보좌를 중심으로 12계단에 12종류의 사람들이 있더랍니다. 1번 반열은 주로 순교자들입니다. 사도바울, 손양원 목사님, 주기철 목사님, 이들은 황금 띠를 띠고 있더랍니다. 두 번째 반열이 이 땅에서 전도를 많이 한 성도들입니다. 스펄전, 무디, 허드슨 테일러 등. 3번째 반열이 주님 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끝까지 변절하지 않은 성도들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고난당한 목회자나 성도들이 이 반열이라고 합니다.

 

성경을 연구하고 신학생을 가르친 교수들은 8반열입니다. 10반열은 직분자들이 있었습니다. 11반열에는 평생을 믿었지만, 주님을 위해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는 성도들입니다.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자들입니다. 12반열은 지옥에 가 있을 것 같은 사람이 천국에 온 자들입니다.

 

천국은 하나님 보좌와 가까울수록 큰 상을 받습니다. 존귀한 자들입니다. 하늘의 상이 다릅니다. 그런데 순교자들이 1반열이라면, 우리는 적어도 산 순교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1반열이나 2, 3반열을 되지 않을까요? 천국에서는 앞자리가 금자리입니다. 천국에서 큰 상을 받는 것이 축복입니다.

 

세 번째, 우리는 가정에서 순교신앙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순교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가정은 우리의 안식처요 인생의 요람입니다. 모든 삶의 보람을 느끼는 곳이 가정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사회의 가정이 무너집니다. OECD 이혼률 1위 혹은 2위라고 합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수입 감소와 해고 등 경제적 문제와 맞물리면서 가정 폭력, 가정 불화로 이어진다. 20207월에 혼인은 가장 적었고, 이혼은 가장 많았다. 결혼은 17080, 이혼은 9787.

 

가정에서 순교적인 신앙을 가져라. 별세의 신앙을 가져라. 자신을 죽여라. 그리고 예수로 살아라. 배우자의 부족한 모습을 지적하기 보다, 참고 인내하라. 이혼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성격차이 44.7%, 2위 가족간의 불화 14.4%, 경제적인 문제 13,6%, 배우자의 부정 8.65이다. 성격차이와 가족간의 불화가 59.1%이다.

연애할 때은 얼마나 좋아했습니까? 결혼할 때는 얼마나 행복했습니까? 그런데 결혼을 하면, 자기 본성이 나와 상처를 주고 대화가 단절됩니다. 안 됩니다. 가정에서 순교적인 삶을 살아야 행복한 가정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가정은 천국이 이루어지는 곳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곳입니다.

 

어느 자매가 까다로운 남편을 만나서 살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교회에서 만났지만,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악습이 있어 아내를 괴롭힙니다. 부인은 성전에 가서 울면서 기도합니다. “주님, 기도 중에 만나라 해서 만나 결혼했는데, 남편 때문에 못살겠습니다. 주여, 이 땅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그때 성령님께서 감동하셨습니다. “내가 언제 네 남편 믿고 살라더냐. 내가 언제 네 남편 보고 행복하라더냐. 나를 믿으라. 나를 바라보라.” 그러면서 깨달음이 왔습니다. “나는 예수님의 신부이다. 주여. 이제는 나는 영원한 신랑이신 예수님을 믿고 살겠습니다. 주님을 바라보면서 행복을 얻겠나이다.” 그 때부너 자매의 얼굴이 빛나기 시작합니다. 늘 바가지를 긁던 아내의 얼굴이 변합니다. 아내가 변하니, 남편이 변하고, 부모가 변하니, 자녀들이 변합니다.

 

교회도 순교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각 사람을 보면 다 다릅니다. 어떤 분은 교회를 병원이라고 하잖아요? 눈이 다친 사람, 손이 다친 사람, 발을 저는 사람, 링거를 꽂고 다니는 사람. 우리는 병원에서 말을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왜 당신은 그 모양 그 꼴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똑같은 환자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를 섬기는 것이 하늘의 상이 됩니다.

 

어떤 분은 교회를 목욕탕이라고 합니다. 목욕탕에 가보세요. 때를 미는 사람, 탕 속에 들어간 사람, 양치 하는 사람, 찬 물에 수영하는 사람, 찜질 방에 들어간 사람, 다양합니다. 그런데 목욕탕에서 목욕하려 갔다가 왜 당신은 그 모양입니까? 말하지 않습니다. 목욕 중입니다. 목욕을 다하고 나온 사람하고, 목욕하는 사람하고 같습니까?

 

우리가 삶 속에서 순교적인 신앙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살 때 한 영혼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 중에 항상 마음에 드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사이도 못마땅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으로 포용하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신앙인들은 그 삶으로 예수님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나는 죽고 예수님으로 살아서 꼭 승리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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