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의미
부활의 의미
고린도전서 15장 51-58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55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희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포인트 워드: 부활
활용: 예수님은 죽은 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살아나신 것이다. 이 능력이 오늘 우리 성도들에게 있기 원한다.
인간은 희망을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내일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리면 그대로 자멸하고 맙니다.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입니다. 사람을 밥을 먹지 않고는 2주나 3주를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희망이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9회말 투아웃 투쓰리 풀카운트의 상황이라도 역전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말이 있죠? “경기가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축구에서는 말합니다. “공은 둥글다.” 끝까지 해봐야 안다는 것입니다. 바둑에서는 ‘신의 한 수’라는 말이 있습니다. 패전이 짙은데 바둑 알 하나로 인해 전세가 역전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소망을 주시는 분입니다. 로마서 15:13절,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15:13)
죽으면 모든 것이 끝입니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예수님은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기독교는 변화의 종교입니다. 기독교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약한 자가 강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자가 부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눈 먼 사람이 눈을 뜰 수 있습니다. 병든 자가 고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문제 투성이의 사람이 변화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희망입니다. 부활의 예수님이 함께 하는 곳에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어리석은 자가 지혜로운 자가 되고, 안 되는 자가 잘 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불행한 인생이 축복의 인생이 됩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부활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과 살은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눅24:39)
예수님은 역사적인 인물입니다. 사람이 지어낸 가상의 인물이 아닙니다. 역사학자들도 인정합니다. 석가모니는 그가 죽은 뒤 230-600년 후에 쓰여졌습니다. 공자는 죽은 뒤 400년이 지나서야 글이 쓰여 졌습니다. 마호메트는 그가 죽고 137년 후에 쓰여졌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은 후 18년-35년이 지나서야 제자들에 의해 쓰여졌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①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습니다. 공자의 무덤은 중국에 있습니다. 스탈린의 무덤은 소련에 있습니다. 마호메트의 무덤은 사우디 아라비아에 있습니다. 김일성 무덤은 평양에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무덤은 없습니다. 역사적인 예수님이 죽으셨다면, 무덤이 있었을 것입니다.
② 천사들이 말을 합니다. 예수님이 살아나셨다고.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막16:6)
죽었다가 산 자들이 있습니다. 어떤 시동생은 형수의 시체에서 반지를 빼려고 하는데, 살아났습니다. 윤석전 목사님의 어머니는 아버지에 의해 대들보에 목을 매달려 죽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어머니가 죽어 있는 것입니다. 5시간 만에 어머니가 부스스 깨어나더니 말합니다. “왜 날 불렀느냐? 천국이 너무 좋았는데.” 예수님께서 어머니께 말하더랍니다. “너는 돌아가라. 네 자녀들이 울고 있다.”
③ 파숫군 장로들 대제사장들 군병들이 증거합니다. 군병들이 돈을 받고 예수님이 부활한 사실을 숨겼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탄로가 납니다. 역사는 감추인 사실을 밝혀 냅니다.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해에 함께 있던 가수가 심수봉입니다. 전두환은 박정희 대통령이 “괜찮아”라고 말했다고 하지만, 심수봉은 대통령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조용히 해”라고 말한 뒤, 총성이 울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두환이 100만원 주면서 입을 다물라고 시켰다고 하는 것도 고백했습니다.
④ 예수님이 수많은 제자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⑤ 제자들의 삶이 변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 이후에 실의에 빠졌던 이들이 예전의 삶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핍박을 감수하면서 복음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증거입니다.
⑥ 예수님께서 살아나실 것을 예고 하셨습니다.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마17:23)
⑦ 오늘날 기독교 세력의 확산을 보면 압니다.
바울이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빌3:10)
예수님의 부활이 가짜였다면, 2000년이 넘도록 건재할 수 있었을까요?
지구상에는 13억 명의 카톨릭 인구와 11억 명의 개신교 교인, 3억 5천 만명의 그리스(동방)정교회 신자들이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정근모 박사가 쓴 책이 있습니다. “나는 위대한 과학자 보다 신실한 크리스찬이고 싶다.”
정근모 박사는 경기중고등학교 수석으로 입학하여 4개월만에 고등학교 과정을 마친 사람입니다. 서울대 물리학과에 차석으로 입학하여 미국 미시간 주립대학에서 석사 과정없이 바로 박사 과정을 6개월만에 통과한 사람입니다. 그의 나이 24살에 대학 교수가 된 분입니다. 그가 신부전증으로 고생하는 아들에게 자기 신장을 이식해 주면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비과학적이지고 납득이 되지 않지만, 정근모 박사는 믿었기에 신실한 크리스찬을 원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허구라면, 불신자였던 이어령 교수님이나 정근모 박사 이런 분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전하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예화)
태어나면서부터 뼈가 약한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뼈가 종이장처럼 약했다고 합니다. 10번 이상 정형외과 수술을 받았다고 합니다. 뼈를 자르고 깎고, 다듬고 하는 과정입니다. 외양간에서 뼈를 적출해내듯, 목사님의 뼈를 잡아 댕기고, 자르고 붙이고, 너무 힘들었다고 합니다. 누구는 잘 걷습니다. 그러나 이분은 걸을 수 없는 분입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하나님께 울면서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왜 나를 태어나게 했어요? 하나님 나는 죽고 싶어요. 하루 하루가 지옥같은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환상 중에 예수님이 자기에게 오시더랍니다. 자기 앞에 무릎을 꿇고 말하더랍니다. “아들아, 미안하다. 제발 죽지는 마라.” 예수님이 자기 발을 붙잡고 울고, 목사님도 흐느끼며 울었습니다. 지금은 결혼을 해서 두 발로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중국에서 선교사로 사역을 하십니다.
둘째,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명합니다.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병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가로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 하라”(마28:12-13)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자들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갔다고 합니다. 제자들이 유언비어를 터뜨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고난당할 때 예수님을 혼자 버려두고 자기 살기 위해 도망쳤던 사람들입니다. 수제자 베드로는 안나스와 가야바의 뜰 재판정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제자들은 로마 군병이 지키는 무덤 근처에 나아갈 용기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에서 제자들이 목숨걸고 외친 복음이 있습니다.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행3:14-15) 예수님이 다시 살아난 것을 전했습니다. 사도행전의 제자들은 십자가에 죽은 예수님을 전한 것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님,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제자들의 최후의 모습이 한결같이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살아나셨다고 외치다가 마지막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초대 교회사에 보면 제자들의 죽음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는 로마에 가서 전도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죽었고, 안드레는 헬라에서 전도하다가 아가야성에서 엑스자형(X)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고,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헤롯에게 칼로 목베어 죽었고, 빌립은 서아시아 부르기아에서 전도하다가 기둥에 매달려 죽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를 모시면서 유대땅에서 전도하다가 주후 70년 예루살렘 멸망 후 에베소에 가서 전도하다가 그곳에서 핍박을 받아 끓는 기름 가마에 던져졌지만 기적으로 살아나 다시 밧모섬으로 귀향 보내졌고 그곳에서 요한계시록을 받아 기록하고 죽었습니다. 바돌로매는 아르메니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고, 도마는 인도에 가서 전도하다가 창에 맞아 죽었습니다. 마태는 에티오피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목베임을 받아 죽었고,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성전 꼭대기에서 떨어뜨려 죽임을 당했고, 시몬은 애굽에서 전도한 후 다시 유대에 돌아와서 전도하다가 활에 맞아 죽었습니다. 야고보의 동생 유다는 바사에 가서 전도하다가 활에 맞아 죽었고, 가룟 유다 대신 선출된 제자 맛디아는 에티오피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만일 예수님의 부활이 거짓말이라면 어떻게 한 두사람도 아니고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 전원이 생명을 걸고 복음을 증거 했겠습니까? 여러분은 거짓말을 위해 순교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살아 계십니다.
셋째, 부활이 주는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①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의롭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4:25)
과거에 어떻게 살아왔던지, 우리가 과거에 어떤 사람이든지 상관하지 않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은 의로운 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롭기에 의로운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기에 의로운 것입니다.
예화) 무디 목사님을 찾아 온 마약왕
"저도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저도 의로와 질 수 있습니까?"
"자수하여 감옥에서 죄값을 치르고 오세요. 그리고 새롭게 살면 됩니다."
"저에게 아내가 있습니다. 목사님께서 아내에게 기다려 줄 수 있는지 물어 주시겠어요?"
②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가운데 있을 것이요”(고전15:17)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가장 불쌍한 자들입니다. 시간을 낭비하고 인생을 허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40년 더 살다 죽는다면, 끝입니다. 절망적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부활신앙을 가진 자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이 험하고 악한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예수님을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알지 못합니다. 어떤 분은 화장실에서 용변보다 죽고, 어떤 분은 택시운전하다 죽습니다. 어떤 분은 밥을 먹다가 죽기도 합니다. 어느 젊은 새댁은 수요일 교회 예배에 참석하고 교회 문턱을 나서다 쓰러져 죽었습니다. 제가 알던 어떤 분은 아침 9시에 통화했습니다. 그런데 9시 30분에 시화병원 응급실에서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③ 부활 신앙은 우리 신앙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나를 의롭게 하려고, 나를 승리케 하려고 말입니다. 나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기에 지금 희망이 없다고 절망하지 마세요. 부활이 주님을 만나면 희망이 생깁니다. 지금 병이 있다고 한숨을 쉬지 마세요. 예수님을 만나면 고침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뭐가 안 된다고 불평하지 마세요.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술술 잘 풀릴 수 있습니다. 가난한 자도 부하게 됩니다. 말썽꾸러기도 선한 사람으로 변화받을 수 있습니다.
2021년 3월 30일은 제 인생이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결혼한 지 28년 동안 한 번도 아내에게 “당신 덕을 보며 삽니다. 당신 때문에 잘 됩니다.” 이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정식으로 아내에게 사과했습니다. “당신 덕을 보며 삽니다. 당신 때문에 행복합니다. 당신 때문에 교회가 부흥합니다. 당신 때문에 잘 됩니다.” 제 인생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지난 온 세월을 되돌아 보면, 하나님께 죄송하고, 아내에게 미안합니다. 성령님께서 제 안에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잘 안 변합니다. 변하더라고 좋지 않은 쪽으로 변합니다. 그런데 제가 변화되는 것을 보세요. 27년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내 안에서 조금씩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미안하지만 저의 가정 이야기를 할께요? 지난 주에 딸아이가 엄마 발을 씻겨 드렸습니다. 그리고 제 발을 씻겨 주었습니다. 저도 아버지 어머니 발을 맛사지 해 드린 적은 있었지만, 딸 아이가 엄마 아빠를 섬겨주니 고마웠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사람이 변합니다. 좋은 일이 생깁니다.
④ 부활이 없다면 인생은 무책임한 삶이 됩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인생들은 놀고 먹고 즐기는 데 앞장 설 것입니다. 내세의 삶이 없으니, 현세에서 쾌락을 즐기는데 앞장설 것입니다. 윤리, 필요 없습니다. 양심, 필요없습니다. 도덕, 필요 없습니다. 내가 좋으면 됩니다. 육체적으로 마음껏 즐기고 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천국과 지옥이 있기에 절제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사람다운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도덕적이고 남을 생각하는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영국의 문인 찰스 램의 이야기입니다. 청년 시절에 한 여인을 깊이 사랑했습니다. 청혼하기 위해 그녀의 집에 갑니다. 본인은 당연히 자기의 청혼을 받아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집에 도착해서 문을 여니 하인이 말합니다. “아가씨께서는 당신을 만나지 않겠답니다.” 냉정한 거절입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자기를 거절한 이유를 알려달라고 편지를 씁니다. 답장이 왔습니다. “나는 당신을 기다리며 창문을 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당신을 보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당신은 길에서 일하더 있던 한 여인을 밀치고 그냥 지나치더군요. 당신은 넘어진 그녀를 부축해 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때 나는 내 한 평생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은 저 사람이 아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불쌍한 한 여인에게 친절을 베풀 수 없는 사람이라면, 나에게도 결코 진정한 사랑을 베풀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부활의 신앙이 있기에 교회에 나올 수 있고, 부활의 신앙이 있기에 헌금할 수 있습니다. 부활의 신앙이 있기에 하늘 창고에 보화를 쌓고 있습니다.
⑤ 부활 신앙을 가진 자는 견고하며, 흔들리자 말고 항상 주의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니라”(고전15:58)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부활을 믿기 때문입니다. 헌금을 할 수 있는 것도 부활신앙 때문입니다. 교회에 충성하는 것도 부활신앙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시기에 우리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오늘을 살되 아무렇게나 살지 않습니다. 믿음에 견고한 자가 되어 주님의 일에 더욱 힘쓰는 삶을 살아갑니다. 부활의 신앙이 고난과 절망을 이겨낼 힘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했던 록펠러가 장래성이 없다고 해서 첫 여인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일생동안 놀라운 일을 몇 가지 남겼습니다. 1. 가장 가난한 자가 가장 부요한 자가 되었습니다. 2. 가장 많은 돈을 남에게 준 자가 되었습니다. 3. 가장 장수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98세까지 살면서 치아가 하나도 썩지 않았다고 합니다. 4. 가장 신실하고 건실한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는 한 번도 춤추는 곳을 가거나 술이나 담배를 입에 댄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5. 가장 믿음의 높은 수준을 보여 준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한 번도 주일예배에 빠지지 않았으며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했습니다. 식사 때마다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기도했고, 매일 성경을 읽었습니다. 눍어서 눈이 어두워지자, 성경 읽은 사람을 고용해서 늘 곁에서 성경을 읽게 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들이여,
부활의 신앙을 소유하십니다. 오늘과 내일은 고통과 눈물의 세월이라 할지라도 제 삼일에 주님의 부활을 본받아 좋을 날이 옵니다. 건강할 때가옵니다. 축복의 때가옵니다. 우리 모두 부활 신앙으로 승리하십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