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신 강단

부흥케 하옵소서

박도식 2021. 8. 4. 11:21
부흥케 하옵소서

하박국 3:1-4
1 시기오놋에 맞춘 바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라
2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3 하나님이 데만에서부터 오시며 거룩한 자가 바란산에서부터 오시도다 그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그 찬송이 세계에 가득하도다
4 그 광명이 햇빛 같고 광선이 그 손에서 나오니 그 권능이 그 속에 감취었도다

포인트 워드: 부흥
활용: 하나님의 일을 잘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뜨거워져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나야 한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야 한다.

성경을 가슴에 안고 고백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영혼의 양식이며 영적 전쟁에 무기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오늘은 하박국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성경에 자세히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박국서는 3장으로 소선지서입니다. 하박국은 BC 605년에서 597년으로 추정합니다.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완전히 파괴할 당시입니다. 백성은 포로가 되고 나라는 황폐하였습니다. 성은 무너지고, 국민은 도탄에 빠졌습니다. 유다는 여호야김 왕이 통치하였는데, 심술이 많고 사악한 왕이었습니다.

하박국은 다니엘과 동시대 인물입니다. 그는 억울하고 비참한 마음을 가눌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문제를 제기합니다. “왜 의인이 고통을 당해야 합니까?” “왜 악인은 잘 되고 성합니까? 왜 악인으로 하여금 의인을 괴롭히게 하십니까?” 하나님은 그의 질문에 대답을 주십니다. 하박국 2장 4절,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리고 3장에서는 하박국의 기도가 나옵니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잠언 23:17-18절입니다.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잠23:17-18)
하박국에서는 말씀합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바울도 말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

부흥이라는 것은 영어로 ‘revival’입니다. “죽었던 것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지칭합니다. 없었던 것이 아니라 다시 되살아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적은 것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작은 것이 커집니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창대해지는 것입니다. 믿음이 적은 자가 강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큰 믿음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성장, 이것을 부흥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하박국이 말하는 부흥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첫째,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축복을 원한다는 뜻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합3:2)

하박국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놀란 것입니다. 왜 하박국이 놀랐을까요? 하나님은 바벨론 사람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징계하리라고 계시하신 것입니다. 이방 나라 바벨론을 통해 이스라엘이 폐허가 되고, 예루살렘이 초토화되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나고 동족들이 전쟁 포로로 잡혀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박국은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일을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말은 우리가 비록 망할지라도, 우리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할찌라도 하나님의 일은 부흥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죄값을 치루어 전쟁을 경험하고 고통의 순간을 경험해도 오직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되기 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최고의 시대로 여기는 시기는 다윗과 솔로몬의 시기입니다. 지금도 다윗이나 솔로몬 같은 왕이 나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옛날 다윗 왕이나 솔로몬 왕국의 회복이 일어나길 간구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 환난의 때가 지나가고 옛날처럼 다시 회복되는 은총을 달라는 강한 소망을 표현한 것입니다.

다윗왕과 솔로몬의 시대는 이스라엘 역사상 최고의 시대였습니다. 적들과 싸울 때에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번영의 시기였습니다. 또한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는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실현되는 시기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다윗같은 분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솔로몬은 다윗의 뜻에 따라 성전을 건축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룬 왕입니다. 다윗의 번제물이나 솔로몬의 번제물에 하나님은 직접 불을 내려 역사하셨습니다.

“다윗이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 여호와께 아뢰었더니 여호와께서 하늘에서부터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시고”(대상21:26)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전에 가득하니”(대하7:1) 하나님의 영광, 쉐키나가 성전에 가득했던 시기이다.

다윗왕이나 솔로몬이나 하나님을 경외하던 왕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삶의 제일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꿈이나 환상으로 말입니다. 다윗이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의 모형도를 줍니다. 성령님께서 환상으로 그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역대상 28장 11-12절입니다. “다윗이 전의 낭실과 그 집들과 그 곳간과 다락과 골방과 속죄소의 식양을 그 아들 솔로몬에게 주고 또 성신의 가르치신 모든 식양 곧 여호와의 전의 뜰과 사면의 모든 방과 하나님의 전 곳간과 성물 곳간의 식양을 주고”(대상28:11-12) 다윗이 성전의 모형도를 주면서 하는 말입니다. “다윗이 가로되 이 위의 모든 것의 식양을 여호와의 손이 내게 그려 나로 알게 하셨느니라”(대상28:19)

왕이 하나님의 음성을 정확히 듣는데, 백성들은 평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왕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며, 백성들이 행복해 합니다. 왕이 악인이면, 백성들이 고달픕니다. 환난과 우환이 끊어지질 않습니다. 그래서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소서” 이 말은 다시 다윗과 솔로몬 시대를 회복시켜 하나님의 진노의 때가 지나가고 하나님의 긍휼의 때를 빨리 허락해 달라는 간청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3절에서는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데만에서부터 오시며 거룩한 자가 바란 산에서부터 오시도다 그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그 찬송이 세계에 가득하도다”(합3:3)
데만은 에돔의 한 지방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의 남쪽에 위치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임하시던 권능을 상징합니다. 바란 산은 시내산 곁의 산입니다. 이 산도 결국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시던 하나님의 강렬한 영광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때, 그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그 찬송이 세계에 가득하더라 그 광명이 햇빛 같고 광선이 그 손에서 나오니 그 권능이 그 속에 감취었도다”(합3:3-4)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것이 부흥입니다. 예배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 이것이 부흥임을 하박국은 알고 있었습니다. 단지 숫자가 늘어나는 것이 부흥이 아닙니다. 다윗의 번제물이나 솔로몬의 성전에서와 같이 하나님이 직접 임재하는 것입니다. 시내산에 임재하여, 살아계심을 보여 주신 것처럼, 오늘 우리의 삶에 우리 예배의 현장에 하나님께서 나타내시는 것이 부흥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 이것이 부흥입니다.

개인적으로 버킷 리스트 1번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찬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예전에 체조 경기장에서 있었던 집회에서의 경험입니다. 의자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져서 무릎을 꿇던 경험.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현장을 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길 원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런 교회를 만들어 가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찬 교회, 하나님을 경험하는 예배. 이것이 부흥입니다.

둘째, 주의 일이 잘 되는 것이 부흥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왕이여 창조주입니다. 만 백성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경배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찬양받기에 합당한 분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되어야 합니다.
초대교회 120명으로 시작된 교회가 3000명으로 5000명으로 부흥되었습니다. 지금 전 세계에 기독교인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2020년 기준 약 24억명입니다. 이슬람 19억명입니다. 흰두교는 11억 6천만명, 불교는 5억 7000만명입니다. 예수님을 누군지 아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잘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말씀대로 살고, 말씀에 기록된 기적과 이적이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 하나님이 응답하신다. 하나님이 치료하신다. 하나님이 도우신다.” 이런 고백이 들려와야 합니다.

우리 교우들이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잘 되는 것은 하나님이 잘 되는 것이다.” 또한 “나는 망하더라도 하나님이 잘 된다면 좋은 것이다. 내가 성공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이 잘 되는 것이라면, 나는 성공해야 한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내가 잘 된다고 모든 것이 하나님께 영광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이 잘 되는 것이 부흥입니다.

어떤 사람은 잘 되는데,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소홀해지고, 예배자리에 참석이 뜸해집니다. 이것은 부흥이 아닙니다. 나는 망하더라고 하나님의 일은 언제나 잘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런 사람을 복주십니다.

어느 교회 집사님은 IMF 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 사업은 안 되는데, 하나님의 사업은 잘 됩니다.” 무슨 말입니까? 자기의 일은 외형적으로는 안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해 충성하고 열심을 내고, 기도하는 일은 더 잘 된다는 것입니다. 사업이 잘 되고,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보다, 사업이 어렵더라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일이 복이 됩니다.

“주의 일을 부흥케 하옵소서” 이 말은 “하나님이 일이 잘 되게 하옵소서”의 뜻입니다. 애국자가 누구입니까? “나는 잘못되더라고, 나라는 잘 되어야지.” “나는 잘못되더라고, 사회는 잘 되어야지.”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가장 위대한 사람은 “나는 잘못되더라고, 하나님은 잘 되어야지.” 이런 마음을 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온 맘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는 것, 이것이 부흥입니다.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것, 이것이 부흥입니다. 주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 헌신이 불타오를 때, 이것이 부흥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8:17)

우리 주변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하나님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주님을 향한 뜨거운 마음이 불타오른 것이 부흥입니다. 하나님은 진정한 이런 부흥을 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을 사랑하십시오?
예수님께 목숨을 거십시오?
예수님을 자랑하십시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부흥입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자랑하고, 하나님의 위대함을 자랑하는 것이 진정한 부흥입니다.

셋째, 회개의 운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행2:37)

초대교회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3000명이나 회개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인 것으로 인해 어찌할 바를 알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설교를 듣고 탄식했습니다. “우리가 어찌할꼬?” (What shall we do?)

조나단 에드워드의 설교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인 사람들”을 듣고 사람들은 통곡하며 탄식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죽을 죄를 짓고 있지만 회개가 없던 미국인들은 가슴을 찢으며 회개했습니다. 그 당시는 서부영화처럼, 총으로 승부하던 시대입니다. 도박, 마약, 매춘, 도둑질이 성행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은 사람들은 결국, 지옥행입니다. 알곡 신앙인이 아니라, 가라지였습니다. 쭉정이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선한 열매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지옥에 갈 자신의 영혼을 보면서 통곡했습니다. 그리고 1차 대각성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도 대각성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목회자들부터 철저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목회자들이 음란합니다. 목회자들이 돈을 좋아합니다. 목회자들이 거짓말을 잘 합니다. 목회자들이 사상에 빠져서 복음을 잘못 해석합니다. 동성애를 옹호하는 목회자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신학교 교수는 “무당에게도 구원이 있다.”고 하면서 종교 다원주의를 외칩니다. 하나님께서 죄라고 하는 것을 죄가 아니라고 외치는 목회자들이 문제입니다.

성도들도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방자한 태도를 보입니다. 예배 드리는 태도를 보면 경외함이 없습니다. 마지못해 참석하고, 찬양도 힘이 없습니다. 신령과 진정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헌금 드리는 것을 보면, 방자함을 느낍니다. 십일조와 감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최고로 돈을 씁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위해서, 선교를 위해서는 돈을 쓰지 않습니다. 인색합니다. 어느 목사님 어머니 말처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깝다고 생각합니다.” 한 달에 400만원을 버는 분이, 40만원의 십일조가 아깝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데, 그걸 모릅니다.

“지혜로운 자는 두려워하여 악을 떠나나 어리석은 자는 방자하여 스스로 믿느니라”(잠14:16)

방자한 신앙인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목회자들도 말을 함부로 합니다. 욕을 하고, 저주를 퍼붓고, 혈기를 부립니다. 장로님들도 성만찬을 던지거나, 짜증을 냅니다. 방자한 신앙인들이 과연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말을 함부로 하는 신앙인들이 방자합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최고의 것을 드려야 합니다. 말라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말라기 1장 7-8절입니다.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주의 상을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함을 인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말1:7-8)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방자함에 성전 문을 닫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합니다(말1:10). 심지어 동물의 똥을 제사장들의 얼굴에 바르고 싶다고 말씀합니다(말2:3).

하나님을 경외하십니까? 아니면 방자하게 행동합니까?
방자는 “무례하고 건방지다.”는 뜻입니다. 삼가는 태도가 전혀 없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들, 홉니와 비느하스를 보세요. 성전에서 일하는 여인들을 성폭행 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번제물 중 가장 좋은 것을 본인들이 먹습니다. 하나님을 아예 무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합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삼상2:30)

내게서 회개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사 55:6-7)
이사야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사1:4) 라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 역사에 가장 중요한 부흥이 있었는데 1907년 평양에서 한국교회 최초의 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선교사들의 말씀을 듣다가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므로 말미암아 교인들에게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1903년에 원산에서 있었던 일인데 사도행전 2장에서 오순절 신앙체험을 설교하는 중에 그 말씀을 듣다가 한 성도가 가슴을 치면서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아내를 잘 돌보지 아니해서 내 아내를 죽게 한 죄인입니다.' 자기는 술 먹고 방탕하면서 자기 가족들을 돌보지 않아서 자기 아내가 죽었다고 통곡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너도 나도 통곡과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1907년 평양에서도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는데 길선주 장로로부터 큰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길선주 장로가 예수 믿기 전에 친구로부터 진실한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아서 두 부부가 글자를 모르니까 집안 재산을 다 길선주 장로에게 맡겼는데 이때 3백냥을 횡령했습니다. 이것이 예수 믿고 말씀을 듣는 중에 생각나가지고 회개했습니다. 이때부터 많은 사람들이 너도 나도 회개하면서 얼마나 울고 통곡을 했는지 당시에 선교사들이 한국을 점령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꼭 감옥의 지붕이 열린 것 같다." 너도 나도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고 고백하면서 회개하는데 교만한 마음들이 무너지고, 불화한 죄를 용서하고 서로 얼싸안고 화목했으며, 남의 것을 도적질 한 죄를 자복하고, 서로 미워한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빌면서 인종차별, 빈부차별이 다 물러갔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때 당시에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들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할 때 완전히 그 지역 사회가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죄악으로부터 돌이켰기 때문입니다. 주일날이면 모든 가게가 다 문을 다 닫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런 운동이 바로 회개운동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예수 믿고 자기 삶에 양심에 거리끼는 것이 청산되기를 바랍니다. 내 마음에 불순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죄를 다 청산해야 됩니다. 전 세계적으로 잘되는 나라는 부흥운동이 일어난 나라입니다. 부흥운동은 양심을 회복하는 운동입니다. 거짓을 버리고 악을 청산하고 하나님을 반역하는 모든 인간의 그릇된 삶을 다 청산하는 것입니다.

블란서나 러시아는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회개운동과 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요한 웨슬레와 찰스 웨슬레가 복음을 전하므로 말미암아 회개운동이 일어나서 영국을 피의 혁명에서 건졌다고 말합니다. 혁명으로는 나라가 안됩니다. 부흥운동이 일어난 나라는 다 잘됩니다. 미국은 찰스 피니와 DL 무디 목사의 부흥운동과 청교도의 신앙으로 말미암아 세계 강국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미국이 타락한 면도 있지만 청교도 신앙이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이 민족이 잘되는 길은 복음이 우리 국민들의 깊은 정신 세계속에 박혀서 부흥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나 한 사람이 부흥됨으로 말미암아 가정을 살리고, 지역사회를 살리고, 직장을 살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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