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감정을 회복하라
네 감정을 회복하라
로마서 12:17-21절
17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포인트 워드: 감정
활용: 우리는 감정을 가지고 있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좋아하고 싫어한다. 그런데 부정적인 감정을 잘 다스려야 한다. 내 안에 성령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안의 감정을 다스리는 것이 능력이다.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자.
다같이 따라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영혼의 양식이며 영적 전쟁에서 무기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사람은 대인 관계 속에서 살아 간다. 혼자 살아갈 수가 없다. 이웃과 함께 살다보면, 좋은 사람도 만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만난다. 본의 아니게 원수가 생기고, 미운 사람이 생긴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도 생기기 마련이다.
여러분은 사람을 죽이고 싶도록 미워해 본 적이 없는가?
어느 목사님은 교회 수석 장로님을 미워했다고 한다. 이 장로님은 밤 12시에 목사님을 찾아와 무릎꿇고, 자기 교회에 오기를 간청했던 사람이다. 자기 교회에 오자, 부당한 대우를 많이 했단다. 목회를 훼방하고, 덕이 되지 못했다. 목사님은 억울함을 많이 당하면서 속으로 욕을 했단다. “저런 인간은 죽어야 해.” 그런데 장로님이 교회 담벼락에 깔려 죽었다. 그리고 아내 권사님은 갑자기 암으로 죽었다. 장로님은 부산에서 알아주는 부자였는데,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었다고 한다. 그 목사님은 얼마나 한이 맺혔던지 두 사람이 죽고도 1년 가까이 그 미움이 가시지 않았다고 한다.
어느 목사님이 이런 말을 한다. 만약 한국 사회에서도 총이 주어진다면, 많은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서로 죽일 것이다. 이것이 한국 교회의 현실이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마5:44-45)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대인관계를 맺는 비밀을 말씀하셨다. “형제에게 노하지 말라. 욕하지 말라. 비판하지 말라. 정죄하지 말라.” 심지어 “옳다. 그르다, 판단하지 말라”고도 하셨다.
마태복음 6장에서는 엄청난 말씀을 하셨다.
“우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하나님도 우리의 과실을 용서하시지만, 우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도 우리의 과실을 용서하시지 않을 것이라.”(마6:14-15)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 부담스런 말씀이다. 우리가 늘 미워하고, 남을 저주하고 용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시간 우리의 상한 감정을 치유하기 원하신다. 왜 우리 안에 미움이 생기는가?
첫째, 다른 사람과 비교될 때에 미움이 생긴다.
가인의 경우를 살펴보자. 두 사람이 예배 드렸는데, 한 사람의 예배는 열납되고 한 사람의 예배는 열납되지 않았다. 가인은 얼굴 빛이 변했고 동생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잘 나고 인기가 많고, 유능하면 미움과 시기심이 생긴다. 부패한 인간의 본성이 그런 것이다.
남에게 거부감을 주는 사람이 있다. 목소리가 카랑카랑한 사람, 모난 사람, 성질이 팩팩거리는 사람, 비난하기 좋아하는 사람, 설치는 사람, 늘 싸움을 걸어오는 사람 등. 이런 사람은 남에게 거부감을 유발하고 미움을 받는다.
오늘날 신앙인들은 마음을 고쳐야 한다. 상대방이 열심을 내면, 용기를 주고, 격력해 주어야 하는데, 꼭 감정을 상하는 말을 한다. “교회일은 저 혼자 다하나? 지가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어?” 꼭 비툴어진 마음 심보를 가지고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를 바꾸어 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단호하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인간 쓰레기)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고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5:22)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그런데 목사님들은 욕을 했다고 지옥가냐고, 아니라고 한다. 정말 부탁이다. 죽은 다음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 마음 심보를 고쳐 먹으라. 회개하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안에 미움 다툼 시기 질투 없는 사람이 없지요? 그런데 우리는 이런 것들로 인해 마음의 천국이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나를 바꾸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 쉽게 되지 않아요? 그러나 노력해야 합니다. 내 안에 숨어 있는 미움의 감정을 사랑의 감정으로 바꾸어 내야 합니다.
지금 나는 누구를 미워하고 있나요? 그 사람을 미워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미움의 감정을 십자가 앞에 내려 놓기 바람니다. 미움은 자신을 파괴하는 행동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막는 행위입니다. 미움은 저주입니다. 미움을 부셔버려야 합니다.
병아리가 껍질을 깨야 닭이 되듯이, 우리 안에 미움의 껍질을 과감하게 깰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나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이 있을 때 미움과 증오가 생깁니다.
나를 부당하게 대우하고 억울하게 할 때, 미움이 생깁니다. 내 가슴에 도무지 지울 수 없는 스트레스와 무거운 짐을 지우는 사람이 있을 때, 미움이 생깁니다.
딸 아이의 플릇으로 인해 3500명이 1만원씩 헌금하기를 기도할 때, 어느 목사가 말합니다. “자식가지고 앵벌이를 하느냐?” 저와 친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가슴에 상처를 주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하느냐?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들으셨지요? 하나님 그 목사님이 불쌍해요? 목회가 하나님 마음을 알아드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인데, 목회를 못하잖아요?” 그를 생각하며 기도합니다. 그러면서 내 안에 숨어 있는 미움을 십자가에 못박으며 부숴버립니다.
우리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화를 냅니다. 나라의 경제가 내리막길입니다. 정치를 보세요. 독재를 합니다. 박정희 독재 시대에도 없던 일들을 민주당이 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그렇게 악용하면 안 됩니다. 교회를 보세요. 예배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기도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사회를 보세요. 가정 폭력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아동 학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성폭력, 성추행. 끊임없이 발생합니다.
우리 사회의 문제를 보면,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이 나라의 아픔은 개인의 아픔이자, 결국 우리 자녀들의 아픔이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의 무능은 극에 달합니다. 언론이 조작됩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 형제 자매가 나에게 잘못하여 마음으로 미워질 때, 그 이유를 생각하여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행동은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섭섭한 마음이 들고, 미움이 생깁니다.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세요. “왜 그 사람이 그런 행동을 했을까?” “그 사람은 성령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요일3:15)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요일2:11)
그런데 미움의 원인이 100% 상대방에게 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누가 봐도 타당성이 없고, 잘못하는 것이 명백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계속 문제를 유발한다면, 이웃에게 상처와 아픔을 준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간음한 여인이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은 여자에게 말씀합니다.
“여자여, 나도 너를 정죄치 않겠노라. 그러니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예수님은 죄를 미워하셨지만, 죄를 지은 사람은 미워하지 않으셨다. 미워하기보다는 죄인은 사랑하여 대신 십자가를 지셨다. 죄는 미워하지만, 그 죄인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사랑과 온유를 우리가 배워야 한다.
우리가 알아야 할 삶의 지침이 있다. 우리는 악하고, 깨닫지 못하고, 한없이 문제를 유발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끝없이 용서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저주하지 말아야 한다. 그를 심판하는 권한은 내 영역 밖의 일이다. 심판자는 하나님이시다.
미움과 원망을 인간적으로 풀지 말고, 하나님의 손에 맡겨야 한다. 하나님이 움직이실 때까지 나는 그저 인내할 뿐이다. 인내를 배우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필사적으로 기도하는 길 밖에 없다.
롬12:17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셋째, 우리는 감정대로 사는 자들이 아니라, 말씀대로 사는 자들이다.
사람들에게 감정이 있다. 좋은 감정, 나쁜 감정. 특히 부정적인 감정들. 악한 마귀는 사람들의 감정을 조종한다. 감정이 상하게 한다. 마음에 불안 초조 염려 근심, 미움 증오, 시기심을 준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감정을 치료하는 분이다. 상한 감정을 끌어안아 주시고, 십자가의 능력으로 덧입게 하신다.
성령님은 우리를 말씀대로 살게 하신다. 어떻게 원수를 용서하는가? 어떻게 원수를 위해 축복을 하는가? 성령님이 도우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미움의 감정을 십자가에 못박지 못하면, 우리는 영원히 감정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감정을 회복해야 한다. 하나님은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말씀하신다.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미워하는 것이다. 저주하는 것이다. 그러나 용서하고 축복할 때, 선으로 악을 갚는 것이다.
정바울 선교사의 간증
중국 선교사의 간증이다. 아들이 지방대를 나왔고, 구리에서 영어학원 강사를 했다. 한강 고수부지에서 약속이 있는데, 워커힐 정도에 와서 신호를 대기 중인데 택시가 중앙선을 침범하여 정차중인 차를 치었다. 34살의 아들은 병원에 입원을 했다. 처음에는 택시 기사가 잘못을 구했다고 한다. 그런데 돌변하여, 아들이 잘못했다고 치료비와 배상비를 청구했다. 본인이 잘못했으면서도 아들에게 100% 잘못을 씌운 것이다.
목사님은 기도한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신다. “현수막을 걸어라.” 사고 지점에 현수막을 걸고 기도한다. 아들 뒤에 있던 택시 기사가 연락이 왔다. 블랙 박스를 보니, 100% 택시 기사의 과실이다. 중앙선 침범, 과속. 더 나아가 무고죄. 결국 택시 기사는 구속이 되었다. 경찰은 합의가 되면, 형량이 줄어든다고 했다. 목사님은 가해자를 용서하면서 합의해 주었다. 결국 아들은 그 사고로 죽었다. 목사님의 가슴은 미어졌다. 그러나 성경 말씀을 이루기 위해, 뻔뻔함 택시 기사를 용서하고, 합의해 주었다.
우리가 만약 그 목사님이라면 어떠했을까요?
갈라디아서 6장 1절에 귀한 말씀이 있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6:1-2)
우리가 충고할 일이 있을 때, 맨 먼저, 자신을 돌아 보아야 합니다. 나에게 자책할 것이 있으면, 나에게 허물이나 잘못이 있으면, 절대 충고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 충고할 때에는 정죄하는 마음으로 꾸짖거나, 호되게 질책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드럽고 온유하게 충고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마음이 열릴 수 있도록 말입니다. 만약 사랑하지 않으면 충고하면 안 됩니다. 아무런 감정의 교류가 없다면, 충고를 멈추어야 합니다. 소용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미움을 가지고 정죄하는 사람은 그럴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충고한 다음에는 기도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하루 아침에 고쳐지는 것이 아닙니다. 시련과 역경 속에서 고쳐집니다. 기도하고, 인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회개하지 않고 돌이키지 않는 완악한 형제 자매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고 계신다. 우리가 미워하고, 증오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아픈 가슴을 끌어 안고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는 것을 하나님이 보십니다. 하나님이 중보하는 그 눈물을 보시고, 하늘의 능력을 입혀 주십니다.
우리 안에 무서운 적은 마음을 닫는 것입니다. “너 같은 것은 상종할 가치가 없다.” “너는 인간 쓰레기다.”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닫는 것입니다.
어느 권사님의 이야기를 해 볼까요? 알콜중독자 아버지 아래에서 자랐습니다. 어머니는 가출했습니다. 5살 때, 3살 동생과 함께 큰집에 보내졌습니다. 추운 겨울 날, 3살 동생이 오줌을 쌌습니다. 큰 어머니가 옷을 벗겨 놓고, 동생을 밖에서 벌을 받게 합니다. 이 권사님도 옷을 벗고 함께 벌을 받습니다. 권사님은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무도 돌봐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권사님은 그 때부터 50이 되도록 마음을 정했다고 합니다. ‘절대 울지 않으리라.’ 교회에 나오지만, 얼굴이 굳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웃음을 보일 수도 없었습니다. 마음의 상처가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이혼을 합니다. 아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그런데 교회에 나와서 마음 문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교우들과 대화하기 시작합니다.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마음에 하나님이 찾아 오신 것입니다. 마음이 평안하고, 행복합니다. 가진 것은 없어도, 교회에 충성하면서 헌신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감정을 살펴 보아야 합니다. 미움의 감정, 원망의 감정.
이 감정을 예수님 앞에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내 안에 가득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용서가 내 삶이 되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능력이 내 안에서 움직여야 합니다. 성령님이 움직이면 용서가 됩니다. 성령님이 역사하면, 사랑의 마음이 생깁니다. 이제 여러분의 감정이 회복되길 기도합니다.
오래 전에 어떤 목사님이 제게 참으로 귀한 금언을 주셨다.
“성도에게 필요한 것 마지막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인내입니다.
한번 참아 안되면, 두번 참으십시오. 한달 참아 안되면, 두달 참으십시오.
1년을 참아 안되면, 2년을 참으십시오. 그래도 안되거든, 10년을 참으십시오.
마지막까지 안되면 포기하고, 평생을 참으며 살아가십시오. 중요한 것은 끝까지 내 마음의 평안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대인관계” 란 우리의 살아 평생에 계속해서 풀어 가야 할 어려운 숙제 중의 숙제이다. 주님의 명령을 좇아 용서와 사랑을 실천하면 내가 가는 그 곳이 곧 천국이 되고, 바로 그 곳에 하나님의 평화가 창조될 것이다. 형제 자매의 잘못을 용서하고, 넘치는 사랑과 이해를 베풀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아름다운 대인관계의 축복을 날마다 창조하며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