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신 강단

빌라델비아 교회2

박도식 2021. 3. 22. 16:32

빌라델비아 교회2

요한계시록 3:7-13

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8 볼찌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9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11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포인트 워드: 빌라델비아 교회

활용: 하나님께 칭찬만 받은 교회이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칭찬만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성경을 가슴에 안고 고백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영혼의 양식이며 영적 전쟁에 무기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오늘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말씀은 요한계시록 3:7-13절입니다. “칭찬받는 교회는 제목으로 하나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요한 312절에서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해 지기를 바랍니다. 주 예수님의 은혜가 충만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지난 주에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해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작은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작은 능력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엄청 칭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예수 이름을 배반치 않았습니다. 환난과 핍박 중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었습니다. 그리고 인내의 말씀을 지키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를 떠올리면 마음에 흥분이 됩니다. 우리 교회가 나아가야 할 모습입니다.

 

우선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소개하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요?

첫째, 열린문의 복을 주시고자 하는 분입니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니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3:8)

 

하나님은 창조자요 전능자입니다. 하나님이 열면 닫을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닫으면 열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하기로 작정한 사람은 반드시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강퍅케 하시고 저주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열린 문의 축복을 주고자 하십니다.

 

열린 문의 축복은 한 마디로 형통한 삶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막히는 것이 없습니다. 공부를 할 때에도 머리가 됩니다. 꼬리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머리가 되길 바라지 꼴등하는 인생이 되길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이 복덩어리가 되길 원하십니다.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길 바랍니다.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도 복을 받기 원합니다. 여호와께서 명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28:8)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만약 사업을 한다면, 사업이 번성하고 창대하길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학생이라면 배움의 현장에서 탁월하길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복된 사람이 되어서 막혀진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이 되길 원하십니다.

 

따라합니다. “하나님은 열린 문의 축복을 주신다.” 이 복을 받은 대표적인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는 우상을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우상 숭배자의 아들인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복이 무엇인가요? 자녀의 복을 받았습니다. 100세에 믿음의 아들 이삭을 얻었습니다. 그는 회춘의 복을 받았습니다. 사라가 죽고 후처를 취하였는데 6명을 더 낳습니다(25:2) 그리고 175세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은 승리의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조카 롯이 적들에게 잡혀 갔을 때, 집에서 길리운 용사 318명을 데리고 가서 연합군을 물리치고 조카를 구해 옵니다. 318명이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은혜를 입은 자였기에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물질적으로도 부유한 자가 되었습니다. 1000명 이상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재산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부인을 빼앗겼지만, 하나님께서 생명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가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그는 형통한 삶을 산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왜 내 삶은 막히는가? 왜 내 삶은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가? 왜 내게는 행복이 없는가? 하나님은 분명 축복을 말씀하셨는데 왜 인생이 힘든가?

 

그 답이 8절에 있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우리 신앙이 주님과 동떨어져 있지는 않은 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열린 문을 주시고자 합니다. 기도의 응답을 주고자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히려 하늘 문을 다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 문을 닫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내 말로 하늘 문을 닫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시험의 때에 보호해 주시는 분입니다.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3:10)

 

성도들이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삶은 힘이 듭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하나님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면한다고 하는 것은 면제 되는 것이 아니라 보호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말세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인공지능 아나운서가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로봇들이 일을 합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영화에서 보여지듯 인공지능 로봇이나 차량이 만들어집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말세가 벌써 우리 앞에 다가왔습니다. 아니요, 우리는 지금 알고 있든 모르든 말세에 살고 있습니다. 시대적으로 말세일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말세입니다. 우리가 언제 죽을지 아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이 그냥 부르시면 하던 일을 내려 놓고 가야 합니다.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합니다. 20년 전에 아내와 함께 철야 기도 하고 새벽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프다고 하면서 병원에 입원했는데 그냥 죽었답니다. 어제까지 함께 기도하고 밥먹었는데 작별인사도 없이 그냥 죽은 것입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개인적으로 종말은 언제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보호해 주시기에 살아가지 그렇지 않으면 숱한 사건 사고로 인해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매일 사건 사고가 수백건이 일어납니다. 자살하는 사람도 매일 40여명이나 됩니다. 가출하는 사람들도 매일 수백명입니다. 응급환자도 수백명이 발생합니다. 나도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니 응급환자가 안 될 뿐입니다.

 

디모데후서 31-2절입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아니하며

 

지금이 바로 성경에서 말씀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예화) 부안 흰돌교회 장로 간증

사업체를 운영하려고 가 건물을 지었던 어떤 장로님 이야기입니다. 돈을 모아서 양계장을 했는데 불이 났습니다. 그런데 옷가지를 가지러 갔습니다. 불구덩이 속에 들어갔는데 몸이 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차키를 놓고 왔답니다. 그래서 차키를 가지러 갑니다. 몸이 멀쩡합니다. 세 번이나 불구덩이에 들어갔는데 타지도 않았고 상하지도 않았답니다. 마치 다니엘서에서 세 친구들이 불구덩이에 들어갔으나 머리도 타지 않고 그슬리지도 않은 것처럼 하나님의 보호를 입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해 주시는 분입니다.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43:1-3)

 

예화) 늘푸른 진건교회 목사

개척교회 목사님이 5층에서 목회하는데 불이 났습니다. 지역 주민들이 다 나왔습니다. 소방차들이 왔습니다. 연기가 자욱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에 새벽기도를 마치고 쉬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옥상에는 LPG 가스 통이 있었습니다.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인데 목사님은 기도합니다. “주여, 지켜 주옵소서.” 그리고 교회로 뛰어갑니다. 옥상에 올라가서 LPG 가스를 잠급니다. 그랬더니 불이 수그러집니다. 하마터면 대형사고가 날 위험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모면케 하셨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환난이나 시험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어려울 때는 어렵습니다. 참기 힘든 정도의 고통이 있습니다. 성경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때린다고 하십니다. 이 사람 저 사람과 부딪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시험의 때에 보호해 주시는 분입니.

 

그런데 우리가 이걸 알아야 합니다. 누구는 하나님께서 열린 문의 축복을 주시고, 누구는 환난 때에 보호하시고, 누구에게는 은혜를 베푸시는가? 누구는 엄청난 축복을 주시는가? 왜 차별대우 하시지? 하나님 섭섭해요? 그렇게 말합니다.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동일하게 열린 문의 복을 주시고, 시험 때에 면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8절에 있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말과 행동을 아신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각을 아신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어떻게 예배드리는 지 알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 지, 직장에서 어떻게 일하는 지 아신답니다.

 

생각을 해보세요. 우리가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자인가요? 우리 예배가 하나님께 열납이 되는 예배인가요? 하나님께서 우리 예배를 기쁨으로 받으시나요? 아니면 우리는 그냥 형식적으로 마지 못해 교회에 나온 것은 아닌가요? 하나님이 우리 행위를 아신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예배하면 하나님도 진정으로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작은 교회였습니다. 오늘날 50명쯤 된다고 해봐요. 50명 교회가 엄청 축복을 받았어요.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교회에서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현장에서 지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어떻습니까? 우리의 말을 보세요. 교회에서는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당신은 위대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말하지만, 친구들과 만나서는 쌍욕을 합니다. 남에 대해 험담을 합니다. 불평과 원망을 말을 끊임없이 합니다. 우리 말이 하나님께 열납이 될까요? 기도를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가정에서 우리의 말이 하나님이 인정하는 말을 하느냐 이 말입니.

 

저는 개척 초기에 새벽 2시까지 기도했습니다. 개척 초기는 사람들이 더 없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고 집에 가다 사모하고 싸웠습니다. 자연적이 현상으로 방귀가 나왔습니다. 나는 왜 계단에서 방귀를 뀌냐고 말했습니다. 잠자는 사람 방해하게 말입니다. 아니 솔직히 생각해 보세요. 내 아내가 중요해요. 잠자는 남이 중요해요. 아내가 중요한데, 자연스럽게 방귀가 나오니 얼마나 감사해요. 그런데 그걸 가지고 싸웠다니까요? 9시부터 새벽 2시까지 열심히 기도하고, 싸우고 있으니,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종종 실수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우리가 보통때 하는 말과 행동이 하나님이 열납하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를 점검해 보세요.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에게 세계 민족위에 뛰어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믿음이 있는 우리는 아브라함의 복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진짜 예수님을 잘 믿는 성도였으면 지금쯤은 영적으로 엄청난 성장을 했을 것이고, 물질적으로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수십년 동안 예수님을 믿고도 행복을 느낄 수 없다면, 분명, 우리는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의 소원이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물질을 드리는 태도는 어떤가요? 하나님의 것을 온전하게 하나님께 드립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고 있지 않아요?

 

어떤 목사님 이야기를 해 볼까요? 신학을 공부하기 전에 아내가 바람이 났습니다. 혼자 어렵게 두 자녀를 키웁니다. 대한통운에서 택배 물품을 내리는 일을 합니다. 저녁부터 새벽까지 쉴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5만원을 법니다. 새벽에 집에 와서 자녀들 밥을 해 먹이고 본인은 신학교에 갑니다. 참으로 고된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150만원을 벌었습니다. 피땀흘린 돈입니다. 그중에서 15만원을 십일조를 합니다. 목사님은 그 형편을 다 알기에 말합니다. “형편이 풀리면 십일조 하세요.” 그런데 집사님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목사님, 우리는 하나님의 돈을 떼어 먹지 않습니다.” 깡패들도 의리가 있잖아요? 겨울에 추워서 손장갑을 5개 끼어도 손이 시렵습니다. 집에 와도 어린 자녀들이 있습니다. 제대로 먹을 수도 없고, 새 옷을 사 입을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피같은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하나님의 것을 떼어 먹지 않으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우리 신앙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필라델비아 교회는 적은 능력으로 하나님 말씀을 지키었습니다.” 과부의 두 렙돈은 얼마인지 아세요. 지금 1000원 정도의 돈 밖에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자의 금화보다 과부를 더 칭찬하셨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지원을 받아야 할 정도의 작은 교회였습니다. 간신히 교회를 운영하는 교회였는데, 말씀을 지키려고 노력한 것입니다. 그리고 피흘리면서 말씀을 지킨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 모습을 보신 것입니다. 그러니 감동을 받은 것이죠. 과부의 헌금에 하나님이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를 보면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제가 모델로 삼고 싶은 교회입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열린 문의 축복을 받으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시험의 때에 보호해 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하늘의 면류관을 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하나님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예수님의 새 이름을 기록하리라.”

 

어떤 목사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개척 22년 동안 20명의 교인을 섬깁니다. 은혜를 받고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시기를 나는 네 예배를 받고 싶다그래서 목사님이 매일 저녁 양복을 입고 주일 예배처럼 예배 인도합니다. 교인들은 3일은 없고, 3일은 1-2명입니다. 1년이 넘도록 혼자 예배드렸습니다. “할렐루야 장로는 하나님 말씀을 들으세요.” 그러면서 2시간 설교합니다. 어느 날, 2층의 태권도 학원에서 9살 정도의 학생이 교회에 올라옵니다. 교회에서 큰 소리가 나니 올라온 것입니다. 교인은 아무도 없고 목사님 혼자 떠드는 것입니다. 아이가 2시간 동안 졸다가 갑니다. 목사님은 돈 1만원을 주면서 내일 다시 오라고 했는데 그 이후로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매일 365일 예배가 그렇게 해서 시작되었답니다.

 

저는 그 간증을 듣고 회개했습니다. 목사님은 혼자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께 열납되게 하신 것입니다. 혼자 드리는 기도가 하나님이 열납하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저는 어떠했나요? 혼자 드리면 힘이 빠졌습니다. 4-5명이 모이면 힘이 났습니다. 사람 수에 따라 내 마음이 요동을 친 것입니다.

 

하나님, 내 인생을 망가뜨린 사람이 저입니다.

저는 개인적인 예배에 실패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인 기도에 실패했습니다. 저는 가정에서의 삶도 하나님께서 열납되는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제 생각도 하나님이 열납되는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제 말도 하나님이 열납되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제 인생을 망가뜨린 장본인은 저입니다. 용서해 주세요.”

 

빌라델비아 교회, 그 작은 교회가 하나님께 칭찬을 받았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대형교회였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부자교회였습니다. 힘이 있는 교인들, 돈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책망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작은 교회가 칭찬을 받았을까? 늘 부럽습니다.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말씀을 지킨 것입니다. 적은 능력으로도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적은 능력으로도 끝까지 인내하면서 믿음을 지킨 것입니다.”

이제는 저와 여러분이 제2의 빌라델비아 교회를 세워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