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신 강단
광야 40년과 광복절
박도식
2021. 8. 15. 09:45
광야 40년과 광복절
고린도전서 10:1-13
1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3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5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6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 한 것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7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8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9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10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자
11 저희에게 당한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포인트 워드: 광야생활
활용: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40년 동안 광야에서 훈련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패가 무엇인가? 오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천국에 갈 수 있을까?
성경을 가슴에 안고 고백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영혼의 양식이며 영적 전쟁에 무기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오늘(8월 15일)은 광복절 76주년 기념일이다. 광복이란 “빛을 되찾는다.”라는 뜻이다. 잃었던 주권, 빼앗긴 주권을 되찾은 날이다.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나 해방된 것을 기뻐하고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 날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가 알 것은 광복절이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다. 1909년 안중근 의사는 만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 32살 꽃다운 나이에 뤼순 감옥에서 죽었다. 1919년 고종 황제가 사망하고, 3.1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윤봉길 의사는 1932년 중국 훙커우 공원에서 도시락 폭탄을 던져 일본군 대장을 죽이고 10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25살에 죽었다. 이 밖에도 유관순 열사(향년19세) 등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자유를 누리고 있다.
단재 신채호는 말합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 역사학자 H. G 웰스는 경고합니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 배우는 가장 현저한 사실은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역사는 되풀이된다.”
사람들이 과거의 역사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기 때문에 과거의 실패와 과거의 오류가 오늘도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우리에게 2가지 인상깊은 단어를 말씀합니다. 첫 번째 단어가 “거울”입니다. 6절입니다.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고전10:6) 역사는 우리의 거울입니다. 11절에서는 역사는 거울일 뿐만 아니라, 경계라고도 합니다.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전10:11)
우리는 과거 역사를 거울을 삼아야 하고, 경계를 얻어야 합니다. 역사는 경고입니다. 오늘 우리는 과거 역사를 통해 경고를 받아야 합니다. 오늘과 내일의 삶을 위해 경고를 받아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을 통해 1세기 기독교인들에게 특히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경계하고 있습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패가 오늘을 사는 우리의 또 다른 실패가 되지 않도록 말입니다. 광복절을 맞이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거울을 삼고 경계를 얻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셨습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10:1-4)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할 때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민족적으로 이 은혜를 경험한 민족은 없습니다. 특별한 은혜요 축복입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우선 그들은 5가지 은혜를 누렸습니다. 먼저 구름 아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름기둥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행진할 때, 하나님은 구름을 보내 시원함을 느끼게 했습니다. 뜨거운 광야에서 구름은 생명과도 같았습니다. 구름은 인도하는 구름이기도 하고 보호하는 구름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입니다. 홍해 바다가 갈라지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는 홍해 바다가 있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무지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바다길을 만들어 걷게 하셨습니다.
세 번째, 모세에게 속하여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홍해를 건너는 사건을 세례라고 표현합니다. 우리가 홍해는 모세의 믿음으로 건넌 것입니다. 세례는 연합한다는 것입니다. 모세에게 속하여, 우리가 세례를 받으면 예수님과 연합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 사람이 세례 받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과 연합된 자들입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은 예수님의 말과 행동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표정도 예수님의 표정이 되어야 합니다. 왜요? 세례 받았으니까? 예수님과 연합되었으니까요?
넷째, “다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나를 먹었습니다. 출애굽을 위해 준비한 음식이 다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40년 동안 만나를 내려 주셨습니다. 하늘의 음식을 40년 동안이나 먹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대단하지 않으세요? 광야에 농사를 짓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은 특별 은총으로 먹을 것을 매일 주셨습니다.
다섯째,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기적을 주셨습니다. 광야는 물이 생명입니다. 물이 없었을 때, 광야에서 물이 나오는 기적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구약에서 반석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림으로 우리는 신령한 생수를 마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축복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에 어떻게 되었나요?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고전10:5)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범죄하여 하나님을 아프게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할 단어가 “그러나”입니다. 영어로 “But” 하나님의 특권을 누렸다. 그러나 타락했다. 하나님의 엄청난 은혜를 입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 버렸다. 하나님께서 엄청 축복하셨다. 그러나 축복을 저주로 바꾸었다. 5절을 다시 볼까요?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아니하신 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고전10:5) 어제의 축복이 오늘의 축복이 아닙니다. 어제의 신앙이 오늘의 신앙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어제의 은혜가 오늘의 내 삶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타락함으로 멸망받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하고, 홍해를 건너가게 하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게 하신 사람들도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은 멸망시켰다는 것입니다. 약속하신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의 축복을 누릴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를 볼까요? 예수님의 택함을 입은 사람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의 현장에 있었어요. 물고기 2마리, 보리떡 5개로 5000명이 먹고 12광주리가 남는 기적을 눈으로 보았어요. 문둥병 환자가 고침을 받는 것을 눈으로 보았어요.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오는 것을 보았어요. 예수님이 말씀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도 보았어요. 예수님과 함께 3년 반 동안 사는 특별한 은혜를 누렸어요. 그러나 그의 결국은 예수님을 배반하고, 자살함으로 인생을 망쳤습니다.
예수님은 가룟유다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고 싶었어요. 유다를 하늘 나라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고 싶었어요. 유다의 이름을 후대에게 빛나고 존귀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그러나 그가 범죄함으로 이 모든 복을 다시는 누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신앙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지금 예수 믿는 것은 특별한 은혜입니다. 목사 장로 권사가 된 것도 마찬가집니다. 이 직분을 잘 감당하면, 하나님은 하늘의 별처럼 빛나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에서 큰 자가 되게 하신다는 거예요. 면류관을 준비하고, 우리가 거처할 집을 준비하신다는 거예요. 그런데 신앙인들이 타락하면, 범죄하면, 이 모든 축복을 누릴 수가 없답니다.
예화) 김수읍 목사님 교회 장로 간증
어느 목사님이 이런 말을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얼마나 욕설을 참을 수 있습니까?” 장로 한 분이 7시간 동안 목사님께 욕을 해 댑니다. 화장실 갔다 와서도 그 욕을 다 들었다고 합니다. 장로님이 목사님께 욕을 해요. 그런데 몇 개월 후, 장로님 아들이 군대에서 큰 화상을 입었습니다. 하체가 불타서 매일 드레싱을 해야 합니다. 알콜로 생살을 소독합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죠? 잘 먹지 못하고 드레싱을 하니, 6개월 뒤에 뼈만 남은 모습입니다. 의사가 말합니다. “오늘 안으로 이 군인은 죽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제서야 장로님이 병실에서 무릎꿇고 회개했답니다. 통회하고 자복하며 회개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발생했어요. 오늘 죽는다는 아들에게 성령님이 임했습니다. 방언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잠을 잤다가 또 방언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나는 안 죽는다. 하나님이 살려 주신다.” 지금도 살아 있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장로를 세운 이유가 무엇인가요? 목사님을 도와 교회를 잘 섬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장로님이 하나님이 붙드는 종을 향해 7시간 욕을 했으니? 자기 무덤을 스스로 판 것입니다.
오늘날 신앙인들이 이걸 모릅니다. 내가 목사 장로라고 죄를 지어도 하나님이 눈감아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내가 타락해도 하나님께서 봐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은 죄를 싫어하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죄를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죄를 짓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멸망당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6절입니다. “저희가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고전10:6) 이스라엘 백성들은 “악을 즐겼습니다.” 본문에서 죄를 말하는데, 죄악들입니다. 악들입니다. 죄를 지으면 쾌감을 느끼는 자들이 있어요. 순간은 좋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단호합니다.
방금 전에 말씀드린 장로님, 회개했잖아요? 죽을 아들이 살았어요? 그런데 그 아들의 온 몸에는 화상의 흔적이 있어요? 화상을 입으면 세포가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 땀을 배출할 수가 없어요. 흉측합니다. 살아 있으나 얼마나 힘들겠어요. “얻어 맞고 후회 말고 맞기 전에 잘 믿으면 되었는데.”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지은 4가지 죄를 말하고 있습니다.
① 우상숭배의 죄입니다.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고전10:7)
출애굽기 32장에서 아론은 백성들의 성화를 이기지 못해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금송아지를 만들고 신처럼 숭배했어요. “이 금송아지 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했다. 앞으로도 금송아지가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하나님은 분명히 기적을 베풀고 은혜를 주셨지만,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신을 원해요. 눈에 보이지 않으면 없는 줄로 생각합니다.
오늘날 현대인들도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니, 하나님께 최선을 다하지 않아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분명 살아계십니다. 우리가 영의 눈으로 보면, 예수님이 계시고, 천사들이 있어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현대인들은 돈을 신처럼 섬깁니다. 황금 만능주의. 돈만 있으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돈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골로새서 3:5절에 “탐심은 곧 우상숭배”라고 말씀합니다. 욕심이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을 제일로 사랑해야 하는데, 돈을 하나님처럼 생각합니다.
어떤 교사는 네잎 클로버 10만개를 모으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6만개를 모았으니, 4만개를 모으면 된대요. 네 잎 클로버 4만개 모아야 하기에 예수님을 믿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 분에게는 네 잎 클로버가 신입니다. 하나님 제일주의가 되어야 합니다.
② 음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의 여인들과 간음을 저질렀습니다. 모압 여인들은 바알 신을 섬기고 우상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집단으로 간음을 저지를 때, 하루에 23000명이 죽었습니다. 십계명에 있잖아요? “간음하지 말지니라.”
현대인들에게도 아니 신앙인들도 너무나 쉽게 간음죄를 짓습니다. 은혜가 충만한 사람도, 한 순간의 방심으로 간음죄를 지을 수 있어요. 어느 간호원을 지낸 권사님의 말입니다. 산부인과 간호원들이 2-3명씩 애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가정이 있는데도 쾌락을 쫓아 죄를 짓는다고 하네요. 그리고 산부인과가 낙태로 돈을 많이 번데요. 간호원 월급이 다 같지 않습니다. 낙태시킬 사람들을 많이 데려온 사람은 수당을 많이 받는다고 하네요.
한국 사회의 영적 도덕적 수준이 어디인가요?
음란의 죄를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아닙니다. 목회자가 음란의 죄를 지어도 봐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계명을 지키기를 원하십니다. 십계명, 지금도 지켜야 합니다. 계명을 멸시하는 자를 하나님은 멸시합니다. 로마의 멸망도 음란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도 예외는 아닙니다. 텔레비전, 유튜브, 인터넷, 음란물이 없는 곳이 없어요. 가정이 무너집니다. 하나님은 구약의 말씀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 거울로 삼으라고 경계하십니다.
③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고전10:9)
민수기 21장이 배경이라고 생각됩니다. 자, 만나가 싫어졌어요. 박한 식물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가 이 박한 식물. 이 메뉴도 바뀌지 않는 이 박한 식물에 우리가 지쳤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안 먹겠습니다. 우리가 이런 시험의 마음이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 있었던 그 증거를 시편에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시편 78편, 시편 78편 17절 18절입니다. 17절에 “저희는 계속하여 하나님께 범죄하여 황야에서 지존자를 배반하였도다” 18절 다 같이 읽어요. '저희가 저희 탐욕대로 식물을 구하여 그 심중에 하나님을 시험하였으며' 그랬잖아요.
④ 네 번째 범죄는 원망입니다.
10절 다같이 읽어요.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특징은 원망 불평입니다. 출애굽을 하면서 원망과 불평이 떠나지 않았어요. “먹을 것이 없다. 마실 것이 없다. 왜 이렇게 고통을 주냐? 왜 만나만 먹냐? 이제 질린다. 못 먹겠다.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나님은 원망을 싫어합니다. 불뱀을 보내서 백성들을 물게 합니다. 고통을 주거나 죽게 만듭니다. 신앙인들이 원망하는 것도 예외가 아닙니다. 목사라도 원망하면 죽이십니다. 사모라도 원망하면 죽이십니다. 장로라도 원망 불평을 끊지 못하면 환난이 떠나지 않습니다. 원망은 마귀의 밥입니다. 악한 영에게 지는 것입니다.
원망을 이기는 최고의 방법은 감사입니다.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면, 원망 불평이 사라져 버립니다. 감사하면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얼마나 귀한지요? 우리는 감사할 것 뿐입니다.
지난 주, 화요일에 40대 경희대 간호원이 뇌진탕으로 죽었습니다. 딸은 고1인데, 남편도 있는데, 직장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것입니다. 병원에서 사고가 나서 응급처치를 했지만, 운명을 달리했어요. 광주에서 버스를 타고 가다 사고를 당하잖아요? 요즘 어떻게 사건 사고가 날지 누가 압니까? 오늘 살아 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오늘은 광복절입니다. 한국 교회 한국 사회가 어떤가요?
동성애를 옹호하고 차별금지법을 만들려고 합니다. 동성애가 죄라고 설교하면, 벌금에 처하거나 감옥에 집어 넣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인데, 국회의원들이 하나님이 싫어하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남자와 여자로 인해 만들어지 가정이,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짓밟으려고 합니다.
교회는 어떤가요?
신학교 교수 중에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하는 교수가 있어요.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데, 무당에게도 구원이 있다고 말합니다. 마치 그런거예요. 그러면 자기가 무당이 되던가? 북한이 좋은 사람들, 김정은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다 북한으로 가던가? 왜 남한에서 이간질을 하고, 나라를 망치느냐 이 말입니다. 신학교 교수가 예배도 안드리고 절을 순례합니다.
셋째, 하나님은 조심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세요. 하나님을 잘 섬기면, 축복을 누렸습니다. 번영의 시기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멸망당하게 하셨습니다. 이방 족속을 통해 철저하게 짓밟고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기적을 행하신 이스라엘 민족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어떨까요?
하나님께 방자한 사람들이 있어요. 무례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습니다. 진짜 성령님의 사람은 말과 행동을 조심합니다. 행여나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을까? 그런데 요즘은 방자한 신앙인들이 많아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도 대충합니다. 헌금도 대충합니다. 삶에서도 말씀대로 살지 않아요? 교회 안에서의 삶과 세상 밖에서의 삶이 달라요.
예전에 은혜받고 축복받은 목사님이나 장로님들이 어느 순간 타락하는 것을 봅니다. 한 순간입니다. 누구도 예외는 없습니다. 방심은 금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하세요.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다. 하나님은 피할 길을 예비하신다.” 하나님께 죄를 지었나요? 회개가 답입니다. 회개하면 죽을 자도 살아 납니다. 회개하면 은혜를 베푸십니다. 회개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데요?
믿음으로 홍해를 가르고, 믿음으로 여리고 성이 무너지고, 믿음으로 축복을 누립니다. 광야 기간은 믿음이 없는 불신앙의 기간입니다. 매 순간이 믿음으로 나갈 때, 기적을 체험합니다. 믿음으로 살 때, 우리는 축복의 내일을 살 것입니다. 어제의 교훈, 어제의 축복, 어제의 승리, 어제 받은 은혜 가지고 오늘을 승리할 수가 없어요. 오늘은 오늘의 은혜가 필요하고, 오늘은 오늘의 교훈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날마다 주님 바라보고, 날마다 주님 의지하고, 승리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고린도전서 10:1-13
1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3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5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6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 한 것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7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8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9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10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자
11 저희에게 당한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포인트 워드: 광야생활
활용: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40년 동안 광야에서 훈련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패가 무엇인가? 오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천국에 갈 수 있을까?
성경을 가슴에 안고 고백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영혼의 양식이며 영적 전쟁에 무기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오늘(8월 15일)은 광복절 76주년 기념일이다. 광복이란 “빛을 되찾는다.”라는 뜻이다. 잃었던 주권, 빼앗긴 주권을 되찾은 날이다.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나 해방된 것을 기뻐하고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 날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가 알 것은 광복절이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다. 1909년 안중근 의사는 만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 32살 꽃다운 나이에 뤼순 감옥에서 죽었다. 1919년 고종 황제가 사망하고, 3.1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윤봉길 의사는 1932년 중국 훙커우 공원에서 도시락 폭탄을 던져 일본군 대장을 죽이고 10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25살에 죽었다. 이 밖에도 유관순 열사(향년19세) 등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자유를 누리고 있다.
단재 신채호는 말합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 역사학자 H. G 웰스는 경고합니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 배우는 가장 현저한 사실은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역사는 되풀이된다.”
사람들이 과거의 역사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기 때문에 과거의 실패와 과거의 오류가 오늘도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우리에게 2가지 인상깊은 단어를 말씀합니다. 첫 번째 단어가 “거울”입니다. 6절입니다.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고전10:6) 역사는 우리의 거울입니다. 11절에서는 역사는 거울일 뿐만 아니라, 경계라고도 합니다.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전10:11)
우리는 과거 역사를 거울을 삼아야 하고, 경계를 얻어야 합니다. 역사는 경고입니다. 오늘 우리는 과거 역사를 통해 경고를 받아야 합니다. 오늘과 내일의 삶을 위해 경고를 받아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을 통해 1세기 기독교인들에게 특히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경계하고 있습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패가 오늘을 사는 우리의 또 다른 실패가 되지 않도록 말입니다. 광복절을 맞이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거울을 삼고 경계를 얻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셨습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10:1-4)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할 때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민족적으로 이 은혜를 경험한 민족은 없습니다. 특별한 은혜요 축복입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우선 그들은 5가지 은혜를 누렸습니다. 먼저 구름 아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름기둥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행진할 때, 하나님은 구름을 보내 시원함을 느끼게 했습니다. 뜨거운 광야에서 구름은 생명과도 같았습니다. 구름은 인도하는 구름이기도 하고 보호하는 구름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입니다. 홍해 바다가 갈라지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는 홍해 바다가 있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무지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바다길을 만들어 걷게 하셨습니다.
세 번째, 모세에게 속하여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홍해를 건너는 사건을 세례라고 표현합니다. 우리가 홍해는 모세의 믿음으로 건넌 것입니다. 세례는 연합한다는 것입니다. 모세에게 속하여, 우리가 세례를 받으면 예수님과 연합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 사람이 세례 받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과 연합된 자들입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은 예수님의 말과 행동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표정도 예수님의 표정이 되어야 합니다. 왜요? 세례 받았으니까? 예수님과 연합되었으니까요?
넷째, “다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나를 먹었습니다. 출애굽을 위해 준비한 음식이 다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40년 동안 만나를 내려 주셨습니다. 하늘의 음식을 40년 동안이나 먹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대단하지 않으세요? 광야에 농사를 짓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은 특별 은총으로 먹을 것을 매일 주셨습니다.
다섯째,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기적을 주셨습니다. 광야는 물이 생명입니다. 물이 없었을 때, 광야에서 물이 나오는 기적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구약에서 반석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림으로 우리는 신령한 생수를 마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축복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에 어떻게 되었나요?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고전10:5)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범죄하여 하나님을 아프게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할 단어가 “그러나”입니다. 영어로 “But” 하나님의 특권을 누렸다. 그러나 타락했다. 하나님의 엄청난 은혜를 입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 버렸다. 하나님께서 엄청 축복하셨다. 그러나 축복을 저주로 바꾸었다. 5절을 다시 볼까요?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아니하신 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고전10:5) 어제의 축복이 오늘의 축복이 아닙니다. 어제의 신앙이 오늘의 신앙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어제의 은혜가 오늘의 내 삶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타락함으로 멸망받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하고, 홍해를 건너가게 하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게 하신 사람들도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은 멸망시켰다는 것입니다. 약속하신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의 축복을 누릴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를 볼까요? 예수님의 택함을 입은 사람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의 현장에 있었어요. 물고기 2마리, 보리떡 5개로 5000명이 먹고 12광주리가 남는 기적을 눈으로 보았어요. 문둥병 환자가 고침을 받는 것을 눈으로 보았어요.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오는 것을 보았어요. 예수님이 말씀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도 보았어요. 예수님과 함께 3년 반 동안 사는 특별한 은혜를 누렸어요. 그러나 그의 결국은 예수님을 배반하고, 자살함으로 인생을 망쳤습니다.
예수님은 가룟유다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고 싶었어요. 유다를 하늘 나라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고 싶었어요. 유다의 이름을 후대에게 빛나고 존귀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그러나 그가 범죄함으로 이 모든 복을 다시는 누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신앙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지금 예수 믿는 것은 특별한 은혜입니다. 목사 장로 권사가 된 것도 마찬가집니다. 이 직분을 잘 감당하면, 하나님은 하늘의 별처럼 빛나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에서 큰 자가 되게 하신다는 거예요. 면류관을 준비하고, 우리가 거처할 집을 준비하신다는 거예요. 그런데 신앙인들이 타락하면, 범죄하면, 이 모든 축복을 누릴 수가 없답니다.
예화) 김수읍 목사님 교회 장로 간증
어느 목사님이 이런 말을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얼마나 욕설을 참을 수 있습니까?” 장로 한 분이 7시간 동안 목사님께 욕을 해 댑니다. 화장실 갔다 와서도 그 욕을 다 들었다고 합니다. 장로님이 목사님께 욕을 해요. 그런데 몇 개월 후, 장로님 아들이 군대에서 큰 화상을 입었습니다. 하체가 불타서 매일 드레싱을 해야 합니다. 알콜로 생살을 소독합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죠? 잘 먹지 못하고 드레싱을 하니, 6개월 뒤에 뼈만 남은 모습입니다. 의사가 말합니다. “오늘 안으로 이 군인은 죽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제서야 장로님이 병실에서 무릎꿇고 회개했답니다. 통회하고 자복하며 회개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발생했어요. 오늘 죽는다는 아들에게 성령님이 임했습니다. 방언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잠을 잤다가 또 방언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나는 안 죽는다. 하나님이 살려 주신다.” 지금도 살아 있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장로를 세운 이유가 무엇인가요? 목사님을 도와 교회를 잘 섬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장로님이 하나님이 붙드는 종을 향해 7시간 욕을 했으니? 자기 무덤을 스스로 판 것입니다.
오늘날 신앙인들이 이걸 모릅니다. 내가 목사 장로라고 죄를 지어도 하나님이 눈감아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내가 타락해도 하나님께서 봐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은 죄를 싫어하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죄를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죄를 짓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멸망당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6절입니다. “저희가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고전10:6) 이스라엘 백성들은 “악을 즐겼습니다.” 본문에서 죄를 말하는데, 죄악들입니다. 악들입니다. 죄를 지으면 쾌감을 느끼는 자들이 있어요. 순간은 좋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단호합니다.
방금 전에 말씀드린 장로님, 회개했잖아요? 죽을 아들이 살았어요? 그런데 그 아들의 온 몸에는 화상의 흔적이 있어요? 화상을 입으면 세포가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 땀을 배출할 수가 없어요. 흉측합니다. 살아 있으나 얼마나 힘들겠어요. “얻어 맞고 후회 말고 맞기 전에 잘 믿으면 되었는데.”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지은 4가지 죄를 말하고 있습니다.
① 우상숭배의 죄입니다.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고전10:7)
출애굽기 32장에서 아론은 백성들의 성화를 이기지 못해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금송아지를 만들고 신처럼 숭배했어요. “이 금송아지 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했다. 앞으로도 금송아지가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하나님은 분명히 기적을 베풀고 은혜를 주셨지만,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신을 원해요. 눈에 보이지 않으면 없는 줄로 생각합니다.
오늘날 현대인들도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니, 하나님께 최선을 다하지 않아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분명 살아계십니다. 우리가 영의 눈으로 보면, 예수님이 계시고, 천사들이 있어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현대인들은 돈을 신처럼 섬깁니다. 황금 만능주의. 돈만 있으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돈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골로새서 3:5절에 “탐심은 곧 우상숭배”라고 말씀합니다. 욕심이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을 제일로 사랑해야 하는데, 돈을 하나님처럼 생각합니다.
어떤 교사는 네잎 클로버 10만개를 모으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6만개를 모았으니, 4만개를 모으면 된대요. 네 잎 클로버 4만개 모아야 하기에 예수님을 믿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 분에게는 네 잎 클로버가 신입니다. 하나님 제일주의가 되어야 합니다.
② 음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의 여인들과 간음을 저질렀습니다. 모압 여인들은 바알 신을 섬기고 우상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집단으로 간음을 저지를 때, 하루에 23000명이 죽었습니다. 십계명에 있잖아요? “간음하지 말지니라.”
현대인들에게도 아니 신앙인들도 너무나 쉽게 간음죄를 짓습니다. 은혜가 충만한 사람도, 한 순간의 방심으로 간음죄를 지을 수 있어요. 어느 간호원을 지낸 권사님의 말입니다. 산부인과 간호원들이 2-3명씩 애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가정이 있는데도 쾌락을 쫓아 죄를 짓는다고 하네요. 그리고 산부인과가 낙태로 돈을 많이 번데요. 간호원 월급이 다 같지 않습니다. 낙태시킬 사람들을 많이 데려온 사람은 수당을 많이 받는다고 하네요.
한국 사회의 영적 도덕적 수준이 어디인가요?
음란의 죄를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아닙니다. 목회자가 음란의 죄를 지어도 봐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계명을 지키기를 원하십니다. 십계명, 지금도 지켜야 합니다. 계명을 멸시하는 자를 하나님은 멸시합니다. 로마의 멸망도 음란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도 예외는 아닙니다. 텔레비전, 유튜브, 인터넷, 음란물이 없는 곳이 없어요. 가정이 무너집니다. 하나님은 구약의 말씀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 거울로 삼으라고 경계하십니다.
③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고전10:9)
민수기 21장이 배경이라고 생각됩니다. 자, 만나가 싫어졌어요. 박한 식물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가 이 박한 식물. 이 메뉴도 바뀌지 않는 이 박한 식물에 우리가 지쳤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안 먹겠습니다. 우리가 이런 시험의 마음이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 있었던 그 증거를 시편에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시편 78편, 시편 78편 17절 18절입니다. 17절에 “저희는 계속하여 하나님께 범죄하여 황야에서 지존자를 배반하였도다” 18절 다 같이 읽어요. '저희가 저희 탐욕대로 식물을 구하여 그 심중에 하나님을 시험하였으며' 그랬잖아요.
④ 네 번째 범죄는 원망입니다.
10절 다같이 읽어요.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특징은 원망 불평입니다. 출애굽을 하면서 원망과 불평이 떠나지 않았어요. “먹을 것이 없다. 마실 것이 없다. 왜 이렇게 고통을 주냐? 왜 만나만 먹냐? 이제 질린다. 못 먹겠다.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나님은 원망을 싫어합니다. 불뱀을 보내서 백성들을 물게 합니다. 고통을 주거나 죽게 만듭니다. 신앙인들이 원망하는 것도 예외가 아닙니다. 목사라도 원망하면 죽이십니다. 사모라도 원망하면 죽이십니다. 장로라도 원망 불평을 끊지 못하면 환난이 떠나지 않습니다. 원망은 마귀의 밥입니다. 악한 영에게 지는 것입니다.
원망을 이기는 최고의 방법은 감사입니다.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면, 원망 불평이 사라져 버립니다. 감사하면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얼마나 귀한지요? 우리는 감사할 것 뿐입니다.
지난 주, 화요일에 40대 경희대 간호원이 뇌진탕으로 죽었습니다. 딸은 고1인데, 남편도 있는데, 직장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것입니다. 병원에서 사고가 나서 응급처치를 했지만, 운명을 달리했어요. 광주에서 버스를 타고 가다 사고를 당하잖아요? 요즘 어떻게 사건 사고가 날지 누가 압니까? 오늘 살아 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오늘은 광복절입니다. 한국 교회 한국 사회가 어떤가요?
동성애를 옹호하고 차별금지법을 만들려고 합니다. 동성애가 죄라고 설교하면, 벌금에 처하거나 감옥에 집어 넣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인데, 국회의원들이 하나님이 싫어하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남자와 여자로 인해 만들어지 가정이,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짓밟으려고 합니다.
교회는 어떤가요?
신학교 교수 중에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하는 교수가 있어요.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데, 무당에게도 구원이 있다고 말합니다. 마치 그런거예요. 그러면 자기가 무당이 되던가? 북한이 좋은 사람들, 김정은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다 북한으로 가던가? 왜 남한에서 이간질을 하고, 나라를 망치느냐 이 말입니다. 신학교 교수가 예배도 안드리고 절을 순례합니다.
셋째, 하나님은 조심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세요. 하나님을 잘 섬기면, 축복을 누렸습니다. 번영의 시기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멸망당하게 하셨습니다. 이방 족속을 통해 철저하게 짓밟고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기적을 행하신 이스라엘 민족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어떨까요?
하나님께 방자한 사람들이 있어요. 무례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습니다. 진짜 성령님의 사람은 말과 행동을 조심합니다. 행여나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을까? 그런데 요즘은 방자한 신앙인들이 많아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도 대충합니다. 헌금도 대충합니다. 삶에서도 말씀대로 살지 않아요? 교회 안에서의 삶과 세상 밖에서의 삶이 달라요.
예전에 은혜받고 축복받은 목사님이나 장로님들이 어느 순간 타락하는 것을 봅니다. 한 순간입니다. 누구도 예외는 없습니다. 방심은 금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하세요.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다. 하나님은 피할 길을 예비하신다.” 하나님께 죄를 지었나요? 회개가 답입니다. 회개하면 죽을 자도 살아 납니다. 회개하면 은혜를 베푸십니다. 회개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데요?
믿음으로 홍해를 가르고, 믿음으로 여리고 성이 무너지고, 믿음으로 축복을 누립니다. 광야 기간은 믿음이 없는 불신앙의 기간입니다. 매 순간이 믿음으로 나갈 때, 기적을 체험합니다. 믿음으로 살 때, 우리는 축복의 내일을 살 것입니다. 어제의 교훈, 어제의 축복, 어제의 승리, 어제 받은 은혜 가지고 오늘을 승리할 수가 없어요. 오늘은 오늘의 은혜가 필요하고, 오늘은 오늘의 교훈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날마다 주님 바라보고, 날마다 주님 의지하고, 승리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