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을 이루라
시편 133:1-3
1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2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같고
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포인트 워드: 연합
활용: 우리는 연합이 소중한 줄 압니다. 그래서 연합을 이루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 연합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경을 가슴에 안고 고백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영혼의 양식이며 영적 전쟁에 무기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참으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성신교회가 잘 되는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제가 개척할 당시에 어느 목회자는 말했습니다. “너희는 싸우지만 않으면 교회가 부흥한다.” 오랜 생활 목회한 어르신의 당부의 말씀입니다. 싸우지만 않으면 교회가 부흥한다. 싸우지만 않으면 돈이 들어 온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시작하고, 예수님을 믿어도 왜 안될까요? 부부간에 싸우기 때문입니다. 성도간에 싸우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사업을 해도 잘 되는 사람이 있고 안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은 영적인 면에서 해결책을 찾아 보려고 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연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133:1)
본문 1절을 보세요. 하나님이 감탄하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보기에 참 좋구나! 내가 기쁘구나. 내가 행복하구나.”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보시고 기뻐하실 때는 사람들이 연합하여 화목을 이룰 때입니다. 함께 모여 찬양드리고, 함께 모여 기도하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감탄하는 이유는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할 때”입니다. 형제간에 화목한 것이 하나님이 기쁨입니다. 형제간에도 다툴 때가 있습니다. 서로 마음을 몰라줘서 상처를 줄 수가 있습니다. “한 지붕 두 가족”이란 말이 있습니다. 한 가족인데 마음은 서로 떨어져 있습니다.
홈플러스에 갔는데, 오랜 만에 어떤 사람을 만났습니다. 사업을 하면서 돈을 많이 벌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재산 문제로 동생과 법정에 가서 싸웠다고 합니다. 동생을 때리기도 했답니다. 이제 와서는 지나온 날들이 후회가 된다고 합니다. 형의 입장에서는 동생이 철이 들면 얼마든지 도울 수 있는데, 돈을 낭비한다는 것입니다. 동생에게 돈을 주는 것은 밑빠진 독에 물 붓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형제가 돈 문제로 법정에 섰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만약 부모님이 살아계셔서 자녀들끼지 돈 문제로 싸운다면 얼마나 마음이 불편했을까요?
찬송가 305장을 보세요. “아침과 저녁에 수고하여 다같이 일하는 온 식구가 한 상에 둘러서 먹고 마셔 여기가 우리의 낙원이라 고마워라 임마누엘 예수만 섬기는 우리집 고마워라 임마누엘 복되고 즐거운 하루하루”
부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싸우지 않고 연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부는 같은 편입니다. 내편입니다. 남의 편이 아닙니다. 서로 아껴주고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화목한 부부 아래에서 행복한 자녀들이 나옵니다. 부부가 싸우면 아이들은 전쟁터에서 동료를 잃은 전우의 슬픔을 느낍니다. 불안감을 느낍니다. 이걸 아셔야 합니다. 행복한 부부 아래에서 행복한 자녀들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부가 행복한 모습을 보고, 말씀합니다.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내가 기쁘도다.” 성경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가 있습니다. 이들은 바울과 함께 복음 전도에 힘쓴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함께 기도하고, 함께 전도하고, 함께 협력하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그런데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참 안타까운 부부입니다.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고 거짓말을 해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되 진심으로 섬긴 것이 아닙니다. 가짜로 섬긴 것입니다. 진짜로 섬겼다면 진실했을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 부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내 뼈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너무 기뻤습니다. 그러나 죄를 짓고나서는 “평생 웬수”로 살아갑니다. “당신 때문에 내 인생 망쳤다.”
어느 선교사님 부부가 항상 싸웁니다. 사역도 안 됩니다. 그러다가 서로 상의합니다. 우리 원칙을 세우자. “참아주자. 들어주자. 안아주자. 져주자.” 당신 멋져-당당하게, 신나게, 멋지게, 져주자. 선교사들이 싸우지만 않아도 교회는 부흥합니다.
아내를 이긴다고 면류관을 줍니까? 남편을 기어히 이긴다고 상급을 줍니까? 져 주는 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보혈로 하나가 된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예수 안에서 형제요, 자매가 되었습니다. 사도행전2:46-47절입니다. 쉬운 성경으로 보겠습니다. “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 뜰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집집마다 돌아가며 함께 모여 기쁘고 순수한 마음으로 식사를 같이 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하였으며, 모든 사람에게서 칭찬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는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늘어나게 하셨습니다.”(행2:46-47)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대가족이었습니다. 함께 모이고, 함께 음식을 나누고 함께 찬양하고, 그러다 보니 기쁨이 충만하고,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고, 그리고 구원받는 사람이 날마다 늘어났습니다.
교회는 이 나라의 희망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많이 배운 사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예수 이름으로 모여 예배드리는 곳입니다. 잘난 사람이 모인다면, 주님이 기뻐하실까요? 끼리끼리만 모인다면 주님이 기뻐하실까요? 서로 사랑하며 돌볼 때,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마귀는 싸우게 하고 연합을 l방해합니다. 부부가 싸우게 하고, 부모와 자녀가 싸우게 합니다. 우리는 마귀의 정체를 알아야 합니다. 연합. 하나됨. 이 안에 하나님의 비밀이 담겨져 있습니다. 사탄은 떼어내게 하고, 하나님은 하나 되게 하십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부부간에 싸우지 마세요. 돈이 새어나갑니다. 부부가 화목할 때, 돈을 들어옵니다. 성도간에 화목할 때, 교회가 부흥합니다. 할렐루야!
둘째, 하나님은 보배로운 기름이 흐른다고 말씀합니다.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같고”(시133:2)
연합하는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배로운 기름이 흘러넘침같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아론의 수염으로 흘러내리는 거룩한 기름을 말합니다. 출애굽기 30장 22-33절을 보면, 제사장들이 쓰는 기름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보배로운 기름은 성막에 쓰는 물건들을 거룩하게 만들어 줍니다. 회막과 법궤에도 이 기름을 바르라고 합니다. “너는 그것으로 회막과 증거궤에 바르고 상과 그 모든 기구며 등대와 그 기구며 분향단과 및 번제단과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받침에 발라 그것들을 지성물로 거룩하게 하라 무릇 이것에 접촉하는 것이 거룩하리라 너는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기름을 발라 그들을 거룩하게 하고 그들고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고”(출30:26-30)
성도와 성도가 연합하는 일이 “보배로운 기름”같다고 합니다.
목회자와 성도가 연합하는 일이 거룩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연합하는 일이 거룩한 기름이 흐르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연합이 교회 부흥의 비결이며, 연합할 때, 하나님께서 그 교회를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기름은 아무 때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왕, 제사장, 선지자를 세울 때, 사용합니다. 이들을 세울 때 사용되는 기름은 보통 기름이 아니라, “거룩함의 기름”입니다. 세상에서 값진 기름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함부로 만들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하나님의 일에만 사용되는 기름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보배로운 기름이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에 내리는 것을. 아론의 머리부터 발까지 거룩해 지는 순간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 지는 순간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그의 온 몸을 덥는 순간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가 옷을 입는 순간입니다. 우리가 연합할 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부부가 연합하는 것이 이처럼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부부가 한 마음과 한 뜻으로 하나님을 섬길 때, 하나님께서 축복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연합은 성적인 결합 뿐만 아니라, 마음의 결합도 의미합니다. 행복한 부부가 되어 하나님을 섬길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회자 부부가 겉으로는 평화인데, 가정에서는 치고 패고 싸운다면 어떨까요? 보배로운 기름이 흐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사라집니다.
교회는 교회인데, 성도와 성도가 다툰다면 어떨까요? 보배로운 기름이 흘러 넘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없습니다. 우리는 어떻게든 연합해야 합니다.
남미에 ‘콜롬비아’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수도가 보고타인데 ICM(International Charismatic Church) 이라는 교회가 있습니다. 쎄자르 카스텔라로스 목사님이 목회를 합니다. 구역을 셀로 전환했더니, 70개의 구역이 2만개의 구역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30-40만명이 성도들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그 교회를 연구하기 위해 그 교회에 갑니다. 택시를 탔습니다. 택시 기사에게 물어 봅니다. “왜 그 교회에 갑니까?” 믿음이 없는 기사가 말합니다. “그 교회에 가면 사람들이 변하거든요!" 그 교회는 성령님이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곳이 그 교회입니다.
그 교회에 마약을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술 중독이나 게임 중독보다 더 끊기 어려운 것이 마약중독입니다. 그런데 비몽사몽간에 예배드리던 청년을 위해 다른 청년들이 끌어안고 기도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마약을 끊을 수 있도록 밤새 기도하는 것입니다.
개인주의가 성행합니다. 교회에 나와도 나만 잘 믿으면 되지.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연합할 때, 보배로운 기름이 흘러내린다고 말씀합니다. 약한 자들을 돌보는 가운데 성령님이 역사한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곳에 성령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어떤 분은 “+, -, ×,÷” 교인이 있다고 말합니다. +교인, 그 사람만 들어가면, 사람들이 더해집니다. 좋은 소문이 납니다. 교회가 부흥합니다. -교인. 그 사람만 들어가면, 사람들이 하나 둘씩 빠져나갑니다. 그 사람이 가는 곳마다 사람이 없어 힘들어 합니다. '나누기 성도'가 있습니다. 자꾸 편을 갈라놓습니다. 가는 곳에서 또 사람들 사이에 틈을 만들어 냅니다. 분열을 만들어 나눕니다.나중에는 더 이상 나눌 사람이 없기 때문에 혼자 남습니다. '곱하기(×) 성도'가 있습니다. 그 사람만 일 맡으면 사람이 늘어납니다. 곱이 됩니다.
“형제의 모습 속에 보이는 하나님 형상 아름다워라. 존귀한 주의 자녀 됐으니 사랑하며 섬기리”
하나님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곳. “성만찬, 예배의 현장, 성도가 연합하는 것”입니다.
저는 늘 말합니다. 두 가지 경우가 아니면 교회에서 큰소리 내지 말라고…
- 불나면 소리 질러야 합니다.
- 예수님 재림하시면 "할렐루야" 하며 소리치고 찬양하고 기뻐함으로 맞이해야 합니다.
이 두 경우가 아니면 자기 감정 때문에 교회에서 큰 소리 내지 마십시오. 그것은 잘못된 열정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연합하는 곳에 헐몬의 이슬의 복을 주십니다.
“헐몬의 이슬이 시온산들에 내림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영생이로다”(시133:3)
헐몬산은 이스라엘 북쪽에 있는 해발 2815m의 가장 높은 산입니다. 이 산은 갈릴리 북동쪽 64km 지점에 있어 요단당의 주요한 물 공급처가 됩니다. 산 봉우리는 일 년 내내 눈이 덮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산마루의 저온이 대기중의 수분을 급격히 냉각시키기 때문에 야간에는 비처럼 대량으로 내리는 이슬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건기와 우기가 구분이 되어 있습니다. 5-10월까지는 건기입니다. 11월- 4월 까지는 우기입니다. 500~750mm입니다. 건기에는 전혀 비가 오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식물이 살아갑니다. 이슬이 내리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이슬은 생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형제들이 화목하는 것은 이슬이 채소들에게 생명을 주는 것과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헐몬산의 이슬은 많은 이슬을 말합니다. 많아도 보통 많은 것이 아니라, ‘굉장히 많은 이슬’, ‘비처럼 내리는 이슬’입니다.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리는 축복을 생각해 보세요. 이스라엘 모든 땅에 내리는 축복입니다.
이슬을 생각해 보세요. 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좀체로 눈에 띄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슬을 먹은 식물은 생동감이 있고, 열매를 맺습니다. 이슬은 식물을 살리기도 하고, 죽게도 합니다. 부부가 화목하면, 자녀들이 이슬을 먹고 자랍니다. 웃음이 있습니다. 부부가 불행하면, 매일 싸우면, 자녀들이 상처를 먹고 자랍니다. 얼굴에 웃음이 없습니다. 성도들이 화목하면, 은혜가 흘러 넘쳡니다. 성도들이 불행하면, 웃음이 사라집니다.
스프링클러를 생각해 보세요. 물을 뿌리는 기구입니다. 미국의 LA도 사막입니다. 이스라엘 지역도 사막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는 나무가 잘 자랍니다. 이스라엘는 “키브츠” 농장이 있습니다. 사막인데 농토로 개간한 것입니다. 사막인데, 풀이 자라고, 야자나무가 있고, 곡식이 자랍니다. 요단강에서 물을 끌어 들여 지하에 배수장치를 해서 스프링클러가 물을 뿜어 댑니다. 마치 비 오는 것처럼 뿜어 대기에 잔디가 자라고, 나무들이 자랍니다. LA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막이지만, 물을 끌어들여 스프링클러를 통해 물을 뿜어대기에 나무들이 자라고, 풀이 자랍니다. 잔디를 기릅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이 화목할 때, 스크링클러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이 지역사회로 흐르게 하는 것입니다. 성신교회로 말미암아 지역에 기름부음의 축복이 넘치는 것입니다. 다투는 부부들도 이 지역에 오면 다툼이 멈추는 것입니다. 안 되는 사업도 이 지역에 오면 사업이 회복됩니다. 안 되는 것이 잘 되게 됩니다. 스프링클러 같은 하나님의 축복이 흘러 넘치게 됩니다.
목사님과 사모님이 화목할 때, 성도들에게 복이 흘러갑니다. 헐몬산의 이슬이 시온 산들에 내리는 축복. 성신교회를 통해 지역 사회가 복을 받는 축복. 상상해 보기 바랍니다.
가을이 되면 기러기들이 북쪽으로 날아갑니다. “까옥까옥” 요란하게 울며 날아갑니다. 그런데 기러기들이 소리를 내는 것은 뒤쪽에 있는 기러기들이라고 합니다. 왜 소리를 내느냐? 앞에 날아가는 기러기들이 속력을 늦추지 않도록 격려하기 위해 “힘내라~ 힘내라!” 소리를 지르는 것입니다. 기러기들이 V자형을 만들어 나는 것은 앞에 있는 기러기가 날개를 휘저어 만드는 바람파도를 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뒤에 따르는 기러기는 71%나 쉽게 날 수 있다고 합니다. 기러기들이 앞에서 날다 지치면, 뒤로 가고, 뒤에 날던 기러기가 앞으로 나오고, 서로 자기를 바꾸어 간다고 합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영적 축복의 비밀이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 안에서 부부가 화목할 때, 보배로운 기름의 축복이 흘러넘칩니다. 부부가 화목할 때, 헐몬의 이슬이 시온 산들에 내림같은 복을 받습니다. 화목한 부부를 통해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이슬처럼 내립니다. “보배로운 기름”과 “헐몬의 이슬”은 눈에 보이지 않고, 소리도 없습니다. 그러나 축복입니다. 말없는 축복이 우리에게 임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 안에서 서로 연합해야 합니다. 요즘은 이간질의 영이 교회 안에서 역사합니다. 서로 미워하고 험담하는 것은 100% 사탄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결심해야 합니다. “연합하리라.”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도록” “절대 싸우지 않으리라.” “하나님의 축복이 내리도록” 시편 133편 3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합니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영생이로다.” 할렐루야. 예수 안에서 하나되는 곳에 하나님의 복이 넘쳐 납니다.
로마서 16장 3~16절을 보면, 사도 바울이 자기를 도와 주었던 사람 26명의 이름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로마서 16장의 26명 중에는, "브리스가와 아굴라"를 제외하고는 거의 무명씨에 가깝습니다. 로마서 16장에만 등장하는 인물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들은 숨겨진 일꾼들이었으나 사도 바울을 위해서는 "자기의 목이라도"(롬 16:4) 내 놓을 만큼 바울을 사랑하고 도와 주었던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보배로운 기름과 이슬처럼, 사도 바울이 고마워했던 사람들처럼 조용히 일하되 다른 사람들에게 일할 맛이 나게 하고, 살맛이 나게 하여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는 소금 같은 일꾼들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