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신 강단

예수님의 흔적이 있는가?

박도식 2021. 4. 16. 18:03

예수님의 흔적이 있는가?

 

갈라디아서 6:17-18

17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18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찌어다 아멘.

 

포인트 워드: 흔적

활용: 사람들은 흔적을 남긴다. 우리 그리스도들이 남겨야 할 흔적은 무엇일까?

 

다같이 따라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영혼의 양식이며 영적 전쟁에서 무기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건물을 보면, 머릿돌이 있습니다. 누가 세웠고, 누가 도움을 주었는지 알리는 것입니다. 영화를 보면, 사람이나 소에 낙인을 찍는 경우가 있습니다. 소의 주인이 누구인지 표시하는 것입니다. 도둑질을 하다 걸리면 사람 이마에 “ST"라고 찍습니다. “sheep thief” 양도둑이란 표시입니다.

 

그런데 이런 흔적은 육체가 사라지는 순간 사라집니다. 영원한 흔적이 아닙니다. 그런데 바울은 죽어도 사라지지 않는 흔적을 자랑합니다. “예수님의 흔적”(the marks of Jesus”)입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흔적을 헬라어로 스티그마라고 합니다. 

 

이 땅의 흔적은 사라져 버리지만, 예수님이 주신 흔적은 영원합니다. 또한 예수님을 위한 흔적도 영원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새겨주신 흔적이 무엇일까요? 십자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특별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요한계시록 141절입니다.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계14:1) 우리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이 쓰여져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섬기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축복의 글자를 새겨 놓았습니다. 그런데 마귀를 추종하는 자들의 이마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참람한 이름이 있습니다. “깡패, 사기꾼 창녀 도둑놈 거짓말쟁이 독사 이단등(계13:1).

 

우리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이마는 거룩한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나는 믿습니다. 여러분도 믿음으로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일생동안 예수님의 흔적을 가져야 합니다. 이 땅에 족적을 남기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영원히 기록되는 흔적은 어떤 것일까요?

 

첫째, 전도의 흔적입니다.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나”(6:17)

 

바울은 전도 여행을 하면서 심한 핍박을 받았습니다. 돌에 맞거나, 감옥에 갇히거나, 강도의 위험도 경험하고 바다의 위험도 경험했습니다. 예수님을 전하다, 사형선고까지 당할 정도의 매질과 온갖 고초를 당했습니다. 바울의 몸에 있는 흔적은 바울이 예수님의 제자임을 보여 주는 거룩한 흔적입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 그 흔적은 상급이요 면류관입니다.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았으며 세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11:23-27)

 

우리가 전도하는 현장에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천사들도 함께 하고, 믿음의 선진들도 영으로 함께 합니다. 천사들은 그 장면을 다 찍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를 도와 한 영혼이라고 구원할 수 있게 합니다. 그런데 전도하다 핍박을 받는 장면은 천사들이 다 찍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전도하다 멱살을 잡히거나, 소금 뿌림을 당합니다. “예수쟁이 재수 없다.” 그 장면을 다 찍고 있습니다.

 

대학생 때, 기억나는 책이 죽으면 죽으리라입니다. 일제시대때 신사참배를 반대한 목사님 장로님 권사님들이 평양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안이숙 사모님이 목사님 장로님들이 포승줄에 엮이어 대동강을 건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쓰러지니 다른 사람도 쓰러졌습니다. 피투성이가 되도록 얻어 맞았습니다. 그 장면을 감옥에서 보던 안이숙 사모님이 기도합니다. “하나님, 천사를 보내어 이 장면을 찍게 해 주세요.”

 

예화)

강화도에서 목회하던 어느 목사님이 계십니다. 멀리에서 오는 성도들을 위해 난로를 피웠습니다. 장작이 난로속에서 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장작 속에 6.25때 쏘아 박힌 총알이 들어 있었습니다. 불속에서 총알이 폭발하면서 파편이 눈에 박혀 실명하게 되었습니다. 평생 하나님이 주신 흔적을 지니고 살고 있습니다. 몸에 장애는 입었지만, 하나님 앞에 설 때는 칭찬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 편하게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당하는 고통은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는 다릅니다. 인도에서는 다리를 절단하거나, 발을 부러뜨립니다. 손톱을 뽑습니다. 그렇지만, 놀라운 것은 이들이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특히 북한은 더욱 그렇습니다. 탈북자들이 예수님을 믿고 다시 북한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합니다. 감옥에 잡혀 가지만, 놀라운 것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박해 받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고 산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하늘에서 큰 상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매맞은 흔적이 보석처럼 빛날 것입니다.

 

둘째, 성전을 건축한 흔적입니다.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1:8)

 

다윗의 평생의 소원이 있었습니다. 성전건축입니다. 법궤가 장막에 있을 때, 다윗은 불편했습니다. 하나님의 법궤는 천막에 있고, 본인은 다윗 궁에서 편하게 생활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성전을 건축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입니다. 우리 일생에 교회를 세우는 것처럼 보람있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지금도 벽돌을 나루고 나무를 베어다 성전을 건축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금은 인부들을 사서 건축을 합니다. 콘크리트로 잘 짓습니다. 그러나 모래를 짊어 지고 벽돌을 나르고 창문을 달면서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 기쁨입니다.

 

학개 선지자를 통해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 볼지니라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군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 볼지니라.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1:5-8)

 

이스라엘에게 성전이 없는 가운데는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입어도 따뜻하지 않고, 일군이 삯을 받아도, 구멍 떨어진 전대에 돈을 모음 같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위한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 제일의 복이랍니다. 성전을 건축하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는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답니다. 제 평생에 성전을 건축할 기회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일생에 성전을 건축해 드리는 축복이 임하길 바랍니다.

 

예화) 전남 무안군 청계면 고대리

마을 중앙에 돌로 지은 예쁜 성전이 있습니다. 이 마을에 복음이 들어 왔을 때, 비닐하우스를 쳐 놓고 예배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성도들이 늘어나서 교회를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농촌에서 성전 건축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넉넉지 못한 농촌 살이에 성전을 건축할 물질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처녀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럴 때, 제가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할 일이 무엇입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가르쳐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다가, 자기의 긴 머리카락을 잘라 팔아 건축헌금을 드렸습니다. 윤기나고 긴 아주 좋은 양질의 머리였습니다. 시집갈 때가 된 처녀가 머리카락을 잘랐으니, 교인들이 모두 놀랐습니다. 이 소문이 삽시간에 온 마을에 퍼졌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말합니다. “시집갈 처녀가 머리를 잘랐으니, 어떻게 시집가냐?” 그 이야기를 듣고 처녀가 말합니다. “머리는 또 자랄 것입니다. 시집가는 것보다 성전을 짓는 것이 먼저이고 더 중요합니다.” 교인들이 이런 일이 감동이 되어 정성껏 헌금을 했다고 합니다. 몸을 아끼지 않고 일함으로 아름다운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교도소 100개 세우는 것보다 교회 1개를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눈에 보이는 교회를 세우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마음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어떨까요? 죄를 끊기 위해 몸부림 치며 애쓰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예화) 성 프란시스-마음 성전 세우기

성 프란시스의 일화입니다. 하나는 가시 없는 장미 이야기입니다. 또 하나는 예수님의 흔적을 그대로 지닌 이야기입니다. 프란시스는 자기에세 불만이 있었습니다. 거룩한 자기 불만 속에 빠졌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벌을 주기 위해 앗시시 거리에 있는 장미 밭에 막 딩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다 보니, 그렇게 성결하게 사는 프란시스가 가시 장미 속에 들어가 뒹구는 것이 아파서 천사들을 동원하여 빨리 장미에게서 가시를 없애도록 하였습니다. 그 장미밭은 지금도 가시가 없다고 합니다.

 

또 다른 이야기는 프란시스가 예수님의 흔적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러던 중 정말 몸에 예수님의 십자가 흔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프란시스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프란시스에게 난 못자국, 창자국, 채찍 자국은 빨래하던 여인만 알았다고 합니다. 빨아도 자꾸만 피가 흘렀다고 합니다.

 

셋째, 기도의 흔적입니다.

 

야곱은 일생동안 기도의 흔적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얍복강에서 천사와 씨름하다 환도뼈가 부러졌습니다. 그는 절름발이로 살았지만, 그것은 기도의 흔적이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낙타무릎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얼마나 무릎을 많이 꿇고 기도했으면, 낙타무릎처럼 굳은 살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죠지 물려는 후원자가 없이 2000명의 고아들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먹여 살렸습니다. 모두가 신비하다고 생각할 때, 부자가 조지 물려에게 물어 봅니다. “당신의 돈이 나오는 구멍이 도대체 어디요?” 물려가 알고 싶으면 따라오라고 합니다. 자기의 기도실로 데리고 갑니다. 구멍이 난 방석을 들어 올리면서 말합니다. “이 구멍이 바로 돈 나오는 구멍이요.”

 

방글라데시에서 한 선교사가 17년 동안 복음을 전하여 한 소년의 영혼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 소년의 이름은 엘리아스입니다. 모슬렘 교도 아버지는 참지 못하고 말렸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아버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눈을 칼로 찔러 멀게 했습니다. 그래도 신앙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모슬렘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을 죽이게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는 말을 듣지 않는 아들을 방에 가두고 밥을 주지 않았습니다. 며칠 뒤, 밖으로 부르더니, 맛있는 밥을 차려 주었습니다. 너무나 배가 고파서 먹으려는데, 친척 아주머니가 손을 탁치면서 그 음식을빼앗아 개에게 던져 주었습니다. 개는 받아 먹더니, 금방 죽어버리는 것입니다. 독약이 들어 있는 음식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아들을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 소년은 집을 도망쳐 나오고, 방글라데시를 변화시키는 위대한 부흥사요 전도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눈 하나를 잃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흔적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자녀를 잃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흔적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핍박을 받았습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흔적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공부를 못했나요? 하나님께서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마귀의 흔적, 나쁜 흔적들은 어떤 것일까요?

 

첫째, 문신입니다.

하나님은 문신하는 사람은 가증한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죽은 자를 위하여 너희는 살을 베지 말며 몸에 무늬를 놓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19;28)

 

문신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지금 얼마든지 지울 수 있습니다. 병원에 가서 지워야 합니다. 어떤 분은 성경을 문신하는 분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몸에 문신하는 것보다, 마음에 새기를 것을 원합니다. 사람들은 꼭 하지 말라는 것은 잘 합니다. 목적이 옳다면 문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빌미를 제공합니다. 미국 목사님들은 종종 그런 사람이 나옵니다.

 

둘째, 싸움의 흔적입니다.

싸움의 흔적이 남거나 사고친 흔적이 남습니다. 어떤 분은 칼에 맞은 자국을 자랑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자랑할 흉터가 아닙니다.

 

셋째, 도둑질의 흔적입니다.

예전에는 철조망이 있거나 탱자나무로 울타리를 했었습니다. 개구멍으로 들어가서 복숭아나 사과 배를 서리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어느 목사님은 어렸을 때, 과수원 서리를 하다 들켰답니다. 목사 아들이었는데, “이놈들~”하는 소리에 부리나케 도망가다, 철조망에 등을 찢겼다고 합니다. 등에 난 상처는 아름다운 상처가 아니라, 도둑질하다 들킨 상처입니다. 스스로 잘못해서 얻은 상처입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님 때문에 매맞고 돌에 맞은 흔적을 자랑합니다. 예수님을 위한 영광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살아온 그 흔적을 자랑합니다. “나를 괴롭게 하지 마라. 내게는 예수님의 흔적이 있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에게 흔적을 남기셨습니다.

예수님은 고난의 흔적을 남기셨지만, 우리에게 영생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여러분의 이마에는 거룩한 이름이 쓰여져 있습니다. 제발 이 이름이 지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거룩한 이름이 참람한 이름으로 바뀌지 않도록 진실하고 정직하게 살아야 합니다.

바울의 자랑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와 십자가 뿐입니다.

 

내 안에 예수가 없다.” “내 안에 십자가가 없다.”

이런 사람에게는 거룩한 흔적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도의 흔적, 성전건축의 흔적, 기도의 흔적을 지닌 자들에게는 예수님의 흔적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누구나 이 흔적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알곡 신자들에게는 거룩한 흔적이 있습니다.

 

미스트 트롯에 나온 장향희라는 가수가 부른 척척척의 가사를 볼까 합니다.

겸손한 척 거룩한 척 믿음 있는 척 너도 속고 나도 속는 모두가 속는 나는야 그리스찬

교회 나와 은혜 받고서 돌아서면 땡 너도 취해 나도 취해 세상에 취해 나는야 김기복

매일 매일 성경책 읽고 듣고 싶은 말씀만 듣지 성경일독해 봤으니 나는 나는 천국 갈거야

척척척 하지마 연기하지 마 다 속여도 주님은 못 속여

척척척 모두 착각하지마 너도 나도 모두 죄인일 뿐이야

말씀기도 성령으로 척척 채워라

척척척 연기하지마 다 속여도 주님은 못 속여

너도 나도 우리 모두 죄인일 뿐야 말씀 기도 성령으로 척척 채워라

 

진주를 조개의 눈물이라고 합니다. 상처가 난 곳에 조개가 액체를 분비해서 진주를 만들어 냅니다. 십자가는 고난의 상징이지만, 영광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사형의 형틀이지만, 예수님이 생명의 상징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우리 안에 오직 예수님의 흔적만이 가득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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