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신 강단

새마음훈련4

박도식 2021. 4. 12. 18:00

새마음 훈련4

 

히브리서 12: 14-17

14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못 하리라

15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16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 하라

17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포인트 워드: 쓴뿌리를 제거하라

활용: 내면의 상처는 결국 자신을 괴롭힌다. 그것으로부터 해방되어 나오는 것이 진정한 구원이며 하나님의 은총이다.

 

복음이란 무엇인가를 물어보면 사람들은 좋은 소식이라고 말한다.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죄와 상관없이 회개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죄를 생각할 때, 살인이나 강도 폭행, 치사, 등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죄를 생각한다. 그리고 마음 속에 품은 이기심, 시기심, 음욕 등을 말한다. 그러나 마음 속에 품은 죄가 무슨 큰 죄처럼 보이는가. 그래서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해 온 사람들은 죄에 대한 용서와 기쁨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감옥에 있는 사람들은 죄를 지은 것이 있고 형벌을 받고 있어서 죄의 용서가 피부로 와 닿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복음에 대해 피상적인 느낌을 갖기 쉽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우리 안에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은 것은 내면의 죄이다. 예를 들어, 거절감을 경험하고, 열등감 속에 사로잡혀 있고, 분노의 감정 속에 반복적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그 속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요즘 행복하다는 표현을 많이 한다. “하나님 저는 주님 때문에 행복해요. 주님 감사해요. 하루하루가 평안해요.” 내가 처한 환경을 보면서 그리 행복할 이유가 무엇이 많겠는가? 그러나 주님 앞에 기도할 때마다 내 마음속에 있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처리하고 나면 정말 기분이 좋다. 내 안에 있는 열등감, 분노의 감정, 거절감, 내면의 상처를 가지고 주님앞에 가서 아뢰는 것은 내 속사람으로 하여금 주님의 은총을 누리게 하는 것이다. 내 얼굴에 기쁨이 충만한 것도 새 마음 기도를 하면서 내 안에 있는 병든 마음을 치유받고 나서 그런 것이다.

어떤 남자는 아내가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스타일의 옷을 입었을 때 무척이나 화를 냈다. “나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평상시에는 비교적 다정다감하고 자상한데 가끔 한 번 화를 낼 때는 아내도 어쩔 줄 모른다고 한다. 아내와 상담을 받아오면서 남편은 자신이 무시당한다고 느끼는 순간 격분한다는 것을 알았다. 무시당할 때 예민반응을 보인다. 남편은 이 감정으로 가까운 친구와도 헤어졌고 직장에서도 어려움을 경험했다. 평상시는 괜찮은데 무시당했다고 느낄 때 엄청난 분노의 감정을 폭발한다. 반복적으로 행동을 할 때에는 내 자신을 주님앞에 아뢰든지 아니면 내적치유나 상담을 받아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반복적으로 무시당할 때 분노하는 것은 병든 마음에서 오기 때문이다. 병든 마음과 상처난 마음이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남편이 상담을 통해 병든 마음의 원인을 알았다. 그의 어머니는 살림이 어려워 식당을 경영해야 했다. 남편은 시골 외가집에서 맡겨져 있었다. 그 부모들은 외가집에서 외할머니가 잘 키워줘서 시골에서 편하고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들은 외갓집에 자라면서 엄마가 나를 버렸다고 느껴졌다. 시골길에 먼지를 뿌옇게 일이키고 달려오는 자동차를 볼 때마다 혹시 얼마일까 싶어 그 차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남편이 그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버려졌다는 느낌에 휩싸이곤 했다. ‘나는 버려졌다는 느낌을 받을 때마다 자신을 버린 어머니에 대한 적개심이 계속해서 쌓여만 갔다. 자신이 버려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았지만 마음속으로는 그 때의 버려진 느낌과 분노가 생생히 살아 있었다. 남편의 마음속에는 항상 버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늘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었다. 그 두려움 때문에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도 그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사람들이 언제 나를 배신하고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상대방의 사랑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상대방의 사랑을 계속 시험해 보거나 조금만 자신에게 소홀히하면 지나치게 화를 냈다. 결국 버려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자기보다 못한 사람과 결혼을 하였다. 어렸을 적에 받은 상처가 오래 남아 병든 마음이 되었다. 깊은 상처가 해결되지 않아서 병든 마음을 지닌 사람이 많다. 우리는 이렇게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있다.

 

병든 마음과 깊은 상처가 우리의 관계를 많이 해롭게 했다. 어떤 이는 과거의 상처와 아픔을 아는 것이 무슨 행복이며 복음이냐고 말을 한다. 그러나 그 원인을 알았으면 주님앞에 나아가 그 때의 감정을 아뢰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남에게 말하지 않았던 본인의 아픔과 상처를 하나님앞에 아뢰는 것이다. 스스로 억압해왔던 본인의 감정을 주님앞에 아뢸 때 주님은 기꺼이 그것을 다 들어 주시고 나를 품에 안아 주시며 상처난 가슴을 치료해 주시기 때문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내 안에 있는 부정적인 감정들, 열등감, 미움, 이기심, 거절감, 분노, 낮은 자존감 등을 주님앞에 아뢰는 것이다. 양파의 껍질을 벗기듯 우리안의 감정을 주님앞에 아뢰거나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 시작할 때 마음이 평안해지는 것을 느낀다. 정신치료는 그 감정들을 하나하나 끄집에 내는데 있지만 온전하지 않다. 왜냐하면 주님의 용서와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신치료는 병든 마음의 원인을 밝힌다. 곪아 진물이 나는 병든 마음을 만나고 상처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내 행동의 원인을 아는 것만도 대단한 치유이다. 그러나 치유가 온전한 나를 만들 수는 없다. 과거에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상처받은 영혼을 긍휼히 여기는 주님의 손길을 경험하기 전까지는 온전한 치유에 나아갈 수 없다. 나는 행복하다. 나의 감정을 양파 껍질 속에 꼭꼭 숨겨두지 않는다. 주님 앞에 나아가 나의 상한 감정을 내려놓고 주님의 음성과 주님의 뜻을 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새마음 기도를 하면서 내 안에 있는 쓴뿌리를 발견하고 치유하는 것은 우리 영혼에 도움이 된다. 여러 유익이 많다.

첫째는 내 심령이 새롭게 된다. 우리는 죄의 피해자이자 동시에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미워한 죄인이기 때문이다. 내 심령 속에 미움과 용서하지 못함, 원한, 배신감과 같은 영적인 쓰레기를 가지고는 우리의 심령이 편치 못하다. 성령님은 거룩한 영이기에 우리 마음속에 있는 그 쓰레기로 인해 우리는 편안하지 않다.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부정적인 감정으로 인한 결과로 인해 괴로워하지 않는가? 주님은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시는 좋은 분이시다. 다윗이 죄를 짓고나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면서 어떻게 기도하는가?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51:10)

 

상처를 치유하고 죄를 자백한 심령에는 기쁨과 평강이 임하지만 그렇지 않은 심령에는 고통과 괴로움 밖에 없다.

 

둘째,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한다. 우리가 당한 모든 상처나 죄악이 우리의 마음에 기록되어 있다. 나이테가 나무가 경험한 모든 것을 기록하고 있듯 우리가 지은 모든 행위가 하나님께 기록되어 진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12:36-37)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12:35)

 

우리가 선을 행하면 상급으로 기억되고 악을 행하면 심판으로 기억된다는 사실이다.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목전에 차례로 베풀리라 하시는도다”(50:21)

 

저는 어제 목사님들과 대화를 하면서 내적 치유에 대해 나누었다. 그들 대부분이 우리는 주님을 닮을 수 없다이었다. 그러나 나는 주님을 닮아가고자 한다. 주님의 겸손과 주님의 사랑과 주님의 섬김을, 나는 주님처럼 나를 향해 핍박하는 사람을 용서하기가 무척이나 어렵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주님이 용서를 명하셨으면 용서를 하고 축복하라고 말하고 싶다. 목사님들도 용서하기는 어려운데 어떻게 축복하냐고 한다. 그러나 주님이 하라면 해야 한다. 왜냐하면 나와 아버지 관계가 바르게 되는 길은 아버지의 용서를 자녀가 실행에 옮길 때 아버지와 친밀함을 유지할 수 있다. 내 의지로 힘들어도 아버지가 원하신다면 해야될 일이 아닌가?

 

내적 치유를 통해 심령의 평강을 회복함은 물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한다. 내 안에 있는 쓴 뿌리를 처리하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게 되고 하나님과 더욱 바른 관계를 가지게 된다.

 

셋째, 잃어버린 축복을 회복한다.

성도들이 누리는 축복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서 온다.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백성이며 자녀이다. 우리가 온전할 때 주님의 축복이 우리에게 온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풍성하게 누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의 죄가 그것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너희 죄가 너희에게 오는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5:25)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3:3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모든 상처를 치유받고 가해자를 용서할 때 도적이 훔쳐간 모든 축복을 되돌려 받을 수 있다. 신령한 축복을 받을 수 있고, 물질의 축복을 받으며 자녀들이 형통한 삶을 살 수 있다. 얼마나 감사한가. 나의 마음이 천국이 되고 주님의 기쁨이 있으니 자녀들이 행복하다. 나를 만나는 사람들이 웃는 얼굴을 보면서 행복하다. 우리 민족이 잘 되는 길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상한 감정들이 치유함을 받는 것이다.

 

우리의 상처가 치유를 받으면 동일하게 고통당하는 이웃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진정한 예수님의 복음을 전할 수 있다. 저는 말하고 싶다. 예수 믿으면 행복하다. 왜냐하면 상한 감정이 치유받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고 행복한가?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앞에 나아가 아뢰면 주님을 나를 기쁘게 받아 주시고 한없이 예뻐해 주신다. 교인수가 많고 적음이 상관이 없다. 물질이 많고 적음에 상관이 없다. 지금 주님과 함께 있는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이고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우리 안에 어릴 때 부모님이나 학교의 선생님이나 친척들로부터 학대를 받고 상한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이들의 마음에는 증오심과 용서못함, 외로움, 배신감,심지어 버림받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은 죄가 아니다. 감정이기 때문이다. 기쁘고 즐겁고 슬픈 것처럼 감정은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감정은 죄가 아니지만 우리의 마음 속에 쌓이면 죄가 된다. 하나님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5:26)고 하신다. 분을 내는 것은 우리의 감정이다. 분을 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분노의 감정을 바르게 표출하지 못하면 죄가 되는 것처럼 우리가 당한 아픔의 감정을 해결하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 죄가 된다. 내면의 아픔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것은 용서하고 축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미워한 죄를 회개하는 것이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요일3:15)

너희가 무슨 일이든지 뉘게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이는 우리고 사단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그 궤계를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고후2:10-11)

 

우리가 가진 아픔이 충격적인 사건이나 참상들이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감당하기 힘든 사고나 고통을 당했을 때 사람은 두려워한다. 성폭행을 당하거나 큰 사고를 당하거나 중한 수술을 할 때 두려움으로 고통을 당한다. 더구나 어머니 뱃속의 아이는 엄마가 담배나 마약을 피우거나 술을 먹었다면 태아에 치명적이다. 우리는 충격적인 사건이나 참상들을 예수님께 맡겨야 한다. 그리고 빈 자리를 주님으로 채우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말에 때린 자는 고통스러워하지만 맞은 자는 발뻗고 잔다고 한다. 실제로는 가해자보다는 피해자가 원망과 증오로 인해 더욱 힘든 삶을 살아 간다. 심지어는 정신질환자들 중에 증오와 좌절과 낙심으로 인해 고통당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 민족만이 가지고 있는 한의 정서를 어떻게 풀 것인가? 성도들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군병들을 위해서 기도하신 주님처럼, 자신을 향해 돌을 던지는 유대인을 위해 기도한 스데반처럼 원수를 용서하고 축복할 때 한이 풀리고 마음의 평안을 유지할 수 있다.

 

만약 우리 안에 잘못된 생각과 그로 인한 견고한 진이 우리를 힘들게 한다면 잘못된 생각을 주님께 내려놓으라. 그리고 주님께서 긍정적이고 축복된 생각을 주시도록 기도해야 한다. 어느 순간 쉽게 받아들여진 잘못된 생각이 내 안에 견고한 진이 되어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는 구제불능이야. 나는 안돼. 나같은 것이 무엇을 할 수 있겠어. 도무지 나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 사람이야.’ 부정적인 사고가 우리 안에 있으면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온전히 볼 수 없다. 이런 경우, 잘못된 생각을 주님께 내려놓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할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선포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11:2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