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신 강단

은혜의 복음

박도식 2021. 3. 23. 15:47

은혜의 복음

 

고린도후서 6:1-2

1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2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포인트워드: 은혜

활용: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 은혜이다. 값없이 그저 주신 것이다. 그 은혜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감사하는 사람이고 행복한 사람이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를 귀하게 받아야 한다.

 

성경을 가슴에 안고 고백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영혼의 양식이며 영적 전쟁에 무기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오늘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말씀은 고린도후서 6:1-2절입니다. “은혜의 복음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요한 312절에서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해 지기를 바랍니다. 주 예수님의 은혜가 충만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요즘 예수님을 믿으면 좋은 복음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첫째가 문제 해결의 복음입니다. 문제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직장 문제, 자녀 문제, 물질문제 등. 우리를 괴롭히던 문제들이 예수님을 믿으면 해결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기쁨이 있고 웃음이 있습니다. 둘째로 신유의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 병든 자들과 약한 자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병들어 아픈 자들의 아픔을 누가 알아줍니까? 가슴 아픈 자들의 사연을 누가 들어 줍니까? 예수님이 들어 주십니다. 죽을 사람들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게 됩니다. 병고침 받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의사는 고칠 수 없어도, 예수님은 고칠 수 있다. 예수님을 믿어라.”

 

오늘은 은혜의 복음에 대해 전하고자 합니다. 은혜라는 말은 영어로 ‘Grace’이며, 히브리어로 헤세드’, 신약 카리스입니다. “동정하다, 호의를 베풀다, 열망하다, 자비롭다, 신뢰하여 호의적으로 대하다, 우정, 친절, 기쁨, 총애, 매력등의 의미를 갖는다. 은혜는 자격이 없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교회에 나오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습니다.

 

민수기 6:25-26절입니다.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기시를 원하노라 할찌니라

 

교회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해야 합니다. 은혜가 흘러 넘쳐야 합니다. 목회자에게도 은혜가 넘쳐야 하고, 성도님들에게도 은혜가 넘쳐야 합니다.

 

아무리 실력이 좋고 잘 생겼어도 은혜가 없으면 안 됩니다. 아무리 돈이 있고 잘난 사람이라도 은혜가 없으면 하나님이 쓰시지 않습니다. 은혜없는 성도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성신교회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넘쳐 납니다.

 

성경에 나오는 신앙의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노아를 보세요. 창세기 68절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요셉을 보세요. “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다니엘을 대표하는 말이 있습니다. 다니엘서 1019절입니다.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다니엘은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어떤가요? 천사가 예수님의 잉태를 말합니다.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1:30)

 

우리는 은혜 받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은혜를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은혜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무엇인가요?

 

첫째, 만남이 은혜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16:9)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 도움을 주시기 위해 사람과의 만남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어릴 때는 부모님과의 만남을,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선생님과의 만남을 주셨습니다. 장성해서는 배필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만남을 통해서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아담이 혼자 있을 때는 외로왔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안쓰러워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아담이 하와를 보면서 말합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2:23) 아담은 하와를 자신과 같이 생각하였습니다. “내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그처럼 아내가 귀한 존재였고 사랑스런 존재였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만남은 축복의 만남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이후입니다. 하나님이 죄를 추궁할 때 아담은 말합니다.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3:12) 하와를 가리키는 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여자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선물이 말썽꾸러기였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눈으로 보면 하와는 분명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러나 은혜가 사라지니 하와는 문제 여인이었습니다. 은총의 만남이 원수와의 만남으로 전락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루에도 수 없는 사람을 만납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왔습니다. 그들과 어떤 관계로 지내고 있습니까? 은총의 만남으로 만들어 가십니까? 아니면 절대 만나지 말아야 할 만남으로 만들어 가십니까?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적을 만들면 안됩니다. 인자무적(仁者無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진 사람은 적을 만들지 않습니다. 옆의 사람이 나를 돕는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잠언 196절에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그러운 사람에게는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고 선물을 주기를 좋아하는 자에게는 사람마다 친구가 되느니라”(16:9) “선물은 그 사람의 길을 너그럽게 하며 또 존귀한 자의 앞으로 그를 인도하느니라”(18:16) 좋은 인간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화) 손현보 목사

가난한 가정에 태어난 목사님이 계십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은혜를 받고 목사님이 되려고 작정을 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가진 분입니다. 그러나 그의 가정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믿는 본인을 핍박했습니다. 그의 형은 아들이 교회에 나간다고 술을 먹고 낫을 들었습니다. 동생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성경책을 찢어 불에 던지고 예수님을 욕하고 전도사님에게 욕을 퍼부었습니다. 집안에서 반대가 심했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온 가족이 모여 있는 가운데 선포합니다. “우리 가족이 예수 안 믿으면 믿을 때까지 내가 금식하다 굶어 죽을 것입니다.” 본인은 자기가 금식하여 죽으면 가족 식구들이 천국과 지옥에 대해 생각할 것이라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엄마가 밥을 주어도 먹지 않았습니다.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야 하는데 아들이 밥을 먹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출발하는 버스를 세우고 도시락을 줍니다. 그런데 아들은 말합니다. “엄마가 예수 안 믿으면 내가 굶어 죽을 것이다.” 그리고 도시락을 던져 놓았습니다. 차 안에 여학생들이 많았지만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결국 어머니의 영혼을 구원시켰고 낫을 들었던 형은 목사님이 되어 있습니다.

 

이분이 신학교를 입학할 때입니다. 신학교 시험은 쳤는데 등록금이 없었습니다. 돈을 대어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작은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논이 삼십마지기 있어야 대학 하나 보내는데 너는 죽었다 깨어나도 대학 못 간다.” 그래도 이 분은 자기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반드시 신학교 가서 목사가 될 것입니다.” 다짐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암담합니다. 어머니는 기둥에 등을 대면서 한숨만 푹푹 쉬었습니다. “못난 부모 만나서 학교도 못간다고 한탄만 했습니다. 그걸 보는 목사님의 마음도 답답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집 주변에 있는 절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불현사라는 절에 갑니다. 마침 스님이 있었습니다. 한 두 번 안면이 있는 스님입니다. 스님이 신학교 들어 갔냐고, 등록은 했냐고 물어 봅니다. 못했다고 하니 봉투에 60만원을 주었습니다. 스님하고 인간 관계를 맺어더니 하나님이 그 손길을 이용하셨습니다.

 

신학교에 다닐 때 그 절의 부속건물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스님은 불공을 드리고 목사님은 새벽예배에 다녔습니다. 스님도 일제 시대에는 주일학교에 다녔다고 합니다. 과일이나 음식도 제사 드리지 않은 것만 따로 챙겨 놓아 주었습니다. 용돈과 책값 등록금도 주었습니다. 그 마을에 중하고 목사하고 함께 산다는 소문인 날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부산 세계로 교회 손현보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스님을 통해 한 목회자가 목회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우리는 스님이 준 돈으로 공부했느니 그 목사님은 거룩하지 않은 사람이고 나쁜 사람이야. 목회가 성공하지 못할거야.’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요 엘리야가 36개월 동안 기근 동안 있을 때 어디에서 도움을 받았습니까? 사렙다 과부의 손길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과부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경제 능력이 없고 외로운 자들입니다. 특히 이 여인은 자기와 아들을 위해 마지막 음식을 하려고 했던 가장 불쌍한 여인입니다. 사렙다 과부는 이방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엘리야를 위해 이 여인을 준비하셨습니다. 목회자 입장에서 어찌 여인에게 음식을 요구하겠습니까? 마지막 음식을 잘 드시라고 하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주의 종을 통해 그 음식을 요구하시고 사렙다 과부에게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기독교는 만남의 종교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더욱이 하나님과의 만남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저와 여러분은 모든 만남을 은총의 만남으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축복의 만남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둘째, 시간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알게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90:12)

 

오늘 하루는 분명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입니다. 가시고기라는 책에서 말합니다. “오늘 내가 무의미하게 보내는 하루는 죽은 사람이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내일이다.”고 말입니다. 오늘 내가 살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을 받은 것입니다. 프랭클린은 말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시간이다. 그러므로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은 가장 귀한 것을 낭비하는 사람이라.” 영국에 시간은 돈이다(Time is money). 시간은 황금이다(Time is gold).”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시간은 그 정도로 귀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오늘 하루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하루 24시간, 1440분입니다. 1분을 만원으로 환산하면 1440만원을 받은 것입니다.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1440분을 주셨습니다. 시간은 쓰지 않아도 없어집니다. 시간은 유익한데 써야 합니다. 사람들이 돈을 아낄 줄 알지만 시간을 아낄 줄은 모릅니다.

 

어떤 학자는 성공적인 사람들을 연구하고 나서 이렇게 발표했습니다. “저녁 6시부터 10까지의 시간이 제일 소중하다.” 성공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은 직장에서 퇴근을 한 후의 시간을 보람있게 보낸다는 것입니다. “4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중요하답니다. 성공하는 이들은 그 시간에 자기 개발을 하거나 여가를 선용할 줄 압니다. 미래를 준비하는데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어떻게 보냅니까? 텔레비전을 보던지 회식 자리를 갖습니다. 텔레비전을 벗 삼거나 술을 벗 삼아 시간을 낭비합니다. 그러나 4시간을 잘 보내면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 골든 타임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시간입니다. 하루에도 골든 타임이 저녁 8시나 9시입니다. 그래서 9시 뉴스가 인기가 좋은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골든 타임이 있습니다. 이 시간을 가장 중요하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청소년의 시기가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인생을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톨스토이는 말합니다. “지금 이순간, 내가 하고 있는 일, 내가 만나는 사람이 가장 소중하다.” 스펄전 목사님은 하나님의 달력은 아무리 넘겨도 오늘이다.”라고 합니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그러나 마귀의 시간은 내일입니다. “내일 하면 되지. 내일 해 그래서 선물을 영어로 어떻게 표현합니까? present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또 하나의 뜻이 있습니다. “현재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현재가 곧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호흡을 할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고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시간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중요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지금이 바로 은혜 받을 때요.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이로다.” 지금이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가장 귀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현재에 충실하게 되면 우리의 인생은 아름답게 빛날 것입니다.

 

지난 목요일 신학교 동기 목사가 암으로 투병 생활을 하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지난 3월에 병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4개월 동안 항암 치료를 받았습니다. 대장암 말기라는 판정은 너무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유족으로는 30대의 사모와 7살 딸, 5살의 아들이 있습니다. 아들 녀석에 엄마에게 매달립니다. 그 아이는 아빠가 천국 갔다는 사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자기 요구를 들어 달라고 보챌 뿐입니다. 목사님의 죽음을 경험하고서 다시 생각해 봅니다. 지금 오늘이 얼마나 큰 축복이며 하나님의 은총인가를 말입니다. 지금 나와 함께 하고 있는 가족, 그리고 성도 여러분이 얼마나 소중한가요. 여러분 가운데 오늘 해야 할 일을 오늘 하려고 마음 먹어야 합니다. 내일 하겠다고 말하지 마세요. 내일은 없습니다. 단지 오늘이 계속 이어질 뿐입니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다면 내일은 없는 것입니다.

 

셋째, 구원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을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습니다(3:17).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1:9)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고 있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그저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사람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사건입니다. 어느 종교에도 신이 인간이 된 경우는 없습니다.

 

요한복음 524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되신 예수님이 요한 복음에서 한 말씀이 저를 울렸습니다. 요한복음 1028-29절입니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내게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리라”(10:28-29)

 

예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는데 예수님의 손에서 빼앗아 갈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습니다. 그 영생을 빼앗을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권력자도 영생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하늘의 천사도 영생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어떤 질병도 어떤 환난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생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로마서 831절입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우리는 영생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헌금을 많이 해서 얻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정직하기에 얻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저 주셨다고 합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2:8-9)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은혜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가치를 아느냐는 것입니다. 그 은혜에 감격하고 감사하는 삶을 사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교회에 출석하던 사람도 지옥에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책에서 지어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경우에 지어질까요? 죄를 지을 때 그렇습니다.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1:9)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는 자는 지옥에 갑니다.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 아닙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아서 지옥에 갑니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은 회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요 축복입니다.

 

아일랜드 출신 작가 오스카 와일드라는 분이 이런 글을 썼습니다. 예수님께서 은혜를 베푸신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고침받은 문둥병자, 죽었다가 살아난 청년, 병 고침받은 사람들이 과연 무엇을 하고 살았을까를 추리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소설로 썼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과거에 은혜를 베푼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어떤 곳에서 알콜 중독자를 만났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입니다. 예수님이 묻습니다. “내가 당신을 어디서 본 일이 없습니까?” “, 있었지요. 저는 절름발이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고쳐 주어서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절름발이 였을 때는 이렇게 저렇게 얻어 먹고 살았는데 건강해 지니 할 일이 없었습니다. 누가 나를 환영하지도 않았고 결국 알콜 중독자가 되었습니다.” 또 한 사람을 만납니다. 창녀였습니다. “아니 네가 창녀일 때 용서하고 구원해 주지 않았느냐 아직도 창녀의 생활을 하고 있느냐?” “물론입니다. 제가 예수님을 만나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딸로 창녀 생활을 청산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거들떠 보는 사람이 없고 갈 데도 없었습니다. 할 일도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외로웠습니다. 그래서 다시 옛날 직업으로 돌아와서 삽니다이번에는 조폭 두목을 만났습니다. 싸움질을 하고 혈기 왕성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묻습니다. “자네는 어떻게 폭력배가 되었나?” “예수님 저는 시각장애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저의 눈을 치료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감격하고 감사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눈을 뜨고 보니 아니꼬운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더럽고 치사하고 모순된 것이 많았습니다. 부정부패와 타락한 모습에 울분이 터져서 조폭이 되었습니다.”

 

가상의 이야기이지만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의미가 큽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은혜를 받았습니다. 구원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은혜를 은혜로 알고 은혜를 지켜가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 신앙인은 하나님의 은혜를 지켜야 합니다. 은혜를 헛되이 받아들이면 안됩니다. 늘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오늘 내가 살아 있다는 것으로 감사해 보세요. 그러면 놀라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는 나를 알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은혜를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도 은혜받아야 합니다. 교회도 은혜가 넘쳐나야 합니다. 목회자들은 더욱더 은혜가 넘쳐나야 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제가 받은 은혜는 시편 16:3절입니다.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시편16:3) 성도들을 존귀한 자로 봅니다. 심지어 천사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니 너무 감사합니다. 남을 비판하거나 비난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더 악한 자요, 죄인 덩어리이기 때문입니다. 남의 부족함과 허물을 보면, 오히려 회개하게 됩니다. 나를 보게 됩니다. 은혜 받기 전에는 남의 허물이 보입니다. 다른 교회들의 허물이 보입니다. 그런데 은혜를 받으니, 나의 허물과 단점이 보입니다. 남의 허물을 볼 때마다 정죄하기 보다, 긍휼히 여기면서 기도하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의 원수였을 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는데, 우리는 원수를 향해 어떤 마음을 먹고 있나요? 우리가 죄악 덩어리였을 때, 예수님이 채찍에 맞았습니다. 알고보면, 우리가 더욱 악한 자입니다. 남을 판단하기 보다, 남을 축복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에 오면 은혜를 받습니다. 만남이 은혜입니다. 있을 때, 잘 해 주어야 합니다. 모든 만남을 축복의 만남으로 바꾸어 가야 합니다. 은총의 만남이어야 합니다. 또한 시간이 은혜입니다. 하루 하루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은혜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여 구원받는 다는 것이 은혜입니다. 회개할 수 있을 때, 회개하는 것이 얼마나 좋아요? “내가 부족해서 그래요. 잘못해서 미안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을 할 뿐입니다. 오직 은혜만 남을 때 우리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