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교회를 회복하라
네 교회를 회복하라
사도행전 2:42-47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43 사람마다 두려워 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포인트 워드: 교회
활용: 하나님은 우리에게 교회를 선물로 주셨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다. 교회가 무너지면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무너진다. 우리는 교회를 세우는 자들이다.
다같이 따라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영혼의 양식이며 영적 전쟁에서 무기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네 예배를 회복해라” “네 기도를 회복해라.” “네 영적 전투력을 회복해라” “네 말씀을 회복해라” “네 감정을 회복해라” 이번 주는 “네 교회를 회복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한국 교회가 코로나 19 상황에서 보여준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먼저 방역에 모범을 보였습니다. 철저하게 거리 두기를 지켰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19로 인해 작은 교회들은 큰 위기를 경험했습니다. 이제는 위축되어 있는 교회의 예배와 사역이 정상화되어야 합니다. 영적 무기력과 재정적인 어려움에서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선교사들도 선교지도 돌아갈 수 없는 처지입니다. 코로나가 빨리 종결되어 사역의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목사님들은 교회 부흥을 원합니다. 성도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부흥을 말할 때는 2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양적인 부흥입니다. 숫자가 늘어나는 것입니다. 복음이 전파되면서 구원받는 숫자가 늘어나는 것은 중요합니다. 교회가 부흥된다는 것은 한 영혼이 주님께 돌아온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제 있는 가정이 회복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부흥을 말할 때, 중요한 것은 질적인 부흥입니다. 이것은 거룩한 내적변화입니다. 교회 공동체가 성령님을 만남으로 생각이 변하고 행동이 변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자의 삶이 변화하는 것보다 더 큰 기적은 없습니다. 내가 변하고 남이 변하고 우리가 변한다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교회 성장론에 대해 잠시 살펴 보고자 합니다.
교회 성장을 위해서는 전교인이 교회 성장형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양적 부흥에 대한 열망이 없으면 성장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전도하려고 해야 합니다. 전도하려는 마음이 있을 때, 하나님은 날마다 구원받는 숫자를 더해 주십니다.
0 평신도 중심의 목회를 해야 합니다. 목사나 사모 둘이 뛴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인들이 지도자들로 세워져야 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목회자와 같은 마음으로 영혼을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 계신 한 분들이 10명, 20명을 섬길 수 있으면, 우리는 벌써 300명이 된 것입니다.
0 성장하는 교회의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계속적인 기도입니다.
철야기도, 24시간 연속 기도, 새벽기도, 개인기도 등. 기도의 불이 붙은 교회가 성장합니다. 기도의 불이 붙어야 성령의 불이 붙고, 성령의 불이 붙어야 기적의 불이 붙습니다. 기도의 불이 꺼지면, 성령의 불도 꺼집니다. 그러면 기적과 이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영광의 불이 임하기를 원하면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 성경의 권위를 존중합니다.
성경 중심으로 세워진 교회가 부흥합니다. 철저한 복음주의 말씀중심주의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는 교회가 부흥합니다.
세째, 효과적인 지도력이 있어야 합니다.
목회자의 지도력이 탁월해야 합니다. 광림교회 당회실에는 당회장석 옆에 빈의자가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자리입니다. 김선도 목사님은 당회 도중에 “목사님, 그 의견을 잘못되었습니다.”라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하나가 될 때, 교회는 부흥합니다.
넷째, 영감있는 예배입니다.
누구나 예배를 통해 은혜를 받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예배 준비가 철저해야 합니다. 찬양하는 찬양대도 은혜로운 찬양을 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분들도 최선을 다해 준비해야 합니다. 설교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 시간에 짜투리 시간이 있으면 안 됩니다. 물이 흘러가듯, 예배 순서를 맡은 자가 바로 바로 준비 되어 있어야 합니다.
예배 중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설교입니다.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축복입니다. 말씀이 은혜로운 교회가 부흥합니다.
다섯째, 계속적인 전도입니다.
끊이 없이 기도하고 전도할 때, 하나님은 영혼들을 보내 주십니다. 전도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전도를 위해 최선을 다해 협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작은 교회는 전도하는 사람이 부족합니다. 우리는 힘을 합쳐 전도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여섯째, 지역사회의 봉사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교회를 주목합니다. 교회가 지역을 섬겨야 합니다. 지역 주민들이 교회를 내 교회로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지역을 청소하고, 섬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동사무소에 소외된 이웃을 위한 작은 기부도 중요합니다. 심지어 교인들이 통장이나 반장이 되는 것도 필요합니다. 지역 사람들과 좋은 유대 관계를 갖는 것입니다. 소문이 좋은 교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일곱째,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합니다.
교회가 성장하면, 다양한 필요를 지닌 사람들이 옵니다. 의료지원, 법률상담, 진학지도, 노인대학 등. 유치원, 교회가 사람들의 영적, 육적인 필요를 채워주면 교회가 성장합니다.
무엇보다 교회는 변화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 보수적이란 것은 마음이 열리지 않은 것을 말합니다. 교회의 조직이나 기구, 행정이 열린 행정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에 대해서는 타협이 없지만, 그 외의 것에 대해서는 열린 마음으로 영혼들을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교회가 부흥할까요? 교회 성장학에서 말하는 이론이 아니라,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성장의 원리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다운 교회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전적으로 성령님의 역사이며, 성령님이 이끄시는 방법대로 부흥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성경에서 말씀하는 부흥의 원리를 한 번 살펴 보고자 합니다.
첫째가 사도들의 가르침입니다.
은혜 충만한 베드로의 설교에 3천명이나 회개하면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대단한 사건입니다. 사람들은 방언을 말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신유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감정이 고무된(up) 상태입니다. 그런데 초대교회는 사도들을 통해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신앙의 기초를 세웠습니다. 다소 감정적인 사람은 이성의 작용을 무시할 수 있습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은 초대교회의 기초를 놓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체계화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경험적으로 알 뿐 아니라 이성적으로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제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훈련을 통해 다듬어질 때 남을 섬길 수 있습니다. 계속적으로 가르침을 받을 때 예수님의 제자는 만들어집니다. 주님의 말씀을 바르게 알지 못하면 감정에 치우쳐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입니다. 그런데 어느 교회는 회사같은 곳으로 전락한 곳이 있습니다. 미국에 글랜 와그너 목사님이 [교회 주식회사로부터의 탈출]이라는 책을 지었습니다. 목사님이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교회에 부임했는데 교회 대표가 와서 말했습니다. “이제 당신은 향후 6년 동안에 진행될 전략계획을 수립해야 합니다. 최고 경영자가 진행하는 20가지 사업의 목표를 여기에 아주 명확하게 써 놓았습니다. 참고하십시오.” 교회 대표가 목사님에게 요구하는 것은 멘토링이 아닌 경영이었습니다. 양육이 아닌 숫자이었고, 사람이 아닌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목사이기 보다는 사장으로 일해 달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말씀의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오늘날 경영자 목사가 필요하기 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선포하는 목사가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사도들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이 어부이었지만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말씀이 있을 때 경건함이 살아납니다. 교회에 나올 때 두려워함이 필요합니다. 주님이 교회를 세우셨고 교회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전에 나올 때는 이런 경건함이 필요합니다.
사도바울이 에베소 교회 교인들에게 한 말입니다.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행20:32)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시107:20)
초대교회는 말씀의 공동체였습니다. 성경이 기록되어 있지 않았지만, 사도들의 가르침에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떤가요? 성경 말씀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고 있나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나요? 하나님 말씀을 지키면, 하나님이 그 영혼을 보호하십니다. 교회는 하나님 말씀이 선포되고, 말씀이 가르쳐 지고, 말씀이 지켜지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둘째 서로 교제가 있었습니다.
현대인의 특징은 외로움입니다. 자기의 마음을 받아줄 사람을 찾아보지만 누구나 다 바쁜 이유로 마음을 붙일 곳이 없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의 80%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를 알아 주세요. 나는 외로운 사람입니다. 나는 남들이 모르는 상처가 있습니다. 나를 사랑해 주세요. 인정받고 싶어요.” 그래서 교인들은 사랑이 많은 교회, 새신자에게 관심을 보이고 인정해 주는 교회에 나오기를 원합니다.
폴 투르니에 박사는 현대인은 참된 친교에 굶주려 있다고 합니다. 마음을 터놓을 상대가 없습니다. 마테 테레사는 말합니다. “오늘날 가장 큰 인간의 병은 사랑의 결핍, 보살핌의 결핍으로 인한 것입니다. 그 결과는 고독, 절망, 좌절입니다. 이 병은 약으로 치유할 수 없고 사랑으로 치유할 수 있습니다.”
외로운 현대인의 병을 치유할 수 있는 곳이 교회 공동체이며 구역입니다. 구역은 외로운 사람들에게 안식처가 되기도 합니다. 구역에서 고민들을 털어놓고 이야기합니다. 구역장이나 구역원이 그 말을 듣고 위로해 주고 멘토가 되어 줍니다. 부부간에, 자녀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구역 모임을 통해 깊은 사랑을 체험하고 치유를 경험합니다. 교회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구역에서는 서로 얼굴을 보며 친밀한 교제가 가능합니다. 성장하는 교회는 구역이 활발하게 움직입니다. 교회를 움직이는 또 하나의 힘이 구역입니다.
성도의 교제는 단순히 믿는 사람들끼리 모여 인간적인 교제를 갖는 것이 아닙니다. 이 교제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거룩함에, 그리스도의 은총에, 성령의 은사에 참여하는 길입니다.” 거룩한 성만찬을 떼면서 하나됨을 확인하게 됩니다. 성도의 교제는 우리가 주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임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나 구역이나 성도의 교제가 강할수록 공동체성이 확고하게 자리 잡습니다. 비젼을 나누고 공유하는 공동체는 성도의 교제 안에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필요를 따라 나눠주었습니다(행2:44-45). 초대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이었습니다.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기 보다 공동체의 이익을 앞세우고 나 아닌 다른 사람을 향해 관심을 보였습니다. 초대 교회를 잘 설명한 서신이 있습니다. 총독 플리니우스가 트라얀 황제에게 보낸 서신입니다. 박해로 인해 비밀리에 모이는 기독교 단체에 대해 조사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을 법 이상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로흐만 교수는,
"초대교회는 서로를 위해, 모두를 위해 살고 존재한다. 거기에는 모두를 위한, 즉 남자와 여자, 유대인과 이방인, 종과 자유인, 부자와 가난한 자의 자리가 있다. 이 형제적인 공동체는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집중한 공동체가 아니라, 구체적인 상황과 관계가 있는 가난한 자들, 실패한 자들, 버림받은 자들, 차별 대우를 받은 자들에게 구속력을 지닌 공동체이다. 이 공동체에서 이들은 교회의 보화들이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성도의 교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형성되어 가는 교제에는 하나님과 교제가 포함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을 아버지와 교제 가운데 살게 됩니다. 이 교제는 이 현실 세계에서 뿐만 아니라 영원히 계속되는 교제입니다.
성도의 교제에서 중요한 것이 이간질의 영을 부수는 것입니다. 이간질은 남의 흉을 보는 것입니다. 서로 멀어지게 합니다. 이것은 100% 사탄에게 속는 것입니다. 허물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부족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나요? 부족하기에 예수님을 믿는 아닌가요? 연약하기에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닌가요? 넘어지기에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닌가요? 남의 흉을 말하지 마세요. 교회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세워주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셋째. 기도하였습니다.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42절)
사도행전 전체에 30번 이상 기도에 관한 말씀이 나오게 됩니다. 기도후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바울이 선교사로 파송되었을 때 그의 뒤에는 안디옥 교회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기도가 있는 곳에 표적이 있고 기사가 있습니다. 기도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을 끄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가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은 기도이었습니다.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는 것은 기도외에는 없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일어나는 기적을 봅니다. 어느 목사님과 선교사 일행이 다른 선교지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이분은 차의 맨 뒤에 앉아 있었습니다. 동료 선교사들이 잠을 잡니다. 운전사도 잠을 잡니다. 그런데 운전사가 바뀌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이 운전하는데 머리가 길었습니다. 목사님은 이제 내 생명이 다했구나 하면서 회개를 하였습니다. 주님의 보혈로 내 죄를 사해 주옵소서. 그런데 운전사가 자기를 보면서 인사합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마음이 더욱 불안하여 회개를 합니다. 3일 걸려서 와야 할 거리를 반나절에 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믿지 않았습니다. 오는 동안 주유를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천사의 놀라운 방문을 받은 것입니다.
하이디 베이커 목사님이 있는 모잠비크에 콜레라가 돌았습니다. 환자들이 집단 수용소에 수용되었습니다. 하이디 베이커와 동료들이 이곳에 갔습니다. 천막을 지키는 사람들은 이들이 들어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전염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들어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들어가서 아픈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고침받은 사람들과 함께 그곳을 나왔습니다. 오늘도 초자연적인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곳에, 하나님을 사모하는 곳에 역사는 일어납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라마나욧 같은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덮고 있는 교회, 기사와 표적이 많이 일어나길 바랍니다. 시각 장애인이 눈을 뜨기 바라고, 암환자가 고침받기 바랍니다. 불치병을 걸린 사람들이 우리 성신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가운데, 기도하는 가운데 고침받기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더욱더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이 우리 성전에 가득채워지도록 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외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더욱 더 하나님을 사모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의 역사가 놀라운 일을 일으킵니다.
기도의 불이 붙어야 치유의 불이 붙고, 치유의 불이 붙어야 기적의 불이 붙고, 기적의 불이 붙어야 영광의 불이 붙는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교회. 누구나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교회, 성령님이 주인되어 마음껏 영광을 받는 교회.
어느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안양의 어느 교회인데, 7층으로 교회를 잘 지었다고 합니다. 멋진 건물을 지녔습니다. 그런데 기도해 보니, 교회에 10cm 이상 먼지가 쌓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7마리의 쥐가 교회 이곳 저곳을 다니는 것을 환상으로 보았습니다. 쥐의 꼬리가 엄지 손가락 크기의 굵기였다고 합니다. 목사님이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교회 주보를 보아라.” 교회 주보에 보니, 장로님이 6명이었고, 담임 목사님까지 7명이었답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체험이지만, 무엇을 의미합니까? 멋진 건물이 있어도 영적으로는 죽은 교회라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뜨겁게 기도하고, 뜨겁게 찬양하는 교회였습니다. 기도가 중요합니다. 기도가 간절하고, 기도가 뜨거우면, 반드시 하나님은 살아계신 증거를 보여 주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기적을 체험하는 주인공이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날 초대교회 같이 말씀의 공동체, 섬김과 나눔이 있는 공동체, 기도하는 공동체를 세울 수 있다. 한국은 지금 이런 교회를 원하고 있다. 더더욱 하나님은 초대교회 같이 성령 충만한 공동체를 원하고 계신다. 그리고 그런 교회에 이와 같이 약속을 하셨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7)
1.필사의 기도(내가 살려면 예수)
2.부르짖는 기도
3.피를 철철 흘리는 처절한 삶의 기도
4.함께 걸어 가는 동역의 삶의 기도
5.사람이 아닌, 오직 주님만 바라 보는 기도
6.오직 성령의 그 기도
7.신음하는 기도
누가복음 18: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5).
“네 교회를 회복해라.”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는 예수님의 몸입니다. 또한 일터입니다. 교회의 생활이 천국에서 우리에게 상급이 됩니다. 한국 교회가 점점 무너져 갑니다. 학자들은 코로나 19이후는 1/4이 감소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이 교회를 세우는 영광스런 일에 동참한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행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