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마음을 가져라
에스겔 36장 25-31
25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과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26 또 새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찌라
28 내가 너희 열조에게 준 땅에 너희가 거하여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29 내가 너희를 모든 더러운데서 구원하고 곡식으로 풍성하게 하여 기근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할 것이며
30 또 나무의 실과와 밭의 소산을 풍성케 하여 너희로 다시는 기근의 욕을 열국에게 받지 않게 하리니
31 그때에 너희가 너희 악한 길과 너희 불선한 행위를 기억하고 너희 모든 죄악과 가증한 일을 인하여 스스로 밉게 보리라
포인트 워드 : 마음
활용: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하나님이 주고자 하시는 풍성한 삶을 살고자 한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바쁘다’, ‘답답하다’, ‘피곤하다’, ‘불안하다’라는 말을 흔히 접할 수 있다. 이 네가지 서술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전부 ‘마음’과 연결되어 있다. 또한 그 마음은 우리의 육체와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마음이 힘들수록 육체 또한 피곤하다는 것이다. 실례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약이 위궤양 치료제라고 한다. 위궤양 치료제 중 1986년에 시판된 한 제품은 10년간에 40조원의 판매고를 올렸다. 그만큼 사람들의 마음의 스트레스가 심각하고 평안함이 없다는 말이다.
영국의 정신병 학자인 하드 필드가 이런 실험을 했다. 그의 실험은 사람의 정신적인 암시가 육체의 힘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3명의 남자에게 보통의 상태에서 힘껏 손에 힘을 주게 하였는데 기계로 측정하니 그들의 평균은 45.5kg이었다. “그들에게 당신들은 참으로 약합니다.”라고 암시를 주고 힘을 재어보니 겨우 13kg에 불과했다. 평상시에 3분의 1 이하로 떨어졌다. 그러나 이번에 “당신들은 강하다”라는 암시를 주고 재어보았더니 무려 64kg이 나왔다. 이 실험은 나는 강하다는 적극적인 정신으로 충만해지면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약하다”라고 생각하는 소극적일 때보다 무려 5배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마음이다. 어떤 사람을 마음으로 사랑하면 모든 것이 따라간다. 마음이 없으면 겉으로는 ‘오냐, 오냐’해도 건성으로 할 수 있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인간의 모든 것을 통제하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이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이유를 댄다. 부잣집에서 태어나지 못해서,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뛰어난 재능이 없어서, 남편을 잘못 만나서, 아니면 부모를 잘못 만나서 불행하다 한다. 친구를 잘못 만나서 내 인생이 하루 아침에 망친 것이라 한다. 자기의 불행한 모든 원인이 환경이나 주변사람들에게서 찾고 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 보면 특별하게 잘 나지도 못하고, 똑똑하지도 않지만 행복하며 형통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이 불행한 것은 남에게 있지 않고 그 자신 속에 있다. 스스로가 본인을 불행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의 마음속에 불행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행복하기로 선택을 하는 순간 행복을 위한 노력은 시작된다. 그러나 주어진 환경을 보면서 한탄하고 원망한다면 그것은 마음속에 불행이 프로그래밍되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프로그램으로 새롭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구약에서 마음이라는 단어가 무려 1천 번 이상 사용되고 있다. 하나님이 각 사람의 마음의 동기를 그만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신앙의 선배들도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리가 매일 수염을 깎아야 하듯 마음도 매일 다듬지 않으면 안된다. 한 번 청소했다고 해서 언제까지 방안이 깨끗한 것은 아니다. 우리의 마음도 한 번 반성하고 한번 좋은 뜻을 가졌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의 마음 속에 늘 있는 것은 아니다. 어제 품은 뜻도 오늘 새롭게 하지 않으면 곧 우리를 떠나고 만다.”-마르틴 루터
여기에 모인 교우들은 자신의 마음을 한번 살펴보아야 한다. 과연 내 마음은 어떤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내 마음은 주님 앞에 합격 이라는 인정을 받고 있는가? 아니면 불합격 이라는 판정을 받고 있는가?
오늘 본문에서는 굳은 마음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굳은 마음은 돌같은 마음이다. 굳은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 속에 잘 들어가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죄악을 즐겨 짓는 마음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아무리 순종하고 싶어도 내 마음이 굳어있으면 순종할 수가 없다. 굳은 마음은 죄와 사망의 법에 묶여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이 말씀을 순종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이 새마음로 바뀌어야 한다. 굳은 마음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 순종하게 되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게 된다. 우리가 새마음을 가질 때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면 새마음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새마음을 가지는 것은 운동임을 명심하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목적은 우리를 죄에서 건지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아 하나님 앞에서 흠이 없고 거룩하게 살게 하기 위한 것이다. 단지 예수 믿고 구원받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한 번 살펴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고백하고 있지만 우리 안에 상처를 준 사람들을 떠올릴 때 마음이 편치 못하고 얼굴이 쉽게 일그러진다. 내 마음에 예수님이 계신데 마음속에는 미움이 도사리고 있고 시기와 질투와 분노의 감정이 끊임없이 고개를 들 때가 있다. 용서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들어왔지만 여전히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지 내가 축복할 대상은 되어 있지 못하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림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평온함이 없고 기쁨이 없으며 초조와 불안한 삶을 살고 있다. 내가 내 자신을 보아도 하나님 앞에 떳떳히 나설 수 없는 모습이다. 새로운 마음을 지닌 사람처럼 보이지만 어느 순간에는 굳은 마음을 지닌 사람으로 변해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어디에서 문제가 있는가? 새마음을 가지는 것은 운동처럼 매일같이 하는 것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경은 마음이 새롭게 되지 않으면 늘 부패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렘17:9-10)
타락으로 인해 우리의 마음의 상태는 심히 부패되어 있고 부패한 마음에서 솟아나는 것은 죄악 뿐이다. 칼빈은 타락한 사람을 가리켜 ‘우상을 생산하는 공장’ 이라고 하였다. 스스로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하다가 타락한 인간의 마음에서 생각나는 것이라고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자신을 섬기고 우상을 섬기는 죄악뿐이다.
예화) 조용기 목사님이 판자촌에서 목회할 때 새마음 운동을 일으켰다. 용기와 삶의 의욕을 잃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희망을 주었다. 곧 ‘할 수 있고, 하면 된다, 해 보자’의 정신을 심어 주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일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한 때 박정희 대통령이 조용기 목사님을 불러 우리 민족을 새롭게 하고, 농촌을 변화시킬 좋은 아이디어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 때 조용기목사님은 주저없이 우리의 생각을 바꾸는 새마음 운동만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하였다. ‘할 수 없다’는 생각을 버리고, ‘안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결국 정부에서는 종교적인 색체가 강해서 새마음 운동을 새마을 운동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새마음 운동은 우리 속에 있는 부정적인 생각을 깨뜨리는 좋은 운동이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라는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게 한 것이다. “나는 못한다. 안된다. 할 수 없다”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송두리째 뽑아 버리고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릴 수 있게 하는 운동이다. 새마음 운동은 일종의 훈련이다. 지속적으로 새마음을 갖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환경의 지배를 받으면서 다시 헌 마음으로 돌아간다. 다시 말하면, 예전의 근심 걱정, 용서하지 못한 마음, 미워하는 마음, 불안과 초조한 마음을 가지면서 살아간다. 옛 구습을 좇던 마음을 주님의 마음 곧 새마음으로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명심하라. 지속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신앙인들로 새마음을 온전하게 소유할 수 없다.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한 번의 운동으로 건강이 회복되지 않는 것처럼 새마음에 대한 설교를 한 번 들음으로 여러분이 새롭게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새마음을 갖도록 열망하고 기도해야 한다.
둘째, 주의 보혈로 마음을 씻어야 한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9:14)
세익스피어의 비극인 [맥베드]에서 맥베드가 왕을 죽이고 자기가 왕이 되었는데 손을 아무리 씻고 증거를 인멸해도 마음 속의 살인죄는 없어지지 않았다. 의사에게 가서 도움을 청했더니 의사는 ‘이 병은 내가 고칠 병이 아니니 스스로 마음에서 고치라’고 했다. 그러자 맥베드는 말했다. “오! 아라비아 향수를 다 가지고도 이 손 하나 말끔히 할 수 없는가? 이것을 파내버릴 망각제는 세상에 없는 것일까” 세익스피어는 맥베드의 입을 통해 “죄를 씻을 것은 지구상에 없다. 자기 마음으로도 안된다”고 말했다. 그렇다 이 지구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우리의 죄악을 씻을 수가 없다. 그러나 오직 예수의 피만이 우리의 죄를 깨끗게 하신다.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의 죄를 씻어주는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우리 죄 값을 치르기 위해 십자가에 피 흘리고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 죄는 사함을 받는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엡1:7)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9:22)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없고 점 없는 어린 양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 1:18-19)
지속적으로 우리 마음을 보혈로 새롭게 할 수 있다. 주의 보혈로 씻어 달라고 기도하라. 주의 보혈로 덮어 달라고 기도하라. 주의 보혈을 활용할수록 우리의 마음은 새롭게 된다. 주의 보혈로 우리 심령을 씻으면 유익은 성령님은 정결한 심령가운데 충만함을 허락하시고 은혜를 맛보게 하신다. “예수의 피”를 우리 영혼에 바르라. 우리 마음에 바르라. 굳은 마음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뀌며 새롭게 변한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의 보혈로 나를 덮어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의 보혈로 나의 죄를 씻어 주옵소서”
셋째, 성령이 우리 마음에 임하면 새마음으로 바뀌게 된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율례를 지켜 행할찌라”(겔36:26-27)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새로운 마음, 새로운 영 없이는 하나님의 계명인 율법을 제대로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여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계속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겼고, 아무리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여도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웃을 돌아보지 아니하였던 것입니다. 그 결과로 저들은 점점 더 큰 죄를 지었고, 마침내 나라는 망하고 사람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것입니다. 포로가 된 이스라엘 자손들이 새롭게 되는 길은, 오직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새로운 영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에스겔의 예언입니다.
성령님은 거룩한 영이시다. 우리 안에 있는 부정하고 더러운 것들과 함께 있을 수 없다. 그러기에 우리가 성령님께 의지하면서 내 안에 있는 거짓된 것들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 우리 안에 성령님은 내주하시고 있다. 그분께 여러분의 마음을 내어 드려라. 그리고 그분이 마음을 다스리시도록 하라. 우리 속에 있는 완악하고 굳은 마음을 제거하실 분은 성령님 밖에 없다. 우리는 성령님이 우리 마음을 온전하게 다스리시도록 정권을 이양해야 한다. 성령님이 역사하면 우리 마음은 새로워 집니다.
넷째, 새마음 가지면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회복되고 축복을 받습니다.
“내가 너희 열조에게 준 땅에 너희가 거하여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28절)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곡식으로 풍성하게 하며 나무의 실과와 밭의 소산을 풍성케 하여”(29-30)라고 말씀합니다. 논과 밭에 농작물을 심으면 남들보다 잘되는 복이다. 곡식이 무럭무럭 자라고 병충해도 능히 이길 수 있다. 기근의 욕을 보지 않을 정도로 농토는 기름진 수확물을 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면서 내가 쓸만큼 쓰고 아끼면서 남에게도 나눠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기분좋은 일인가! 하나님의 은혜를 풍족히 받았으니 남에게 나눠주는 것도 인색함이 없이 즐거움으로 나눠주는 일을 생각해 봐라.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사1:19)
새마음 운동은 마음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모습을 닮아가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우리가 이땅에서 풍성한 삶을 살기 위한 운동이다. 우리 안에 치유되지 않은 마음의 상처로 인하여 분노와 용서못함, 원망 배신감을 품고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주고자 하시는 축복을 받을 수 없다. 마음이 새로워지지 않으면 우리는 축복의 대열에서 이탈되고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없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마15:19-20)
재앙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축복의 대열에 설 수 있는 비결은 무리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죄를 회개하고 우리의 마음을 정결케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의 능력으로 마음을 새롭게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여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영육간의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할 때 죄로 인해 굳은 마음은 순종하는 새마음, 부드러운 마음이 되어 하나님을 닮아갈 수 있다.
'성신 강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마음훈련2 (0) | 2021.04.12 |
---|---|
새마음훈련1 (0) | 2021.04.12 |
은사의 복음2 (0) | 2021.04.09 |
네 소망을 회복하라 (0) | 2021.04.04 |
유언을 명심한 자의 축복 (0) | 2021.04.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