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신 강단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마11-6)
박도식
2021. 7. 3. 11:53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본문 마1:1-6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4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 이새는 다윗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포인트 워드: 예수님의 족보
활용: 예수님은 이 땅에 왜 오셨는가? 성경에 말하는 예수님의 족보는 무엇일까?
다같이 따라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영혼의 양식이며 영적 전쟁에서 무기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마태복음 1장은 예수님의 족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말씀합니다. 본문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낳고 낳고”입니다. 아마 오늘 집에 갈 때에도 ‘낳고 낳고’를 기억할 분이 있을지 모릅니다. 마태복음 1장은 산부인과 의사들이 제일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잠이 안 올 때 읽은 책이 마태복음 1장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1장에는 엄청난 영적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는 마태복음 1장과 누가복음 3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분으로 묘사합니다. 유대인이 가장 존경하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성군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소개합니다. 누가복음은 이방인이었던 의사 출신 누가가 헬라인을 대상으로 ‘사람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예수님이 한 인간 요셉의 아들로 태어났음을 강조하고, 그 근원인 하나님께 이르는 인간적인 족보를 강조합니다.
두 족보의 차이는 첫째, 마태복음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부터 시작하여 예수님에게 이르는 권위적인 수직하강 족보입니다. 누가복음은 그리스 로마 족보처럼 예수님으로부터 시작해서 아담을 거쳐 하나님에게 이르는 상승하는 족보입니다. 둘째, 마태복음의 족보는 유대인의 완전수 7의 배수이기도 하지만, 다윗의 게마트리아(달렛4, 바브6, 달렛4)를 완성합니다.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4대, 다윗부터 바벨론 포로로 잡혀갈 때까지 14대, 바벨론 포로 이후 예수님까지 14대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은 총 57명입니다. 있는 그대로 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셋째, 마태는 유대인으로 왕의 족보를 다윗의 아들로 솔로몬 왕으로 이어갑니다. 누가는 이방인으로 다윗의 아들을 나단으로 이어갑니다(눅3:31). 그 이유는 누가의 입장에서 볼 때, 다윗 왕조의 통치에 대한 반발이거나 육적인 다윗 왕조의 멸망에 대한 예언(렘22:28-30, 36:30-31)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넷째, 예수님의 할아버지에 대해 마태복음에서는 유대의 전통을 따라 요셉의 아버지 야곱을 언급하면서 아버지의 족보를 말합니다(마1:15). 그러나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아버지인 헬리로 기록하며 어머니의 족보를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마태복음 족보에 한 가지 중대한 특징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모든 족보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 땅에 탄생할 수 있었고, 우리의 지난날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게 합니다.
첫째, 예수님의 약속의 아들이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마1:1)
예수님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선언한 것은 예수님이 약속의 자손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에서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했을 때, 하나님의 다음과 같이 약속하셨습니다.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 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창22:16-18)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유대인 뿐 아니라 천하만민이 구원을 얻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오시기 2500년 전에 아브라함을 통해 약속의 아들인 메시야가 탄생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다윗왕은 어떤가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도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다윗입니다. 이스라엘의 국기에는 다윗의 별이 있습니다. 사무엘하 7장 16절입니다.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삼하7:16) BC 1000년 전에 다윗의 가문을 통해 약속의 아들 메시야가 탄생할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이사야 11:1-2절에서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사11:1-2) 주전 700년 전에 이새의 자손가운데 메시야의 탄생을 예언했습니다.
예수님은 탄생은 창세기에서부터 예언되었습니다. 그럼 여러분은 어떤가요?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의 아들 딸이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1장 4-5절입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1:4-5)
우리 또한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입니다. 창세 전에 하나님이 미리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게 하시려고 예정하셨습니다. 우리는 약속의 아들, 딸입니다. 우리는 우연하게 무가치하게 태어난 것이 절대 아닙니다.
어떤 아이가 공원에 놀러 갔습니다. 벤치에 앉아 있는 아저씨 곁에 커다란 개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아저씨, 아저씨네 개는 사람 물어요?” “아니, 우리 개는 절대 사람 안 문단다.” 그래서 아이가 개를 쓰다듬으려고 하는데 그 순간 개가 아이의 손을 꽉 물고 말았습니다. 화가 난 아이가 따졌습니다. “아저씨, 아저씨네 개는 절대 사람 안 문다고 했잖아요?” 아저씨가 말합니다. “그래 맞아, 우리 개는 절대 사람 안 물어. 근데 이 개는 우리 개가 아니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신앙인은 약속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기로 작정하신 분들입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엡3:6)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갈3:9)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으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갈3:13-14)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브라함의 복을 주기 원하는 분입니다. 아브라함은 물질적인 복을 받았습니다. 집에서 길리운 사람이 318명의 장정입니다. 그 가족까지 하면 1000명 이상을 먹여 살리는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승리의 복을 받았습니다. 적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회춘의 복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임마누엘의 복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영생의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함께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이 복을 받기 원합니다.
우리의 삶을 보세요?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하나님은 축복하신다는데, 왜 염려합니까? 왜 불안해 하나요? 왜 근심 걱정에 사로잡혀 있나요?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들은 약속의 자녀들입니다. 이 땅에는 악한 영들이 있습니다. 악한 영의 공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히6:14-15) 하나님의 자녀들은 한 때는 어려움을 겪을 수 있지만, 나중에는 그 자녀 손들에게 꼭 승리하는 축복을 받습니다. 우리가 끝까지 믿음을 가지고 인내하며 나아갈 때, 반드시 복을 받을 줄 믿습니다.
시편118편에서 시편기자는 말합니다. “열방이 나를 에워쌌으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희를 끊으리로다 저희가 나를 에워싸고 에워쌌으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희를 끊으리로다 저희가 벌과 같이 나를 에워쌌으나 가시덤불의 불같이 소멸되었나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희를 끊으리로다”(시118:10-12) 여호와의 이름으로 승리를 약속받았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영적은 사람을 세우십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마1:2)
유대 사회는 장자권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뒤를 이은 자는 장자 이스마엘이 아니라, 영적 계보인 이삭이었습니다. 이삭의 뒤도 마찬가지입니다. 장자인 에서가 뒤를 이은 것이 아닙니다. 영적 계보는 야곱이 이었습니다.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12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첫 번째 장자 르우벤이 계보를 이은 것이 아니라, 넷째 아들 유다가 영적 계보를 잇고 있습니다. 특별히 유다는 형제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했을 때, 살리는 데 앞장을 섰던 사람입니다.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창37:26-27)
우리도 바로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영적인 사람이 축복의 사람이며, 믿음의 사람입니다. 고린도 전서를 보면, 교회 안에서 3가지 유형의 신자들이 나옵니다. 가장 먼저는 ‘육에 속한 사람’(the person without the Holy Spirit)입니다. 이런 사람은 교회에 나오지만, 직분을 받았지만, 구원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고린도전서 2:14절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2:14) 교회에 나오지만, 성령님을 몰라요. 영적인 세계도 모릅니다. 성경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들은 “성령으로 산다, 성령을 받으라. 성령을 체험하라.” 그러면, 속으로 생각합니다. ‘미친 놈들이구나. 미련한 자들이구나. 너무 광적으로 믿는구나.’ 육에 속한 신앙인들은 하나님을 위한 헌신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제자가 되는데도 관심이 없습니다. 남을 위한 희생도 없습니다. 단지 복을 받고 종교 생활하는 것으로 만족을 합니다. 진짜 예수님을 믿는 것은 성령을 체험하고 성령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으로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3:5-6)
그 다음 어린 아이와 같은 ‘육신에 속한 사람’(The worldly person)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을지라도 더 이상 영적 성장을 하지 못하고 어린 아이 상태로 머물러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고전3:1-3)
이런 사람들은 교회에 오래 나왔어도 은혜를 받고 축복을 받았습니다. 헌신도 하고 봉사도 합니다. 중직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장로님이 되고 권사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어린아이 수준입니다. 밥을 먹지 못하고, 죽을 먹고 사는 신앙인입니다. 예배 생활에 성공하지 못합니다. 헌금 생활에 성공하지 못합니다. 어느 교회에서는 목사님이 돈 이야기 한다고 말을 합니다. 목사님은 말합니다. “왜 돈 이야기입니까? 헌금 이야기지?
본문 마1:1-6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4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 이새는 다윗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포인트 워드: 예수님의 족보
활용: 예수님은 이 땅에 왜 오셨는가? 성경에 말하는 예수님의 족보는 무엇일까?
다같이 따라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영혼의 양식이며 영적 전쟁에서 무기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마태복음 1장은 예수님의 족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말씀합니다. 본문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낳고 낳고”입니다. 아마 오늘 집에 갈 때에도 ‘낳고 낳고’를 기억할 분이 있을지 모릅니다. 마태복음 1장은 산부인과 의사들이 제일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잠이 안 올 때 읽은 책이 마태복음 1장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1장에는 엄청난 영적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는 마태복음 1장과 누가복음 3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분으로 묘사합니다. 유대인이 가장 존경하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성군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소개합니다. 누가복음은 이방인이었던 의사 출신 누가가 헬라인을 대상으로 ‘사람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예수님이 한 인간 요셉의 아들로 태어났음을 강조하고, 그 근원인 하나님께 이르는 인간적인 족보를 강조합니다.
두 족보의 차이는 첫째, 마태복음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부터 시작하여 예수님에게 이르는 권위적인 수직하강 족보입니다. 누가복음은 그리스 로마 족보처럼 예수님으로부터 시작해서 아담을 거쳐 하나님에게 이르는 상승하는 족보입니다. 둘째, 마태복음의 족보는 유대인의 완전수 7의 배수이기도 하지만, 다윗의 게마트리아(달렛4, 바브6, 달렛4)를 완성합니다.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4대, 다윗부터 바벨론 포로로 잡혀갈 때까지 14대, 바벨론 포로 이후 예수님까지 14대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은 총 57명입니다. 있는 그대로 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셋째, 마태는 유대인으로 왕의 족보를 다윗의 아들로 솔로몬 왕으로 이어갑니다. 누가는 이방인으로 다윗의 아들을 나단으로 이어갑니다(눅3:31). 그 이유는 누가의 입장에서 볼 때, 다윗 왕조의 통치에 대한 반발이거나 육적인 다윗 왕조의 멸망에 대한 예언(렘22:28-30, 36:30-31)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넷째, 예수님의 할아버지에 대해 마태복음에서는 유대의 전통을 따라 요셉의 아버지 야곱을 언급하면서 아버지의 족보를 말합니다(마1:15). 그러나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아버지인 헬리로 기록하며 어머니의 족보를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마태복음 족보에 한 가지 중대한 특징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모든 족보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 땅에 탄생할 수 있었고, 우리의 지난날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게 합니다.
첫째, 예수님의 약속의 아들이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마1:1)
예수님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선언한 것은 예수님이 약속의 자손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에서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했을 때, 하나님의 다음과 같이 약속하셨습니다.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 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창22:16-18)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유대인 뿐 아니라 천하만민이 구원을 얻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오시기 2500년 전에 아브라함을 통해 약속의 아들인 메시야가 탄생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다윗왕은 어떤가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도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다윗입니다. 이스라엘의 국기에는 다윗의 별이 있습니다. 사무엘하 7장 16절입니다.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삼하7:16) BC 1000년 전에 다윗의 가문을 통해 약속의 아들 메시야가 탄생할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이사야 11:1-2절에서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사11:1-2) 주전 700년 전에 이새의 자손가운데 메시야의 탄생을 예언했습니다.
예수님은 탄생은 창세기에서부터 예언되었습니다. 그럼 여러분은 어떤가요?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의 아들 딸이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1장 4-5절입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1:4-5)
우리 또한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입니다. 창세 전에 하나님이 미리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게 하시려고 예정하셨습니다. 우리는 약속의 아들, 딸입니다. 우리는 우연하게 무가치하게 태어난 것이 절대 아닙니다.
어떤 아이가 공원에 놀러 갔습니다. 벤치에 앉아 있는 아저씨 곁에 커다란 개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아저씨, 아저씨네 개는 사람 물어요?” “아니, 우리 개는 절대 사람 안 문단다.” 그래서 아이가 개를 쓰다듬으려고 하는데 그 순간 개가 아이의 손을 꽉 물고 말았습니다. 화가 난 아이가 따졌습니다. “아저씨, 아저씨네 개는 절대 사람 안 문다고 했잖아요?” 아저씨가 말합니다. “그래 맞아, 우리 개는 절대 사람 안 물어. 근데 이 개는 우리 개가 아니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신앙인은 약속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기로 작정하신 분들입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엡3:6)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갈3:9)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으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갈3:13-14)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브라함의 복을 주기 원하는 분입니다. 아브라함은 물질적인 복을 받았습니다. 집에서 길리운 사람이 318명의 장정입니다. 그 가족까지 하면 1000명 이상을 먹여 살리는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승리의 복을 받았습니다. 적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회춘의 복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임마누엘의 복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영생의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함께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이 복을 받기 원합니다.
우리의 삶을 보세요?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하나님은 축복하신다는데, 왜 염려합니까? 왜 불안해 하나요? 왜 근심 걱정에 사로잡혀 있나요?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들은 약속의 자녀들입니다. 이 땅에는 악한 영들이 있습니다. 악한 영의 공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히6:14-15) 하나님의 자녀들은 한 때는 어려움을 겪을 수 있지만, 나중에는 그 자녀 손들에게 꼭 승리하는 축복을 받습니다. 우리가 끝까지 믿음을 가지고 인내하며 나아갈 때, 반드시 복을 받을 줄 믿습니다.
시편118편에서 시편기자는 말합니다. “열방이 나를 에워쌌으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희를 끊으리로다 저희가 나를 에워싸고 에워쌌으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희를 끊으리로다 저희가 벌과 같이 나를 에워쌌으나 가시덤불의 불같이 소멸되었나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희를 끊으리로다”(시118:10-12) 여호와의 이름으로 승리를 약속받았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영적은 사람을 세우십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마1:2)
유대 사회는 장자권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뒤를 이은 자는 장자 이스마엘이 아니라, 영적 계보인 이삭이었습니다. 이삭의 뒤도 마찬가지입니다. 장자인 에서가 뒤를 이은 것이 아닙니다. 영적 계보는 야곱이 이었습니다.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12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첫 번째 장자 르우벤이 계보를 이은 것이 아니라, 넷째 아들 유다가 영적 계보를 잇고 있습니다. 특별히 유다는 형제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했을 때, 살리는 데 앞장을 섰던 사람입니다.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창37:26-27)
우리도 바로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영적인 사람이 축복의 사람이며, 믿음의 사람입니다. 고린도 전서를 보면, 교회 안에서 3가지 유형의 신자들이 나옵니다. 가장 먼저는 ‘육에 속한 사람’(the person without the Holy Spirit)입니다. 이런 사람은 교회에 나오지만, 직분을 받았지만, 구원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고린도전서 2:14절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2:14) 교회에 나오지만, 성령님을 몰라요. 영적인 세계도 모릅니다. 성경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들은 “성령으로 산다, 성령을 받으라. 성령을 체험하라.” 그러면, 속으로 생각합니다. ‘미친 놈들이구나. 미련한 자들이구나. 너무 광적으로 믿는구나.’ 육에 속한 신앙인들은 하나님을 위한 헌신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제자가 되는데도 관심이 없습니다. 남을 위한 희생도 없습니다. 단지 복을 받고 종교 생활하는 것으로 만족을 합니다. 진짜 예수님을 믿는 것은 성령을 체험하고 성령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으로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3:5-6)
그 다음 어린 아이와 같은 ‘육신에 속한 사람’(The worldly person)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을지라도 더 이상 영적 성장을 하지 못하고 어린 아이 상태로 머물러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고전3:1-3)
이런 사람들은 교회에 오래 나왔어도 은혜를 받고 축복을 받았습니다. 헌신도 하고 봉사도 합니다. 중직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장로님이 되고 권사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어린아이 수준입니다. 밥을 먹지 못하고, 죽을 먹고 사는 신앙인입니다. 예배 생활에 성공하지 못합니다. 헌금 생활에 성공하지 못합니다. 어느 교회에서는 목사님이 돈 이야기 한다고 말을 합니다. 목사님은 말합니다. “왜 돈 이야기입니까? 헌금 이야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