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가정을 회복하라
네 가정을 회복하라
신6장 4-9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6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찌니라
포인트 워드: 가정
활용: 우리에게 가정을 주셨습니다. 가정은 소중한 곳입니다. 사탄은 가정을 파괴하려고 최대한 노력을 합니다. 우리는 깨어지는 가정, 무너지는 가정을 회복해야 합니다.
성경을 가슴에 안고 따라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영혼의 양식이며, 영적전쟁에 무기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가정을 꿈꾸고 결혼을 합니다. 그러나 살다보면, 갈등하게 되고, 이혼하게 됩니다. 제가 아는 어느 목사님은 평생동안 가장 잘 한 일이 1순위가 사모와 이혼한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행복해야 할 가정이 왜 이렇게 깨어지고, 상처 투성인가요?
어떤 사람들은 남편을 바꾸어 달라고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 한 번만 바꿔 주세요?”
어느 불행한 목사 가정의 남편과 아내의 이야기이다.
목사 남편의 말:
1. 아내의 하는 말이 일일이 사람을 긁고, 밉상스럽다.
2. 늘 돈 때문에 사람을 화나게 긁는다. 어렵지만 충분히 돈이 돌아가고, 잘 메꾸고 있음에도 늘 불평, 불만한다.
3. 성격이 전혀 다르다. 맞추어 할 수 있는 일이 단 하나도 없다.
4. 성적(性的)으로 전혀 맞지 않는다.
5. 취미와 취향이 전혀 맞지 않다.
6. 매사에 고집을 부린다. 고칠 만한 것도 전혀 고치지 않는다.
7. 순종하지 않는다. 항상 남편에 대한 말들이 부정적이다. 그러므로 아내를 보면 그냥 화가 치민다.
8. 그냥 지난 날의 상처로 인해 밉다. 처가와의 불화로 아내에게 정을 줄 수 없고, 시부모에게 고집 부리며 불효한 죄가 용서가 되지 않으며, 그냥 처가와 아내가 다 싫다.
사모의 말:
1. 돈으로 평생 어려움을 준다.
2. 가정과 가족을 버리고, 자기 만의 삶에 바쁘며, 일체 무관심하다.
3. 아내를 전혀 사랑하지 않는다.
4. 과단성과 용기가 없고, 우유부단하다.
5. 정서가 서로 너무나 맞지 않는다.
6. 지난 날의 실망과 상처가 너무 깊다.
7. 부부 간의 앞 날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8. 나는 아무 잘못이 없고, 다 잘 하고 있으며, 다 남편의 탓이다.
여러분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가정의 회복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부부 간의 문제, 부모와 자녀와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무너져 가는 우리의 가정들을 어떻게 회복시킬 수 있을까요?
첫째, 하나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신6:4)
로마서 10장 17절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믿음이 생깁니다. 말씀을 듣지 않으면 믿음이 사라져 버립니다. “들으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쉐마”입니다. 유대인의 교육을 “쉐마교육”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달달 외우게 만들어 마음에 새기게 만들어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정 문제의 해결책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읽고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내 고집, 내 주장만 하게 되면, 결국 가정의 울타리가 파괴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이 선포될 때, 하나님이 가정을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이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줍니다.
가정에서 자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누가 하나님에 대해 말씀을 전해 주어야 합니까? 아버지들입니다. 어머니들입니다. 부모님들이 말씀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른 목적이 있습니다. 대부분 창세기 12장 2-3절로만 압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창12:2-3)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복주기 위해 불렀다고 압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가 있습니다. 창세기 18장 19절입니다. 표준 새번역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내가 아브라함을 택한 것은 그가 자식들과 자손을 잘 가르쳐서 나에게 순종하게 하고 옳고 바른 일을 하도록 가르치라는 뜻에서 한 것이다. 그의 자손이 아브라함에게 배운 대로 하면 나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대로 다 이루어 주겠다.”(창18:19, 표준새번역)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한 이유가 자식들과 자손을 잘 가르치기 위함이랍니다. 다시 말하면 가르치는 일, 즉 신앙교육을 위해 부름받았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사명이 “신앙전수”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교육의 대상이 누구입니까? “자식들과 자손”이라는 점입니다. 신약에서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아브라함이 75세에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입었습니다. 큰 민족을 이루고 창대케 되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나이 100세 되어야 이삭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25년 뒤에 약속의 자식을 한 명 주셨습니다. 이삭을 보세요. 그가 40에 장가 들었습니다. 그런데 60이 되어서 에서와 야곱을 얻습니다. 참 놀랍지 않습니까? 결혼한 지 20년 만에 야곱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1년이나 3년 안에 자식을 본 것이 아닙니다. 20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 오랜 세월동안 믿음의 사람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창세기 25장 21절에서 말합니다. “이삭이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 아내 리브라가 잉태하여”(창25:21)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세이었더라”(창25:26)
왜 하나님이 자식을 빨리 주지 않고 오랜 시간 뒤에 주셨을까요? 짐작컨대 자식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기 위함이 아닐까요? 25년 만에 얻은 아들 이삭, 20년 만에 얻은 아들 야곱을 보면서 아브라함과 이삭이 얼마나 좋아했을까요?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철
저하게 양육하기 위해 부모님들을 영성훈련 시킨 것입니다.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다. 자녀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할 자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오랜 시간 동안 이 생각이 뼈 속 깊이 새겨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아들들에게 최선을 다해 말씀을 전해 주었을 것입니다.
좋은 부모가 누구입니까? 바로 이 생각에 사로잡힌 자입니다. “자녀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이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자녀를 하나님의 자녀답게 교육하는 자입니다. 말씀을 맡은 자로 부족함이 없게 교육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아버지들은 자녀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잘 되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서 출발합니다.” 그런데 6절을 보면 마음에 새기라고 했습니다. 읽거나 듣는 정도가 아닙니다. 묵상하여 암기하면서 삶의 표준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러시아의 유명한 문호 도스토에프스키는 말합니다. “좋은 기억, 특별히 어렸을 때의 가정생활에 있어서의 귀한 기억처럼 장래에 깊은 감화를 주는 것은 없다. 귀한 성스러운 기억은 최대의 교육이 된다. 그런 기억이 많은 사람은 최후까지 인생 길을 바로 걸을 수 있다. 그런 기억이 단 하나만 있어도 그는 그의 영혼을 기억할 수가 있다. 그 한 가지 기억이 그를 많은 죄악 가운데서 건질 수 있다.”
둘째,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6:5)
유대인이 다른 민족과 다른 점이 심력입니다. 마음의 힘인데 이는 곳 영적인 부분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배웁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가난한 사람들 긍휼히 여기며 어른들에게 순종하는 것이 유대인의 교육입니다. 이것보다 귀한 교육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순종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순종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성도들에게 요구되어 지는 가장 큰 덕목이 아닙니까? 순종은 옷의 첫 단추와 같습니다. 신앙 생활에서 순종이라는 단추가 꿰어지지 않으면 나머니 단추들은 제대로 꿰어질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만이 순종할 수 있습니다. 순종은 믿음의 결과물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순종하지 않으면 믿음이 없는 자입니다. 믿음은 순종이라는 행위의 열매가 있어야 완성 되어 집니다. 사랑하면 순종합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내 맘대로 살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우리나라가 일 년에 사교육비로 29조원이 들어갑니다. 그러나 훌륭한 인물을 배출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한 아이들을 배출하고 있습니다. 2002년 아시아, 태평양 국가 500명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유니세프가 조사했습니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23%만이 어른들을 존경한다고 합니다. 이는 17개 조사 국가 중에서 최저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이들이 교육은 받지만 마음은 황폐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중학생들도 서로 모여 담배를 피워댑니다. 담배가 몸에 해롭다고 충고하면 오히려 침을 뱉거나 담배를 던지면서 위압감을 조성한다고 합니다. “동방 예의 지국”인 우리나라가 하루 아침에 불효자를 배출하는 나라가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다윗왕이 효자이지 않습니까? 사울의 칼날을 피해 도망할 때에도 부모님의 거처를 마련하지 않습니까? 다윗왕은 하나님을 사랑한 사람입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18:1)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했기에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예화)
미국에 알튼 링크 레터란 분이 있었습니다. 박사 학위를 열 개 가진 천재입니다. 그는 미국 정부의 고문으로 디즈니랜드의 모든 설계를 계획한 분입니다. 대통령도 그를 귀하게 여겼고 모든 사람들이 그를 칭송했습니다. 그에게는 명성과 부가 따라왔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불행이 발생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믿던 예수님을 버리고 교회를 떠났습니다. 자기의 재능만 믿고 자기가 최고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기가 사랑하는 14세 된 딸이 가출합니다. 이런 편지를 남겼습니다. “아빠! 걱정하지 마세요.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지고 살게요.” 그리고 며칠 후에 딸의 자살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는 딸의 시체를 안고 통곡했습니다. 그는 딸의 죽음이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을 떠났더니 딸도 자기 곁을 떠났다고 여긴 것입니다. 결국 그는 예수님께로 돌아왔고 교회에 다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주 신앙 강연을 다녔는데 그때마다 네 가지 성공 비결을 말한다고 합니다. 그 네 가지 성공비결이란 “겸손, 인내, 용기, 하나님의 인도”라고 말합니다. 그의 겸손은 딸의 죽음을 통해 얻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세요. 예수님을 무엇보다 누구보다 더 사랑하려고 힘쓰세요. 그러면 우리 자녀들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치고 안 되는 사람이 없습니다.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무릇 너의 얻은 것을 가져 명철을 얻을찌니라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잠4:7-8)
평생에 부부 싸움을 안 한 사람으로 브라이언 박 목사님 부부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눈으로 아내를 보고, 남편을 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갈등이 있을 때에 예수님을 생각하니, 마음에 평정이 생기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쳐야 한다.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6:7)
자녀가 잘 되기 원하신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22:6) 자녀를 살리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 밖에 없습니다. 자녀들이 예수님을 만나면 삶이 변합니다. 인생이 변합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환경에 주저 앉아 버리고 맙니다.
어느 장로님은 결혼하기 전에 부인을 제자 양육했다고 합니다. 스승과 제자가 결혼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철저하게 제자 양육을 했는데, 놀라운 간증이 있습니다. 집 값이 아주 많이 올랐습니다. 저렴하게 구입하고 몇 배가 올랐습니다. 아내가 무릎을 꿇고 말합니다. “형제님, 하나님께 드립시다. 그런데 더 드립시다.” LA에서 워싱턴으로 이사하면 집을 구입해야 하는데, 집도 없는데, 먼저 드린 것입니다. 아내를 만나 두 번 째로 실망한 경우라고 합니다. 첫 번째가 논문을 발표하고, “여보 우리는 불행 끝, 행복시작”이라고 했는데, 아내가 무릎 꿇고 하는 말, “형제님, 선교사로 나갑시다.” 대학교수를 사표쓰고, 선교사로 나갑니다. 남편의 제자 양육을 아내가 잘 받은 것입니다. 그때가 첫 번째, 두 번째가, 집을 판 돈으로 선교비를 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IMF때 친구가 말합니다. 내 대신 한국에 갔다 와라. 1주일 동안 한국에 갔다 왔는데 별 한 일이 없답니다. 그런데 친구 은행에서는 일이 잘 해결되었다고 하면서 봉투를 하나 줍니다. 그런데 그 돈이 선교비를 드린 액수와 정확하게 일치했다고 합니다. 이 분이, 세계 무역센터 수석부총재를 지냈던 고 이희돈 장로님입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제자 훈련을 했더니, 순간 순간마다, 아내가 큰 영적인 공헌을 합니다.
러시아의 겨울은 6개월이나 됩니다. 추운 겨울로 인해 문학과 예술이 발전했습니다. 차이코프스키,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푸슈킨 등 세계적인 음악가들과 문학가들이 나왔습니다. 나폴레옹이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것은 혹독한 추위를 대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겨울의 추위가 나라를 지켜 주었습니다. 러시아인들은 겨울 속에서 글을 쓰고 작곡을 했습니다. 미술과 발레 등의 재능을 발전시켰습니다. 겨울이 긍정적으로 작용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혹독한 겨울을 이기려고 술병을 찾았습니다. 독한 술병에 인생을 담았습니다. 러시아에선 “영하 40도가 아니면 추위라고 말하지 말라. 40도를 넘지 않으면 술이라고 말하지 말라. 4000km를 넘지 않으면 멀다고 말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추운 날씨가 술에 파묻혀 살게 만들었습니다.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악마가 바빠서 사람을 찾아 다닐 수 없을 때, 술을 대신 보낸다.”
어떤 사람은 환경이나 조건에 얽매어 신세를 한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들은 어떤 어려움이 와도 좌절하지 않습니다. 인생의 겨울이 길면 봄을 기다리는 사모함이 간절해 집니다. 하나님이 응답이 더디면 더욱더 주님을 사랑하며 사모하게 됩니다.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승리하게 만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인내했던 것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미국이 교육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미국이 학교에서 종교 교육을 폐지하고 나서 후유증이 더욱더 커집니다. 미국의 아이들이 부모에게 반항을 합니다. 부모를 대적합니다. 미국의 아이들은 8초마다 1명이 학교를 그만둡니다. 매 26초마다 1명이 가출합니다. 매 47초마다 한 명은 학대를 받습니다. 67초마다 10대에 아이를 낳습니다. 매 7분 마다 한 명은 마약으로 체포됩니다. 매 36분 마다 한 명은 총에 맞아 죽거나 부상을 당합니다. 매일 13만 5천명의 학생들이 학교에 총을 가지고 갑니다.
여러분,
사람은 어떤 분인지 아세요? 택배에 보면 이런 문구가 있죠? “잘 깨지는 물건, 취급 주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깨어질 수 있습니다. 쉽게 상처받을 수 있습니다. 특별히 잘 돌보아야 할 대상이 사람들입니다.
우리 가정이 그와 같습니다. 남편도 잘 깨질 수 있고,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온전한 가정을 만들어 가야 건강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사람이 겉모습은 멀쩡해도 마음이 약한 자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이 시대 우리 자녀들을 바르게 교육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김익두 목사님은 예전에 유명한 깡패였습니다. 어거스틴은 10대에 아버지가 되었고 불효자였습니다. 그는 이단에 빠져 있었고 육체의 욕망을 추구했습니다. 그러다 하나님을 만나고 성자가 되었습니다. 링컨은 가난한 사람입니다. 그가 유명해질 수 있는 조건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단지 어머니의 신앙과 성경책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링컨을 위대한 사람으로 만든 것입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웨슬리 목사님은 “한 책의 사람”입니다. 어머니 수산나를 통해 철저하게 말씀 교육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장소의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가르칩니다. 집안에 성경 구절을 적어 놓고 암송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말씀 교육이 인생을 승리하게 만듭니다.
개그우먼 이성미씨가 있지 않습니까? 자기 자녀가 비뚤어지려고 할 때 목사님을 모셔다 성경과외를 시켰습니다. 홍정욱 국회의원은 공부 과외를 한 것이 아니라 성경 과외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호세아 4장6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지 않으면 하나님께 버림받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을 무시하고 존귀한 반열에 서는 자가 없습니다.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잠3:1)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으나,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고전 11:11-12 / 엡 5:22,25)
어떤 글에서 남편과 아내 사이의 차이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그는 커피를 지나치게 마셨고, 나는 커피 없이 밤을 지샜다.
나는 알뜰했고, 그는 돈 쓰는 일에 무사태평이었다.
나는 불 끄는 일을 잊어버렸고, 그는 편지 쓰기를 미루었다.”
어느 부부든지 아마 이런 식으로 두 사람의 차이를 열거하라면 며칠 밤을 지새워도 끝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다른 두 남녀를 짝지어 주시고, 함께 살게 하셨다. 여기에 바로 서로의 부족함을 메워 주고, 서로를 빚어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뜻이 있다. 윗글의 말미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우리는 서로를 변화 시켜 나갔다. 둘 다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똑같이 그렇게 많은 결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갈등도 없게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