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바로 알면 복받는다1
교회를 바로 알면 복받는다
에베소서1:20-23
20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 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뒤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포인트 워드: 교회
활용: 하나님이 세우신 거룩한 기관, 교회. 교회가 무엇인지 바르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뚱뚱한 아줌마가 가게 앞을 지나갔다. 그런데 그 가게에는 앵무새가 있었다. 아줌마를 본 앵무새가 말했다. “그 아줌마 진짜 못생겼네.” 화가 났지만 참고 지나갔다. 다음 날 그 가게 앞을 지나가는데 앵무새가 또 말했다. “그 아줌마 진짜 못생겼네.” 화가 난 아줌마가 가게로 들어가서 앵무새 교육을 잘 시키라고 했다. 다음 날 아줌마가 지나갈 때 앵무새가 말했다. “아줌마” 아줌마가 쳐다보자 앵무새가 말했다. “알지?”
우리말 속담에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면장을 한다는 것을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면장이라 하면 면사무소의 면장으로 생각합니다. 배워야 면장이라도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장 다음에 면장이요 면장 다음에 군수가 아닙니까? “알아야 면장(免牆)을 한다”는 말의 면장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알아야 담장을 벗어난다.”는 뜻입니다. 배우지 않으면 담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은 답답한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공자가 논어 양화편에서 아들에게 한 말입니다.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담을 마주하고 서 있는 것처럼 앞을 보지 못하고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리라” 배워야 담을 마주하는 답답한 상태에서 벗어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사촌이 논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을 압니다. 이 속담은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냉소적이고 부정적인 민족성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일본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원래 속담은 “사촌이 논을 사면 배라도 아파야 할 텐데”입니다. 남이 잘 되는데 배가 아파하지 못하는 깊은 탄식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애정을 느낄 수 있는 말입니다. 옛날 시골에는 거름으로 똥을 사고 팔았습니다. 비료나 퇴비가 없었던 시절에는 거름으로 인분을 사용했습니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라도 아파서 똥을 싸고 거름으로 보태주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일제 시대에 일본 사람들이 남이 잘 된 것에 배 아파하는 느낌의 속담으로 바꿔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이 책망을 받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5:39)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요8:19)
우리는 하나님을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오늘은 교회가 무엇인지 바르게 알면 복을 받습니다.
첫째,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엡1:23)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이시고 교회는 예수님의 몸입니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골1:18) 그런데 성경을 읽어보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빌립보서 3장 6절에서 바울은 고백한다.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그는 교회를 핍박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도행전 9장 4절을 보라.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행9:4) 사도행전 22장 8절입니다.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행22:8) 바울은 교회를 핍박했다고 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고 하셨다. 이 말은 무슨 말인가? 예수님 자신이 교회라는 것이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다. 그러나 그분 자신이기도 하다. 교회는 신비 그 자체이다.
교회를 세우신 분이 누구신가? 예수님이시다. 마태복음 16장 18절에서 말씀하신다. “너는 베드로라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그러면 어떻게 세우셨는가? 사도행전20:28절이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한다.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통을 담당하셨다. 온 몸이 찢기우는 아픔을 겪었다. 짐승같이 대우를 받으셨다. 채찍에 맞으면서 세우신 곳이 교회이다. 피투성이가 되면서 세우신 곳이 교회이다. 그러기에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은 대단한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비밀을 알지 못한다. 신앙인들도 교회를 욕하거나 비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지하실 교회, 상가교회가 무슨 교회냐고 비난한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섬기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들이 모임이 교회이다. 때로 우리가 교회에서 상처를 입을 때가 있다. 그래도 교회를 욕하거나 비방해서는 안된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기 때문이다. 믿음 생활을 잘하는데 막힌 사람들이 있다. 십일조를 잘 드리고 주일 성수를 잘 하는데 무엇인가 막힌 사람들이 있다. 교회와 막힌 것이 있지 않나 점검해 보아야 한다. 교회를 미워하거나 비방하지 말고 축복하고 중보기도 해야 한다.
예수님의 교회의 머리이며 교회는 그분의 몸이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인가? 교회의 지체이다. 우리 몸에 눈, 코, 입, 귀, 손과 발이 있듯이 우리 각 사람이 교회를 이루는 지체라는 것이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전12:12) 신체 기관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밀접하다는 것이다. 서로 분리되어 있지만 뗄 수 없다는 것이다.
몇 년 전에 아들과 함께 씨름을 하다 귀에 이상이 생겼다. 귀가 퉁퉁 붓는 것이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빨래 집게로 귀를 물었다. 그래도 아펐다.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약을 맞아도 귀에서 계속 액체가 나왔다. 유도 선수, 레슬링 선수들의 귀를 보면 안다. 운동을 하니 귀가 문들어졌다. 귀가 아프니 온 몸 전체가 고생이다. 통증이 밀려오니 손이 고생을 했다. 발은 병원을 향해 가기 위해 고생이다. 엉덩이는 주사를 맞아야 되었다. 입은 약을 먹어야 되었다. 귀가 아프니 내 몸 전체가 아프게 되었다. 무려 1개월이나 고생을 했다. 몸의 각 기관이 따로 떨어져 있지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것이 교회의 비밀이다.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5:32)
우리 몸에 필요하지 않은 부분이 하나도 없다. 새끼 발가락은 어떠한가? 발가락 중에서 제일 작다. 그리고 잘 생기지 못했다. 그러나 만약 새끼 발가락이 없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몸의 균형을 잡을 수 없다. 강풍에 넘어지고 만다. 우리 몸에서 필요없는 것처럼 보이나 꼭 필요한 것이다.
여러분 가운데 자신을 새끼 발가락으로 생각하는 분은 없습니까? 너무나도 보잘것 없고 초라한 모습입니다. 실수만 하고 교회 공동체에 문제가 일으키고 쓸모 없는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잊지 마세요. 새끼 발가락이 중요한 것보다 더욱더 여러분은 예수님의 몸인 교회를 구성하는 지체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내 안에 있는 한 나는 소중한 존재라고 고백해 보세요. 여러분은 우리 교회에서 너무나 소중한 분들이고 하나님께도 소중한 자녀들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어느 날 다섯 손가락이 서로 잘났다고 싸웁니다. 엄지가 고개를 듭니다. “내가 최고야” 할 때 항상 이렇게 한다. 그러니 내가 최고다. 검지가 앞으로 나섭니다. “이것 주세요. 저것 주세요. 저리 가세요 할 때 주인이 언제나 나를 앞세우잖아. 내가 최고다.” 장지가 말합니다. “전부 일어서 봐. 나 보다 키 큰 놈 있으면 나와 봐. 까불고 있어 내가 최고다.” 약지가 말합니다. “너희들 그래도 아무 소용 없어. 다이아 반지를 어디가 끼워주냐. 내가 최고지.” 새끼 손가락은 조용히 듣고만 있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그래 너희들 잘났다. 그래도 내가 없으면 너희 모두 병신이다.” 맞는 말입니다. 우리는 한 몸입니다. 서로 다르지만 주님의 교회를 섬깁니다.
우리는 지체인데 몸과 분리되면 죽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 생명을 얻습니다. 교회를 떠나서는 생명이 없습니다. 절대로 교회를 떠나서는 안됩니다.
우리 함께 외쳐 봅시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다. 교회는 예수님이 피로 사신 곳이다.”
우리가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곧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섬기는 곳은 곧 예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예화) 김삼환 목사
경북 봉화의 농촌 교회가 비로 샐 때 자기 등으로 흙을 받았다. 하나님이 이걸 보셨다.
둘째, 교회는 만물을 충만케 하는 곳이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엡1:23)
만물 가운데 으뜸 되는 기관이 무엇입니까? 청와대나 인천 시청이라 생각합니까? 아니면 학교나 병원이라 생각합니까? 물론 청와대도 소중하지만 만물의 으뜸이 되는 기관이 교회입니다. 가장 소중한 기관이 교회입니다. 22절을 보세요.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23절에서는 “교회를 통해 만물을 충만케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김구 선생님은 말했습니다. “경찰서 10개 세우는 것보다 교회 한 개 세우는 것이 낫다.”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축복이 전달되어 집니다. 만물을 충만케 하는 은혜가 전달됩니다.
에스겔 47장에서는 치료의 강에 대해 말씀합니다. 강물이 닿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아납니다. 고기가 심히 많아집니다. 강 좌우의 나무는 잎이 시들지 아니합니다. 실과가 멈추지 않습니다. 매달 새로운 실과를 낼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 잎사귀는 약재료가 된다고 합니다(겔47:12). 한 마디로 생명의 물입니다. 이 물이 닿는 곳마다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면 이 물이 어디에서 나옵니까? 에스겔 47장 1절입니다.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겔47:1) 하나님의 성전에서 생수의 물이 흘러 나옵니다. 성전에서 나오는 물이 동식물을 살리는 치료의 강을 이루게 됩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만물을 충만케 하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교회는 축복의 통로라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 말씀 충만, 은혜 충만, 기쁨 충만이 어디에서 옵니까? 교회에서 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경험할 때 해결책을 어디서 찾아야 합니까? 교회에서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와서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집에서 기도하기 보다 성전에 나오려고 애써야 합니다. 한나가 고통당할 때 어떻게 했습니까? 성전에 나아와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술 취한 사람같이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이사야는 어디서 기도했습니까? 성전입니다. 성전에서 기도하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사무엘은 어디서 부르심을 받았습니까? 성전을 섬기다가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문제가 있을 때 하나님의 교회에 나아와야 합니다. 솔로몬은 열왕기상 8장에서 그가 성전을 봉헌하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이 땅에 기근이나 온역이 있거나 곡식이 시들거나 깜부기가 나거나 메뚜기나 황충이 나거나 적국이 와서 성읍을 에워싸거나 무슨 재앙이나 무슨 질병이 있든지 무론하고 한 사람이나 혹 주의 온 백성 이스라엘이 다 각각 자기의 마음에 재앙을 깨닫고 이 성전을 향하여 손을 펴고 무슨 기도나 무슨 간구를 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사유하시며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오니 그들의 모든 행위대로 행하사 갚으시옵소서 주만 홀로 사람의 마음을 다 아심이니이다”(왕상8:37-39) 하나님의 성전에서 기도할 때 응답해 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이 비밀을 아셔야 합니다. 지하실 교회든, 상가 교회든, 조립식 교회든, 농어촌 교회든. 잘 지어든 교회든 상관없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교회에 나와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만물을 충만케 하시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관심이 자기의 피로 세운 교회에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인가 부족함을 느낄 때 어디로 가세요. 쇼핑 센터로 가지 마세요. 눈요기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건강이 부족할 때 수봉산에 오르려고만 애쓰지 마세요. 교회와서 기도하고 오르기 바랍니다. 물질이 부족할 때 어디로 갑니까?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할 때 어디에서 도움이 있습니까? 우선 교회로 나와야 합니다.
골로새서 2장 3절에서 말씀합니다.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져 있느니라” 예수님께 지혜와 지식이 있습니다. 골1장 19절에서 말씀합니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충만의 축복이 예수님께 있습니다. 예수님께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합니다. 기쁨과 능력이 충만합니다. 재정의 복도 충만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8:9) 우리는 은혜를 사모하시지요. 그 충만함도 예수님께 있습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요1:16) 하나님의 모든 충만함이 예수님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은혜가 충만하고 기쁨이 충만합니다. 물질의 복도 받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충만함을 교회를 통해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비밀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공산주의 이데올로기가 붕괴된 후 구 소련이 해체되었습니다. 많은 나라로 분리되었는데 그 가운데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이 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은 구 소련의 중심국가였습니다.
우즈벡키스탄은 독립 후 무슬림의 영향으로 교회를 세우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선교사 비자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변방에 있던 카자흐스탄은 기독교를 받아들였습니다. 선교사들에게 비자를 주어 복음을 전하게 했습니다. 불과 20년 만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카자흐스탄에는 1000개 이상의 등록교회가 세워져 있습니다. 실크로드를 따라 “실크로드를 따라 “BACK TO THE JERUSALEM” 운동을 펼치는 선교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의 임금 격차가 10배나 납니다. 우즈벡의 사람들이 카자흐스탄에 와서 노동자로 일을 합니다. 이제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의 리더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는 곳에 놀라운 축복이 임합니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교회를 거부하는 나라는 가난해 집니다. 남한과 북한을 보세요. “만물을 충만케 하는 교회”가 없으니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공산국가가 가난해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회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복을 주려고 해도 복을 줄 수가 없습니다. 어느 신학자가 말합니다. “우리가 부강해서 예배당을 웅장하게 아름답게 세운 것이 아니다. 교회와 예배당을 아름답게 세웠더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강하게 해 주셨다.” 맞는 말입니다. 청교도들이 미국에서 맨 먼저 한 것은 교회를 세운 일입니다. 자기 집이 아닙니다. 학교가 아닙니다. 먼저 교회입니다. 교회가 세워지면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교회를 통해 만물을 충만케 하시고 복을 주십니다.
어느 목사님은 따님에게 말합니다. “딸아, 가출하려거든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 가라.” 매일 철야하면서 기도하는 분들이 있지 않습니까? 오프라 윈프리는 어린 시절 가난한 가정에서 출세했다. 부모나 결혼하지 않고 낳은 원치 않는 아이였다. 오프라의 어머니는 아이를 낳자 떠났다. 불쌍한 아이였다. 그녀의 외할머니는 오프라 윈프리를 교회에 데리고 갔다. 충격적이고 어려운 삶에서 교회는 그녀에게 영적인 필요를 채워 주었다. 세계 제일의 갑부인 연예인이 되었습니다. [피아노로 세상을 울려라]의 주인공 이수미씨가 있습니다. 독일연방청소년 음악 콩쿨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1위를 합니다. 중학교 1학년 때 독일로 유학을 갔습니다. 혼자입니다. 아버지는 IMF로 감옥에 가고 어머니는 억척같이 일을 합니다. 가난하지만 꿈을 위해 독일로 갑니다. 단돈 38만원을 지니고 갑니다. 하숙집 주인이 한국 사람인데 가난한 집 딸이라 무시합니다. 도둑으로 몰려고 합니다. 이수미는 괴로웠습니다. 결국 집을 나왔습니다. 그녀가 간 곳은 “성당”이었다. 그녀가 힘들 때 찾아간 곳은 교회였습니다. 성당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학업을 마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콩쿨은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1위를 합니다. 제가 외국어 대학 시험을 보러 갈 때 찾아간 곳은 어디였습니까? 교회입니다. 그래서 강사님을 만났다.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면 기적이 일어나고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 역사가 바뀝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통해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통해 복을 주십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간증을 하고자 합니다.
예화) 뉴욕에 플리모스라는 교회가 있다. 1928년 12월 어느 추운 겨울이었다. 주일 예배를 드리는데 80세 정도가 되어 보이는 흑인 할머니가 허름한 외투를 걸치고 교회에 들어왔다. 예배를 마치고 나가려 할 때 할머니는 목사님을 향해 손을 들고 말했다. “목사님, 제가 한 가지 간증을 하고 돌아가려고 합니다. 이것을 위해 제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백인 목사님은 흑인 노파에게 간증을 허락했다. 할머니는 말합니다.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 1850년 12월 어느 주일이었습니다. 그때 12세였습니다. 저와 오빠와 부모님은 이 교회 건너편 노예매매 시장에 팔려 왔습니다. 집 주인이 파산을 해서 우리 가정을 다른 가정에 팔려고 내놓았습니다. 그 순간 저희 가족은 기도했습니다. “우리의 네 식구가 흩어지지 않도록 해 주세요.” 그러나 아버지는 농장으로 1001 달러에 제일 먼저 팔려 갔습니다. 어머니는 어느 식당으로, 오빠는 900불에 공장에 팔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남았습니다. 제가 경매에 올려졌을 때 이빨도 성하고 건강해서 누구든지 700달러에 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아직 나이가 어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 늙은 백인 할아버지가 손을 들어 700불에 저를 샀습니다. 그래서 그 할아버지와 이 교회에 처음으로 들어왔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교회 성도들이 한 달에 한 번씩 헌금하여 단 한 사람이라도 자유를 얻게 하는 선교 운동을 벌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주간 700달러의 헌금으로 나를 자유롭게 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 은혜에 너무나 감사해서 노예 때 보다 더 열심히 일을 했고 돈을 모아 저축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양로원에 가 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는 그 동안 쓰지 않고 모아 두었던 700불의 100배가 되는 돈 7만 불을 헌금하고 사라졌다. 지금 7만 불은 7천 만 원입니다. 80년 전이라면 약 70억 원이 넘는 큰 돈입니다.
교회는 한 흑인 소녀를 살렸고 자유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100배의 복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