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신 강단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라

박도식 2021. 10. 27. 16:02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라

사도행전1:1-5

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2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3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4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포인트 워드: 성령세례

활용: 물세례는 물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성령 세례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를 덮고 우리를 인도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을 가슴에 안고 따라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영혼의 양식이며, 영적전쟁에 무기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신앙인들은 2가지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첫 번째는 물 세례입니다. 세례 요한은 요단강에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이전과는 새롭게 살고 싶은 자들이 물 세례를 받았습니다. 죄사함의 외적인 표현이 물 세례입니다. 오늘날 목사님들이 물 세례를 줍니다. 두 번째는 성령 세례입니다. 물로 세례받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 세례를 주십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마태복은 3 11절이다.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3:11) 성령 세례, 불 세례를 주시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마가복음 1 8절에서는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1:8)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반드시 2가지의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3 5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3:5) 

 

예수님은 우리에게 2가지 좋은 일을 하셨습니다. 첫 번째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셔서 우리로 하여금 죄와 사망을 이길 수 있게 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성령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16:7)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14:16)

 

본문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에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1:5)

 

우리는 반드시 물세례와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 세례를 받은 분들은 성령충만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살아 생전에 성령을 받을 것을 누누이 강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성령의 능력이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첫째, 성령 세례는 명확한 체험이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에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1:5)

 

물 세례는 물로 세례를 받는 것이고, 성령 세례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성령 세례는 성령을 받는 자가 확실히 안다는 것입니다. 토레이 목사님은 말합니다. “성령 세례는 당사자가 받았는지 여부를 알 수 있으며, 또 반드시 알아야 하는 분명한 체험이다. 

 

성령 세례는 성령님이 나를 사로잡는 것입니다. 성령님과의 거룩한 만남의 사건을 본인이 모르면 안 됩니다. 성령님과의 만남이 반드시 방언을 해야만 만나는 것은 아닙니다. 방언은 은사입니다. 성령님이 찾아 오셔서 나를 덮어주는 것, 그 분과의 거룩한 만남을 성령 세례라고 합니다. 성령님과의 만남은 잊을 수 없는 경험입니다. 성령님이 나를 만나시는 첫 만남이 성령 세례입니다.

 

사람들은 3번 태어나야 한다고 합니다.

1 출생은 부모에게서 태어나야 합니다.

2 출생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3 출생은 성령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사역자로, 일군으로 하나님 나라의 정병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령 세례를 받고 성령으로 살아갈 때, 그 삶이 완전히 변하기 시작합니다.

 

사도행전 2장 오순절 사건을 보면,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2:2-4)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고,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듣게 되었고, 환상이 열리고, 방언을 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복음서에서 제자들을 둘씩 짝을 지어 파송했습니다. 귀신을 내어 쫓고 병을 고치고 능력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70인의 제자들은 놀랐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10:19-20) 70인 전도대는 귀신을 쫓아내고 병도 고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의 이름은 천국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자들은 아니었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일시적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했지만,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체험하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는 현장을 볼까요?

마가의 다락방에서는 기도하다가 성령충만을 받았습니다. 고넬료의 가정에서는 베드로가 말씀을 증거할 때, 성령님이 임하셨습니다. 말씀을 듣는 순간, 성령님이 임하셨고, 이방인들이 방언을 말하며 오순절의 체험을 했습니다. 사마리아에서는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할 때, 성령이 임했습니다. 에베소의 경우는 바울이 안수할 때, 성령님이 임했습니다. 기도할 때, 성령이 임하시고, 말씀을 들을 때 임하시고, 주의 종이 안수할 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예화)

장신대 은사님 가운데 김명룡 교수님이 계셨습니다. 별명이 황금박쥐입니다. 이빨이 앞으로 튀어나왔습니다. 교수님이 대학원에서 방언에 대해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본인은 방언을 할 줄 몰랐습니다. 방언을 강의하기 하루 전에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방언을 할 수 있게 하옵소서.” 방언을 사모하면서 기도를 하니, 방언을 말하게 되었습니다. 성령님을 이론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체험적으로 알기 시작했습니다.

 

신약학의 성종현 교수님도 계십니다. 핑클의 성유리의 아버지입니다. 독일에서 공부하고 왔습니다. 독일 신학은 사변적입니다. 말씀안에서 신화적인 부분을 제거하는 훈련을 받은 분입니다. 한 마디로 기적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물 위를 걷는다.”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서구 신학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성령님을 체험하고 나서 신학 사상이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은 전능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치료의 하나님입니다. 이론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인 것을 믿게 되었고, 그런 하나님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성령 세례는 명확한 체험입니다.

 

우리 다같이 고백합시다. “성령으로 세례 받읍시다.” “성령님을 체험합시다. 

 

둘째, 성령 세례는 구원과 성화와 구별됩니다.

 

성령님은 내주하는 성령님과 임하시는 성령으로 구분이 됩니다. 내주하시는 성령님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믿게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안에 성령님이 내주하기 때문입니다. 내주하는 성령님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의롭게 하시는 사역을 합니다. 우리 안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우리 성품을 바꾸어 주십니다.

 

그러나 임하시는 성령, 성령 세례는 우리에게 능력을 행하게 하십니다. 복음서의 제자들은 내주하는 성령을 받았지만, 임하시는 성령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

 

성령 세례에 대한 신학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오순절 계통은 믿을 때, 성령을 받고, 성령 세례는 기도해서 따로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방언을 말할 때, 성령 세례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개혁교회 전통, 장로교 전통은 다릅니다. 성령 세례를 따로 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고 거듭날 때, 성령 세례를 받는다고 말합니다. 믿을 때, 성령 세례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개혁교회에 속해 있지만, 성령 세례에 대한 견해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성령의 세례는 회개하고 기도하다 체험하는 것입니다.  

 

신학 때문에 장로교 교인들 가운데 성경에서 말씀하는 성령 체험을 하지 못한 분들이 많습니다. 구원받은 자들 가운데 성령세례를 받지 못한 자들도 있습니다. 이걸 아셔야 합니다. 분명 제자들은 하늘나라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지만, 성령을 받은 자들은 아니었습니다. 복음서의 제자들이 성령을 받은 자들이라면, 예수님이 다시 성령을 받으라고 강조할 필요가 없잖아요?

 

복음서의 제자들이 병고치고 귀신쫓고 능력을 행했지만,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체험하고 확실하게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는 성령의 능력으로 병을 고치고 악한 영들을 물리치며 능력있는 사역을 했습니다. 사도행전 8장에서 사마리아 지방에 빌립이 전도할 때, 큰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시몬이라는 마술사도 있었습니다. 시몬도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분명 성령을 받은 자가 아니었습니다. 8:13절입니다.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8:13) 전도자 빌립을 통해 역사하는 성령님을 보고 놀랐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세례를 받았습니다. 빌립을 따라 다녔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령을 받지 못했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할 때,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고, 돈을 주며 흥정합니다.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옵소서.(8:19) 베드로가 말합니다.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찌어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8:20-21) 

 

성령 세례를 임하시는 성령은 회개하고 기도할 때, 받을 수 있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받을 수 있습니다. 안수 받을 때, 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 세례 받은 것은 본인이 알 수 있습니다. 눈물이 나거나,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이 뜨거워지거나, 따뜻한 무엇인가를 느낄 때, 성령님이 임하신 것입니다.

 

예화) 무디 목사와 웨슬레 예화

세계 교회사를 보면 압니다. 무디 목사님은 5살 때, 세례 받았습니다. 종교적인 분위기에서 성장했습니다. 교회학교 선생 에드워드 킴볼이 무디를 전도했습니다. 무디는 18세에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보스톤의 가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던 날, 모든 만물이 내게는 새롭게 보였고, 내 마음은 사랑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후 나는 예수님을 잊어 본 적이 없습니다.” 무디는 거듭났습니다. 구원받았습니다.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령 세례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가 설교 할 때마다, 허공을 치는 듯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당신의 설교에는 힘이 없습니다.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그가 34세가 되었을 대, 성령으로 충만하기를 기도할 때, 껑충껑충 뛰면서 기도했다고 하잖아요. 친구 집에 들어가서 기도할 때, 성령으로 충만을 받게 되었습니다. 무디의 유명한 말입니다. “하나님, 그만 부어 주세요. 타 죽겠어요.” 예수님을 영접하고 16년 만에 성령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성령 세례 이후, 무디의 설교에는 성령의 나타남이 있었습니다. 대중집회 강사 섭외 1순위였습니다. 성령님께서 그를 사로잡고 사용하셨습니다.

 

거듭남과 성령 세례는 다릅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리는 어떤가요? 그가 미국에서 인디안 선교에 실패하고 영국으로 돌아오는 순간 폭풍우를 만났습니다. 그는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모라비안 교도들은 평안하였습니다. 목사요 선교사인 본인은 두려웠는데, 모라비안들은 평온하게 예배드리고 있었습니다.

1738년 올더스게이트의 모라비안 모임에서 그는 성령의 체험을 하였다. “약 8 45분 쯤 한 사람이 로마서 서문을 읽는데 나는 이상하게도 마음에 뜨거움을 느꼈다. 나는 정말 내가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생각했다. 그리스도가 바로 나의 죄를 심지어 나 같은 죄인의 죄를 담당하셨고 나는 구원받았다는 확신이 생겼다.

 

명확한 성령의 체험이 사역자들의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물세례가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 필요한 것처럼 성령 세례는 성령의 능력에 대한 입문이다. “세례”라는 말은 처음으로 입문하는 것을 말한다. 성령님이 매번 역사하시면서 나타남을 주실 때 “성령세례를 받는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성령세례는 권능사역으로 입문하는 관문이다. 우리는 성령충만을 구해야 합니다.

 

셋째, 성령세례는 그리스도인들의 섬김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님이 비둘기처럼 임하셨다. 이것이 사역의 전환점이었다. 물론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일하시기에 능력이 있었지만 성령님이 임하시자 사역의 증거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저희가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세가 있음이러라”(4:32). “다 놀라 서로 말하여 가로되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세와 능력으로 더려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하더라”(4:36)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5:17)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10:38)

 

예수님은 성령세례 받기 전에 사역을 하실 수 있었지만 성령을 받고 나서 사역을 시작하셨다. 그리고 제자들도 성령을 받고 사역을 하도록 하셨다.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성령님을 통한 권능의 사역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 이것이 단지 방언을 말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예언을 말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도록 허락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의 세례를 구하는 것이다.

 

예수원을 세웠던 대천덕 신부는 늘 성령의 세례를 구했다. 할아버지의 방식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령을 구했다. 그리고 믿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주님의 인도함을 받으며 순종의 걸음을 걸었다. 그러나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기도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눈물도 기쁨도 없었다. 그후 20년 동안이나 방언을 말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는 성령세례를 사모했고 하나님이 구하면 주신다는 믿음의 은사를 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