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에서 별세하라
에베소서 5:31-33
31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찌니
32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포인트 워드: 가정
활용: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정을 주셨다. 가정은 나를 만들어가는 공간이다. 나를 바꾸어 가야 한다. 나를 변화시키는 공간이다.
다같이 따라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영혼의 양식이며 영적 전쟁에서 무기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서 태어날 때 가정에서 태어나고, 가정에서 자라며 가정을 이루어 살고, 마지막 죽을 때에도 가정에서 인생을 마치게 됩니다. 그래서 가정은 우리 삶의 안식처요, 인생의 요람이며, 모든 삶의 보람을 얻는 지상천국입니다. 가정은 사업보다 중요한 것이요, 성공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며, 이 땅에서 업적을 이루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다. 땅에서 성공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어 살았다면 그 사람은 최상의 성공을 이룬 사람입니다.
현대인의 최고의 비극은 가정이 파괴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OECD가 발표한 것에 의하면, OECD 평균은 1.9명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2.1명이다. 천명당 이혼건수가 2.1건이다. OECD 중 9위, 아시아에서 1위이다. 이것은 불행 중 불행입니다. 전 세계에서 가정을 가장 안전하게 유지했던 이 나라가 무슨 연고인지 최근 10년간에 걸쳐서 사정없이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이혼의 주된 사유 가운데 1위 성격차이 44.7%, 2위 가족간의 불화 14.4%, 3위 경제적인 문제 13.6%, 4위 배우자 부정 8.6%, 5위 정신적, 육체적 학대 4.8%, 기타13.3%로 나타났습니다.
옛날에는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 살겠다고 서약을 했는데 이제는 ‘성격 차이가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또는 ‘식어진 사랑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로 변경해야 할 상황이 되었습니다.
지금 매일 300여 가정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오늘 이 사회의 모든 분야 중에서 가장 위협적이고 파괴적인 위기는 가정의 위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정은 우리 삶의 근거요, 터전입니다. 그래서 가정이 무너지면 사회가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면 전 세계가 무너집니다.
어떻게 파괴된 가정에서 상처받고 자란 아이들이 온전한 사회를 만들어 가겠습니까? 파괴된 가정은 범죄의 온상이 되고 결국 상처받은 아이들은 이 사회를 상처내고 병들게 만듭니다. 동양의 명언대로 흔들리는 둥지에 성한 달걀이 없게 됩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한국의 가정이 무너지고 있느냐? 지난 날 우리의 선조들이 가정의 가치관을 제대로 정립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부모는 되었지만 삶의 가치관을 유산으로 주지 못했기 때문에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산이 바로 가정을 파괴하는 유산으로 전락해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이 무너진 가정을 회복하고 살리기 위해서 성서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가정에서 별세를 실천하라.
첫째, 하나님은 떠날 것을 말씀합니다.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31절)
① 외적인 떠남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 부모를 떠나는 것은 별세로부터 시작됩니다. 부모의 세계를 떠나야 새로운 세계 가정이 태어납니다. 조상 적부터, 더 위로 올라가면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죄악성, 사악성을 떠나야 합니다. 부모를 떠나라는 말은 부모를 버리고 떠나라는 말이 아니고 부모에 대한 경제적, 환경적 의존으로부터 독립하라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
창세기에는 ‘남자가 부모를 떠나’라고 했는데 남자만 떠나서는 안됩니다. 여자도 떠나야 합니다. 떠나라는 말은 과거를 청산하라는 말입니다.
결혼 전에는 부모를 의존하고 살았습니다. 경제적 도움을 받으며 살았고, 부모의 간섭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결혼한 후에는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부모의 간섭에 휘둘리지 말고 자주권을 가져야 합니다.
부모를 떠나 따로 사는 며느리를 불러다가 자꾸 일 시키면 안됩니다. 이제 그도 독립된 가정을 가졌기 때문에 자기 가정을 돌봐야 됩니다. 그리고 집에 방문했을 때도 일 시키면 안됩니다. 손님으로 대해야 합니다.
며느리가 우리 집에 와서 일하려고 하면 절대로 못하게 합니다. “우리 집이니까 너는 편안히 앉아 있어라” 그럽니다. 나도 한 아이의 아버지이지만 그도 한 아이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함부로 대해서는 안됩니다.
② 내적인 떠남
부모로부터 받은 불행한 요소를 떠나라는 것입니다. 성장하면서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 인간성, 습성, 사악성, 혈기, 굴절된 자아상을 버리라는 말입니다. 어렸을 때 받은 상처를 그대로 가지고 살면 가정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아버지가 어머니 구박하는 것을 보고 자란 아들이 결혼해서 자기 아내를 구박할 가능성은 70%입니다. 아버지에게 매 맞고 자란 아들이 결혼해서 자기 자식을 때릴 가능성은 78%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을 다 떠나라는 것입니다.
가정생활 잘하는 것은 공부한다고 되는 것 아닙니다. 박사학위 받았다고 되는 것 아닙니다. 인물이 잘났다고 되는 것 아닙니다. 철저하게 부모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③ 영적인 떠남
옛날에는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도 있었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토속적인 우상을 섬겼습니다. 이런 사악한 부모님의 습성을 물려받아서 우상을 섬겨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을 반역하는 불신의 세계를 떠나야 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네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부모를 떠나는 결단을 했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아비집을 떠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갔습니다.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이 비밀’이 뭡니까? 새로운 세계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결혼한 자녀를 떠나보내는 것은 위대한 결단입니다.
예화)
권사님 한 분이 설교를 듣고는 아들에게 그러더랍니다. “나 떠날란다.” “어머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우리가 뭐 잘못한 것이라도 있습니까” “목사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성경에서 떠나라고 하니까 떠나야 한다. 너희가 오랫동안 나 모시고 사느라고 힘들었지 이제 편안하게 살아라.” 그리고는 얼마 있다가 정말로 전세를 얻어서 나갔습니다. 지금은 따로 살지만 자녀들은 함께 살 때보다 더 효도하고 손주들도 할머니를 더 귀중하게 압니다.
어떤 분들은 자식이 결혼하면 함께 살면서 정들어야 한다고 3년동안 데리고 삽니다. 정이나 안 떨어지면 다행입니다. 신혼도 한 때인데 그 짧은 기간동안 시부모님과 함께 살면 시아버지 기침소리, 시어머니 잔소리 들으면서 얼마나 간이 녹아 내리겠습니까? 얼른 내보내야 합니다. 자녀가 부모를 떠나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서 떠나는 것입니다.
“자녀들아 주안에서 네 부모를 순종하라” 결혼 전까지는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결혼한 후에는 공경해야 합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공경을 어떻게 합니까? 가정을 이루어 살면서 자녀를 낳아 길러보니까 부모님의 마음을 알 것 같아요. 자기도 어렸을 때 그렇게 철부지였을거라 그래서 부모님을 소중히 여기게 되고 공경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할 때 아담을 먼저 만드시고 아담을 에덴동산으로 이끌어 가셨습니다. 에덴은 ‘기쁨, 행복, 즐거움’이라는 뜻입니다. 아담을 기쁘고 즐겁게 살라고 에덴으로 이끌어 가셨는데 행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사 아담의 갈비뼈를 취하여 한 여자를 만드셔서 아담에게 이끌어오셨습니다. 아담은 하와를 보고 첫눈에 반했습니다. “이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로다”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산천이 아름다웠습니다. 옛날에 먹던 과일 맛이 아니었습니다.
혼자 공부할 수 있습니다. 혼자 사업할 수 있습니다. 혼자 일할 수 있습니다. 혼자 밥도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혼자는 사랑할 수 없습니다. 혼자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아담은 사랑할 임을 만나고서야 에덴이 되었습니다. 에덴은 사랑할 사람을 만나는 곳입니다. 천국은 사랑할 사람을 만나는 곳입니다. 우리는 사랑할 사람을 오다가다 만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할 사람을 만들어 짝지워 주셨습니다.
아담은 하와를 만나므로 말미암아 새로운 세계에 들어갔습니다. 새로운 세계는 특별은총을 통해 받는 세계입니다. 일반은총은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천지만물을 통해서 받는 은총입니다. 그러나 특별은총은 자기가 죽고 부활하므로 새로운 세계를 사는 은총입니다. 아담은 죽고 살아나므로 말미암아 새로운 세계를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아담이 자기 아내를 통해서 받는 은혜였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믿음을 가지라고 말씀합니다.(별세의 믿음)
아담이 하와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내 갈비뼈로 만든 여자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여자를 이끌어 오셔서 “이 여자는 네 갈비뼈로 만든 여자다”라고 말할 때 아담은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가정생활은 신앙생활입니다.
교회에 와서 예배하는 것은 교회생활이요, 세상에 가서 사는 것은 사회생활이요, 가정에서 남녀가 사는 것은 부부생활입니다. 그러나 일생동안 부부생활로 끝나면 안됩니다.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신랑(新郞)과 신부(新婦)로 만날 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중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믿어 주어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을 믿어야 합니다. 자녀가 태어날 때, 가장 소중한 것이 부모와의 관계입니다. 배고플 때, 엄마가 젖을 주고, 아플 때 울면, 엄마가 치료해 줍니다. 이걸 통해 아이는 믿음을 배우게 됩니다. ‘세상은 믿을 만 하구나. 나 또한 믿을만한 사람이구나.’ 그런데 만약 배고픈 아이에게 밥을 주지 않으면, 아이는 믿음이 생기지 않아요. 세상도 믿을 수 없고, 부모도 믿을 수 없고, 자신도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가정에서 중요한 것이 서로 간의 믿음입니다.
아담에게 필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하와를 보면서, ‘내 갈비뼈로 만들었지’라고 생각하는 100%의 믿음이 들어가야 됩니다. 아내와 남편을 보면서, “하나님이 내게 주신 아내다.” 자녀를 보면서, “하나님이 내게 주신 선물이다.” 이런 마음을 먹어야 합니다.
의부증, 의처증이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의심합니다. 아내가 남편을 의심합니다. 믿음이 깨어지면, 가정 생활이 평탄할 수 없습니다. 예전에 어떤 남편은 자기 허락없이 아내를 집 2km 반경 밖으로 내보내지 않은 분이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부인은 얼마나 불행하겠어요? 자유대한민국에서 자유롭게 어디를 가지도 못합니다. 누굴 만나지도 못합니다. 의처증, 의부증은 악한 귀신의 장난입니다. 가정을 파괴하려고 하는 사탄의 계략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영역에서 별세해야 합니다.
가족 간의 중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서로 믿어 주는 것입니다. 서로 응원해 주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믿어 주는 곳, 아내가 남편을 믿어 주는 곳, 부모가 자녀를 믿고 응원해 주는 곳이 가정이어야 합니다. 가정은 믿음의 별세를 하는 곳입니다.
특히 남편이 부족할 때에도 믿어 주어야 합니다. 아내가 부족할 때에도 믿어 주어야 합니다. 자녀가 부족할 때에도 믿어주고 응원해 주어야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것이 잘 안 됩니다. 남편이 직장을 잃었을 때, 그 마음이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 때, 아내의 따뜻한 응원의 말이 필요합니다. 자녀가 취직이 안 되어 힘들어 할 때, 부모의 격려의 말이 필요합니다. “아들아, 딸아, 힘내. 너는 소중한 사람이야. 우리가 기도하고 있어. 하나님이 도우실거야.” 윽박지르고 고함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가족은 괴롭히라고 가족이 아닙니다. 서로 믿어주고 응원하라고 가족이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보면서, 가장 은혜 받는 부분이 먼지 아세요? 아담을 잠재우고 하와를 만드신 것입니다. 남편의 혈기가 죽어야 아내에게 창조의 능력이 임합니다. 남편의 고집이 죽어야 아내에게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이걸 잘 알아요? 그런데 잘 변하지 않습니다. 가정에서 혈기를 죽이는 별세를 경험해야 합니다. 한 번 따라해 볼까요? “가정에서 혈기 부리지 맙시다.”
가정은 별세하는 곳입니다. 내 혈기를 죽이는 곳, 내가 변화받는 곳, 내가 연합을 배우는 곳, 내가 순종을 배우는 곳, 내가 사랑을 배우는 곳, 내가 섬김을 배우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선남선녀를 부부로 맺어준 이유는 서로 섬기고 살라는 것입니다. 연합을 이루어 복된 가정을 만들어 가라는 것입니다. 가정은 안식처요,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장소로 만들어가라는 것입니다. 부부가 서로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은 사랑을 만들어가라고 말씀합니다.(사랑의 별세)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33절)
자기 갈비뼈에서 나왔기 때문에 제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아담이 하와를 보고서 말합니다. “내 뼈중의 뼈요, 내 살중의 살이로다” 그런데 범죄한 이후에는 “하나님이 주신 여자 때문에 죄를 지었다고 합니다.” 연합이 깨어지는 순간입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결혼한 당시 뿐만 아닙니다. 죄를 짓고 연약할 때에도 사랑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실천할 때, 가정이 천국으로 변하게 됩니다.
아내가 사랑스러울 때,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다 합니다. 만약 사랑스런 아내를 놓고 바람을 피운다면, 제정신이 아니죠? 아내가 부족할 때에도 사랑할 수 있느냐? 남편이 부족할 때에도 자녀가 부족할 때에도 사랑할 수 있느냐? 이것이 사랑의 별세입니다.
부부생활은 하나님께서 만든 신랑(神郞)과 하나님께서 만든 신부(神婦)가 만나 사는 것입니다. 신랑과 신부는 하나님께서 재창조한 사람입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22절). 남편을 보면서 주님을 본 듯 살다가 영원하신 주님을 만나러 가는 것입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하라” 영적인 의미에서 아내는 주님의 신부입니다. 아내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신랑은 주님의 모형이요, 아내는 주님의 신부입니다. 남편이 자기 자신을 별세시켜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가고, 아내는 신랑되신 예수님이 만들어놓은 신부의 인격을 담아 살 때 그 가정은 천국의 모형이 됩니다.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31-32절)
가정은 천국이 이루어지는 곳이요,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곳입니다.
예화) 삭개오 집사
6.25때 거지 형제가 있었다. 동냥을 해서 동생에게 좋은 것을 먹이고 자기는 덜 맛있는 것을 먹였다. 교회 김장로님과 박권사는 거창 읍내에서 ‘태백산맥’이라는 포목점을 하고 있었다. 꼬마 거지 형제를 자기 집에 데려다가 밥도 먹여 주고, 포목점 일을 시켰다. 형의 별명이 ‘삭개오 집사’였다. 전쟁 고아 였지만, 믿음 좋은 장로님의 덕분에 포목점을 운명하며 결혼도 했다.
그 당시는 6.25 전쟁 직후라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소규모 전투가 벌어 지고 있었다. 남아 있는 북한 공산당 잔당들이 끝까지 저항하며 양민을 괴롭히던 시기였다. 어느 날, 국군과 빨치산 사이에 전투가 벌여졌다. 집 안에 있던 삭개오 집사의 아내는 깜짝 놀라 집에서 튀어 나왔다. 보리 밭에 몸을 숨겼다. 이 때 포탄 한 발이 불행히도 삭개오 집사의 집에 떨어졌다. 집에 불이 붙고, 순식간에 재로 변해 버렸다.
이 장면을 보리밭에 숨어서 지켜보던 아내는 너무나 큰 충격에 정신을 잃어 버렸다. 그날부터 모든 기억을 잃고 백치가 되어 버렸다. 졸지에 삭개오 집사는 집을 잃었고, 아내는 바보 천치가 된 것이다. 삭개오 집사는 다시 집을 짓고, 백치가 된 아내를 전보다 더 정성을 다해 돌봐 주었다.
삭개오 집사는 바쁘게 장사를 하면서도 점심식사 후에는 꼭 자전거를 타고 자신의 집에 가 보았다. 아내가 잘 있는 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의 아내는 가끔 집을 나가기도 하고, 옷을 훌훌 다 벗어 던지고 동네 우물가에 나타나곤 했다. 동네 사람들이 삭개오 집사에게 알려주면, 얼른 달려와 자신의 아내를 집에 데리고 가곤했다. 그는 백치 아내를 목욕 시켜도 주고, 머리를 빗어 주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은 말한다. “백치 아내와 이혼하고 새 장가 들라고.” 그런데 삭개오 집사는 아예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어느 술취한 분이 말한다. “삭개오 집사님, 집사님은 왜 이혼하지 않고 저런 아내와 사십니까?” 집사님이 부끄러운 듯, 한 마디 말을 내뱉는다. “결혼식날 하나님 앞에서 한 그놈의 서약 때문에...” “뭐라고요? 결혼식 서약 때문이라고요?”
나중에 삭개오 집사는 연탄가스 중독으로 병원에 입원하고 1주일 만에 죽었다. 길거리에서 이웃에게 인사를 잘하던 사람이었다. 매사에 성실한 선한 이웃이었다. 백치 아내에게 헌신적인 사람이었다. 남편의 죽음을 안 것인지, 백치 아내는 ‘어흐, 어흐’ 하면서 남편의 시체를 여기저기 만지기 시작했다. 옆에서 이를 지켜 보던 동네 사람들이 한 마디씩 했다. “아이고, 저를 어쩌나. 쯔쯔... 아무 것도 모르는 줄 알았더니 남편이 죽은지는 아는 가베...” 남편이 죽고 아내는 식음을 전폐하고 10일만에 죽었다. 추운 한겨울인데 그 날 만큼은 따뜻했다. 사람들이 말했다. “참 날씨 좋데이. 아마 하늘에서 삭개오 집사가 지 각시 불러 갈라꼬 날씨를 이렇게 좋게 맹글었는가 보데이...” 거창에 있었던 실제 이야기입니다.
자기를 죽여서 사랑하는 것이 별세의 사랑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실천한 사랑입니다. 아가페의 사랑,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사랑에는 네 종류가 있습니다. 에로스는 남녀간의 육체적 사랑입니다. 필리아는 가족의 사랑입니다. 스톨게는 친구간의 사랑입니다. 아가페는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부부의 사랑에는 이 네가지 차원이 모두 필요합니다. 처음에는 에로스로 시작하였을지라도 나중에는 필리아로 깊어지고 아가페의 사랑으로 승화되어야 합니다. 별세의 사랑으로 사랑하고 있는지 부부의 관계를 점검해 보십시오.
한 몸은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입니다. 아내가 아플 때 남편도 그 아픔을 몸소 체휼해야 됩니다. 아내는 아픈데 남편이 나 몰라라 하고 있으면 안됩니다.
기독교인들의 가정은 어떤가요?
하나님 말씀을 들어 보세요. 하나님은 떠나라고 말씀합니다. 거리적으로 내적으로 영적으로 떠나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믿음의 별세를 가지라고 말씀합니다. 내 남편, 내 아내와 함께 더불어 믿고 살아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은 사랑의 별세를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비결이 있습니다. 그 말씀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가정은 별세하는 곳이요, 별세를 삶으로 이루는 곳입니다.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사는 삶의 현장을 이루어갈 때 그 자리가 천국이 됩니다. 이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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